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생애

Gkscnsrb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18일 (화) 22:29 판 (새 문서: == 생애 == === 초기 생애=== 1955년 2월 11일(음력 1월 19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박길보와 노을석의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1 생애[ | ]

1.1 초기 생애[ | ]

1955년 2월 11일(음력 1월 19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박길보와 노을석의 2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 졸업하였다.[1] 이후 재수를 해서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입학한지 수개월만에 유신체제 반대 학생 운동과 관련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이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첫 발령을 받았으나,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2] 이듬해 변호사로 개업했다.[3]

1.2 인권변호 및 시민운동[ | ]

1.2.1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변론[ | ]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당시 부천경찰서(지금의 부천 소사경찰서)의 경장이던 문귀동이 조사과정에서 당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성적으로 추행한 사건이다. 박원순은 조영래 등과 함께 피해자 권인숙의 변호인단을 맡았다.

1.2.2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변론[ | ]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1993년 서울대학교 우 모 조교가 신정휴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으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이었다. 박원순은 우 조교의 변호인단에서 활동했다. 6년간의 법정투쟁이 이어졌고, 결국 1999년 6월 25일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이 나왔다.

1.2.3 민족문제연구소[ | ]

박원순은 변호사 활동으로 번 돈으로 이태원 청화아파트(184㎡)와 주택 등 부동산을 취득했으나, 시민활동가로 들어서면서 재산을 모두 처분했다.[4]

부동산은 그가 초대 이사장을 지낸 역사문제연구소를 1996년 설립하면서 건물 부지를 마련하는데 사용했다. 이 부동산의 가치를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수십억 원에 달한다.

1.2.4 참여연대[ | ]

1996년에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일에 집중하기 위해 변호사 일도 접었다. 부인 강난희가 1999년부터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P&P디자인 인테리어 회사를 차렸다. 박원순이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또 시장 당선 후 강난희가 사업을 급하게 처분하면서 빚은 더 늘었다.[4]

1.2.5 여성 국제 전범 법정 활동[ | ]

2000년 12월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은 일본군의 전쟁범죄 특히 일본군 위안부 조직과 강제연행, 위안부 소내 강간·고문·상해·학대·살인 행위를 비판·검증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민간 법정이다.

대한민국측 검사로 참여한 박원순은 “한반도는 10만 명 이상이 군대위안부로 동원된 최대 피해국이었고 식민지 지배가 그 배경이었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 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했다.[5]

한편, 박원순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보국대에서 7년간 복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박원순 측은 “노무자로 징집돼 철도부역과 건설작업을 했다”고 반박했다.[6]

1.2.6 국회의원 불법 낙선운동[ | ]

이 부분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읽으려면 낙선운동 문서를 참조해 주세요.

박원순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1월 12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 개 시민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를 구성,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이끌었다. 박원순은 후보 공천반대 인사 선정 기준과 적용에 대해, “병역사항·재산변동·부패혐의, 선거법위반,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권 행위, 의정활동 성실성, 법안·정책에 대한 태도, 반의회ˑ반유권자적 행위” 등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선거법 87조는 선거일 20일 전부터 시작된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해 놓았다. 따라서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지만, 총선연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졌던 2000년 16대 총선에서 대상자 132명 중 72.3%인 102명이 낙선했다.[7]

서울지방법원 민사 13부는 2002년 9월 26일 이종찬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총선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참정권을 침해했다"면서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연대해서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8] 2004년 9월 21일에는 이사철 전의원이 박원순 등 총선연대 간부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낙선운동은)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이 씨의 기대를 침해한 것이므로 정신적 고통을 보상하는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9]

1.2.7 아름다운재단 설립[ | ]

2000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 운동, 동아일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공동캠페인, 인터넷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따뜻한 세상 만들기" 온라인 캠페인, 작가들의 아름다운 나눔 인세 1% 기부운동 그리고 네이버와 기부포털사이트 해피빈 창립을 함께하여 기부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모인 기부금을 통해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 태평양제약과 함께 독거 노인들에게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노인지원 기금 사업', 미숙아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다솜이 작은 숨결 살리기 사업' 등의 사회적 사업을 실천하였다.[10] 2002년 아름다운가게를 설립, 헌 물건을 기증받아 수선하여 되파는 형태의 재사용 나눔가게, 제3세계 저개발국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문화 운동, 재활용 디자인 사업, 국제구호를 위한 모급사업을 하였다.[11]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지역사회 운동, 청년 벤처 운동, 소기업 지원 운동을 했다.

