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ISBN:895294111X

  • 원제:寄生獸(1990-1995)
  • 작가:岩明 均
  •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하고,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 어려운, 압도적인 만화. -- 거북이 2003-10-12 2:09 am

1 # 거북이[ | ]

얼마전에 이 만화는 애장판 8권으로 재출간 되었다. 10권짜리 단행본을 두번쯤 보았었나, 그리고 애장판으로 출간되는 것을 5권까지 보다가 기다리고 있던 차에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게 눈에 띄어서 다시 봤다. 애장판으로 뒤쪽을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사주고 싶은데 집에 책 놓을 공간이 마땅찮아서 사지 못하고 있는 그런 작품이다.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 작품은 없었다.

 

인간에게 벌레가 들어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한다. 인간은 이 괴물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조금씩 대응방안을 찾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 신이치는 벌레가 머리를 장악하지 못하고 팔만 장악한 나머지 공존을 하게 되고 신이치는 괴물을 조금씩 물리치면서 성장해나간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꽤 유치한 설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얼리즘은 설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설정이 얼마나 사실감있게 그려지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는 SF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정도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만화로는 야후정도가 생각나는구먼. 야후가 한국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분노를 담고있다면 이 만화는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을 담고있다는 점이 차이다.

여기서 작가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인간이야말로 기생수가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고 적어도 나는 인간이 기생수라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인물군은 여럿 등장하고 있으며 잠깐 소개해보겠다. 스포일러성이니 만화의 내용을 알고싶지 않은 분은 읽지 마시길. :)

괴물들의 대장역을 맡고있는 레이코를 보자. 레이코는 괴물이면서 왜 자신과 같은 괴물이 태어났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있다. 그것을 위해 레이코는 인간 사회속을 파고들어서 인간들의 생활습성과 감정을 배운다. 그런가하면 괴물들의 조직화를 시도하고 괴물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실험들도 해본다. 그 과정에서 레이코는 임산부를 잡아먹게 되었고 아이를 낳아 아이를 길러보기까지 한다. 아기를 버리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레이코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면서 모성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된다. 인간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아기가 위험한 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알고도 사격을 하며 레이코는 그들 모두를 죽이고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변형시킨다. 괴물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이런 장면은 만화 전편을 통해 종종 등장한다. 레이코는 괴물이 태어난 이유에 대해 분명히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전횡을 막기 위해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있다.

 

그 얘기는 괴물들의 조직화를 돕고있는 시장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시장은 시청에서의 괴물 소탕작전에서 일장 연설을 하다가 죽는다. 그는 인간이 인간의 적이 될 것임을 얘기하고 있으며 언젠가 쓰레기 투기가 살인보다 더한 중죄가 되는 시기가 올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 환경보호니 동물애호니 하는 말들도 모두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아니 기생수다!"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시장의 얘기는 좀 오버한 면도 있지만 인간은 인간중심으로, 아니 인간중심도 못되고 자본중심 정도로밖에 살고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 쓰레기를 투기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버리는 것이 처리하는 것보다 싸기때문이다. 이런식으로 자연의 재생능력을 갉아먹어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이 생산비용보다 더 많이 소비되는 시점에 도달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재활용품을 쓰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바로 이 정말로 멍청한 시스템이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라는 것을 우리는 일회용 상품을 쓸 때마다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괴물들을 도우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지껄이고 싶으면 다른 종도 생각하라고 외치다 죽는 이 시장은 인간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각자 스스로의 입장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조력자인 '오른쪽이'는 괴물이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신이치를 돕는다. 살아야 하며, 살기 위해 다른 것을 죽인다라는 생명의 절대명제는 이 만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오른쪽이가 '인간의 윤리를 나에게 들이대면 곤란하다구'라며 사람들 호주머니를 쓱싹하는 것은 애교와 동시에 삶의 엄정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저자가 대자연의 화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괴물중의 최고 괴물인 '고토'는 말 그대로 생명력의 결정체이다. 여러마리의 괴물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본능에 충실한데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그는 제거한다. 저자는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天地不仁,以萬物爲芻狗)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고토가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협공에 죽어갈 때 살아나기 위해 세포가 서로를 부르고있는 모습 역시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 외에도 대부분의 괴물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만 인간을 죽이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중 하나로 나오는 것은 바로 연쇄살인범이다. 그녀석은 다른 사람을 여럿 죽여가면서 인간의 모습을 봐왔기에 동물적으로 인간과 괴물을 구분할 줄 아는 놈이다. 이 녀석은 마지막까지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살아남는데 마지막에 신이치에게 묻는다. 다른 것들을 죽이는 것이 인간다운 모습이 아닌가하고 되묻는것이다. 이 연쇄살인범의 모습에서 나는 부시나 전두환같은 다른 살육자들의 모습을 본다.

