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음식을먹다

1 2006 01 18 : 금지된 음식을 먹다[ | ]

어제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두고 잤었다. 여기가 워낙 건조해서 나름대로 가습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아침에 보니 무려 2/3가 증발한 상태였다. 도대체 이 불모지에 왜 수도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북경은 옛날부터 물 문제가 극심해서 황하로부터 물을 끌어올 계획을 항상 가지고 왔고 지금도 뭔가 추진중이라고 하니 과연 어떤 대 역사가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푸짐하게 늦잠을 잤다. 만나기로 한 아저씨가 12시 좀 넘어 도착한다고 했으므로 자다깨서 책 좀 읽다 다시 자고 그랬다. 어제 너무 많이 먹어서 오늘 아침은 쨌다.

이 아저씨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세칭 샹형이라고 부르니 나도 샹형이라고 부르겠다. 샹형은 인민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과정에 계신 분인데 사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신 면이라거나 사전/지도 등 지식의 체계화에 관심이 많아 나와 성향이 거의 같다고 해도 될 정도다. 어릴때 사전보고 놀았다는 얘길 하시는 것 까지 나와 같다. 꼬마애가 사전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그 녀석의 미래는 대충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샹형은 매우 멋진 책 저낮은중국의 역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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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형과 함께 간 중국의 일본식 라면 체인점. 조금 느끼했지만 꽤 먹을만 했다.

샹형은 일단 나를 중관촌(中關村, 중관춘)의 일본식 라면 체인점으로 데려가셨다. 일본라면은 원래 조금 느끼한 면이 있는데 그것이 중국식으로 껄쭉해지면서 더욱 느끼해졌다. 하지만 꽤 먹을만 했고 중국내 체인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다. 21위엔(2006년 1월 현재 1위엔은 130원). 중관촌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용산+테헤란로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여기의 서점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책 출간되는 숫자는 한국보다 훨씬 종류도 많고 번역이 참 많이 된다고 한다. 워낙 선수들이 많다보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부러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솔직히 뭔가에 관심가지고 계속 파다보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서 영어나 일어권 문서에 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여기는 내일쯤 다시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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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형과 함께 탄 버스.

버스를 타고 천안문 광장쪽으로 향했다. 서울로 따지면 은평구 홍제동에서 명동정도에 나가는 정도인데 이놈의 길이 워낙에 막혀서 한시간 이상 족히 걸린것 같다. 여기도 경제상황이 나아지니까 차는 늘어나는데 길은 그대로이고 운전매너가 꽝인데다가 자전거에 인력거에 리어카에 사람까지 모두 차도에서 얼쩡거리므로 길이 안막히는게 이상한 일이라고 한다. 역주행도 예사라고 하니 말 다했다. 나도 열심히 무단횡단을 몸에 익히는 중이다. -_- 가는 길에 샹형과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전반적으로 중국이 가진 방대한 스펙트럼에 관한 얘기였는데 그 얘기 또한 스펙트럼이 꽤 넓어서 요약하기는 어렵다. 즉 나는 중국에 대해 여전히 벙~쪄있는 상태라는 얘기다. 내 첫번째 중국여행은 중국에 대한 의문점만 잔뜩 만들고 끝날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중이다. 샹형은 어수선한 중국이 좋다고 한다. 나는 중국에 대한 친밀감보다는 일본쪽이 더 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만화, 영화같은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무기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류와 수만이형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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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앞에 있던 시장통. 어수선한게 마음에 든다.

천안문 조금 앞에 있는 전문에서 내렸다. 이건 자금성 한참 앞에 있는 문이어서 전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나보다. 전문에는 재래시장이 복닥거리고 있었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남대문 시장같았다.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놓았고, 다들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 여튼 이런 곳에 오니 진짜 중국을 처음 들여다 본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역시 재래시장은 최고의 관광지다. 마오가 그려진 티셔츠를 하나 살까 했지만 점원이 75위엔이나 불러서 엿무라 하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누리를 시도해볼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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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천안문 광장. 하지만 국가적인 행사가 있거나 명절때가 되면 여기가 바글바글해서 사람들 사이에 낑겨가야 한단다.

천안문 광장까지 걸어서 갔다. 천안문 광장은 중국의 '가오'이므로 여긴 공안도 많고 꽤 깨끗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고압적인 국가기관들이 쪼로록 서있는 천안문 광장을 지나가다보니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였던' 곳이 맞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샹형 말로는 모스크바도 북경도 모르긴해도 평양도 이런 유사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을거라는 얘길 했다. 그런거보면 유토피아보다는 다양성이 더 멋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특히 날이 뭐같다. 아주 목이 턱턱 막힌다. 조금 걷다보면 아 정말 젓같네 하는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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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이다. 중국혁명을 끝낸 마오가 여기 올라가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뒤에 적힌 글자는 中华人民共和国万岁 世界 人民大团結万岁

