아이즈 와이드 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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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 US/UK)
  • Eyes Wide Shut(1999)

1 # 오찬익 2000-09-12[ | ]

친한 친구랑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때 서로의 반응은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졸작이다!' '괜찮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느낌이 좋은 영화이거나 아니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후자의 경우였다. 영화를 본 이후 지금까지 장면 장면의 떠올리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곱씹게 했으니까... 이 영화에서 어떤 좋은 느낌을 느끼고자 한다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매우 기묘하고 불쾌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3류 포르노나 다름없는 작품으로 전락하고 말것이다. 하지만...큐브릭이 의도했던 바는 그런 좋은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큐브릭의 이전 작품들을 봤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럴꺼라 기대했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난 KingCrimson의 'InTheCourtOfTheCrimsonKing'을 떠올렸고 큐브릭이 프립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다. 잘 모르지만 큐브릭은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그는 매우 까다롭고 치밀한 사람인 것 같고, 프립또한 그러하다. 그의 유작인 이 작품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작품이다. 마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 언뜻 들으면 혼란스러운 듯 하면서도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고 있듯, 이 작품 또한 혼란스런 장면들 속에서 큐브릭이 말하고자 하는 '거대한' 동기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 미술 등, 예술 작품을 느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부함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느낌은 일면의 진실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긴 하다. 하지만 작가가 때론 그의 작품이 논설문이나 설명문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위해 전달하고자 하는 많은 의미들을 은유적인 표현이나 함축적인 표현으로 바꿔 놓는 경우가 많다. 추리 소설은 하나의 복잡한 '미로 찾기'와도 같아서 관찰과 분석을 통해 해답을 찾아 나갈때 그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작품의 분석은 단순히 결과로서 주어진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 작품의 '묘미'는 살아나고 '감동'은 증폭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런 과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차라리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티비에서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는 편이 훨씬 느낌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고, 굳이 복잡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굳이 '예술'을 고집한다면 당신은 키취적인 감성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거나 아니면 움직이는게 귀찮기 때문일수도...^^;;

아이즈 와이드 셧? 난 영화를 보기전까지 제목의 의미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건 내가 문자에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_-;;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참 모순된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 아이즈 와이드 오픈이 아니라 아이드 와이드 셧 이라니... 눈을 활짝 감아라?-_- 이 작품은 많은 모순된 상황들을 보여주고 또 그런 상황을 통해 모순된 인간 심리를 보여주려 의도하는 것 같다. 아니, 좀 거창하게 말해서 억압된 욕망과 감춰진 진실, 현실적인 적응과 욕망의 판타지의 갈등구조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인 탐 크루즈가 크리스마스 이브(편의상 그렇다고 하자^^;;) 에 겪은 몇가지 사건들을 살펴보자. 그는 세 여자를 만난다. 한명은 자신이 담당한 환자의 딸로 그의 임종을 확인하러 그 집에 가게된다. 근데, 그녀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적극 적인 애정표현을 하려한다. 난처한 톰 크루즈가 그녀를 거부한 이유는 자신이 유부남이란 사실이었다. 두번째 만난 여인은 길에서 만난 어떤 창녀다. 그녀의 성적인 매력에 반한 톰은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 하지만 때마친 걸려온 아내의 전화때문에 그만둔다. (사실은 그는 여전히 마음이 있었지만 창녀의 태도 때문에 그만 둔 것 처럼 보였다.) 또 의상을 빌리러 갔던 가게에서 이상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주인장의 어린 딸을 만나게 된다. 세 여인과의 만남은 굴절된 남성의 성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애인 혹은 배우자가 있는 이성에 대한 욕망... 그것은 관습적으로 부정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를 걸었을 때 약혼자가 받으면 끊어야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관계이다.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그들이 돈을 주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여성을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자신이 원하는 매력을 지닌 이성을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아 보인다. 성관계로 인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만일, 그게 에이즈라면 더욱 치명적이겠지... 나이 어린 소녀에게 느끼는 성욕은 또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잘못하면 철창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으니...