이런 인물들이 설득력있는 이야기구조 속에서 맞물려나오면서 당신에게 묻는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고. 마지막에 고토를 죽이게 되는 무기는 공교롭게도 쓰레기 더미에 묻혀있던 꼬챙이다. 그 꼬챙이는 화학물질에 오염될대로 오염된 나머지 괴물의 옆구리속에서 독극물로 작용했고 자연 덩어리였던 고토는 그 독극물때문에 불안정해져서 죽게되는 것이다. 이 만화는 결코 환경친화적인 그런 만화가 아니다. 괴물과 신이치의 전투장면을 묘사하는 폭력적인 상업만화다.(물론 상업성을 의식해서 작품성을 갉아먹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만화를 통해서 '인간 스스로가 살기 위해서라도 주변에, 다른 종에, 지구에 눈을 돌려라'는 얘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사스에 이어 광우병, 돼지 콜레라, 조류 독감 등이 다시한번 인간에게 가하는 테러를 우리는 보고있다. 보아하니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것같고 그렇기때문에 보고나면 속이 시원하면서도 어디 한군데가 쓰라린, 그런 작품이 바로 기생수다. -- 거북이 2004-1-25 10:11 pm

2 # 퍼온 리뷰 : <기생수의 또다른 해석> -이것이 "만화"다.-[ | ]

 

http://hypnos.interpia98.net/~irumi/ani/gisen.htm

먼저 작품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난데 없이 그림에 대한 얘기부터 하는것이 순서에 맞지 않는것 같습니다만, 워낙에 이 작품의 그림체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 관계로 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진 겁니다. 뭐, 일반적인 평도 그러하지만, 이 작품을 '감상한' 사람조차도 '그림은 3류다' 라던가, 심한 경우엔 '거의 낙서수준'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더군요. 저는 어째서 그런평이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중의 한명입니다. 아무리 그림체에 대한 문제가 사람의 취향문제라고 하지만 이 작품의 그림이 그렇게 악평을 받아야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어떤식으로 그림에 대한면을 평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보다보면 어쩔 경우엔 '캐릭터 디자인'에 그 평가가 국한되어 있는듯한 느낌도 받을수 있습니다. 그림만을 따로 띄어놓고 평가한다는것이 라는 분야에서 얼마나 의미가 없는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러한 평가를 볼때마다 '보기엔 그럴수도 있지'라고 개인차로 수긍하는 편이지만...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러기도 약간 지쳤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런 별로 실속없는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렇게 평가되는 만화의 그림에는 <잘그린 그림>과 <못그린 그림>이 있는것이 아니라, <예쁜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 <마음에 드는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이 있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뭔소리냐 하면... '평가 기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에 대해 얘기할 때 '못 그렸다!' 라고 평가하는것을 자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뭐 특별히 문제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지 않은 다음에야 '내맘에 안드는 그림'이 곧 '못그린 그림'이 되는 것이 당연한 거죠. 저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림을 평가할때는 미술적인 지식과 예술적인 소양을 지니고 해부학적인 입장에서 평가해야 한다!"라고 부르짓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그런 황당한 인간은 아닙니다.