2006년 만해상,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12]

1.2.8 결식제로 운동[ | ]

2010년 12월 8일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며 급식 관련 예산 285억 원을 전액 삭감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주일 뒤부터 당장 급식 지원이 끊기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박원순은 즉각적으로 '결식제로' 운동을 시작했다. 2010년 당시 결식제로 운동을 선언하며 박원순은 "어떻게 밥 굶는 아이들의 급식비까지 깎아버린다는 말입니까", "국가가 책임을 지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밥 굶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부터 하루에 한 끼를 굶어 12월 중으로 4만원(한 끼당 5000원×8끼)을 내놓으려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버린 아이들 우리가 먹입시다"라고 말했다. 국민 100만명이 참여해 400억원을 모으면 결식아동 겨울방학 급식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식아동 0 캠페인'은 개시한 지 일주일만에 2000여 명 이상이 동참해 1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13][14]

1.2.9 기부 활동[ | ]

민족문제연구소 부지를 기부하였고, 그 뒤로도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한국여성단체연합, 해외 비영리단체 등에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

1989년 이후 박원순이 사회에 환원한 돈은 32억원이 넘는다.[4]

1.3 서울특별시장[ | ]

1.3.1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 ]

2011년 10월 3일 민주당 소속 박영선, 민주노동당 소속 최규엽, 무소속 박원순 세 후보는 단일화 후보 경선을 치렀다. 3만 명의 선거인단 중 60%라는 투표율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15] 박원순은 이날 경선에서는 박영선과의 접전 끝에 패하였으나 TV토론 배심원단 조사, 일반 시민여론조사를 포함해 이날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집계한 결과 박원순이 52.15%를 차지해, 45.57%를 얻은 박영선을 이겼다. 한편 최규엽은 2.28%를 얻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10월 3일 치러진 범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하며 "유모차를 밀고 투표장에 오는 시민들의 물결은 정치와 정당에 변화를 요구하는 물결이었다, 민주당은 이를 겸허히 수용하고 시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쇄신'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16]

손학규는 또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패배를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철회했다. 손학규는 철회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박원순의 입당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특별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경선에 담긴 시민과 국민의 뜻이 존중돼야 한다"며 "더 큰 시야로 민주당이 민주진보진영 전체를 품어 진보진영의 용광로가 돼야 한다, 더 큰 민주당 안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통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5일 박원순은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이희호 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 민주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민주당이 앞으로 다른 정당과 정치세력을 받아들여 더 커지는 과정을 거친다면 저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입당한 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생각과 활동을 같이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17]

2011년 10월 11일 박원순은 선거대책위원회 '새로운 서울을 위한 희망캠프'를 공식 출범시켰다. 범야권 단일화의 결과 민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3당이 참여하고 있으며 시민사회, 문화계 인사, 언론계 등이 총 집결하였다.

상임선대위원장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맡았으며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전 진보신당의 지도 인사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이계안, 문성근 등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범야권 통합후보 경선에서 경쟁한 민주노동당최규엽과 민주당의 박영선 역시 경선 당시의 약속을 지켜 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고문에는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 특보단에 최재천 전 의원, 선대본부장에 문용식 나우콤 사장, 정봉주, 천호선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18]

1.3.2 서울특별시장 당선[ | ]

2011년 10월 26일 아침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이날 아침, 박원순의 홈페이지 원순닷컴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사이버 테러가 가해졌는데, 박원순 지지 성향이 많은 젊은층들이 투표소를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이 벌인 일로 훗날 드러났다. 최종 투표율은 48.6%였으며 박원순은 전체 투표수 가운데 53.40%인 215만 8476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한나라당나경원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7.19%의 차이로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초·강남·송파·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21개 구에서 모두 나경원 후보를 앞섰다.[19]

박원순은 별도의 인수 기간 없이 10월 27일 초등학교 5·6학년 무상급식 예산 지원 결재를 첫 업무로 시작하며 서울특별시장 집무에 들어갔다.[20]

1.3.3 제35대 서울시장[ | ]

1.3.3.1 전두환 경호 시유지 회수[ | ]

박원순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에 무상으로 내줬던 시유지의 사용권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윤종장 서울시 언론담당관은 그동안 "시사편찬위의 옛 부지를 문학창작촌으로 조성하면서 인근 전 전 대통령 사저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많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서울경찰청이 부지 일부의 사용을 요청했고, 두 차례 실사를 거쳐 공적 용도일 경우 무상으로 사용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근거해 무상 사용 허가를 내줬다"고 설명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서울시의 공식적인 요구가 없어 뭐라고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관련 법률에 따라 경호 부지를 경찰이 마련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직 대통령 경호는 보안상 문제도 걸려 있어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므로 서울시와 협의해가겠다 "고 말했다.[21]

