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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金海 金氏)
Gimhae Kim clan family seal.svg
김해 김씨의 종문
관향 경상남도 김해시
시조 김수로(金首露)
중시조 김유신(金庾信)
집성촌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신안군·해남군·영광군·완도군·나주시[1]·무안군·영암군[2]·화순군
전라북도 장수군·남원시·고창군·부안군·김제시
경상북도 포항시·김천시·청도군[3]·상주시·경산시·구미시
경상남도 창원시·진주시·창녕군·김해시·사천시·남해군
강원도 인제군·정선군·철원군
충청남도 부여군·금산군·공주시·논산시·보령시·아산시
충청북도 청원군·옥천군·괴산군
광주광역시 광산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포특별시 용강군[4]
함경남도 북청군·홍원군
함경북도 나진시·경성군·명천군
주요 인물 김유, 김저, 김수연, 김극일, 김일손, 김완, 김경서, 공빈 김씨, 김예직, 김우항, 김홍도, 김만덕, 김대건, 김두봉, 김원봉, 김상옥, 김준연, 김현철, 김무정, 김철호, 김성곤, 김종오, 김대중, 김종필, 김지하, 김주열, 남진, 김부겸, 김무성
인구(2015년) 4,456,700명 (1위)
비고 김해김씨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1 유래

가락국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한다. 서기 42년(중국 후한 건무 18) 3월 가락국(駕洛國)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龜旨峰) 산정에 모여 나라를 통솔할 군장(君長)을 얻기 위해 하늘을 향해 의식(儀式)을 올리자 하늘에서 한줄기 붉은 빛이 내려와 함께 달려가 보니 금합(金盒)에 여섯 개의 알(卵)이 담겨 있었다. 이튿날 알 속에서 여섯 동자(童子)가 나왔는데 그중 맨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首露)라고 이름짓고 금합(金盒)에서 태어났다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로 하니 그가 바로 김해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나라이름을 대가락(大駕洛)으로 정하였고 곧 6가야 중의 하나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자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니, 동쪽은 황산강(黃山江), 서남쪽은 창해(滄海), 서북쪽은 지리산(智異山), 동북쪽은 가야산(伽倻山)이며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5]

10대 구형왕(仇衡王)이 532년(법흥왕 19) 신라에 항복하고 상등(上等)의 작위(爵位)와 가락(駕洛)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으며, 그의 그의 아들 세종(世宗)과 무득(武得), 무력(武力) 모두가 각간(角干)을 역임했다.

2 역사

김무력(金武力)은 신라 때 각간(角干) 벼슬을 지냈고 뛰어난 무장(武將)이었다.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부인(萬明夫人)과 혼인하여 각간에 올랐고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다.

그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태종무열왕의 딸과 결혼하였고 무열왕과 함께 백제 및 고구려를 정벌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공헌하여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죽은 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신라 김씨(新羅 金氏)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金氏)의 양대산맥(兩大山脈)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이런 김해김씨의 위세가 쇠퇴한 계기는 780년 혜공왕이 피살당해 무열왕계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내물왕계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부터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6][7]

23세손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에게 위탁해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8][9]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김희철(金希哲)의 딸이 선조(宣祖)의 후궁 공빈 김씨(恭嬪 金氏)가 되면서 김희철은 국구(國舅)로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고, 아들 광해군(光海君)이 왕으로 즉위한 후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었다.

3 본관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4 세계도

1 태조왕

太祖王

2 도왕 道王
3 성왕 成王
4 덕왕 德王
5 명왕 明王
6 신왕 神王
7 혜왕 惠王
8 장왕 莊王
9 숙왕 肅王
10 양왕 讓王 김탈지 金脫知
11 김세종 金世宗 김무력 金武力 김무득 金武得

금릉 김씨

12 김솔우 金率友 김서현 金舒玄
13 흥무대왕

興武大王

김유신 金庾信

김흠순 金欽純
14 김삼광 金三光 김원술 金元述

진주 김씨

김원정 金元貞 김장이 金長耳 김시득 金施得 김반굴 金盤屈
15 김윤중 金允中 김윤문 金允文 김영윤 金令胤
16 김장청 金長淸 김암 金巖
17 김웅원 金雄元
18 김경주 金擎柱
19 김성해 金成海 김성대 金成垈
20 김정철 金挺喆
21 김수윤 金琇胤 김옥윤 金玉胤
22 김천수 金天授 김천여 金天與
23 김상좌 金商佐
24 김호 金浩
25 김화제 金華齊
26 김진유 金振酉
27 김승의 金承意 김계의 金繼意 김진의 金進意
28 김천정 金天精
29 김항령 金恒齡
30 김수성 金洙聖
31 김상흠 金商欽 김상현 金商賢 김상인 金商寅
32 김성우 金成雨
33 김일서 金一曙
34 김광국 金匡國
35 김종백 金宗栢
36 김수 金繡
37 김이탁 金以琢
38 김서천 金瑞天
39 김양철 金陽喆
40 김시추 金是秋
41 김진국 金鎭國 김정국 金定國
42 김규상 金奎祥
43 김도협 金道浹
44 김탕우 金湯雨
45 김만서 金萬瑞
46 김사맹 金師孟
47 김상주 金相宙
48 김방직 金邦直 김용직 金龍直
49 김익섬 金益銛 김관 金管

판도판서공파

版圖判書公派

50 김주국 金柱國
51 김절경 金晢卿 김목경 金牧卿

금녕군파

金寧君派

김익경 金益卿

감무공파

監務公派

5 분파

김해김씨는 신라김씨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특히 김해김씨는 족세(族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그 중 직계종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가 복잡하다.

