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xy Music 리뷰


프록개론서용으로 쓴 전작리뷰 --거북이, 2003.중반(?)

1 # 바이오그래피[ | ]

락시뮤직RoxyMusic이라는 밴드는 상업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밴드이다. 핑크 플로이드PinkFloyd가 음악성만으로 상업성을 얻어낼 수 있었으며 제네시스Genesis는 후기에 완전히 팝밴드로 돌아버렸지만 그들과는 또 다르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업성을 추구했으며 리더 브라이언 페리BryanFerry는 밴드에서 노골적으로 하기 힘든 부분들을 솔로작에서 마음껏 발산했다. 반면에 그다지 큰 성공은 얻어내지 못했고 후에 기억된 것들은 높은 음악성과 묘하게 결합된 상업성의 조화로움이었다.
이들은 데이빗 보위DavidBowie가 추구하던 글램락GlamRock 스타일을 차용했으며 그것은 밴드명인 락시Roxy라는 단어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락시는 록산느Roxanne의 애칭이기도 하지만 '락'이라는 단어와 '섹시'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이들의 앨범 재킷, 사진과 이미지들, 머리모양이나 패션, 가사 등은 매우 전략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일관되게 양성적, 퇴폐적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이들의 재킷은 대부분 미녀들이 요염한 포즈로 누워있는 사진들이다.
왜 락시뮤직이 메이저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에 당당하게 들어가는가는 이들이 들려준 높은 수준의 연주력과 음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밴드를 거친 인물들이 모두 프로그레시브 락계에서 한가닥씩 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개중 유명한 인물들로는 필 만자네라PhilManzanera, 에디 잡슨EddieJobson 그리고 브라이언 에노BrianEno를 들 수 있겠다.

이들의 음악은 밴드의 해산과 관련하여 세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71년부터 73년 상반기까지로 브라이언 에노가 재적하던 기간이다. 브라이언 페리가 소울과 리듬앤블루스를 좋아한 전통주의자였다면 브라이언 에노는 락음악에 새로운 바람을 넣기위해 흥분하던 청년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Underground의 루 리드LouReed와 죤 케일JohnCale의 관계와 비슷했다. 두 브라이언이 축이 되어 두번째 음반까지 만들어냈지만 에노의 곡을 음반에 담길 거부한 페리때문에 결국 에노는 밴드를 나가게 된다. 락시뮤직(1972), 네 즐거움을 위해For Your Pleasure(1973)가 이 시기의 음반이다.
두번째 시기는 73년 하반기부터 76년 상반기까지로 이 때 밴드는 일차 해산을 겪는다. 이 시기의 음악은 에노가 빠졌기 때문에 혼란함이 덜하다. 페리 특유의 살롱무드 발라드와 연주 중심적인 곡들도 많다. 팝적인 감성의 페리가 주도하지만 테크니컬 지향적인 필 만자네라와 앤디 맥케이Andy Mackay가 나름대로 자신들의 입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밴드의 전성기라 할 수 있으며 이 시기의 음반은 '궁지에 몰린'Stranded부터 라이브 앨범인 '비바'Viva까지이다.
마지막 시기는 재결성한 79년 상반기부터 83년까지로 이 때의 음악은 더욱 페리 스타일의 감각적인 음악으로 변한다. 이 때 재결성에 참여하지 않은 에디 잡슨은 마지막 슈퍼그룹이라고 할만한 UK를 결성한다. 이 때의 음악은 점차 뉴웨이브에 가까와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시대적인 영향이라고 봐도 좋을것이다. '아발론'Avalon 이후 밴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었던 페리는 결국 밴드를 해산한다. 이 시기의 음반은 '선언'Manifesto부터 라이브 '높은 길'High Road EP까지 이다.

2001년에 이벤트성 재결성 라이브도 가졌던 락시뮤직은 음악만으로 봤을때 결코 위대한 밴드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들려준 감각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연주는 무척 훌륭했으며 이들의 스타일은 그 어떤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 못지않게 후대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이들은 그 탐미적인 태도때문에 저팬Japan이나 퀸Queen과 함께 외국에서 프로그레시브 락이라기보다는 아트 락이라고 알려져왔으며 스타일과 음악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더욱 평가받았다.

