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건축물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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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05.15 : 근대 건축물을 걷다[ | ]

간사이공항에 내려서 작은 모노레일을 탔다. 활주로에서 터미널까지 타고가야 한다. 그래도 두번째라고 어색하지 않다. 모노레일 안에서 제일 먼저 내 귀로 들어온 소리는 시원시원한 한국어였다. 아주머니 두명이 이런 대화를 나누더라.

날씨 참 흐리네. 일본애들 같애.
서울은 날이 얼마나 좋았어요.
일본애들은 참 속을 알기가 어려워요. 내가 11년째 이렇게 다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보따리장수 아줌마와 여행객 아줌마 두명의 대화였던 것 같다. 사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중 하나가 이런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거다. 나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될까.

오사카 시내로 진입하는 지하철을 탔다. 내릴 곳은 난바(難波)역이다.

일단 문제가 뭐냐면 나에겐 시계가 없다는 점이다. 북경으로 출장갔을 때도 자동 로밍이 되었으니 일본은 더더욱 당연히 되리라 믿고 갔었는데 그건 정말 오산이었다. 핸드폰은 이제 단순한 짐이 되었다. 이 시계문제는 여행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처음부터 그냥 삼천원짜리 시계라도 하나 샀으면 되었을텐데 좀 안사다보니 끝까지 안사고 버틴 것이다. 가끔 지나가는 일본인들에게 시간을 물어보며 나는 2주를 보냈다. 일본인들은 '요즘세상에 길가는 사람에게 시간 물어보는 넘도 있나?'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곤 했다. 이런 상태에 놓이면 인간이 얼마나 시간에 종속된 존재인지 순간순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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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들 여럿이 바글바글 모여서 핸드폰을 조물락거리는 것을 보면 여기나 저기나 똑같다. 나는 별로 할것도 없던데 열심이다. 여기 집들은 기와를 많이 사용했고, 벽이 주로 파스텔톤으로 칠해져있다. 전반적으로 눈에 피로감이 덜한 회색빛이다. 다들 그렇게 되어있으니 우중충하다기보다는 깔끔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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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간 내내 수염을 깎지 않았다.

난바는 큰 역이다. 지하철 세개와 전철 하나가 지나는 역이다. 게다가 난바 파크(なんばパークス)라는 큰 상가까지 걸쳐져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려서 약도에 나와있는 이정표를 찾아봤지만 쉽지않다. 지나가던 고등학생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단다. 그래도 이정표 하나를 찾고나니 생각보단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여긴 기업형이고 콘도형인 민박이었는데 개인 생활이 보장되는 것은 좋지만 뭐랄까 인간미가 좀 적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당히 방이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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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면 왠지 커보이는데 정말 콩알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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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세이긴코 은행(新生銀行) 로고. 이걸보고 신한은행 로고가 생각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나가다가 가격이 별로 안비싸보여서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반숙카레였는데 400엔이었으니 꽤 싸다. 그런대로 먹을만했지만 이것을 여러번 먹으면 왠지 눈물이 솟을것만 같은 그런 맛이었다. 그래도 어떻하겠어. 기내식도 안나와서 아침에 먹은 버거킹 햄버거 하나가 전부였으니 어서 먹어야지. 여기는 요시노야(吉野家)라는 가게로   요런 로고를 가진 밥집 체인이다. 정형화된 메뉴로 정형화된 맛을 제공한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패스트푸드는 바로 요시노야다. 나중에 먹어본 모스버거 이런 곳은 오히려 슬로우푸드인 것에 비해 여기는 주문하면 정말 금방 나온다. 내가 먹은 것은 1분이 채 안걸렸다. 옆에서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돈부리를 드시고 계셨다. 빨간 생강절임을 거짓말 안보태고 숟가락 두세개 가득 넣어 비비시던데 저렇게 먹으면 과연 돈부리 맛이 날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꽤 일반적인 방식인지 이후 그렇게 먹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일단 걷기로 했다. 오사카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다른 곳에 갈만한 시간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사에서 보내준 책자중에 오사카 관광 컨벤션 협회에서 발행한 '신나는 오사카 라라라'라는 놈이 있었다. 여기에는 다른 관광안내서에는 없는 특이한 정보가 있었다. 오사카의 근대 건축물이 그것이다.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빨리 근대화를 이룬 나라이고 당연히 꽤 오래묵은 근대 건축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것들은 몰려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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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지야 빌딩(1924) : 아직 열심히 영업중이다. 별로 멋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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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업회관 빌딩(1931) : 일본은 다른 후발국가들처럼 한때 면직물이 주요 수출품이었는데 그 중심가중 하나가 바로 오사카였다.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의류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라고 한다. 이 건물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있으며, 꽤 점잖은 건물이다. 여긴 아직도 면업회관 건물로 사용중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게 아니라 매월 4째주 토요일 오후에만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다가 안내 아가씨의 주의를 받고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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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니와 교회(1930), 아이슈 유치원(1901) : 이런 건물들이 모두 '현역'이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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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키주쿠(適塾, 1838) : 오가타 코안(緒方洪庵, 1810-1863)의 자택이자 난학교였다. 오가타 코안의 이 학교에서 후쿠자와유키치가 배출되었다. 자그마한 공원처럼 꾸며져있는데 잠시 앉아서 여행자가 빵을 집어먹기에 좋은 곳이다. 사람들이 담배를 열심히 피우고 있으니 묻어서 함께 피워도 좋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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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 중앙공회당. 오사카에서 가장 유서깊은 근대건축물이라 한다. 서울역 지은 양반이랑 동일한 사람이 지었다고 얼핏 들었는데 확인은 못해봤다.