그런 입장으로 따지자면 라는 것 자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스미디어로 사용되는 '시사만화' 만 보더라도 전달하려는 목적때문에 그림에 반드시 과장과 유머를 내포하기 때문이죠. 뭐, 이건 우리들이 '주로' 즐기는것이 아니니까 일단 접어둔다 하더라도... 이른바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일본 근처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른바 <스토리 만화>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라고 언급하는것은 이것에 국한된 경우가 많죠. 에서도 그림의 평가가 초현실주의 미술작품 평가하듯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귀여움을 강조하거나, 예쁘고 멋지게 그린만화의 그림에는 대부분 과장과 강조, 생략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따라서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것은 우선적으로 '기본 뎃생'을 들 수 있습니다. 명랑만화 계통에서는 무시될 수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화면에 신경을 쓴 작품들은 일단 이것으로 평가를 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그림 실력'이니까요. 어느정도의 과장과 강조, 생략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뎃생실력이 뛰어난 작가가 그린 인물이나 배경은 눈에 거슬리거나 부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극화체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뎃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작가들이 그린 그림중에선 정말로 형편없이 거슬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뎃생을 배우고 만화를 그린것이 아니라 만화만을 보고 그림을 그린경우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러한 작가(?)들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해야하는지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것은 그저 일반적인 평가일 뿐입니다. 그러한 그림에서도 '귀여움'이나 다른 점을 강조해서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는 그림' 이라면 솔직이 전혀 문제될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만화그림의 특징이 나타나는 부분이라면 <등장인물의 표정>입니다. 심각한 그림체를 가진 작품이라도 순간순간 나타나는 캐릭터의 코믹한 표정에 일순 웃음을 터트리게하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꼭 그런 코믹한 표정이 아니더라도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은 장면을 구성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는 이른바 '공식'이라는것이 몇가지 존재합니다. 사실상 이것은 한 작가에게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어떠한 유명작품의 그러한 표현법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것이 문제입니다. 때때로 자신의 캐릭터와는 전혀 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표현 공식만을 따라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뭐, 그러다가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게 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장면의 연출과 함께 등장 인물의 감정표현이 어색한 작품들은 어떤 이유로든 '못 그렸다'라는 평을 피하기는 힘들겠죠. 그림만을 놓고서 '그래도예쁘긴(귀엽긴)하다' 정도의 평은 들을수 있더라도 말입니다.