그가 겪게 되는 모험은 더욱 의미 심장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섹스교의 집회? 그리고 광란의 섹스 파티?? 우선, 크리스 마스 이브 전날밤의 파티를 생각해 보자. 그 파티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일상적이며 화려한 파티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떠했는가? 톰의 아내와 헝가리인은 뜨거운 밀어를 주고 받고, 톰 자신은 두 여인의 유혹에 거의 넘어갈뻔 했으며, 파티를 마련했던 쥔장은 은밀한 곳에서 젊은 여인과 환각의 섹스를 즐기고...

우리의 일상은 사실 곳곳에서 성적인 흥분을 감추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갖가지 구실로 적절히 제어되고 또 숨겨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가 뚜껑이 열렸던 그날 밤의 모험은 매우 노골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마치, 이교도의 집회같은 기묘한 의식과 이어 각각의 방들에서 벌어지는 상상가능한 모든 성행위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을 쓴 섹스라... 앞에서 그가 만났던 세 여인과의 섹스가 불가능했던 까닭은 그들 사이의 어떤 관계들 때문이었다. 만일 익명성이 보장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섹스를 바라는 것 같다.

현실에서의 섹스는 그 안에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배우자의 충실함에 대한 의심과 믿음, 그리고 바램과 댓가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성욕은 분명 그 이상이다. 관계가 욕망보다 우선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욕망들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억압되어 있고(이 영화에서 이유에 대한 부분은 명확히 나타나있지 않다.) 그런 욕망들은 가면을 썼을때에 비로소 대담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자...그렇다면 큐브릭이 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여기에서 내가 상상력을 좀 발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어쩌면 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가 모험을 겪던 날, 왜 그의 뚜껑이 열렸던가. 톰과 키드먼은 침대에서 언어로 애무(?)를 나누던 중이었다. 근데 톰이 키드먼이 아름답기 때문에 어떤 남자라도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을꺼란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물론, 지딴에는 칭찬해주려 한말이겠지... 갑자기 키드먼이 정색을 하며 그를 몰아부친다. 그럼 당신은 벗은 여자를 보면 그녀가 진찰받는 환자라고 하더라도 이상한 상상을 하느냐고... 당근 부정하는 톰. 키드만은 솔직하게 자신이 겪었던 어떤 사건을 털어놓지만 톰은 끝까지 진실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부정한 상상을 애써 부정하며 새벽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하지만 슈퍼에고의 현현을 두려워하는 현실 방어적 기제 탓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그가 두려워한 잠재의식이란? '초자아'의 명령과 현실적 요구에 의해 굴절된 성욕이었고, 그것이 바로 그가 그 날밤 그 저택에서 목격한 '사실'들이었다. 즉, 그 날밤의 환타스틱한(?) 모험은 그의 성적 몽상의 세계 바로 그것이었던 셈이다. 친구는 그 씬이 매우 유치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맞다! 우리의 성적인 몽상은 너무 유치한 나머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것들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큐브릭이 그런 장면을 끌어들인 까닭은... 상상은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피카소가 우리의 시각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기묘한 방식으로 표현했듯이 큐브릭은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였다. 물론, 그것은 매우 유치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어떻든 다음날 새벽까지도 그는 자신의 '진실'을 부정했다. 다음날 밤에 겪은 일들은 차츰 그가 진실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는 전날밤 만났던 여인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차츰 그의 잠재의식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끄집에 내고 그것들이 굴절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전날 파티를 주최했던 쥔장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무엇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지 그리고 그들의 위선, 사실은 자신의 위선이 타인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침실로 돌아왔을때 아내의 곁에 놓여진 가면... 사실은 자신의 아내의 부정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굴절된 모습으로 나타날까봐 늘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걸 감추기 위해 써야했던 가면... 막다른 진실에 다다랐을때 그는 비로소 아내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그것을 바라지만 겉으로는 현실적인 이유들을 내세워 애써 부정하곤 한다. (그게 아이즈 와이드 셧?) 그것으로 모든게 끝일까? 우리의 자아가 초자아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는 한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굴절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며 때론 알게모르게 타인을 희생시키기까지 할 수도 있다면... 큐브릭은 담론이 닫혀진 공간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란 바로 '진실'임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톰을 위험한 상상에서 구해준 여인은 그가 파티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치료로 소생시킨 그 여인이며 그건 바로 그의 '진실에의 가능성'의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상상속 한 어두운 공간에 처박아 두었던 욕망을 크리스마스로 들뜬 화려한 백화점의 공간으로 끄집어 낼 수는 없을까? 톰과 키드먼이 딸의 선물을 고르던 중에 나누던 대화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뭐, 지금까지 유혹들을 훌륭하게 잘 이겨냈다고 생각해요. 자, 집에가서 우리가 해야할 즐거운 일을 해요"
"Fuck..."