1.3.3.2 재건축 소형 평형 확대[ | ]

2012년 2월 9일 서울시 도시계획위 소위원회는 개포지구 재건축 소형평형 비중을 50%까지 확대하도록 요구했다.[22] [23]

2월 29일 서울시의 재건축 소형 평형 확대 요구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집회가 있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1500여명의 개포주공 주민들이 모였다. 개포주공 4단지 주민 이모씨는 "시장은 60평대에 살면서 우리는 계속 소형주택에 살라는 것이냐. 우리도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24]

박원순의 서울시장 취임 후 4개월간 서울 재건축 아파트 시가총액은 2조원 이상 감소했다.[25]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은 친서민정책이 아니다. 서울 서민을 결국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고 비판했다.[26]

1.3.3.3 원전하나줄이기[ | ]

지역 에너지 정책으로서 에너지 위기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 4월 시작하였다.[27]

1.3.3.4 반값 등록금[ | ]

박원순은 대학생을 위한 주요 선거공약이었던 서울시립대학교의 2012년 고지서에 기재되는 명목등록금을 50% 삭감하는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12년 서울시예산에는 반값등록금 지원예산을 포함하여 830억원 8000만원이 반영되었으며,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연 평균 등록금은 238만 7500원으로 인하되었다. 박원순은 등록금 원리금 이자지원 등 조례 제정은 의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28]

1.3.3.5 다문화가족 지원사업 확대[ | ]

2013년 1월부터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협력하여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을 자녀 교육지원, 사회인식개선, 의료지원 등의 영역에서 확대하였다.[29][30]

1.3.4 제36대 서울특별시장[ | ]

2014년 6월 4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56.1%의 득표율로 제36대 서울시장에 재선되었다.

1.3.4.1 뉴타운 수습 및 도시재생[ |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2002년부터 추진된 뉴타운 사업의 대안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였다.

1.3.4.2 교육협력사업[ | ]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전국 최초로 2015년부터 30여 개의 사업을 시행했다.[31][32][33]

1.3.5 제37대 서울시장[ | ]

2018년 6월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문수안철수를 꺾고 3선에 성공하였다.

2018년 7월 22일부터 8월 18일까지 1달 동안 강북구 삼양동에 있는 옥탑방에서 살았다. 박원순은 "살아봐야 안다는 말이 있듯 직접 시민 삶 속으로 들어가 한달 동안 강북구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스스로 발굴해내겠다"고 하였다.[34] 문재인 대통령은 박원순 시장에게 선풍기를 선물하였다.[35]

문재인 정부의 9.1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집값 급등을 잡기 위해 서울 지역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그린벨트를 일정 부분 해제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나, 서울시는 13일 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에도 "그린벨트 해제 대상지를 정부와 협의한 바가 없다"며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36]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 대신 옛 성동구치소 등 '노는 땅'을 활용해 신규 주택 6만 호를 공급할 것을 국토교통부에 제시했다.[37]

1.4 성추행 피소와 사망[ | ]

2020년 7월 8일 박원순의 전직 여비서가 "박원순으로부터 2016년부터 최근까지 성추행 및 음란 메시지 발송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며 강제추행, 성폭력처벌법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 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38]


2020년 7월 9일 박원순은 오전 중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실종되었다. 박원순은 오전 10시 40분 서울특별시청 출입기자들에게 '서울시장 공개 일정 취소 안내'라는 제목의 문자를 보내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면담을 비롯한 모든 일정을 취소하였다. 오전 10시 44분에 종로구 가회동 소재 서울특별시장 공관에서 어두운 점퍼와 검은 바지, 회색 신발과 검은 배낭을 착용한 채 외출한 후 연락이 두절되었으며,[39] 오전 10시 48~49분 경,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CCTV로 포착되었다.[40] 오전 10시 53분 종로구 명륜3가 성균관대학교 후문 와룡공원 CCTV에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잡혔으며,[41] 와룡공원 성곽길을 내려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42] 후속 보도에 의하면,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으며 한 여성과 마주치자 급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포착되었다.[43] 낮 12시에서 오후 1시경, 박원순은 딸 박다인과 통화했고,[44] 오후 1시 39분, 고한석 前 비서실장과도 통화했음이 드러났다.[45][46] 오후 3시 49분, 성북구 성북동 핀란드 대사관 인근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이후 휴대전화의 신호가 끊겼다.[47]

