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Y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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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amotoRyuichi HosonoHaruomi 일본어 디스코그래피

1 # 디스코그래피[ | ]

등록자 : 이소연[1] 등록일 : 2000/07/09 조회수 : 77 추천수 : 0 [추천하기]

네, 그러면 YMO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까르르,무슨아나운서같아요 =_=)

전자 음악의 개척자로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가 이 분야에 끼친 영향은 크래프트베르크(Kraftwerk)를 뒤쫓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모국인 일본에서 이 밴드가 가진 육중한 상업적 면모는 서양 음악의 전통을 자 신의 문화에 접목한 동양의 첫번째 예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기술적 붐을 일구어 낸 일본에서 그들이 전자악기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 이다.

세션 키보드 주자인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는 자신의 데뷔 앨범을 취입하던 중 드러머인 유키히로 다카하시(Yukihiro Takahashi)를 만난다. 다카하 시는 새디스틱 미카 밴드(Sadistic Mika Band)의 멤버였으며 이미 솔로 앨범을 발표했던 상태였다. 이 악단의 마지막 멤버는 베이스 연주자이자 프로듀서인 하 루오미 호소노(Haruomi Hosono)로 이후에 그는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초기 여섯장의 앨범을 직접 프로듀스한다. 이 3인조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 [Yellow Magic Orchestra](78)는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산만한 전자파와 섬광으로 구성된 2집 [Solid State Survivor](79)로 그들은 사운드와 패턴을 완전히 확립하게 된 다.

영국가수 크리스 모스델(Chris Mosdell)과 함께 녹음한 곡들은 구조와 목적의식 이 발전적이었고 때때로 깊은 감동을 주었다. 1981년에 발매한 두 개의 앨범 [BG M]과 [Technodelic]은 신스팝을 보다 깊이 파고든 것이었고, 개인 음악가들의 뒤 이은 솔로 작업을 예견한 새로운 스타일의 영역을 탐험한 것이었다.
에 이르러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는 엠비언트 하우스 뮤직의 개척자로서 정기적으로 소집되었으며, 리믹스 앨범 [Hig h Tech/No Crime](93)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93년 원래의 트리오가 다시 모여 [Technodon]을 녹음했다.

디스코그래피

정규앨범
Yellow Magic Orchestra   1978/11/25
Solid State Survivor  1979/09/25
Xoo Multiplies   1980/06/05
BGM 수입  1981/03/21
Technodelic   1981/11/21
Naughty Boys  1983/05/24
Service   1983/12/14
After Service   1984/02/22

싱글앨범
Faker Holic   1991/05/21
Kyoretsu Na Rhythm  1992/01/21
The Best of Yellow Magic Orchestra  1992/??/??
The Tong Poo Remixes  1992/??/??
Hi-Tech/No Crime: Yellow Magic Orchestra Reconstructed   1993/09/21

[이 글은 하이텔 앰비언트 소모임 음악 이야기 게시판(sg2350 11 1)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경우 정철 mailto:zepelin@hanmir.com 에게 요청하세요.]

2 # YMO REMIXES TECHNOPOLIS 2000-01[ | ]

from :) 류이치 사카모토가 이끌었던 일본 테크노의 선두주자, 전세계적으로 테크노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전설의 트리오 YMO (Yellow Magic Orchestra)의 걸작 리믹스 YMO REMIXES TECHNOPOLIS 2000-01!!! 드래곤 애쉬, 루나 시(스기조), 매드 캡슐 마케츠, 켄 이시이, 피치카토 파이브, 토와 테이, 디제이 하세베 등 일본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한 슈퍼 프로젝트 앨범.

Yellow Magic Orchestra (이하 YMO) 현존하는 일본 대중 음악 신의 가장 중요한 인물 류이치 사카모토, 호소노 하루미, 다카하시 유키히로로 이루어진 80년대 일본 최고의 테크노 밴드. 일본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이며,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뮤지션들(고등학교 시절 PAPERMODE라는 그룹을 결성했었다는 윤상을 비롯하여 많은 뮤지션들이 YMO의 음악을 자신의 음악 텍스트로 삼았었다)이 YMO를 듣고 음악을 시작했으며, 전자 음악 역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자라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위대한 밴드인지를 입증하는 증표이다.

