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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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2일 (수) 03:02 기준 최신판

ISBN:8984281905

  • 저자 : 연암 박지원(1737-1805)
  • 원제 : 燕巖集, 放璚閣外傳(1754-1767)
  • 역자 : 홍기문(1903-1992)

1 # 거북이[ | ]

열하일기웃음과역설의유쾌한시공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책을 본 다음 든 것은 단연 옛 작품에 대한 갈망이었다. 뭐 갈망이라 표현하니 상당히 요란한데, 사실은 짜증이다. 왜 열하일기는 돌아다니지 않고 저런 쓸따리없는 책들이 나와서 나름대로 베스트셀러가 되느냐 이말이다. 그러다가 북에서 만든 열하일기와 연암집에서 여러 소설을 채록한 나는껄껄선생이라오가 출간된 것을 알았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는 몇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1. 내 하는 이 말을 조용히 들으라 : 한시
  2. 양반이 한 푼도 못 되는구려 : 방경각외전과 한문소설




  1.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 지인들 책에 지어준 서문(序)
  2.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 : 수필 모음(記)
  3. 나는 껄껄선생이라오 : 시론
  4. 돼지치는 이도 내 벗이라 : 서간문
  5. 연보와 해설

책이 북에서 출간된 것은 91년이지만 역자 홍기문(1903-1992, 홍명희의 아들이라 한다)이 92년에 타계하였고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가 55년 판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이 책도 꽤나 오래전에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못알아들을 말도 꽤나 많지만 그리고 우리말 순화를 철저하게 진행한 북에서 내놓은 책이니만큼 유려한 우리말 사용은 훌륭하다. 이 책이 원래 조선고전문학선집 66권으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다른것은 몰라도 한국학에 관해서만큼은 우리가 북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지금 읽고있는 중이고, 워낙에 짧은 글들이 다닥다닥 몰려있는데 내용은 꽤나 함축적이라서 요즘 감각으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아직 조망은 안된다만 나는 일단 '방경각외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양반 스무살이 채 되기 전에 우울증으로 한참 고생했다고 한다. 몸이 골골하니까 집에서 공부하라는 압력을 덜 주었고 박지원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그 첫번째로 쓴 광문자전이 18세때의 글이고 민옹전이 21세(1757년) 때의 일이다. 그리고 허생에 관한 이야기를 주워들은 것이 20세 때이니 이후 허생전이 열하일기에 삽입된 것이 47세(1783년)때의 일이라고 해도 그의 초기 소설들은 얼추 20세 전후에 이루어진 셈이다. 물론 우상전과 민옹전 등은 1765-7년 사이에 쓰여진 것들이지만 이 소설들을 읽으면 그는 이미 20대 초반에 대략의 세계관이 완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좀 뜬금없는 비유이긴 하지만 프랭크 자파가 데뷔하기 전에 이미 자신이 할 음악형태의 대부분을 씨앗처럼 담아두었던 것이 생각난다. 천재는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장전에서 계산적인 사귐보다는 가식없는 사귐을 얘기하고, 예덕선생전에서 묵묵히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을 예찬하고, 민옹전에서 재치있는 노인의 세상 비틀기를 전한다. 양반전에서 양반의 허위의식을 얘기하고, 김신선전에서 세상을 피해 사는 김신선의 얘기를 전하며, 광문자전에서 진실된 행동으로 이름을 얻은 이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우상전에서 조선의 꽉 막힌 상황을 비꼰다. 스스로 태워버린 역학대도전과 봉산학자전에서 세상을 등쳐먹는 도학자를 경계하고 진실된 공부는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다.
이 어수선한 구성의 책에서 나는 일탈하고자 하는 한 인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책이 조선땅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교적 세계관과 신분제의 붕괴가 공존하던 시대에 세상으로부터 배척받고 또 세상을 스스로 배척할 젊은이가 쓴 책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들에서 그는 들어왔던 이상한 얘기들을 적는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뿜어놓는다. 아마도 역학대도전과 봉산학자전 역시 상당히 신랄한 글이었을거라 생각되지만 예덕선생전, 우상전 그리고 특히 양반전에서 뿜어놓은 세상에 대한 간결한 질타를 보면 그는 분명 근대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예덕선생전은 흔히 볼 수 있는 예찬 형식이었다고 치고 우상전이 일종의 인간시대같은 르뽀성 기사였다고 쳐도 양반전에서 우화처럼 그려낸 삽화만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위트가 없는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비록 한문을 모르지만 이런 내용들만 보더라도 박지원이 의고문체를 어지럽힌 사람이라는 것은 금방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위트는 '호질'을 적는 중년이 되면서 아주 절정에 이르는데, 사실 위트가 가장 충만한 작품은 허생전도 양반전도 아닌 호질이다.

