훵크

Jmnote bo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5일 (목) 22:41 판 (Pinkcrimson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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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거북이[ | ]

아마 우리나라처럼 쉽게 아마츄어들이 삐댈 수 있는 나라도 얼마 없어보이는데, 그건 프로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아마츄어리즘이 극치를 이루는 매체가 급부상하는 부작용(?)을 낳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뭐 내 느낌은 그러하다. 이것은 내가 줄곧 떠들어대던 아카이브의 부재, 떨어지는 정보접근성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되는데 뭐 그건 그거고...나도 내 맘대로 "대략 악의적 거짓말만 안쓰면 용서된다"는 아마츄어의 권리를 이용해보련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동생이 구해준 제임스 브라운JamesBrown의 99년도 라이브(Live at the House of Blues, Las Vegas, Nevada, USA, 1999 6 18)를 우연찮게 본 것이다. 처음에는 노친네 얼마나 하나 보자 하고 틀었으며 잼없으면 퓩퓩 넘겨가면서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노인은 그 춘추(33년 생이니 67세)에도 여전히 훵쏠마스터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몇달전 보았던 일본 훵크 그룹 오사카 모노레일의 공연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곧이어 훵크Funk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훵크를 아주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R&B, 소울에서 멜로디보다는 리듬을 강하게 만든 음악이다. 장르로서의 훵크는 60년대에 제임스 브라운에 의해 발흥되었고 70년대까지 죠지 클린턴GeorgeClinton에 의해 만개했으며 프린스Prince같은 후계를 남겨두고 주류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스타일로서의 훵크는 여전히 유효하다. 훵키funky라는 단어는 다른 음악을 묘사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사실 훵크funk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은 뜻이 아니다. 의기소침함이나 음침한 패닉상태를 나타내는 고약한 뜻을 가지고 있다. 훵키하다는 말은 흑인 냄새처럼 더럽고 역겹다는 뜻이었는데 이후 재즈의 감각적이고 리드믹한 면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조금은 자조적인 뜻이었지만 지금은 훵키라는 단어에서 이런 나쁜 느낌을 연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만큼 훵키한 느낌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다.

그럼 훵크의 특징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역시 그것의 원형은 제임스 브라운에게서 찾는 것이 가장 정확해보인다.
제임스 브라운의 별명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적나라 한 것은 역시 '섹스 머쉰'Sex Machine이다. 한대수가 자신의 노래 Spare Parts에서 '제임스 브라운은 자기를 섹스 기계라고 불렀지, 좋구만, 그래 나는 죽어가는 기계라네'(원문은 영어)이라고 툴툴거렸을만큼 제임스 브라운은 정력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음악활동도 정력적으로 해왔다. 저 위에서 감각과 리듬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리듬, 반복, 감각, 섹스, 몸, 라큰롤 등의 말들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훵크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노골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의 대중음악, 락음악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살펴보자.
훵크는 리듬으로 이루어져있다. 보통 4/4박자이지만 조금씩 변형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 리듬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변주된다. 그 점에서 딴지가 '무한 딸딸이'라고 표현한 것은 조금 저속한 감이 있지만 적확하다. 훵크에는 기타도, 베이스도, 브라스도 있지만 그 모든 악기는 리듬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만 그 멜로디는 정확하게 스텝을 밟으면서 리듬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각 곡들마다 짧막한 브릿지 곡들을 연주하면서 곡과 곡을 잇고있다. 밴드가 의도적으로 끊지 않는 한 우리는 공연이 끝날때까지 뿜뿜거리는 사운드에 몸을 맡길 수 있다.

이 반복이라는 면은 당신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청자의 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훵크 연주자들은 춤을 춘다. 브라스 연주자들은 일렬로 나란히 서서 색서폰과 트럼펫을 불다가 자신이 쉴 때가 되면 다이아몬드 스텝으로 춤을 춘다. 물론 연주할 때도 스텝을 밟고있다. 이것은 아마도 두왑 스타일에서 따라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뭐 그렇다. 그런가하면 당신을 유혹하기 위해 여성코러스가 나온다. 여성 코러스단 역시 4/4박자로 일사분란하게 춤을 추고있다. 이들의 군무는 단순하지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며 조금씩 변화한다. 음악과 동일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듣고 있는 당신은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여가며 리듬을 '타고있다'.