여타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테크노 강국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YMO는 일본 테크노 음악의 기원으로까지 얘기되며 해외 활동과 외국 뮤지션과의 조우로 국가적 영웅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세계 각국의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YMO는 당시로는 전무한 일종의 슈퍼 밴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3인의 분명한 역할분담과 혁신성은 동시대의 여타 다른 밴드와의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YMO가 후대에 남긴 가장 큰 영향은 테크노는 전문 매니아만 듣는 음악이 아니라 가요와의 접목도 가능한 유용한 음악이라는 논리이며 이후 TMN 출신의 고무로 테츠야 등 일본의 대중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YMO의 존재가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일본 뮤지션들의 해외 시장 개척"이란 명제에 해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당시 디스코와 초기 뉴 웨이브와 같은 파풀러된 전자 사운드에 익숙해진 서구인들에게 다소 우습게 여겨지던 동양 출신 YMO의 실험적인 전자 사운드는 처음 만나보는 새로운 충격이었고, 그런 까닭에 전자 음악의 역사를 정리할 때면 아직도 YMO의 이름은 중요한 위치에 등장한다.

  • 멤버들에 대한 몇 가지 고찰

1. 호소노 하루오미 [2]

호소노 하루미는 일본 전자음악 씬에 있어 토미타와 더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자 YMO 내에서도 높은 음악적 캐리어를 자랑한 바 있다. 컨템포러리한 전자음악부터 애시드 사운드와 앰비언트 음악에까지 선구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그가 발표한 작업들은 영미의 어떠한 뮤지션보다도 앞선 것이었다(그렇기에 호소노 하루미는 브라이언 이노와 더불어 앰비언트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70년대 중반 재즈와 록을 크로스오버한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했던 틴 팬 앨리(Tin Pan Alley)의 멤버이자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음악 씬에 데뷔한 그는 일본 대중 음악 씬에 있어 항상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겉으로 화려하진 않아도 진보적인 사운드의 발전 그 이면엔 항상 그가 있어왔다. 처음 YMO가 결성됐을 당시 해리 호소노 앤 옐로우 매직 밴드(Harry Hosono And Yellow Magic Band)로 불렸었듯이 밴드 내의 음악적인 열쇠는 호소노 하루미의 차지였다. 하지만,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다카하시 유키히로에게 프론트맨 자리를 넘겨주고 밴드의 베이시스트의 위치를 고집하였다. 호소노 하루미는 YMO가 아닌 다른 외적인 활동에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전자 댄스 사운드를 다루는 논 스탠다드(Non Standard)와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모나드(Monad Music)라는 두 개의 레이블을 만들었고, YMO 해체 후에도 계속 실험적인 작품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며, 재즈 뮤지션들과의 협연도 가진 바 있다. 지난해에는 복고 사운드를 지향한 조인트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2. 다카하시 유키히로

YMO 멤버 중 다카하시 유키히로는 가장 음악과 거리가 멀 것으로 예견들을 한다. 그 이유인 즉은 그가 패션과 관련된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YMO로 활동하기 전부터 패션 디자이너로 해외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이며, YMO의 뉴 웨이브적인 외형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게다가 다카하시 유키히로의 솔로작들은 전자음악과 다소 거리가 먼 일반 대중 가요에 가깝기 때문에 음악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잘못 오인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유키히로는 YMO 결성 전 새디스틱 미카 밴드(Sadistic Mika Band; 이하 SMB)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전설적인 밴드에서 활동해온 훌륭한 드러머이다. 특히 SMB는 YMO보다도 5년이나 앞서 해외 시장에 데뷔했던 밴드이며, 앨범 프로듀서로 비틀즈와 작업한 경험이 있는 크리스 토마스(Chris Thomas)가 참여한 적도 있다. 여하튼 YMO에서의 유키히로의 공헌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세련된 패션과 화려한 무대를 가능케 했다는 점. 둘째, 다소 경직될 수 있는 전자음악에 있어 대중적인 요소를 불어넣었다는 점. 셋째, 외국 뮤지션들과의 친분을 토대로 해외 시장의 판로를 개척하였다는 점. YMO의 결성 역시 유키히로와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1977년 유키히로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호소노 하루미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YMO의 결성은 이루어진 것이다(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유키히로의 솔로 데뷔작 『Saravah』를 'Pre-YMO' 앨범이라 한다). 유키히로는 YMO 활동 중에도 자신만의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솔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패션 모델 활동과 아울러 패션 샵도 경영했다. YMO 해체 후의 그는 큰 주목을 받을만한 사건은 없었어도 꽤 분주한 일정을 보냈던 것 같다. 영화 배우 활동, 해외 뮤지션들과 교류, SMB 재결성, 솔로 앨범 발표 등이 바로 그 것. 90년대 중반에는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와 이라는 노래를 함께 해 큰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3. 사카모토 류이치