대중음악사전

Weiv:617 페리 Weiv:174 벨벳 골드마인 켁 이노의 방한

http://vidak.or.kr/email_news/ven038.htm#0381 http://www.technogate.co.kr/techno_uk_dj.htm

http://loser.lncsoft.co.kr/ radar.yonsei.ac.kr/~lizard


Roxy Music

[오찬익, mailto:ooci@hitel.net, from island]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음악가와 그의 음악에 대해 이해하고 또 이야기하고자 할 때, 그것이 놓인 역사적인 배경과 드러난 혹은 숨겨진 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울고 있다고 하자. 지나가다 그 사람을 보았지만, 이건 매우 낯선 상황에 불과하다. 그냥 호기심으로 왜 울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또 우리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감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음악 감상이란 행위는 매우 주관적인 취미이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건 매우 피상적일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단순히 음표들과 감각기관의 만남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표들(바꿔 말하면 일련의 주파수들...)이 감각기관을 자극하고 호르몬이 분비된다. 호르몬의 종류에 따라서 기분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쾌락의 도구로서 음악의 기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상호작용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이란 것도 알고 보면 보잘것없는 수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작품의 배경을 알고, 음악가의 생각을 이해하는 건 능동적인 정신활동이 개입되었을 경우에 가능하다. 이런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쾌락은 증폭될 수 있고, 수동자로서가 아닌 능동자로서의 정신의 변화, 즉 자아의 고양될 수 있지 않을까.
록시 뮤직의 음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잡변을 늘어놓는 까닭은 록시 뮤직이 흔히 진보적인 밴드로 거론되곤 하지만, 그들은 사변적인 철학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적인 밴드들이 내세우는 사변적인 철학이라는 건 대개 조잡한 수준이 경우가 많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 애정으로 재조합해서 이해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대부분 후자이지요) 별로 문제 삼을건 없겠지만 말이다.
보다 중요한건 음표들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음악이나 미술에서 진보적인 작품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건 소재나 방법론의 참신함에서 비롯된 새로운 이미지다.
다시말해 새롭게 조직된 이미지에 의해 감정이 변화하고 우리의 정신은 새로운 차원을 경험할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진보적인 '예술가'란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이미지는 쉽사리 얻어지는 건 결코 아니어서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생활방식에 의존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록시뮤직의 실질적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 페리나 초기에 그와 함께 일했던 브라이언 이노는 그런 점을 깊이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Bryan and Brian[1971-1973]

