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gelis - Hypothesis

1 개요[ | ]

Vangelis
Hypothesis (1971)

2 1971 Hypothesis Oxford OX 3162 ★★★[ | ]

70년대 초 Korg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신서사이저를 사 모으기 시작하던 VANGELIS는 aphrodite's child의 '666'앨범을 통해 시도했던 일종의 음악적 실험에 큰 성취감을 얻었고 이후 파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전자음악에 기반을 둔 다양한 실험을 추진해 왔는데, 이무렵 그와 친분을 맺게된 사람들 중에는 당시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를 중심으로 거물 뮤지션들의 프로듀서로 크게 알려진 Giorgio gomelsky가 있었다. 68년경 에이전트의 소개로 우연히 aphrodite's child의 공연 모습을 지켜보게 된 그는 VANGELIS의 음악 스타일에 큰 호감을 갖게 되었고 그가 프랑스에 체류할 동안 aphrodite's child의 대성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VANGELIS는 이때 gomelsky에게 '666'프로젝트에 가담할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선뜻 승낙하지 않는 대신 다른 밴드의 프로듀싱일을 핑계로 주저하였는데 후에 '666' 앨범의 크레딧에 이름이 기재되었지만 어느정도 까지 레코딩에 참여했느냐 하는 부분, 그리고 왜 '666'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나 하는 점은 지금까지도 함구하고 있어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대신 그는 '666'프로젝트에서 알게된 VANGELIS의 특유의 음악적 접근 방식, 즉 자유분방한 가운데 특정한 leader없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음악적 texture를 하나씩 이어 붙여 완전한 곡 하나를 완성해나가는 스타일을 파악하고는 당시 자신이 점찍어둔 다재다능한 세션맨들을 그에게 소개해 주기로 결심한다. Picasso, Georges mathieu, George braque등에게 헌정한 3부작 'Cantique des creatures'의 작업이 완료된 직후 VANGELIS는 런던의 Marquee 스튜디오에 칩거하며 드디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는데 71년 5월경부터 시작한 그의 새로운 레코딩을 위해 gomelsky는 프로젝트에 가담할 세션맨들을 VANGELIS에게 소개 하게 된다. 의욕에 가득 찼던 VANGELIS는 이무렵 인터뷰를 통해 전작인 'L'Apocalypse des animaux'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새로운 음악이 될 것임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세션맨들 중 가장 돋보인 사람은 역시 Michel Ripoche로 그는 바이얼린과 만돌린 등의 악기에 매우 능숙한 재원이었다. VANGELIS는 자신과 음악적 지향점이나 스타일을 잘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신임을 두텁게 다지기 시작했다. 당시 VANGELIS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고자 했던 것들은 일부 jazz 뮤지션들에게도 큰 관심을 모았던 jazz-rock과 당시 열병처럼 음악계에 번지던 avante garde의 효과적인 융합이었다..세션들에게도 이러한 시도에 대한 흥미는 VANGELIS와 마찬가지였고 아직 영어가 서툴긴 했지만 VANGELIS의 넘치는 에네르기에 매혹된 세션들의 자발적인 협력은 언어를 초월하는 놀라울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된다. 약 두달 정도의 기간동안 세션들과 작업한 데모 테입은 크게 두파트로 나뉘어 졌는데 하나가 후에 'The dragon'이라는 타이틀로 명명된 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Hypothesis'라는 타이틀로 명명된 것이었다.

먼저 레코딩 된 'Hypothesis'는 전형적인 free jazz스타일을 표방한 것으로 마치 'return to forever'의 음악을 연상시키듯 불협화음과 불규칙적인 리듬 패턴으로 이루어진 난해한 구성을 띄고 있다. Alpha-beta의 음악 스타일과 닮아있는 'The dragon'의 경우 다시 크게 3파트로 나뉘어 지는데 Michel ripoche의 바이올린이 반복적인 주테마를 이끌어 가는 가운데 Brian odger의 베이스와 Mick waller의 드럼, 그리고 청자를 점입가경으로 몰고가는 VANGELIS의 퍼커션 연주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첫 번째 테마와 다소 서정적인 인트로에 이어 중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나머지 테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뒤의 두 테마는 'Earth'나 'sex power'를 연상시키는 중동 음악적인 요소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세 번째 테마는 전형적인 당시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들의 음악스타일을 연상시키듯 록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 되어 있으며 VANGELIS의 정형화 되지 않은 임프로비제이션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명곡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The dragon'세션은 이질적인 'Hypothesis'에 비해 당시 그의 음악 스타일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는점도 특이하다.

데모테입이 만들어 지는 동안 BYG 레이블의 창설자인 Karakos는 스튜디오 밖에서 하루빨리 작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 VANGELIS를 설득하여 레코딩에 필요한 금전적인 서포팅을 약속한 대신 판권을 넘겨줄 것을 약속했으나 세션이 끝나고 맴버들이 파리로 돌아가고 난 뒤 몇가지 overdub 작업이 필요하다며 발매 지연을 요구하자 완성작이 나올 때 까지 음반화 하지 않겠다고 서명하였는데 오히려 이것이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의 회사는 얼마안가 파산선고를 받게 되었고 동업자였던 jean luc young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Charly records를 급히 설립하여 멤버들의 동의 없이 데모테입을 가지고 80년대 초 두장의 음반을 내놓게 된다. Charly에서 발표된 음반은 상업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으며 참다못한 VANGELIS와 나머지 참여 멤버들이 변호사를 선임하여 Charly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게되자 급기야 회수되는 소동까지 빚는다. 음반은 실질적으로 맴버들의 동의가 없이 발표된 말그대로 'Bootleg'이었다. 이 후 여러 레이블에서 LP로 발표 했지만 모두 뮤지션의 동의가 없이 발표된 것들이다. --사용자:albedo

3 거북이[ | ]

이후 반젤리스 사운드를 미리 드러냈다고 볼 수 있는 L'Apocalypse des Animaux이후 반젤리스가 선택한 것은 특이하게도 재즈락이었다. 그는 666세션시절부터 안면이 있었던 죠르지오 고멜스키Georgio Gomelsky의 도움으로 몇몇 뮤지션을 만나 재즈락을 연주했는데 그 산물이 이 앨범과 The Dragon이다. 고멜스키는 소프트 머쉰SoftMachine이나 공Gong의 음악적 성공을 도와주었던, 당대의 유명한 프로듀서였는데 역시 그는 뮤지션을 볼 줄 알았던게다.
이 앨범은 당시 풍미하던 캔터베리 사운드와 조금 비슷하다. 오르간 연주에 보컬 스캣이 조금 포함되어있으며 베이스라인이 강조되어있는 것이 딱 그꼴인데 그것은 고멜스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젤리스의 사운드는 대부분의 캔터베리 밴드들이 들려주었던 정형화된 자기복제와는 달랐는데 그것은 반젤리스 특유의 연주곡 진행방식이 여기서도 녹아들어갔기 때문이며, 일정한 스타일에 고착되길 싫어했던 그의 성격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앨범은 음악 감독이나 작곡가로서의 면모보다는 락 건반주자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그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의외로 반젤리스의 초기 데뷔시절의 음반화 과정은 험난했는데 Sex Power가 제대로 배급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처럼 이 음반도 당시에 발매되지 못하고 묻혀있다가 70년대 말이 되어 유명해지고 난 다음 챨리Charley 레코드에 의해 불법으로 나왔다가 소송을 겪고 다시 수거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부틀랙이 나왔다. -- 거북이 2003-4-10 11:18 pm

4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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