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딘

1 # 거북이[ | ]

내가 루딘을 읽게된 동기는 좀 특이했다. 기생수 애장판에 추천사를 쓴 할아버지 한분이 계신다. 물론 일본인이다. 그는 자신이 십대일 때 어쩌다가 루딘을 읽게 되었는데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끝까지 독파했단다. 그리고 수십년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항상 루딘을 꼽았다고 했다. 왠 노인이 수십년간 인생의 책이었다고 했다면 한번 읽을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그 노인은 나처럼 기생수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니 더욱 믿을만하지 않은가.

듣자하니 투르게네프 소설의 번역은 일본 근대문학의 문학어 형성과정에서 꽤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2-30년대에는 이미 루딘(1856)이 고전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니 십대 꼬마가 루딘을 읽는 것은 흔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나도 초등학생때 멋모르고 춘희 따위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은 편집 원칙이 특이해서 기억이 더 나는데, 외래어와 인명의 활자가 다른 글의 활자와 달랐다. 뭐 지금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일본에서 외래어를 가타가나로 표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조이스가 젊은예술가의초상을 썼다면 루딘은 투르게네프가 쓴 '젊은 인텔리겐차의 초상'이라 부를만하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지만 입만 살아있던 청년의 좌절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입만 살아있었다는 부분은 중요하다. 러시아 소설을 몇개 읽은 결과 러시아 소설의 대사는 정말 길고, 사변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데 루딘과 그의 친구들이 나불대는 것도 어지간히 지겹다. 물론 까라마조프씨네형제들에 댈 바는 아니지만 여튼 내용도 없이 말들이 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딘이 미워지지 않는 것은 그의 나약함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입만 살았지 참으로 나약하니까. 읽으면서 조금씩 루딘에 동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소설 구성은 좀 특이하다. 범우사판으로 130페이지 정도를 작가는 루딘의 한가지 에피소드로 채운다. 루딘은 어느 동네로 들어갔다가 모든 이를 말빨로 잠재웠지만 정작 자신이 불러일으킨 사랑에 화답할 용기가 없어서 도망가버리는 내용이 전부이다. 여기까지 보면 루딘은 용기없는 먹물 쓰레기에 가깝다. 하지만 그 뒤의 20페이지 정도에 나오는, 마치 루딘의 자서전과 같은 고백을 읽어보면 루딘을 조금은 용서하게 된다. 그는 약간의 지적 허영심과, 실천적이지 못한 공명심을 가졌지만 적어도 순수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루딘에게 무척이나 공감했기에 루딘을 반면교사로 삼지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요즘 나는 인생에서 가장 박터지게 달리는 시기중 하나를 지나는 것 같다. 지치지 말아야겠다. 힘내라. -- 거북이 2007-7-24 2:19 am

PS 한가지 조언하고 싶은 것은 꼭 인물의 전체 이름을 따로 적은 종이를 함께 보면서 소설을 읽으라는 것이다. 이름-부칭-성으로 이루어져있고 각종 애칭이 난무하는 러시아어 이름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말이다. 인명이 어지러워서 나에겐 거의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소설을 읽는것처럼 느껴졌다. -_-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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