여태까지 장황하게 딴 얘기를 늘어 놓았는데...이러한 관점에서 '기생수(寄生獸)'라는 작품의 그림체에 대한 변호(?)를 조금 해 볼까 합니다. 이 작품의 그림은 일단 꽤나 심각한 분위기의 그림체 입니다. 또한 꽤나 사실적인 인체비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쁘고 멋지고 귀여운것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만!... '기본 뎃생'은 정말 확실히 되어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어느장면을 보아도... 기생생물이 황당한 모습으로 변형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심지어는 사람이 토막나 널부러져 있는 장면을 보더라도 어색하진 않습니다. (이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얘기를 하겠지만....)
이 작품의 그림이 지저분해 보이는 이유는 외각선을 단선으로 매끄럽게 쓰지 않고 선의 강약이 느껴지며 꺽이는 경향이 짙고, 명암을 스크린톤으로 처리하기보다는 펜선으로 처리하기 때문인데요. 제 생각으로는 이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화법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이후로 등장한 일정굵기의 끊어지지 않는 매끄러운 외각선의 그림체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있습니다만...마치 애니메이션의 윤곽선 처럼 선이 매끄럽고 깔끔해지면서 강약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가늘어지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것 같습니다. 또한 동작시의 효과선의 과격함이나 기생생물의 표현, 클로즈업시의 화법에서도 그러한 원인을 찾을수 있겠지만, 가장 주된이유는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는' 그림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은 이 작품의 그림을 평가절하하는 어떠한 이유도 되지 못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만화에서는 필수적인 생략과 과장이고, 작가가 원하고자 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그림체이며, 만화로서 나무랄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안드는 독자들은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인물들의 형태가 개성적이고 표정연출이 지극히 뛰어납니다만...이런 심각한 그림체로는 캐릭터의 호감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것은 이 작품은 절대로 '캐릭터 성'을 따지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등의 작품은 독자들을 등장인물들의 '팬(fan)'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이 작품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작가가 연출하는 농구장면을 독자들이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하려는 의도와 함께, '인기'를 위한 상품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점이 또한 이 '기생수(寄生獸)'라는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격차를 나타내는 점중의 하나인데...다시 말해서 이 작품의 모든 인물과 설정은 작품자체를 위하여 사용된 것이지 작품외적인면을 위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이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저의 예를 들어보면 이 작품을 그렇게나 맘에 들어합니다만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저 자신의 '구매의욕'이나 '소장심리'를 부추키칠 못합니다. 작품을 보고난 느낌이 어째서인지 다른작품과는 다르다는것을 느꼈을때... '이것이 진짜다!' 라고 외친것이 저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리고 싶군요. (최소한 두명은 된다는 얘깁니다. 제 친구와 저...)
최근에 제가 만들어낸(?) 말로 하자면 '매니악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느정도의 맘에드는 작품을 만났을때 그 작품을 가지고 싶어서 안달하게 만드는것이 바로 이러한 매니악적인 면이 강하다고 얘기하는데요. 작품 자체와 함께 캐릭터의 매력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알 수 있습니다. 솔직한 얘기로 제가 지금 '가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작품이라면 'MAPS'를 들 수 있군요. 이 작품에 대해서도 언젠가 떠들어보고 싶지만...그건 나중으로 하고 그저 이 작품의 매니악성을 예로 들기로 하죠. 꽤나 멋진 주인공과 엄청난 수의 서브캐릭터...중에서도 여자(우주선의 두뇌 이거나 우주인들이긴 해도...)들의 매력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상당히 큰 스케일의 내용을 박진감 있게 풀어가는것도 그렇고......재미있는 만화로서는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또 그에 반해서 당연히 그림이 욕을 먹어야 하는 작품이지요.
저로서도 욕할 마음은 안들지만서도... 뎃생이 되어 있고 안되있고를 떠나서 이 작품의 그림체는 '날린' 그림체라는 것입니다. 욕먹어도 싸죠. 하지만 인물들이 예쁘고 장면자체의 연출은 뛰어나기 때문에 그다지 욕할 마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실제로 욕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또한 등장 캐릭터들은 독자들을 작품의 팬으로 만들고 책을 사게 만드는 매력이 있죠. 아마 관련된 펜시상품도 엄청나게 팔릴겁니다. 아마 이것이 일반적인 추세이고 어찌보면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합니다. '상품으로서의 만화'라는 측면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놈의 작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岩明 均(이와아키 히토시)라는 작가에게 '寄生獸'라는 작품은 팔아먹기 위한 '상품'은 아니였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작품자체로서의 상품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작품은 등장할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팔아먹기 위한 노력의 흔적은 그다지 보이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상당히 진지한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모든 상황은 작가의 '표현수단'으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다른 작품과의 격차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일텐데...어쩐면 우리들은 변질된 요즘의 추세에 너무 익숙해져 그렇지 않은 작품에 되려 거부감을 느끼는것은 아닐까요? 과연 '만화공장에서 대량생산 된 쓰레기' 라는 표현이 국내 대본소 작품에만 덮어씌워져야만 할 오명일까요? 우리가 좋아하는 작품들에 대해서 잠시 다른관점을 가져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때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또한 자신의 평가가 (그림에 대한 것이든 작품의 내용에 대한것이든) 얼마나 편협해져 있는지도 때때로 환기시켜주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되니까요. (나만 그런가?)
다시 작품얘기로 돌아와서...이 작품에 그림에 대해서 또한번 놀라는 것은 10권의 적지않은 분량을 그리는 동안 한명의 작가가 그려내었다는 점이고,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의 뛰어남입니다. 혹시나 그렇지 않을까...하고 생각은 했지만 작가후기와 10권의 뒷 페이지를 보니 연재종료 직전 작가의 작업장이 그려져 있더군요. 물론...이것만 가지고는 확신 할 수 없지만 어시스턴트를 쓴 그림으로는 보이지 않기에, 모두 작가 혼자서 해낸것이라면 충분히 이해되는 정도가 아니라 놀라운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그런 사례를 거의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게 맞는 표현이겠군요. 제가 놀란 이유가 말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호감은 주지 못하는 그림체이지만 장면의 연출이 뛰어남은 누구라도 인정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장면에서의 대사연출 역시 감동이 느껴질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감동을 받겠는가!?) 그리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호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하더라도, 이 작품의 분위기와 연출에 더할수 없이 어울리는 그림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그점만으로도 충분히 호감이 느껴지는군요. 작품과 그림을 따로 띄어놓고 생각한다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작품을 뛰어나게 만드는것은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그림의 삼대요소가 일치이지 어느 하나가 튀는것 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반쪽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얘기할 때에도 다시 나오겠지만 솔직히 이 작품은 보고나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메세지가 감정으로 직접 파고들어오기 때문에 작가가 제시한 생각들과 의도를 의해하기에 바쁘다는 것이죠.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작가 자신도 이 작품에서는 읽고 무엇을 하게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는 군요. 여하간에 작가가 제시한 많은 것들을 느끼고 그점!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 너무나 뛰어나다는 얘기가 아니라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까요. 너무나도 느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계열의 작품은 몇 안되는것 같군요. 저로서는 전체적인 느낌은 강경옥씨의 몇몇 초기작에서 받았던 감정과 비슷하였습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감상한 뛰어난(? 저에게...) 작품으로는 BERSERKER(베르셀크가 아님! 광전사를 뜻하는 '버서커'임! 망할 해적판. 망할 가타가나.)가 있기에 저로선 자주 비교를 하게 되는데 Berserker가 기존의(최근의) 만화스타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톱클라스의 작품이라면, 기생수(寄生獸)는 여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종류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이만큼 터무니 없는 설정에다가 이정도의 초 현실주의를 구현한 작품은 아마도 다신 없을 겁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겁니다. 이 작품은 현실이다. 철저한 현실이다!