2 # 촌평[ | ]

오찬익님의 촌평이 딱인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표현이고 지적도 잘하신것 같네요
암튼 이영화 한3번쯤 본것 같은데 이해하는데 좀시간이 걸렸네요....ㅎㅎ
큐브릭 감독을 크게 사고싶고 우리 가슴속 진실을 잘 표현했다고나할까 어찌된건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겠죠....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래도 좋은 평을 주고싶네요. 좀 아쉬웠다면 주연들이 너무 떠머린 스타부부였단는 것이 좀아쉽군요..물론지금은 남남 이겠지만.... 어쩌거나 잘본 영화였슴다. -- 하얀늑대 2005-7-16 3:36 am


현실에 존재 할 것 같지 않으나 너무나 실재 같은 영화. 이렇게 멋진 영화도 있구나! 무언가 큰 사건이 발생 할 것처럼 이끌지만 실은 관객의 마음속에 갖가지 상상과 긴장을 조성하고는 영화는 살짝 빠져버린다. 화면을 보면서 또 다른 화면을 상상해간다. 거기에서 맛보는 여백. 지금의 영화들은 화면을 통하여 증폭되는 사건과 영화적 트릭에 너무나 길들이고 있다. 그 공식에 따라 관객은 갖가지 화면을 연상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히려 관객이 영화적이 되어 허구를 좇는데, 이 영화의 감독은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세계인가를 지적해 준다. “너에게 겁을 주던 그것이 연극이었다면 어쩌겠나?” 한바탕의 꿈이었고, 너의 상상이며 장난이라면, 이 보다 더 멋진 반전이 어디 있겠는가? 신문 기사와 연결하여 그 상황을 그리지만 사실은 그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니! 그리고 그 의사의 추리와 긴장과 관계없는 전혀 따른 일이라니. 바짝 따라붙던 그 긴장이 일시에 해소되며 터져 나오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웃음. 현실의 갖가지 각박함까지 함께 쓸어가 버린다. 실생활에서 맛볼 수 없는 그 일탈을 밑바닥까지 보여주므로 맛보게 되는 카타르시스. 맞아, 세상이 영화처럼 그렇게 사건에 휘말리고 복수 하고 죽이는 것만은 아니야.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것에 익숙해진 영상세대에게 이 영화는 섹스의 탐닉은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속 시원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충격적이고 파격적이지만 결코 삼류영화에서 느끼는 그런 말초적인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그 장면들이 빠진다면 표현 할 수 없는 연결선 상에 놓으므로 섹스 장면들이 영화의 주요 소재로, 그리고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음악도 참 좋다. 마치 피아노 한가지로 효과 음악을 처리하는 것 같은데도 어느 영화보다 탁월하다. 특히, 긴장 할 때 피아노 음은 그 이상의 효과음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피아노는 마치‘닉 나이팅게일’이 연주하는 느낌이 들게 하여 그 사람이 화면에 몇 번 나오지 않지만 계속 영향을 미치게 한다. 섹스 파티에 몰래 들어 간 죄값? 그 곳에서 탈을 벗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벌을 받은 것이다. -- 안빈 2005-3-30 10:08 am

시원한 의견이네요. 혹시 어제 케이블TV로 보셨나요? ^^ 아부지께서도 보구기시드라고요~ -- 거북이 2005-3-30 10:20 am
닉네임도 고치셨으니 로그인 하시고~ 인사도 남겨보시죠? :-) -- 거북이 2005-3-30 2: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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