  • 종파
    • 경파(京派), 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金牧卿)
      • 참판공파(參判公派): 김영견(金永堅)
      • 횡성공파(橫城公派): 김영서(金永瑞)
      • 안경공파(安敬公派): 김영정(金永貞)
      • 석성공파(石城公派): 김영순(金永純)
      • 호참공파(戶參公派): 김진서(金震敍)
      • 참찬공파(參贊公派): 김달문(金達門)
      • 봉상공파(奉常公派): 김현문(金顯門)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김창문(金昌門)
      • 문간공파(文簡公派): 김저(金著)
      • 밀직공파(密直公派): 김수(金秀)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김란(金蘭)
    • 사군파(四君派), 감무공파(監務公派) - 김익경(金益卿)
      • ①생원공파(生員公派): 김련(金鍊)
      •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김추(金錘)
      • ②생원공파(生員公派): 김구(金銶)
      • 찬성공파(贊成公派): 김석(金錫)
      • 상서공파(尙書公派): 김감(金鑑)
      • 공간공파(恭簡公派): 김조(金銚)
    • 삼현파(三賢派),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관(金管)
      • 군수공파(郡守公派): 김건(金建)
      • 참판공파(參判公派): 김맹(金孟)
      • 한림공파(翰林公派): 김용(金勇)
      • 진사공파(進士公派): 김순(金順)
      • 녹사공파(錄士公派): 김인(金靭)
      • 진의공파(進義公派): 김현(金鉉)
  • 천여(天與)계
    •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덕휴(金德休)
  • 진의(進意)계
    • 운은공파(雲隱公派) - 김대진(金大震
    • 문경공파(文敬公派) - 김탁(金琢)
    • 부사공파(府使公派) - 김근(金瑾)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관(金鑧)
    • 충정공파(忠貞公派) - 김구(金玖)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련(金璉)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현(金現)
    • 휴은공파(休隱公派) - 김호(金琥)
    • 장사군파(長沙郡派) - 김선(金璇)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 김득하(金得河)
    • 도총관공파(都總管公派) - 김경신(金敬臣)
    • 판윤공파(判尹公派) - 김경보(金敬輔)
  • 상현(商賢)계
    • 판전공파(判典公派) - 김명택(金明澤)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불비(金不比)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 김만희(金萬希)
    • 참봉공파(参奉公派) - 김인서(金鱗瑞)
    • 충정공파(忠精公派) - 김이장(金以障)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종정(金宗貞)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천익(金天翼)
    •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 김을동(金乙棟)
    • 진사공파(眞士公派) - 김문(金汶)
  • 상인(商寅)계
    • 유수공파(留守公派) - 김운(金蕓)
  • 정국(定國)계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유공(金維公)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거공(金巨公)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김지서(金之瑞)
    • 부정공파(副正公派) - 김평(金平)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첨검(金添劍)

6 항렬자

  • 경파(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사군파(四君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삼현파(三賢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한림공파(翰林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문경공파(文敬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7 과거 급제자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8 인물

8.1 신라

8.2 고려

8.3 조선

8.4 근현대사

9 사당

10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11 인구

김녕 김씨,*김해 김씨합쳐서 2000년 1,295,080가구 4,124,934명

  • 2015년 4,456,700명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12 구분

가야 수로왕계 김해 김씨 선김(先金)과 신라 김렴계 김해 김씨는 김해 김씨 후김(後金) 또는 김녕 김씨(金寧 金氏)로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友鹿金氏)라고 한다.

13 분가

13.1 동조 이성 이본

13.2 동조 동성 이본

14 분적설

15 같이 보기

16 외부 링크

  1. 김해김씨 문경공파 집성촌
  2. 김해김씨 사군파 집성촌
  3.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
  4. 김해김씨 양의공파 집성촌
  5. 삼국유사 2권 가락국기
  6. 김유신의 적손인 김윤중(金允中)이 성덕왕 때 일반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김유신의 현손 김장청(金長淸) 역시, 집사부의 말단직 집사랑(執事郞)을 지냈을 뿐이다. 김융(金融)의 난과 관련 있어 보인다.
  7. 김웅원(金雄元)이 이사도의 난을 진압하고 이어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신무왕의 사돈이 된 것으로 보아 몰락하였던 김유신의 가계가 다시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
  8.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
  9. 연산조의 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
  10. 좌정승공파 파조. 김해 김씨의 제주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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