 

이 작품에 대한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제일 먼저 <만화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이게 만화지 소설이냐.' 라고 하시는 분이 있을지 몰라도, 저로서는 '아아, 이건 정말 만화다. 제대로 된 만화다' 라고 느끼게 하는 작품은 참으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작품은 만화가 아니냐? 제대로 된 것이 아니냐? .... 물론 그런건 아닙니다. 그저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특별히 말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이 작품이 여태까지 보아온 작품들 중에서 상당히 특이한 위치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대에 편승하지 않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화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것을 스스로가 너무나 생소하게 받아들였기에 이런 느낌은 더욱 큽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어느 하나만이 진실은 아닙니다. 이것도! 하나의 진실인 겁니다. 이것도 만화란 말입니다!
음...어쩐지 얘기가 다른 데로 조금 빠지고 의도도 약간 빗나간 것 같군요. 어쨌든 이번 글에서는 작품외적에서의 감상을 주로 떠들어보려고 합니다. (이번 글이 끝이 아닌 게 상당히 죄송스럽군요. 이 다음엔 아마 부록이 올라갈 겁니다. 부록은 제 글 보단 재미있을 겁니다.)
음...이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반복한 얘기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실이다!' ...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제게 '현실'을 느끼게 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말입니다. 대부분의 '만화'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책을 덮는 순간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사랑얘기를, 어떤

