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영웅

# 남자는 영웅[ | ]

벌써 일본어 학원에 다닌지 일년이 되었다. 거참 시간 잘 간다.
일본어 학원에 다니면서 만난 선생님이 다섯명이고 스쳐간 학생들은 한 서른명쯤 되는 것 같다. 이중 지속적으로 같이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몇명 안되는데 이 사람들이 모여서 송년회겸 저녁식사를 가졌다. 저녁식사후에 노래방을 갔다.

  • 변선생님(3x 중반 생) : 고령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시는 만학도, 이분 보기가 민망해서라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나는 안하고 있다...-_-

종종 먹을것을 쏘신다. 아래에 실린 '남자는 영웅'을 즐겨부르시는 전직 해군 장교이자 등산가.

  • 김선생님(5x 말 6x년 초 추정) : 일본어 선생님.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좋아하시지만 일본에 가보신 적이 없는 괴이한 분. 일본어 강의를 상당히 체계적으로 하셔서 기초 다지기에는 매우 적합한 분으로 전직 교사. 학교의 뒤틀린 교육제도 속에서 천대받는 일본어 가르치는 것에 짜증을 느껴 강사로 변신. 최신가요에 능함...-.-
  • 유씨(7x 초) : 일본관계의 일을 많이 하는 무역업 종사자. 갓 태어난 애기의 아빠. 모두함께 수업째고 밥먹으러 가자고 얘기를 가장 먼저 하는 분위기 메이커
  • 정씨(7x 중) : 거북이
  • 이씨(7x 중) :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직딩. 정씨에게 일본드라마를 건네준 장본인. 최근 작업녀와의 일이 잘 안풀렸지만 꿋꿋하게 살고있음.

뭐 이정도가 학원에서 자주 모이는 멤버들이다. 최근 유씨가 직장문제로 학원을 그만둔 이후 모임이 많이 줄었는데 연말이라고 한번 모이게 되었다.

일단 변선생님께서 쏘신다고 하셔서 아구찜을 함께 먹었다. 일본인 선생님인 이치하라 아줌마와 고삐리 소녀 김씨가 함께 한 자리였는데 대부분 일본어로 얘기를 하느라 아주 힘들었다. 이치하라 선생님은 왜 그리 웃음이 많은지 몇마디 하다보면 항상 웃느라 대화가 잠시 중단된다. 일본어를 왜 재미있어 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꽤 했었는데 한국생활 8년차라서 우리말을 잘하시는 고로 종종 한국어를 섞어가며 대화하면 그런대로 통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뭔가 말하려 하는 것이 보기좋다는 덕담도 해주시더군...-.-

변선생님은 단것을 매우 좋아하시기때문에 항상 뭔가를 함께 먹으면 떼레데글라스에 가야한다. 이치하라 선생님의 꼬마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주신다는 핑계를 대시면서 또 가셨다. 변선생님은 항상 남들 칭찬을 하시는데 좀 과하긴 하지만 모습이 보기좋다. 그러면 김선생님은 그걸 받아서 변선생님과 다른 사람 덕담을 하시곤 한다. 이 덕담 릴레이는 종종 짜증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분위기를 죽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데 어떻게보면 꽤 일본식같다는 느낌을 준다. 왠지 변선생님의 덕담은 돌다돌다 다시 당신께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치하라 선생님은 아이스크림 안드신다고 해놓구선 나오자마자 본인이 제일 많이 드셨는데 드시면서도 계속 웃으셨다. '저 안먹는다고 말했는데 제일 많이 먹고 있어요.'

이치하라 선생님을 보내자 김선생님이 변선생님을 보며 노래방 한번 가셔야죠 하신다. 변선생님은 한때 노래방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다른 여선생님에게 빌려주면서 꼭 들어보라고 하실 정도로 노래방을 좋아하신다. 물론 여선생님들과의 농담따먹기도 좋아하시는 듯. 그때문에 나와 유씨, 이씨 역시 몇차례 노래방에 끌려갔었다. 변선생님은 노래책을 안뒤지고도 번호를 다 외우시는데 애창곡은 '남자는 영웅'이라는 곡이다. 난 이런 노래가 있는줄 정말 몰랐는데 가사가 압권이다. 이 외에도 온갖 흘러간 뽕짝을 다 부르셨다. 김선생님은 나훈아의 카루무리(갈무리의 일어 번안곡)를 제외하곤 모두 나름대로 신곡을 부르셨다. 랩까지 하시는데 그 랩이 매우 트롯스럽지만 가사를 다 외우신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일 뿐이다. 학교에서 캠프갔을때 교사들이 비목같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깨는 것이 너무 싫어 최신곡을 익혔다고 하시더라. 유씨는 90년대 초반의 곡들을 좋아한다. 강산에의 할아버지와 수박같은 곡. 나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와 신해철의 재즈 까페(아 이런 곡은 정말 안해야 한다...-_-). 마지막으로 이씨가 남는데 이씨는 주로 애절한 락발라드를 불러준다. 거 김경호류 있자네. 보통 처절한 사랑노래다.

노래방을 나와 해산분위기가 되었는데 유씨가 김선생님의 팔짱을 끼면서 포장마차로 끌고갔다. 슬프게도 그 방향이 우리집 방향이어서 나도 잡히고 말았다. 김선생님의 덕담으로 시작된 그 술자리는 두시까지 이어졌는데 소주 두병이상씩은 기본적으로 까는 김선생님과 유씨의 틈에 낀 나는 한잔으로 끝까지 버텼다. '아 정철씨는 다 좋은데 술을 못먹는게 최대 단점이야.'

같이 일본어를 공부한다는 것과 서울 북부에 모여산다는 것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이런 집단이 유지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인데 그것은 변선생님과 유씨같은 개성넘치는 사람이 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좀 이상하긴 하다. 회사나 기타 이해관계가 없고, 비교적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얘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없고 좋은 사람들이 서로 불러주길 원하는 것 아닐런지도. -- 거북이 2004-1-2 12:55 am

제 목 : 남자는 영웅
노 래 : 강진

사랑도 했다 이별도 했다 바람에 길을
물으며 숨차게 달려온 사나이 사나이의
발길이 가는곳이어디라더냐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눈물이 앞을 가려도 뛰어라 바람에 길을
물으며 만들자 살아있는 신화를 그대 그대여

남자는 다 영웅이다 저 넓은 세상을 향하여
그대 가슴 활짝 열어라
사랑도 했다 이별도 했다 바람에 길을 물으며
숨차게 달려온 사나이 사나이의 마음이
머물곳이 어디라더냐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눈물이 앞을 가려도 뛰어라 바람에 길을
물으며 만들자 살아있는 신화를 그대 뛰어라
남자는 다 영웅이다 저 넓은 세상을 내품에
두주먹을 불근 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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