오후 5시 17분, 박원순의 딸 박다인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있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경력 2개 중대와 형사, 드론, 경찰견, 기동대, 경찰특공대 등을 투입해서 박원순을 찾았으며, 소방청도 소방차 10여대등을 동원하여 박원순을 찾았다. 또한 소방청은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실종 추정지역에 구급차를 대기시켰다. 뿐만 아니라, 야간수색에서 박원순을 찾지 못한다면 10일 일출과 동시에 헬기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48].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신고 3시간 뒤, 대부분의 SNS 계정이 닫혔다. 경찰은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전직 비서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되었다고 밝혔다.[49]

박원순은 7월 10일 오전 (새벽) 12시 1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북악산 삼청각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020년 7월 9일 사망한 박원순의 장례는 서울특별시장으로 5일 간 엄수되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이와는 별개로 서울시청 입구 앞에 시민들이 분향할 수 있는 분향소가 설치되어 13일 밤까지 운영되었다. 서울대 빈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낙연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그와 정치 생활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조문했다.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 8층에서 박원순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00명의 최소 인원만 참석한 상태로 진행되었으며 서울시청 유튜브 계정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다. 영결식을 마친 후 박원순의 영정은 서울시청 건물을 한 바퀴 돈 뒤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 화장되었으며 고인의 유언에 따라 경남 창녕의 부모 선영에 안장되었다. 유가족들은 박원순의 유해를 양친 산소 옆에 묻은 뒤 일부는 유언에 따라 부모의 묘에 뿌렸다. 유골 안치 장면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2021년 1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1부(재판장 조성필)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정모에 대해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면서 박원순의 성추행을 "전제 사실"로서 적시하였다. 성폭행 피해자는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피해 여성이다. 재판부는 박원순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 "여러차례의 피해자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진술한 피해 내용인 박원순의 비서로 근무하는 동안 박원순이 야한 문자와 속옷 사진을 보냈고, "냄새를 맡고 싶다", "몸매 좋다", "사진 보내달라"는 등 문자를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또 박원순이 피해자가 다른 부서로 옮겼는데도 "남자에 대해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갈 수 있다", "섹스를 알려주겠다"고 문자를 보낸 것도 인정했다.[50]

