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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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슈-데의 <Voices From The Distance Steppe>[ | ]

리얼 월드 레이블 최고의 걸작: --허경, 2000, 뮤지컬박스 2호, from RealWorld

 

나 자신에게 리얼 월드 최고의 걸작 앨범 한 장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다음의 앨범을 꼽겠다. 그것은 슈데(Shu-de)의 94년 앨범 <Voices From The Distant Steppe>(RW41)이다. 슈-데는 러시아 영내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투바(Tuva) 자치구의 민속 전통 음악 집단이다. 투바 자치구는 현 러시아령 바이칼호 인근 이르쿠츠크 옆 몽골 접경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따라서 중국·카자흐스탄과도 가깝다. 복장이나 외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몽골인들과 비슷한 것 같다. 한 마디로 투바는 실로 수 세기 동안 외부와의 교섭이 거의 불가능했던 오지 중의 오지인 것 같다.
이 앨범에 담겨있는 투바라는 '먼 스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우리를 음악적·문화적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경악케 하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서구인들 자신에게 리얼 월드 레이블이 갖는 매력 중 하나는 '서구인들 자신과는 다른 문명의 (전통적) 현실태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문명의 또 다른 (=얼터너티브,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 투바 전통 무당(shaman)의 제식 음악을 슈-데가 편곡한 - 사실 무당의 제식 음악이 악보 형식의 정본으로 정립되어 있는 것이 아닐 터이므로 이 때의 '편곡'이란 실상 '전통의 충실한 재현'인 동시에 '창조적 재해석'일 것이다 - 이 앨범의 음악, 특히 '목 떨기'(tongue twister) 창법, 기독교 혹은 불교와도 다른 투바의 전통적 영성(靈性), 유모러스한(?) 편곡 등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국의 잡지 (Mojo)는 앨범 리뷰를 통해, "아마도 인간 창법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일 이 '목 떨기'는 성과 속 모두를 찬양하고 있는 놀라운 저음 창법이다. 정말 원초적인 트랜스 음악이다"라고 했는데, 앨범의 충격은 그 이상이다. '목으로 노래하기'(throat-sing)라는 이 창법은 이게 과연 인간이 내는 소리인가, 혹은 인간의 목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소리를 들려준다. 특히 '목 떨기'(tongue twister)로 번역되어 있는 'Durgen Chugaa' 같은 곡은 -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 초반부의 우리 약장수들 물건 파는 듯한 소리, 중반부의 강강수월래 같은 아줌마들 목소리, 그 아줌마들 목소리와 함께 부르는 남 저음 목청, 이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장난 같은 아줌마들의 '백 보컬', 그리고 이에 일관되게 깔리는 단순한 북소리 등 ... 이 투바 문명의 창시자는 영성과 음악성 그리고 유모어를 동시에 이해했던 탁월한 문화적 천재임에 틀림없다.
이 걸작 앨범의 1등 공신은 당연히 슈-데의 멤버들이겠지만, 공동 제작자 벤 핀들레이(Ben Findlay)와 크리스 로슨(Chris Lawson)의 인위적 조작을 가하지 않은 - 이는 분명 '의도된' 것이다 - '자연적' 프로듀싱, 앨범의 소리와 이미지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걸작 앨범 커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게이브리얼과 리얼 월드 레이블의 공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른바 '무위의 행위'(爲無爲), 혹은 '무기교의 기교'라고나 할 이러한 제작 방식은 리얼 월드와 같은 '월드 뮤직' 레이블의 제작 방침으로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원칙임에 틀림없다. 이는 문화 인류학에서 말하는 '필드 리서치'(field research)의 기본 원리가 보여주듯, '연구자' 혹은 '채록자'의 최우선적인 가장 기본적 덕성에 속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사물놀이나 판소리를 서양인들이 어떤 전통 마을에 와서 녹음해 간다고 할 때, 이미 그들이 그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기존 마을 문화 공동체에 기존의 순수한(?) 전통 문화와의 다른 이질적 문화들 사이의 교섭(간섭)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연구자(=이방인)'가 그들 연구 대상 집단과의 '정서적 합일'을 획득하는데 실패할 경우 그 채록된 '자료들'은 - 그들이 '개입'하기 이전의 - 원초적 자료가 가지고 있던 '고유성'(originality) 혹은 '아우라'(aura)를 상실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연구자'가 자신의 주관이나 의견 혹은 기호를 앞세울 경우 이러한 위험성은 결정적으로 배가된다. 우리의 예를 들어보면, 아무리 뛰어난 서양 레코딩 기술자들이 우리의 전통 가야금 산조를 녹음한다고 해도, 연주자들과의 정서적 유대 혹은 연주자들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거나 혹은 심지어 '연구자'가 그 음악에 대한 자신의 기호나 의견을 개진할 경우, 그러한 녹음이 우리가 옛 시골의 대갓집에서 들려오던 그 원래의 '가야금 산조'와는 그 격조나 모든 면에서 천지차이가 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따라서 음악의 경우, 필드 리서치를 행하는 연구자들의 제일 덕목은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 물론 이는 철학적으로는 불가능한 말이지만, 다만 그에 가까이 갈려고 최대한 노력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 그들이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최고의 편안한 물적·심적 환경을 연주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채록된 소리'가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실로 앨범은 만점을 받기에 충분한 원초적 참신성과 문화적 충격을 가능케 한 제작진의 음덕(陰德)이 있었음을 실증해 준다. 마지막으로 앨범을 듣지 못한 분을 위해 비유를 해본다면, 이 '목떨기 창법'이란 한 2-3년전 서울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던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의 81년작 <Dolmen Music>(ECM) 사운드의 오리지날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물론 <Dolmen Music> 앨범은 그녀의 창조성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의 명반이며, 서양권 아티스트의 작품으로는 선구적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이 <Voices From The Distant Steppe>에 비하면 그 격조·오리지널리티 및 아우라의 측면에서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류적 '모작'(模作)에 불과하다. 이것은 역시 뛰어난 아티스트인 몽크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한 음악과 그 문화적 배경 차이에서 오는 여실한 한계이다. 음악과 그것이 탄생한 문화의 관계란 실로 물고기와 물의 관계인 것이다 - 쉽게 말해 어떤 서양인 판소리를 한 10년 배워 를 냈을 때, 그 '소리'가 박동진·안숙선은 고사하고 오정해의 그것에나 미칠지 심히 의문스럽다는 말이다(이는 메탈·얼터 등 '서양' 음악을 하는 '한국' 아티스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난 호 에 실린 나의 글 <한국 록 음악의 철학적 조건> 참조).
한편 다양한 실험을 보여준 전위적 그룹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은 94년의 2집 <No Protection>(EMI) 중 'Karmacoma'에서 슈-데의 곡 'Sygyt, Khoomei, Kargyraa'를 샘플링하기도 했다. 한편 이 곡은 케빈 레이놀즈(Kevin Reynolds) 감독의 97년 영화 사운드트랙에도 수록되었다. 매시브 트랙은 - 알리 칸의 곡 'Mustt Mustt'의 실패를 거울 삼아(?) - 이 곡에서는 슈-데의 사운드를 자신들의 브리스톨 트립 합 사운드에 멋지게 접합시키고 있다.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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