천안문 광장을 지나니 벌써 저녁때가 된다. 우리는 열심히 걸어서 왕부정(王府井, 왕푸징)으로 갔다. 왕부정은 명동같은 번화가인데 내 보기에 딱 명동의 4배같다는 느낌이다. 건물 높이는 별 차이가 없지만 길의 폭이나 전체적인 길이가 두배정도 되니 2*2 해서 4배정도의 기분. 여기는 그나마 아가씨들도 좀 차려입고 다니고 가끔 이쁘장한 언니들도 보인다. 솔직히 난 중국 여자 하나도 안이쁘더라. 내가 가본 모든 외국(중국 일본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을 다 털어봤을때 확실한건 한국 여자가 가장 이쁘다는 것. 뭐 개인적 취향일수도 있겠지만 성형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여자들이 오목조목 더 이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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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왕부정 거리와 우리가 먹은 청요리집. 이름은 모른다. -_-

여기서 청요리를 좀 시켜먹고 샹형은 일찍 일어나셨다. 오늘은 급한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토요일에 심도있게 백주[白乾兒, 바이갈]를 하자고 약속까지 했다. 이 청요리집에도 점원이 참 많은데 하여간 이 나라는 사람 하나는 참 흔하다. 한국 유학생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간당 7위엔 정도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중국 물가를 생각하면 점원쓰는 것이 그리 싼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기계쓰는 것 보다는 사람 쓰는 것이 더 싸단다. 들은 에피소드 하나. 누가 중국에 차가 많아지니 세차장도 잘 되겠지 싶어서 기계를 가져와 자동세차장을 만들었댄다. 하지만 아무리 자동세차가 잘해줘도 그건 사람 손세차에 비하면 한참 하급 서비스다. 그걸 사람이 넘쳐나는 중국에서 했으니 될리가 없고 금방 접었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중국 인권문제가 나아질 때 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샹형과 바이바이하고 나서 대형 서점에 가서 차분히 사전을 구경했다. 살 것이 많았지만 지하철타고가는 입장이라 일단 세권만 샀다. 다행히 신용카드가 되니 내일은 신용카드로 더 사고 택시로 들어와야겠다. 중국내 국어사전(즉 중중사전과 한자사전류)들은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여 조금 놀라웠다. 중국 사전(자전)문화의 유서깊음이야 알고있었지만 그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역시 멋진 일이다. 그에 비해 외국어 관련 책들은 대부분 해당 나라에 의존적이었다. 한중-중한사전은 한국것을, 일중-중일사전은 일본것을 가져다 썼다는 말이다. 하여간 속편한 넘들이다. 한중사전은 자신들이 직접 편찬한 듯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조선족들이 개입했는지 우리가 쓰는 말과는 영 딴판인 것이 많다. 뭐 조중(북한말-중국어)사전들에 비하면야 훨씬 가깝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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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길거리 꼬치구이집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바퀴벌레, 지네, ?, 굼벵이(?), 해마, 거북이, ?

나는 사전을 짊어지고 아까 가지 못해 아쉬워했던 길거리 포장마차쪽으로 향했다. 길거리 구멍가게들을 집합시켜서 문화명소처럼 쪼로록 세운 것이다. 난 길거리에서 주전부리 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뭐가 있나 스르륵 봤다. 초입에는 과일 튀긴것(중국 음식은 일단 튀긴다고 보면 된다. -_-), 만두, 꼬치구이 등등 익숙한 것들이 조금 지나더니만 두부, 야채, 춘권 등 우리에게 조금 어색한 튀김류들도 마구 나오더니 결국 뱀, 지네, 거북이, 바퀴벌레, 메뚜기, 전갈 심지어는 해마까지 나오더라. 아 이 인간들 정말 안먹는게 없다더니 사실이군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옆에서 한국 여대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갈 고소하던데 해마도 먹어보자." "해마는 너무 징그럽지 않니?" 웅성웅성. 그러더니 바로 에누리에 들어간다. 가격표는 한 꼬치에 50위엔이었는데 녀석들은 바로 20위엔을 부른다. 20-30-20-30-25-해마 한꼬치와 거북이 한꼬치에 50-25 이렇게 옥신각신하던 끝에 해마+거북 패키지를 50위엔 주고 샀다. 여튼 중국에서는 일단 정가의 30% 정도를 부르면서 치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네고다. 어쨌거나 여기 따오판[盜版] DVD가 10위엔이고 버스비가 4위엔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꽤 비싸다. 나는 애들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 먹을거니?" "여기 왔는데 먹어봐야죠, 아저씨도 꼭 드셔보세요." "북경오리는 느끼해서 반도 넘게 남겼는데, 아까 전갈은 맛있게 먹었어요. 이것도 먹어봐요~" 꼴에 애들 앞에서 스타일 구기고 싶지는 않아서 해마+거북 패키지를 내가 쏘고 먼저 거북을 한입에 물었다(새끼거북이를 껍질채 튀긴거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너무 느끼했다. 그리고 뭔가 쏠리는 듯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어떻게 용케 씹었다. 거참. 여자애들은 넷이었는데 그중 둘이 용기를 내어 해마도 먹었다. "돈내셨는데 해마도 하나 드셔야죠~"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해마도 씹었다. 이 녀석도 느끼하고 쏠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똑같아서 뭐가 해마이고 뭐가 거북인지 이미 구분이 되질 않았다. 어쨌거나 애들이 씩씩하게 천진(天津, 톈진)을 지나 북경으로 와서 자금성도 보고 만리장성도 가봤다니 기특했다. 애들과 바이바이하고 나는 참을수 없는 쏠림현상이 있어서 딸기 바나나 튀김을 샀다. 10위엔 부르는 것을 한번 깎아봤는데 생각보다 쉽게 6위엔으로 깎을 수 있었다. 여기서 깎는 실력은 필수인거 같다. 겨우 과일튀김으로 쏠린 위를 진정시키고 아까 봐두었던 음반가게에 가봤다.

