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루스 우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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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거북이[ | ]

이 영화 역시 그닥 걸작은 아니다. 연출의 절묘함 따위는 눈씻고 찾아볼 수가 없고, 그저 심심하고 덤덤한 영화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 이유나 몇가지 적어보고 자러갈란다.

쿠로사와는 붉은수염을 만들고는 헐리우드로 가서 토라토라토라를 만들다가 그만 감독직에서 짤렸다고 한다. 무리하게 돈을 써가며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 도데스카덴을 만들지만 제작비를 잘 못구하게 되자 자살을 기도하는 등 맘고생을 했다. 그 와중에 러시아 자본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이 데루스 우잘라다. 이건 쿠로사와라는 이름때문에 유명해진 러시아 영화라고 보는것이 옳다. 적어도 난 이 영화에서 쿠로사와다운 칼라를 찾아볼 수는 없었고 영화 내내 러시아말이 나오며 스텝의 대부분이 러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회고록 같은 것을 읽어보면 확실해지겠지만, 쿠로사와는 이 영화에서 그닥 큰 역할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순리에 순응하는 노인이 나온다. 그는 훗날 마다다요에서 독일어 선생님으로 변주되어 나오는 쿠로사와 특유의 노인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아마 이 부분만이 쿠로사와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을게다.) 이 노인 데루스 우잘라는 언덕(숲)이 아닌 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몽고족 노인이다.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에 산 탓인지 러시아어를 잘 하는 그 노인네는 우연히 만난 러시아 탐험대를 도우며 자기의 사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이 노인네가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 장면들은 대체로 심심하지만 본대와 떨어졌던 대장과 데루스가 초원의 겨울밤을 버텨내기 위해 일하던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 노인네에게 화이팅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장면들을 심심하게 잡아내었기 때문에 나는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형식이나 스펙터클에 끌려가지 않고 영화 내용에만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영화에서 스펙터클하게 묘사했다면 그것은 내용에 맞지 않는 형식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순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염치라면, 데루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염치를 잘 아는 사람이다. 비록 공포였지만 쏘지 말아야 하는 곳에 총을 쏜 것이 상처가 되어 그는 점차 숲에서 멀어지게 된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던 그였지만 눈이 침침해지면서 그는 대장을 따라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잠시 숲을 떠나보지만 그는 숲이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었고, 결국 그는 숲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맞는다. 슬프지만 현실이고 그것이 데루스의 순리였을 것이다.

데루스는 몽고족의 쇠락을 잘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오늘 김호동교수의 황하에서천산까지를 다 읽었는데 이 책에 묘사된 러시아와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남북으로 분열된 채 반쪽짜리 국가를 이루고 살고있는 몽고의 처지는, 러시아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데루스와 묘하게 겹쳐진다. 역사적으로도 몽고족은 천연두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하는데 데루스 역시 가족을 천연두로 잃었던 것이다. 도시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숲에서 죽는 데루스는 원제국을 이루었다가 명의 건국 이후 다시는 빛나는 역사를 만들지 못했던 몽고족의 운명과 비슷하다.

원작은 아르세니예프(Vladimir Klavdievich Arseniev,1872-1930)라는 러시아 탐험대장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게 꽤나 유명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아르세니예프(계속 데루스가 까삐딴! 하고 부르는 그 대장) 역으로 나온 배우는 유리 솔로민이라는 양반인데 상당히 유명한 배우이고 지금은 연극 극단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데루스 역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러시아 소수민족 출신으로 일반인이 아니라 여러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다.(사실은 러시아 말을 상당히 잘 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하는군.)

쿠로사와의 영화목록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작품일 이 작품은 필청까지는 아니겠지만 놓치고 지나간다면 조금은 아쉬울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 거북이 2005-10-2 2:18 am

일본어는 그 특성상 이 이름을 데루스 우잘라라고 쓸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러시아어(영어로 추측한 것이지만)로는 데르수에 가까운 것인듯 하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표음성에 대해 감동하면서 한글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글은 일본어에서도 구분 가능한 b와 v의 구분을 해줄 수가 없다. 이런 바벨적인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끔 어이없는 일들이 생기곤 하는데 나는 국가가 정한 표음주의적인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이런 우리말의 표음성을 과신하여 나온 정책상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물론 표기주의(전자법)적인 방식으로 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얘기하겠지만, 적어도 의사소통의 복잡한 문제를 음성과 문자의 문제로 구분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자만의 문제로 만들면 문제 해결은 조금 쉬워질 수 있다. -- 거북이 2005-10-2 12:04 pm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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