작품에서는 멋진 모험을, 어떤 작품에서는 현실의 한 모습을, 또 어떤 작품에서는 다른 세계의 영웅담을... 그러나 얘기가 끝났을 때, 상영이 끝나거나 책을 덮었을 때 우리는 아쉬워하면서도 서서히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가끔가다 인상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들을 기억하면서 말이죠. 그것은 좋은 면으로서는 간접경험이고 생활의 활력이고 휴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만화를 특히 좋아하죠. 그러나!
그러나 여태껏 어떤 작품도 책장을 덮음과 동시에 '제기랄!' 이라고 외치며 '현실'을 느끼게 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여태까지가 모두 현실이었다는 것에 경악하고 한 대 호되게 주어맞은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한순간 몸을 떨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현실이다. 철저한 현실이다!'라는 저의 주장은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신빙성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좀 떠들어보기로 하죠.
이 작품의 배경은 일단 상당히 사실적입니다. 이러한 작품은 많이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인공들이 스토리를 펼쳐가는 멋진 작품들이 말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도 일단은 그러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즉, 내용에서 기생생물을 모조리 빼버립니다. 문제는 '그래도 그 사건들은 일어난다...' 라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그것을 절대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 바로 살인자 浦上 의 존재입니다. 물론 신문에 실리는 모든 사건의 범인들이 그와 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토막 나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고, 먹기 위해서 인간을 죽이는 존재가 있다면 오히려 그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한순간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스미디어의 이러한 쓸데없는 면의 발달로 인해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과는 사실상 거의 관련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야 겨우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 정도이겠죠. 그것이 토막살인과 같은 과격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마지막 결말은 곧장 현실과 이어집니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일본에만 국한되었지만 설정상으로는 지구 전역으로 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생생물은 어디에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세계전역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그들이 벌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범인이라면 왠지 조금 절망적인 느낌이 듭니다. 살인자 浦上 보다 더한 인간이 우글우글 한다는 얘기이니까요.
물론 인간의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역시 슬픈 일입니다. 어차피 별의 수명조차 다하기 전에 멸망해버릴 존재들이라 해도 말입니다. 스케일 큰 얘기는 나중으로 치우더라도....
기생수가 없더라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먹어치우며(!) 살아가는 존재>인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거기에 '악의(惡意)'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생수=인간이라는 타무라레이코의(혹은 작가의) 결론은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회' 라는 것은 인간들끼리 같이 살아가면서 생긴 것이고 거기에는 자연의 적자생존 이상의 생존법칙이 적용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때때로 협력하고 때때로는 이용하고 어떤 경우는 서로 적대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은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이겠죠.
그러한 사실은 아마도 인간과 자연이라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고, 또한 다른 모든 생물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기에도 스스로가 자연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 없다면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생하는 것이 지나지 않겠죠. '인간에게 기생하여 인간을 먹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기생생물이 존재한다면, 인간 역시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寄生가)...아니 기생수(寄生獸)' 라는 대사는 자연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착각하는) 히로가와 시장의 대사였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비명을 지르는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인간들이 살아갈 지구'가 부서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다른 생물을 지키는 것은 인간자신이 쓸쓸하기 때문이다 /
환경을 지키는 것은 인간자신이 멸망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인간의 마음에는 인간개인의 만족이 있을 뿐인 것이다 /
하지만 그것으로 좋으며 그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인간의 척도를 사용해 인간자신을 업신여겨 봐야 의미가 없어 /
인간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모순인 것이다 /
라는 것이 주인공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최종회에서 주인공은 살인자 浦上에게 여자친구 사토미를 납치당합니다. 드라마의 끝에 결국 浦上은 '인간은 쉽게 부서진다.'라는 자신의 지론을 증명하며 쓰러졌고 주인공은 최후의 최후까지 피에 물든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듯 했습니다. 언젠가 사토미가 외쳤듯이... 어째서 나만이 계속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라며 울부짖는 신이치에게 얘기를 걸어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된 생물이 /
문득 쳐다보니 죽어있었다 /
그럴 때에 어째서 슬퍼지는 것일까? /
그건 그만큼 인간이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인간 최대의 장점인 거야 /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
얼마나 멋지냐 말이야 /
그러니까 언제까지 훌쩍훌쩍 거리지 말라구 /
힘드니까 스스로 잡아! 라는...

아마도 미기로 추정되는 소리를 들은 뒤 주인공은 사토미를 붙잡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주는 작가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쓰러진 채로 얘기를 주고받다가 "키악~ 살인이다. 저쪽에도 3명이 쓰러져 있다." 라는 소리를 듣고 "3명이라니..." "같이 취급당했어." "후후.." 라며 웃어버리는 주인공들을 보며 "웃! 엄청난 놈들이다." 라면서 슬쩍 웃은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미기의 입을 빌어 얘기한 작가의 결론에서도 어느 정도의 공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었기에 너무 절망적이지 않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입에서는 '망할!'이란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말입니다.)
물론 작가가 내린 결론을 '이대로 좋다. 인간은 그저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작가는 타무라레이코를 통해서 꾸준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왔으며, <여태까지 우리들이 살아온 모든 방식을 부정해버린다면 앞으로 행하여질 어떠한 것도 부정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저의 의견과도 비슷한 결론을 끌어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착각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죠.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지 지구를 위해서도 또는 다른 생물들의 입장을 이해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인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곧 인간이 기대어 살아가는 자연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지구의 수명에 비한다면 인간이 살아온 시간은 아주 잠깐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인간이 살아갈 지구는 지켜야하는 것이죠. 바로 인간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태까지 느껴온 모든 것이 몸을 떨게 만드는 감동적인 드라마 속에 포함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최근에 보게된 작품 중에서 그 심각함과 잔인함과 무게 있기로는 최고를 달리는 이 기생수(寄生獸)라는 작품은 남에게 함부로 권하기는 힘든 면이 있지만, 그 수준에서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톱클래스의 작품인 것은 확실합니다. 글을 쓰면서도 자주 언급했던 '무언가 다른 작품과는 다른 점'이 무엇이었는지는 한마디로 단정짓지는 못하겠으나 여태까지의 글에서 어느 정도는 얘기했다고 생각되는군요.