  自然捲의 데뷔앨범 C'est La Vie(2004)

여기 음반가게는 참 볼게 없다. 일단 이 인간들은 팝, 락 쪽을 거의 안듣는거 같다. 한국음반보다도 적을 때가 있는 것이다. 일본음반도 별로 없다. 그리고 클래식 코너가 아주 바글바글하고 나머지는 중국어권 가수들이다. 겨우겨우 뒤져서 인디뮤지션이라는 정체모를 가수 하나(알고보니 자연권自然捲이라는 대만 인디였다)와 중국락 컴필레이션 하나를 샀다. 반면에 영화쪽은 좀 더 다채롭다. 자막이 없으니 볼 수가 없지만 다큐멘터리 종류와 중국 옛날 영화들, 서양 옛날영화와 최근 유행했던 영화들은 꽤 다양하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한국 드라마들도 많이 있고. 다큐멘터리쪽이 많이 땡겼으나 해독능력이 없으므로 참았다. 얘네는 정품도 영 따오판 같기때문에 구분이 영 쉽지않다. 그저 싼게 장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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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내부가 생각보다 좁아서 우리나라 지하철과 런던의 지하철의 중간정도였다. 지하철 내부의 크기는 런던 < 북경 < 도쿄 < 서울 < 바르셀로나 랄까나.

나는 자력으로 호텔까지 오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여기 와서 처음 해보는 독자 이동 되겠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교통수단인 지하철을 이용해보지 않을 수 없으니 지하철로 정했다. 왕부정에서 호텔이 있는 오도구까지는 지하철을 두번 갈아타야 한다. 여기 지하철은 1 2 13호선 이렇게 세개인데 3-12호선까지는 지금 공사중이라고 한다. -_- 하여간에 이넘들은 스케일 하나는 크다. 2호선이 내부 순환선인데 그 원은 상당히 작아서 일본의 야마노테센을 떠올리게 했다. 그 원 안이 바로 북경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북경은 도로망도 중심을 기준으로 1환 2환 이렇게 순환 도로가 깔려있다. 은근히 계획도시다. 여튼 1호선 2호선 13호선으로 갈아타서 잘 오긴 왔다. 2호선과 13호선은 갈아타는 역과 역이 분리되어있어 혹시 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큰 혼란없이 갈아탈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1호선과 2호선 환승통로에서는 뻘쭘하게 애정표현하고 있는 연인도 발견해서 재미있었다. 지하철 안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나는 소매치기라도 있을까봐 가슴팍의 주머니를 주의하면서 갔는데 그 안의 사람들을 모두 소매치기로 간주한 느낌이 들어 조금 미안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볼게 사람밖에 없어서 사람들을 봤는데 남자들은 생각보다 잘생긴 넘들이 몇몇 있었다. 여자들은 얼굴도 그렇지만 스타일에 있어서도 한국 여자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한국 여자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얼굴 따지는 남자들일테니 한국 남자들은 한국 여자들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기분도 들었다. (중국 여자들은 아주 대가 강하고 거의 모두 일을 하여 남자들과 모든 면에서 대등한 편이라고 들었다.)

오는 길에 왠 아가씨가 나를 쫓아오면서 중국말로 뭐라 한다. 왠 잡상인이여 하고 지나갔는데 두세명이 또 똑같이 했다. 나이트 삐끼인가 하면서 한번 응대를 해봤는데 매춘 호객행위였다. 마사지 100위엔, 짧은밤 500위엔, 긴밤 800위엔이고 아가씨 한번 구경하는데는 5분이면 되니 어서 보러가자는 말을 하더라. 영어를 상당히 잘해서 서점 점원들보다 훨 나았다. -_- 얘기를 다 들은 뒤 친구가 기다려서 어서 가야겠다며 뿌리쳤다. 뭐라뭐라 하던데 아마 친구도 함께 오라는 말이거나 에라 이 쉬블러마 하면서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에서도 호객행위에 걸린것을 보면 얘들은 관광객과 지역인을 구분하는 눈을 다들 가진 것 같다.

어쨌거나 오도구(여긴 한국학생들이 천지인 곳이다)에서 잘 내렸고 무단횡단 세번과 함께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내일은 또 회의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자야지. 벌써 시간이 한시 반이 넘었다.

1.1 촌평[ | ]


전신마사지를받다 <= 금지된 음식을 먹다 => 중국은기회의땅

거북이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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