현존하는 일본 대중 음악 씬의 가장 중요한 인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캐리어의 시작은 남들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1952년 1월 17일 동경에서 태어난 그는 대중음악과 클래식 사이에서 방황하던 피아니스트 지망생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여러 음악을 오가며 세션 활동을 하고 있었다. 평소 전자음악에 대해 관심이 많던 류이치는 당연히 이쪽 방면의 대 선배인 호소노 하루미에 대한 존경이 있었고, 그런 계기로 YMO라는 팀을 함께 하기에 이른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나이와 캐리어가 부족했던 류이치였지만 음악적 센스는 남달랐다. 그런 까닭에 처음에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YMO 활동 말엽에 이르러서는 아이디어 메이커로 YMO가 비단 전자음악 씬에 머물지 않고 제 3세계 음악, 클래식, 재즈 등과 접목하게 되는 것을 주도한다. 재팬의 보컬리스트 데이빗 실비앙, 토킹 헤즈의 데이빗 번, 전자 음악 뮤지션 토마스 돌비, 재즈 뮤지션 빌 라셀 등 많은 뮤지션들과 협연을 갖은 바 있으며 작곡가로, 뮤지션으로, 배우로, 작가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마지막 황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등 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아카데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부인인 야노 아키코 역시 뮤지션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와 팻 메스니 등과 교류했으며, 일본 최고의 여성 싱어 송 라이터로 존경 받고 있다.

