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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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坊っちゃん
도련님

   

2 책소개 (알라딘, 2002년판)[ | ]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작품이다. '서울대가 추천하는 고전 200선'에 선정된 이 책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매년 발표되는 신문사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막무가내라고 부르는 '도련님'은 친구의 이죽거림에 2층 건물에서 대뜸 뛰어내려 허리를 삔다. 한번은 선물받은 칼을 시험해 본다며 자기 엄지손가락을 뼈가 드러나도록 잘라내기도 했다. 무시당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거짓말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대쪽같은 성격이 일을 부른 것이다.

세상과의 인연이라고는 자신을 길러준 늙은 하녀(할머니)가 전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중학교 때 일찍 돌아가시고 없다. 하녀의 입에 바른 칭찬과 근거 없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한 '도련님'은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답답한 시골 마을에서 말 안 듣는 학생들, 속을 알 수 없는 선생들과 부딪치면서 '도련님'은 그제야 자신의 진정한 가치(자아)를 깨달아간다. 동경 토박이의 시골 생활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책.

3 책소개 (알라딘, 2013년판)[ | ]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권. 나쓰메 소세키가 「호토토기스」에 <도련님>을 연재한 것은 1906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 교사를 거쳐, 일본에서도 오지라고 불리는 시코쿠의 마쓰야마 중학교로 전근해서 겪은 경험이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고, 나의 왠지 마음 가는 투덜거림으로 시작된다. 오직 자신이 본 것으로만 판단내리고 확신하는 정의롭게 고지식한 일종의 사회부적응자(?)인 나에게 아무래도 정정당당하지 않은 세상은 화만 난다. 나가 보여주는 일관된 불만 표출, 화내기, 싸우기, 대들기 때문에 세상과 도련님의 거리는 여간해서 좁혀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정직하고 솔직하기까지 한 도련님은 외톨이다.

4 # 거북이[ | ]

단편집 이후로 처음 본 소세키의 작품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의 주요작을 하나도 안봤던 셈이다. 일한대역본이 있길래 한번 사봤지만 오 역시 나에겐 한참 무리였다. 조금은 읽어봤지만 곧 접고 번역으로 읽었다. 역자는 직역 위주로 했다지만 원래 호쾌한 투로 쓰여진 소설인지라 직역임에도 그다지 눈에 걸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소세키의 소설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고있는 것이라 한다. 읽어보면 그럴법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게 주인공 '도련님'은 둘러갈줄 모르고 뭐든 직선적으로 밖에 대응할줄 모르는 소박한 인물이다. 그의 소박하고 좌충우돌적인 성격은 뭐든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에 메스꺼움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시원하고 정감간다는 기분이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개인주의'를 번역한 김정훈씨도 도련님의 시원시원한 성격에 반해서 일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자기소개에 적고 있다.
이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요즘 나도 뭔가 풀어가기 위해 나날이 유들유들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므로, 나는 도련님처럼 행동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면 꽤나 아련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적이 있었나? 나날이 도련님이 싫어하는 빨간셔츠나 알랑쇠같은 인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소세키가 나의개인주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영국유학기간동안 그가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본위'라는 의식이었다. 양눔들을 따라갈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식대로 살란다라는 의식말이다. 그것이 하나의 인물로 형상화된 경우가 바로 이 도련님이다. 도련님은 시골학교의 선생으로 부임하면서 그 인물들의 비열함에 영 질려버리게 된다. 말안듣는 학생들과 느물느물 음모만 꾸미는 악당 선생들 사이에서 계속 부대끼는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옳지않은 것은 하지 않는다며 지내다가 결국 부당한 학교의 처사에 소박한 응징을 해주고 돌아오게 된다. 도련님은 이해와 오해속에서 몇몇 사람들과는 마음을 트게되지만 영 타협이란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원래부터 타고난 성격이며 그 성격은 소설 전반부에 한참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도련님의 모습은 일본을 암시하는 느낌이 있다. 어린시절 막무가내로 살다가 3년간 열심히 공부한다는 설정은 제멋대로 살다가 근대화라는 '제도교육'을 받아 모범생이 된 일본을 비유하고있는 것이다. 도련님이 자신을 돌봐주는 할멈인 기요에게 마음을 기대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자신을 에돗코라고 부르며 자기가 살아왔던 스타일을 긍정하고 있는 것처럼 소세키는 일본다움에 대한 향수와 긍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도련님은 어떻게 성장해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인물은 아니고 어떨게 살아야 할 것인가만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소세키가 언급한 '자기본위'라는 주체적인 의식의 구현체로서 부족함이 없다.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계몽의식같은 것이 없고 인물 묘사와 그 심리에만 집중하고 있기에 지금 읽어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엊그제 일본어 학원에 다시 등록하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받았다. 일본인이 인터뷰를 하고 내 레벨을 정해주는 것이다. 요즘 읽는 책이 뭐냐고 묻길래 나는 도련님을 보고있다고 했고 그 말을 듣자 오 일본어로 보냐고 다시 묻는다. 나는 뻘쭘한 표정으로 번역으로 보고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며 다음에는 '마음'을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 보기 전에 마음부터 봐야겠다. -- 거북이 2005-3-30 5:14 am

5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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