하지만 역시 파워풀한 것은 허생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난 허생전을 다시 읽으면서 울었다. T_T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 이정도로는 정말 눈물이 나왔다.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지 못한 채 좁은 땅에서 아둥바둥대며 쌈박질하며 사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 박지원이 이백년도 더 전에 우려하던 모습에서 단 한치도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에 대장 이완에게 나라를 구할 계책을 알려주면서 제시한 것은 박지원의 혁명적인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소중화주의에 쩔어있던 당대의 성리학자들에게는 정말 엿먹으라고 지르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강렬하여 지금도 시원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것은 허생전의 본편 뿐이지만 사실 허생전은 액자소설이다. 허생의 이야기를 전하는 박지원이 동시에 다른 이야기 하나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허생과 같은 은자인 두명의 중에 대한 일화가 담겨있다. 이것으로 박지원은 창작자가 아니라 전달자일 뿐이라며 발뺌을 함과 동시에 조선에는 이런 은자들이 많은데도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다시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너구리같은 사람이다. :)

이 외에 몇가지 글들이 더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마저 읽고 적어보겠다. 박지원의 세계관과 작품관에 대해 언급한 글들이 종종 있어서 볼만하다.

이 책에서 정말로 깨는 부분은 바로 뒤에 달린 김하명의 해설이다. 그는 북의 학자인만큼 박지원의 소설에 대해 사회주의적으로, 그리고 변증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꽤 일리가 있는 비평을 하고있다. 예를들어 박지원의 초기 작품들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는 것에 비해 예덕선생전에서는 노동의 고귀함을 찬양하고 있어서 낫다고 했다. 그리고 민옹전에서 민 노인이 황해도의 해충보다 양반이 더욱 해충이라고 말한 부분, 우상전에 비친 애국주의적 태도 등은 매우 성숙한 모습이라고 하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토지재분배에 대해 언급한 글에 대한 칭찬을 하면서도 결국 박지원이 늦깎기로 벼슬을 산 것을 보고 폭력혁명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조금 오버하는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있지만 북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며, 김하명의 해설 자체는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지금 읽기도 재미있고 이후라도 참고할 만 하다.

이 판본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이 있다. 각각의 글들의 아래에 언제쯤 어떤 상황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것을 매번 적어주었으면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되었을텐데 그런 부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지막에 모두 모아둔 것이 전부다. 주석이 필요한 부분도 많은데 북에서 만든 각주정도 이외에 살려두질 않았다. 이는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런 작업을 했다면 이 책은 북의 성과를 이어받아 덧붙인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었을텐데 겨우 북의 책을 영인한 것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 거북이 2004-12-28 12:22 am

2 # 촌평[ | ]


교과서적인 허생전 설명 민옹전 : 틀린 것은 아니지만 뭐라고 해야하나. 공부는 이런게 아닌거 같다. 일단 열하일기를 던져주고 그걸 다 읽게 한 다음 생각을 얘기하게끔 해야하는 거 아닐까 싶다. -- 거북이 2004-12-28 12:3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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