  • 20주년에 걸맞는 헌정 『YMO Remixes Technopolis 2000-01』

일본의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YMO와 그 소속원이던 세 명의 뮤지션 호소노 하루미, 다카하시 유키히로, 사카모토 류이치를 헌정하는 의미를 지닌 본작 『Technopolis』는 지난해부터 끈질기게 펼쳐진 YMO의 재평가 작업 그 하이라이트의 의미를 지니며 지난해 말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어 작년 11월 정식으로 발표됐다. 기본적으로는 YMO의 테크노적인 음악 뼈대를 지키면서 요즘 세상에 맞는 입맛으로 재해석된 리믹스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뮤지션 섭외에서부터 배포에 이르기까지 약 2년에 이르는 준비 기간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진보적인 아티스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일본 빅터(JVC Victor; 드래곤 애쉬, 도쿄 넘버 원 소울 셋, 사이토 카츠요시, 서던 올스타즈, 스맵, 매드 캡슐 마케츠, 우아, 렌티 등 다수 소속)의 제작으로 이루어졌으며, 테크노를 중심으로 하드코어, 소울, 라운지, 시부야계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 앨범 타이틀이자 1번 트랙에 등장하는 는 YMO의 1979년 앨범(세계 시장 발표는 1980년) 『Solid State Survivor』에 수록된 곡으로 피치카토 파이브의 브레인 코니시 야스하루가 리믹스를 담당했다. 마치 턴테이블의 백 스핀을 이용한 듯한 리버스 효과를 적절히 배치하여 역동적인 느낌과 함께 원곡의 멜로디 라인을 충실히 살려 댄서블한 빅 비트의 느낌을 극대화하였다. 피치카토 파이브는 복고적인 라운지 사운드와 전자 음악적인 요소를 믹스하여 시부야계 뮤지션의 핵으로 떠오른 팀으로 프로듀서 코니시 야스하루와 매력적인 여성 보컬리스트 노미야 마키로 구성된 팀으로 90년대 중반부터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다. 특히, 앨범 재킷에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의 옛 음악들을 샘플링 하여 재일 교포 뮤지션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벨기에의 테크노 전문 레이블 R&S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얼마 전 국내에도 내한한 바 있는 켄 이시이는 실험성이 강한 넘버인 를 리믹스 하였다. 평소 디트로이트 스타일의 경직되고 공격적인 테크노 사운드를 추구했던 이미지에 비교하자면 매우 부드러운 스타일의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켄 이시이는 2집 『Jelly Tones』의 수록곡 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뮤직 비디오가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일본 테크노계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발돋움하였다. 영국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등 유럽 쪽에서 특히 지명도가 높다. 은 역시 2집 『Solid State Survivor』 수록곡으로 디 라이트(Deee Lite) 출신의 재일 교포 뮤지션 토와 테이(김동화)가 리믹스 하였다. 원곡의 뉴 웨이브적인 요소를 줄이고 유럽적인 트랜스 느낌을 배가 시켰다. 토와 테이는 하우스적인 요소가 다분한 디 라이트 활동과 보다 실험적인 솔로 활동을 병행하면서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프로젝트 그룹들도 꾸준히 만들어왔는데,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한 게이샤 걸스(Geisha Girls)라는 엽기적인 힙합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YMO를 잇는 해외파 뮤지션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1981년 작품인 은 80년대 초반 서울의 어지러운 상황들과 한국과 관련된 심상을 담은 곡으로 스나하라 요시노리가 리믹스 하였다. 스나하라 요시노리는 얼마 전까지 삐에르 다키, 이시노 다큐 등과 함께 일본 최고의 테크노 그룹 덴키 그루브(Denki Groove)를 이끌었으나, 현재는 솔로로 활동 중. 석 장의 솔로 앨범은 모두 일본 테크노계를 대표하는 역작으로 꼽히고 있다. 에는 힙합과 하드코어가 뒤섞인 사운드를 추구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드래곤 애쉬가 참여하였다. 곡의 초반부에는 YMO의 앰비언트적인 요소와 바운스감 있는 드럼 루핑를 부각시켰으며, 곡의 사이사이에 기타와 베이스의 리얼 연주를 더 하여 상반된 하드코어 사운드를 펼치는 이색적인 넘버이다. 역시 YMO의 1979년 작품으로 디제이 하세베가 리믹스를 담당했다. 2년 전 소울 스타일이 담긴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클럽 할렘의 대표 디제이 하세베는 지난해 지브라, 슈가 소울 등과 함께 한 곡들이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일본 최고의 프로듀서로 떠오른 바 있다. 의 또 다른 리믹스는 피치카토 파이브 사단의 새로운 기수 환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이 담당했다. 다나카 다다시라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뮤지션의 원 맨 밴드인 환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은 프렌치 팝, 소울, 보사 노바, 라운지 등의 음악 디제잉에 탁월한 재주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평소 즐겨 듣던 음악들을 샘플링하여 만든 두 장의 음반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앨범의 후반부에는 국내에 비교적 알려진 그룹 혹은 그룹 출신 뮤지션의 리믹스가 담겨 있다. YMO의 데뷔 앨범 수록곡 을 리믹스한 매드 캡슐 마케츠와 1983년 작품 를 리믹스한 루나 씨의 기타리스트 스기조가 바로 그들. 매드 캡슐 마케츠(보컬 쿄노를 제외한 베이시스트 다케시 우에다와 드러머 모토가츠만 참여)는 비주얼 형 밴드로 데뷔하여 하드코어 스타일의 밴드로 음악을 변신하였으며, 최근에는 테크노 뮤지션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로 음악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 국내에도 많은 매니아를 두고 있으며, 지난해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에 내한한 바 있음. 비주얼 스타일의 그룹으로 알려진 루나 씨의 스기 조는 밴드 활동과는 달리 솔로 활동에서는 트립 합/테크노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년 전 발표됐던 솔로작 역시 디제이 크러쉬를 비롯한 매니아 취향의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참여). 영화 음악을 방불케 하는 의미심장한 멜로디의 원곡을 클래시컬한 편곡과 딜레이 사운드를 통해 독특한 방향으로 재해석하였다. 드럼 앤 베이스 스타일의 클럽 넘버로 리믹스한 모리 도시히코(램 잼 월드의 아사모토 히로후미와 공동 작업하기도 했었던 대표적인 클럽 사운드 디제이)의 이나 디지털 하드코어의 공격적인 스타일로 리믹스한 , YMO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를 라틴 하우스 스타일로 리믹스한 클럽 사운드 프로젝트 말라위 록스(Malawi Rocks) 등의 곡도 일본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테크노 씬의 단면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한 자료적 가치를 하고 있다.

3 # 촌평[ | ]

요즘 호소노 하루미를 종종 듣고있는데 이 인간은 뭐랄까 상당히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이 가능해보인다.

HosonoHaruomi = (Kraftwerk + BrianEno + KevinAyers) / (5~6) * (일본 필 + 일본어)
보컬과 일렉트로닉스를 함께 했다는 점에서는 에노와 비슷하고, 보컬시절이 남미리듬을 연상시킨다거나 음색면에서는 에이어즈와 똑같다.
함량에 있어서 거장급은 아니라고 느껴지지만서두~

일본 락계에 끼친 영향은 글쎄 교수보다 적진 않을거 같은데 아무래도 히트를 못했으니...-_- 나는 교수보다는 호소노쪽이 더 맘에 든다. -- 거북이 2004-3-25 11:4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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