아래의 글은 기생수 완결편(10권)에 수록된 작가 후기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얘기가 실려있기에 부록으로 번역해 봤습니다. 번역은 매끄럽지 못하지만 줄거리는 틀린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이텔 ID : jhnam72

3 # 작가후기[ | ]

 

기생수의 최종장을 완성하고 수일이 지난 후였다. 나는 친구 두명과 자택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밤중부터 마시기 시작해서 이제 슬슬 새벽 4시쯤 되지 않았을까 하는 무렵, 무엇을 생각했는지 나는(이미 상당히 술이 취해있었지만) 나이프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이 나이프란 녀석이 바로 최종장에서 살인귀 浦上이 휘두르던 나이프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이프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 자료로서 구입한 것으로 칼날이 약 13센치미터, 손잡이를 합쳐도 약 25센치티터로 그다지 큰 것은 아니다. 단지 날의 두께가 5 밀리미터 정도나 되어 조그마한 손도끼 같은 중량감이 있다.
[이거...정말로 베어질까....?] 확실히 날의 두께가 있어서 베는 느낌이 컷터나 면도날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옆에 있던 콤비니의 상자를 잘라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소리도 없이 칼날이 지나간다. [어! 재밌는데!?] 분위기를 타고 그 상자를 조각조각 내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채로 칼날이 있는 것을 다루는 게 아니었다. 다음순간 상자를 받치고 있던 왼손의 엄지손가락에 통증이 왔다. (술취해 있던 탓인지 엄청난 고통이라 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쳐다보니 엄지손가락의 끝부분이 비스듬히 벌어져 있다. 당황해서 화장지로 눌러서 손을 움켜쥐었다. 그때에 다른 두명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서, 나는 슬쩍 일어나 구급차를 부르기로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소변을 보고 싶어져서 일단 화장실로 가서 지퍼를 내리려 했을 때 쥐었던 손이 펴지고 말았다. 순간 변기가 새빨갛게 물들고 여기저기에도 피를 흘려 친구들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잘려나간 살 조각(肉片)은 그것을 본 한 명이 말하듯이 레몬씨정도의 작은 크기에 불과했지만 확실하게 손톱도 붙어있었다고 한다. 컷터나 면도칼이라면 손톱에 부딪쳐 멈춰버렸겠지만 [浦上의 나이프]는 그렇게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이것이 그 정도 두께의 칼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베는 맛' 인가! 라고 알게 된 경위이다. 뼈까지 잘린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손끝의 모양은 변해버리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기생수종결기념(寄生獸終結記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없어진 손톱은 점점 늘어나고 (이것은 알 수 있지만) 질 세랴 살도 점점 자라 올라와서 속살을 드러내고 아무것도 없던 표면에 지문마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야! 거의 예전 그대로잖아!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치 '미기-'다.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 대 자연>, 이라는 말투는 이미 송구스러울 뿐이다. 인간 자신의 육체 대부분이 대자연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딘가의 종교는 아니지만... 실로 우리들은 살려지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역자 주 : 좋은 의역을 찾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살아가도록 허락되어졌다는 뉴앙스인데요. '살아간다'의 수동형을 마땅히 번역을 못하겠군요.) .......라는 식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기생수의 테마에 관련시켜서 생각하는 버릇이 튀어나왔지만, 이런 습관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끝났다.
매일매일은 금방 지나갔지만, 꽤나 꽉꽉 채워서 보낸 듯한 5년반 이었다.
기생수의 여러 가지 자료들이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사실은 훨씬 이전의 이야기로 내가 만화가로서 프로데뷔를 한 시점에서 수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해 투고(投稿)용의 자료였던 것이다. 그때는 분명히 러브코미디 같은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손이 멋대로 움직여 다니며 소동을 벌인다. 음...재미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말해버리면 흔해빠진 소재이다. 그대로 서랍 속에 처박은 채로 약 7년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만화가의 어시스턴트, 그리고 나 자신이 만화가로서 프로데뷔해서 '모닝'이라는 주간지에 [風子のいる店]는 이야기를 격주 연재하게 되었다. 그 작품은 말을 더듬는 소녀가 웨이트리스로 있는 찻집을 무대로 한 인정(人情)드라마 라고나 할까...다시 말해 기생수와는 비슷하지 않는 내용의 만화인 것이다. 이야기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만화를 만드는 방법 자체가 틀렸다. 무슨 말이냐 하면 [風子]의 경우는 먼저 이 있고 그들을 돌봐주듯이 을 생각해 간다....라는 방식이었다. 거기에 비해 [기생수]는 먼저 이 있고 거기에 대치하는 들을 배치해간다. 라는 것이다. 등장인물에 맞추어 사건을 생각해내는 방식은 꽤나 힘들고, 억지스러운 것이었지만, 사건을 먼저 생각하는 방식은 그 자체가 즐겁고 그림 그리는 손끝도 술술 움직였다. 나는 그러한 타입의 만화가였던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가 알아챘을 때에 기생수의 소재를 서랍 속에서 끄집어내 본 것이다.