여성코러스와 리드믹한 음악 그리고 춤과 함께 당신을 욕정의 세계로 몰아넣는 것은 야한 옷이다. 훵크 연주자들 치고 반짝이 패션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여성 코러스단이나 댄서들은 하나같이 섹시한 옷을 입고 나온다. 연주중인 남녀들은 종종 성적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행동들을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스타일을 이루어 훵크가 되고 당신에게 본능에 충실하라고 얘기한다. 조금 천박하면 어떤가, 노골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것이 천박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하고 훵크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임스 브라운을 얘기한 것이다.
오늘 본 제임스 브라운은 배불뚝 비만 노인의 모습을 하고 여전히 망가진 짐 모리슨JimMorrison같은 얼굴을 한 채 특유의 파란 나이트클럽 양아치 복장을 하고 무대에 서있다. 그는 무대에서 온갖 오도방정 스텝을 밟으며 망가지는 광대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토록 증오했던 흑인 광대의 모습 말이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훵크의 창시자'로서의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력은 좀 쇠했어도 관객들을 움직이게 하고있으며 기력은 쇠했지만 대신 노련한 엔터테이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오른쪽의 브라스단은 꾸준히 스텝을 잘 밟으며 불어주고 있다. 브라스가 없는 훵크는 앙꼬없는 찐빵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왼쪽의 코러스단은 예의 일사분란한 동작을 맞춰가며 코러스를 해주고 있다. 그녀들은 모두 풍만한 몸매들을 하고있는데 계속 몸을 흔들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다. 그리고 공연도중 한명씩 나와서 제임스 브라운과 듀앳을 하고 들어간다. 섹스 머쉰 다운 연출이다. 그리고 지루해질 때쯤 되면 세명의 쫙빠진 댄서가 나와서 눈을 크게 만든다. 그녀들은 코러스단의 작고 반복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크고 변화가 많은 춤을 춘다. 그리고 나올때마다 옷을 갈아입어서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공연 내내 제임스 브라운이 보여주는 오도방정 춤은 그냥 막춤이 아니다. 엉성하긴 해도 댄서들과 박자와 동작이 딱딱 맞는 의도적인 것이다. 한명의 보조 보컬과 함께 즉흥적인 촐싹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훵크의 창시자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훵크는 흑인음악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훵크에서는 전형적인 흑인음악다운 면을 많이 볼 수 있다.
기타와 브라스가 이런식으로 리듬악기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백인이라면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힙합에서 턴테이블까지 악기로 만들어버리는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흑인은 정말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흑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스타일 또한 전형적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나는 흑인이다, 나는 자랑스럽다'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낸 적도 있다. 공연 시작전에 모두 함께 제임스 브라운을 외치면서 마치 제사장을 부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흑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여러번 부르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으며 특히 훵크나 힙합에서 그렇다.
흑인음악은 단절이 없이 변해오고 종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재즈와 R&B, 소울에서 훵크가 나오고 훵크, 소울에서 힙합이 나오며 힙합과 재즈가 결합하고 훵크와 재즈가 결합하는 등 장르간의 교배는 너무나 활발해서 장르를 나누는 것보다 그냥 흑인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속편할 정도이다. 마일즈 데이비스나 허비 행콕과 같은 거장들이 훵크와 일렉트로닉스를 수용해 퓨젼 재즈를 만들었는데 이런 사례는 흑인음악 아니면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고작해야 피아졸라가 탱고를 클래식의 영역에 들고 들어간 것 정도가 생각나는데 그것은 흑인음악의 역동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깝다.

가장 흑인적이고 가장 육화된 음악인 훵크를 들으면 내 몸이 움직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가끔 본능에 충실해져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된다. -- 거북이 2004-1-28 4:10 am

2 # 촌평[ | ]

훵키란 무엇인가......보다
거북이는 언제 잠을 자는가...가 더 궁금하구먼 -- BrainSalad 2004-1-28 8:36 am

사연이 있습니다. -_- 집에와서 졸린김에 일찍 자다가 그만 한시에 깨서 잠이 안왔습니다. 그래서 깔짝거리다가 네시 반에야 잠들 수 있었지요. 그래서 지금 준 좀비상태가 되었습니다.
보통은 두시경에 잡니다...-.- -- 거북이 2004-1-28 10:0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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