이 외에도 몇군데 더 다니긴 했는데 이정도만 적겠다. 이런 근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유럽의 양식을 모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가 갖는 우아함이 있다. 아직 빅토리아 시대를 동경하는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건물들과는 달리 성의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다. 지금 건물들은 공산품같은데 그때 건물들은 수제품같다는 기분인게다. 그건 아무래도 시대적인 특성일 것이다. 지금처럼 여기저기 난개발을 해야할만한 시대는 아니었지만 급격한 공업발달과 식민지 경영으로 돈은 넘쳐나는 시대.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적 미의식이 지배했던 근대였기 때문에 그런 건물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건물들을 쓰고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에딘버러같은 곳은 아직도 도시 중심지가 중세풍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서울에 백년이 넘은 건물이 거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식민지시대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거치며 박살난 우리의 문화의식이다.

이렇게 오사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걸은 거리는 지하철역 3개 정도의 거리였다. 왔다갔다하면서 느낀점을 몇가지 적어본다. 길은 결코 깔끔하지 않다. 오사카는 한국과 유사하다는 말을 듣는데 실제로 길에 땜빵도 많고 은근히 지저분한 것이 그다지 깔끔한 편은 아니다. 나중에 보니 도쿄도 그랬다. 그리고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그렇게 많다. 애를 앞뒤로 태우고 다니는 OL(office lady) 아줌마들을 보니 당당하고 예뻐보이더라. 우리나라와는 달리 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잘 타고 다니는 편이다. 커플이 타는 경우도 꽤 봤는데 역시 어김없이 패달을 밟는 쪽은 남자였다. 하긴 여자가 밑에서 달리고 있으면 그것이 오히려 더 볼거리겠지. ㅎㅎ 나는 또 그 거리를 걸어서 숙소까지 돌아가긴 싫었기에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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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시내의 북쪽에 있는 요도가와 강(淀川). 수면 높이가 평지와 비슷해서 좋았다. 청계천도 원래는 그랬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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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어김없이 짝퉁 DVD를 팔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우리나라 짝퉁을 팔고있다. -_-