상당히 괜찮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한 느낌은 만화가가 된 후 처음 겪는 것이었다.
[기생수]의 이야기는 개시부터 종료까지 처음부터의 계획대로....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스토리 종료의 예정이 단 3회로 끝날 것부터 시작하여 단행본으로 3권, 아니 5권, 7권으로 끝, 아니야 9권....해서 결국은 10권까지 연장을 계속해온 것이 그 첫 번째. 그리고 스토리의 내용에도 처음의 예정에서 변경된 점이 몇 군데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최강의 적 後藤(고토)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기생수의 개시. 제1화를 그렸을 때에는 현재만큼 개인주의가 유행이 아니었고,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떠들어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라고 말하는 인간이 쉽사리 함부로 외쳐댈수는 없었던 것이죠. 따라서 제1화의 첫머리에서는 인류의 문명에 대한 경종이라는 분위기로 매끗하게 시작하였지만,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말들을 해대기 시작하니까, 이번엔 묘한 기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얘기를 작품 내에서 복창하는 것이 왜인지 창피한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심통이 난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다움부터는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라고 인간이 얘기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어진 겁니다.
여기서 後藤(고토)의 마지막장면의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처음엔 後藤은 죽을 예정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을 개시한 後藤을 남겨둔 채, 신이치는 그냥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後藤의 그 이후에 대해서는 두개의 안이 있었는데, 하나는 완전 부활하는 것으로, 오염된 일본이 싫어져, 거대한 날개로 변형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서 날아서 사라져 버린다....는 안. 또 하나는 완전히는 부활하지 못하여 인간에게 무해한 다른 형태의 생물이 되어서 산 속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쪽도 좀 애매하고...어딘가 무책임하다.... 하지만 파괴와 오염의 원흉인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아름다운 야성], [원대한 대자연]의 대표선수인 後藤이 그저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괜찮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비뚤어진 나의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를 합창해준 덕분에, 조금 더 앞으로 생각을 진전시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제 1화의 권두의 대사는 인간이라는 종(種)의 대표인 히로가와 시장이 이어받아, 주인공이 클라이막스에서 반복하고, 되돌아와서 스스로 손을 더럽힌다. 라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의 비뚤어진 근성에서 시작된 일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당초보다 내용이 좋아졌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몇 번인가의 변경, 예상외의 전개가 있었으나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도 없이 물리적 정신적인 방해나 사고도 없이, 무사종결까지 도달한 것이 행운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寄生獸] 라는 작품은 어디까지나 [이와아키히토시로서는] 이라고 조건을 붙인 것으로서는 잘 되어나간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저에게 있어서는 [장애물] 이상의 [벽]으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본 작품이 유일한 대표작이라고 얘기되어지지 않도록, 더욱이 스스로의 작품의 재탕 따위를 배출하지 않도록, 앞으로 창의공부에 힘쓸 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난잡하고 시시한 글을 쓸 필요도 없었지만,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으나, 한 권의 단행본이라는 구조상, 초기콘티와 페이지수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몇 페이지인가의 여백이 생기는 일도 있습니다. 라는......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무심결에 말해버리는 것 역시 저의 나쁜 버릇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95년 2월 岩明均 (이와아키 히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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