  1.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 시민운동 16년 '당밖의 남자'… 安風타고 제도권 정치에 일격”. 동아일보. 2011년 10월 4일. 
  2. 이승환 (2011년 10월 27일). “박원순은 누구인가?”. 파이낸셜뉴스. 
  3. 유창주. 《박원순과 시민혁명》. 두리미디어. 74쪽. ISBN 9788977152564. 
  4. 4.0 4.1 4.2 수십억 기부하고 빚만 남긴 채 퇴장한 박원순…시민운동 '든든한 맏형' 남아 아주경제, 2020-07-12.
  5. [기자의 눈]이영미/'군위안부'와 소화 동아일보.
  6. 野 빅3, 친일 내용 담은 지라시 유포돼 TV조선, 2015.10.30.
  7. ‘낙선’ 낙인 찍히면 ‘巨物도 去物로’, 경향신문, 2004.02.01.
  8. [한겨레, '낙선운동' 총선연대 1천만원 배상판결][1]
  9. [한겨레, 이사철 전의원, 총선연대 상대 승소][2]
  10. 아름다운 재단 연혁 Archived 2014년 1월 11일 - 웨이백 머신 아름다운 재단
  11. 아름다운 가게 사업소개 Archived 2013년 5월 12일 - 웨이백 머신 아름다운가게
  12. 김종우 기자 (2009년 1월 1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부산일보. 2014년 1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4월 10일에 확인함. 
  13. “박원순 변호사 '결식 제로' 운동… 나흘 만에 500명 호응”. 노컷뉴스. 2010년 12월 18일. 
  14. '결식제로' 캠페인 일주일만에1억 모금”. 미디어오늘. 2010년 12월 23일. 
  15. 박원순,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확정 "10월 26일 새 시대의 첫 차 타고 떠날 것" 국민참여경선 투표율 59.59% '흥행 대박' 오마이뉴스 11.10.03
  16. '사퇴 철회' 손학규 "박원순은 민주당 후보" 오마이뉴스
  17. 박원순 "손학규 결단에 감사...전화위복 됐다" 오마이뉴스
  18. 박원순 선대위 명단 뉴시스
  19. 박원순, 7.2%p 차로 나경원 이겨 뷰스앤뉴스
  20. 박원순 시장, 초등 5·6학년 무상급식 결재로 업무 시작 한겨레
  21. [한겨레, 박원순, '전두환 경호' 시유지 회수 검토][3]
  22. [4] 한국경제, "市 입장 반영해 수정안 제출하면 처리" 개포 주민에 '소형 비율' 떠넘긴 서울시, 2012-03-08
  23. [5] 매일경제, 개포 아파트값 '박원순 쇼크' 현실화, 2012-03-06
  24. [6] 파이낸셜뉴스, "시장 바뀔 때마다 재건축 정책 달라져" 개포주공 주민 뿔났다, 2012-02-29
  25. [7] 경향신문,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서울 재건축 ‘시총 2조원’ 증발, 2012-02-28
  26. [8] 연합뉴스, 권도엽 장관 "박 시장 주택정책 친서민 아냐", 2011년 11월 25일
  27. 원전하나줄이기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strict' not found. 공식 사이트
  28. 박원순 시장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실시할 것"
  29. 서울시 정보소통광장 (2013년 1월 24일). “서울시-현대차 정몽구 재단, 다문화가족지원 힘모은다” (보도 자료). 
  30. 현대차 정몽구 재단 (2013년 1월 24일). “현대차 정몽구 재단-서울시, 다문화가족지원 힘모은다” (보도 자료). 
  31. 서울특별시교육청 > 참여협력담당관 > 사전정보공표 > 교육협력사업 현황
  32. 윤석제 (2016년 3월 8일). “서울시-교육청 '다문화 글로벌 학교' 지정 등 교육협력사업 27개로 확대”. 《노컷뉴스》. 
  33. 손효숙 (2016년 3월 8일). “다문화 학생 많은 서울 7개교 '글로벌 문화학교' 선정”. 《한국일보》. 
  34. “박원순, 22일 부터 삼양동 옥탑방서 '한 달 살이'. 
  35. “‘옥탑방’ 박원순에게 선풍기 보낸 문 대통령”. 2018년 7월 28일. 
  36. 윤고은 (2018년 9월 14일). “공급대책에 그린벨트 포함되나 관심집중…정부-서울시 '평행선'(종합)”. 《연합뉴스》. 
  37. “윤곽 드러낸 공급대책…서울 그린벨트 안 풀고 '6만 호' 공급”. 《mbn.mk.co.kr》. 2018년 9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9월 19일에 확인함. 
  38.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donga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39. 임화섭 김지헌 정성조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오늘 오전 공관서 배낭 메고 나선 후 연락두절”. 연합뉴스. 2020년 7월 9일에 확인함. 
  40. 고은상 기자, 김경락, 김재환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 연락두절…"이상한 말 남겨". MBC.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41. 김나라 기자 (2020년 7월 9일). “[속보] "박원순 시장, CCTV 오전 10시 53분 와룡공원에서만 확인…헬기 활용 예정". 마이데일리.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42. 이가혁 기자 (2020년 7월 9일). “박 시장, 오전 11시 와룡공원 인근서 포착…수색 상황은”. JTBC.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43. 지민구 기자, 김태언 기자 (2020년 7월 9일). “모자·마스크 쓰고 사라진 박원순 시장…경찰 700명 투입 야간 수색”. 동아일보.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44. 박소정 기자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 연락 두절...성북동 야산 일대 대대적 수색”. YTN.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45. 윤재민 기자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시장 실종…"이상한 말 하고 나갔는데 전화기 꺼져있어". TV조선. 2020년 7월 10일에 확인함. 
  46. 정성조 기자 (2020년 7월 15일). “박원순 前비서실장 "낮 1시39분 마지막 통화…고소 보고 몰라"(종합3보)”. 연합뉴스. 2020년 7월 15일에 확인함. 
  47. 고석현 기자 (2020년 7월 9일). “박원순 마지막 행적…경찰 "핀란드대사관 인근서 폰 신호끊겨". 중앙일보. 2020년 7월 9일에 확인함. 
  48. 김해원 기자 (2020년 7월 9일). “소방당국 "박원순, 못 찾으면 10일 오전 일출에 헬기 투입". 아주경제. 2020년 7월 9일에 확인함. 
  49. 임화섭 김지헌 정성조 (2020년 7월 9일). “[속보] 경찰, 박원순 시장 성추행 혐의로 고소돼”. 서울경제. 2020년 7월 9일에 확인함. 
  50. ““박원순 성추행은 사실”…법원 첫 판단 나왔다”. 동아일보. 2021년 1월 14일.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