전철역에서 내리니 근처에 산카쿠코엔 공원(三角公園)이 있다. 이 삼각공원이 어떤 곳이냐면 이 동네 어린 양아치들이 죄다 모이는 곳이다. 옷가게, 클럽, 술집, 매춘업소 등이 뒤죽박죽으로 들어있는 그런 동네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렇게 흑인 삐끼들이 많다. 이 흑인들은 일본어를 죽이게 잘해서 징그럽다. 난 요 근처에 있는 디스크 헤븐이라는 메탈 전문점을 찾아가는게 목표였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해놓구선 한국말로 '괜찮아요?'라고 묻던 일본 꼬마애가 기억에 남는다. 한류의 악영향이다. -_- 근처의 덩치 큰 삐끼에게 물어봤는데 역시 친절하게 가르쳐주어놓구선 자기가 '상큐'란다. 하여간 이 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친절하다. 단지 외국어가 안되니까 일본어가 되는 외국인에게 더 친절할 뿐이지. 일본인들의 이 몸에 익어버린 친절은 일본땅을 떠날때까지 느껴졌다. 어쨌든 간신히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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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공원 근처의 가게들. 사진 실력이 영 형편없다.

height=200   들어가보니 역시 전문점답게 CD가 많다. 나야 CD 사러 온 것은 아니니까 대충 둘러봤는데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기들도 요즘 한국 메탈에 관심이 많단다. 한국 메탈 구하는 것이 있으니 LP로 구해달라고 하길래 그래주마 하고 명함을 받아왔다. 아직 연락은 못해봤다. -_- 그냥 나오기 뻘쭘해서 DeepPurple의 75년도 일본 라이브를 사왔다. 이 앨범은 커버데일과 타미 볼린이 있던 시절의 공연으로 그런대로 들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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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헤븐 오사카점

나와서 좀 더 돌다가 킹콩이라는 중고판 가게를 찾았다. 바로 이런 곳이 내가 찾던 곳이다. 여기서 매장 닫을때까지 열심히 판을 들여다보았다. 별로 싼 것은 아니어서 한두장만 샀다.

열심히 돌고나서 집에 가려다보니 이제야 허기가 느껴진다. 역시 음반을 고르다보면 나는 이성을 분실한다. 이 경험은 앞으로도 몇번을 하게 된다. 퉁퉁하지만 나름 귀여운 타코야키(문어빵) 점원이 보여서 그에게서 사먹기로 했다. 타코야키는 싸고 맛있었는데 여긴 오뎅국물 주는 풍습이 없는지 좀 답답했다. 오뎅국물을 달라고 했더니만 얼음물을 가져다 주더군. 그래서 다시 얘기했더니 이번에는 오뎅국물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항상 오뎅국물을 함께 준다 뭐 이런 얘기부터 하기 시작해서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 다음엔 어디로 갈거냐 등등 다양한 잡담을 했다. 그에게 뭔가 맛난 곳이 없느냐 했더니 그건 아무래도 건너편인 도톤보리(道頓堀)에 많다며 이쪽은 '어른의 처리'를 하는 곳이 더 많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어른의 처리'(大人の処理)라는 표현을 써서 한참 웃었다. 외국인과 외국어로 대화하면서 약간의 은유가 섞인 표현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체험이다. 나는 영어를 십년이상 공부(?)했지만 그런 쾌감을 느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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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는 오사카 여행을 얘기하면 빠지지않는 동네다. 먹거리, 노래방, 술집, 빠찡꼬 가게가 가득 모여있는 상점가. 그런데 난 여기가 싫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공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도 날좀보소 하는 네온사인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게 한국의 네온사인만큼 싫진 않다. 아무래도 일본인 특유의 오밀조밀함과 재미있는 디자인과 한자 특유의 타이포그래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게 아닌가 싶다. 난 로마자보다는 한자가 범람하는게 더 좋다. 도톤보리에서 정말로 씨끄러운 빠찡꼬 가게들을 지나가니 노숙자들이 누워있었다. 빠찡꼬와 노숙자는 함께하는 아이템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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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에 발견한 간판. 중고가구 전문점인데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의 걸작 우키요에(浮世絵)를 패로디한게 재미있다.

1.1 # 촌평[ | ]

우에노에 있던 비지니스 호텔보다는 넓구만...난 첨에 호텔이라 해서 엄청 좋은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구만...^^ 암튼 일본은 재밌는 나라라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뭔가 공허한 홍콩보다는 아무래도 일본이 더 재밌지..정서도 비슷하고...뭐 재밌는 꺼리도 많고...물가만 우리나라보다 안비싸다면야...좋겠지만... -- 최정현 2006-9-14 11:5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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