록시 뮤직은 이중성을 지닌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중성이란건 그 자신이 양면적이듯, 서로 상반된 면을 가지고있다. 만일, 우리의 자아가 둘이면 우리는 삶의 많은 선택상황에서 골머릴 앓을 것이고, 곧 자아의 이중성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 느낄것이다. 반면, 그런 긴장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동안 그런 모습이 다른 이들이 보기엔 참 매력적으로 보일지두 모른다.
록시의 첫 두 작품 (self title & For Your Pleasure)은 그런 상황에서 발표되었기에 때론 매우 불안정한 것 같고, 어찌 들으면 퍽 괜찬은 구석이 많은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이중성이 만들어낸 애매모호한 분위기는 아마도 모든 곡을 만든 브라이언 페리와 이노의 긴장된 관계 때문이란 생각이다. 밴드가 어떻게 결성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동시에 비약과 횡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필자의 약점!^^;;) 브라이언 페리는 적어도 출발할 때엔 매우 야심에 차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그가 염두에 두었던 건 '데이빗 보위'였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매우 뛰어난 작곡솜씨와 나름대로 자신의 음악센스에 자부심이 있었던 그로선 보위를 능가할 야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했던 건, 보위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양성적인(bisexuality) 음악을 하되 보위가 70년대 초의 록 페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데 비해 전혀 다른 타입의 더 세련된 음악을 원했던 것 같다.
내 생각으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건 '모더니티'이다. 다시말해서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거다. 'Roxy'라는 단어는 그의 전략을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함축한다.
'고전주의'가 변함없는 이상적인 무엇을 추구한다면, '모더니즘'은 현실을 바라보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인간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록시 뮤직, 아니 브라이언 페리의 음악엔 사변적인 철학이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의 노랫말은 사랑타령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심각한 분위기의 연주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노랫말, '돼지 목에 진주'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는 사랑이 보다 현실적이고 감각적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한 때(매우 옛날 이야기이긴 하지만...), 록시 뮤직의 앨범자켓의 그림을 보고 매우 실망한 적이 있었다. 킹크림슨과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예스의 자켓에 매우 감명 받았기 때문에, '이건 매우 철딱서니없는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로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컷지만... 시대적 허용한도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파격적이고 에로틱한 앨범의 커버 그림들(펼치면 훨씬 멋지다!~)은 모두 브라이언의 아이디어이고 어떻게 보면 매우 유치하고 천박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자주 쳐다보면 로저 딘의 자켓 못지않게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게되더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듯, 브라이언은 자신의 야심에 걸맞는 참신한 동료들을 찾아나섰을 거라 추측해본다. 마침, 역시 야심적인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와 손잡게 되고, 참신한 연주자들, 필 멘제네라와 앤드류 맥케이를 만난다. 아마도 첫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 브라이언은 매우 뿌듯했을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록시 뮤직의 음악은 전혀 새로운 타입이었다. 그것은 가사의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한 팝도, 그렇다고 프로그레시브 록의 유행에 편승한 장황한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긴장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노는 자신의 작곡을 포함시키려 했지만 페리의 반대로 번번히 좌절되었고, 상심한 끝에 밴드를 떠나고 만다. 페리가 이노에게 원했던 건 그의 사이드맨으로서 사운드 메이킹에 관련된 것들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사운드 스케잎이 페리와는 달리 무덤덤한 편이긴 했지만 페리는 이노의 세련된 스타일이 그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암튼, 두사람의 의견대립으로 멋진 작풍이 계속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어차피 그렇게 될 거 였으니깐. 두 사람의 이후의 활동을 볼 때 오히려 잘된 일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인생만사가 새옹지마가 아니던가-_-;; 이렇게 심각한 부조화 속에서도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게 참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첫 두 작품에서는 이노의 역할이 중요했고, 또 그의 영향이 많이 반영된 곡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Bogus Man'과 'For your pleasure'를 추천하고 싶다.

Brilliant Days[1973-1976]

이노의 탈퇴는 밴드가 페리의 독재체재로 전환했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잠깐 70년대의 메인스트림 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했지만 전반적인 경향만으로 다른 시기와 비교한다면 이 시기의 음악은 과시적이고 때론 매우 거친 근육질적 요소가 많았다. 그에 비해 페리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패셔너블한 감각의 외모와 누군가의 표현대로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노래한다.
즉, 그는 70년대 메인스트림 록의 반대편에 서 있던 셈이다. 그의 전략은 꽤 훌륭했지만, 데이빗 보위를 염두에 두었던 그의 기대 만큼 대중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사운드에 드리워진 이노의 관념적인 색체에 의해 그의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후에 발표된 세작품은 그의 의도가 최대로 반영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결과루 세번째 작품인 'Stranded'가 챠트 1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이뤄낸다. 대중이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때 발표된 세작품들 'Stranded','Country life','Siren'은 록시뮤직의 정점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이것은 두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즉,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시기라는 것과 브라이언 페리가 매우 능력있는 작곡가란 사실이다. 두번째 작품을 내고 이노가 탈퇴한 시기가 록시 뮤직의 첫 위기가 될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첫 두작품이 지닌 긴장(tension)은 많은 부분 이노의공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리는 매우 뛰어난 작곡가이고 대중은 그의 손을 높이 치켜주었다.
그의 감상적인 감각은 결코 유치한 수준으로 추락하지 않았다. 내가 브라이언 페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는 다소 독단적이긴 했지만, 나름의 균형을 지닌 음악가였다. 'Song for Europe','Out of Blue','Sentimental Fool'등등의 훌륭한 곡들은 확실히 감성적인 페리의 감각이 잘 표현되어있다.
너무 페리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 한 것 같아 필 맨제네라와 앤드류 맥케이, 그리고 폴 톰슨에게 미안한 것 같은데...^^;; 물론, 그들이 없다면 록시 뮤직의 음악은 전혀 다른 양상일테고 아마도 그 결과는 부정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멘제네라의 기타는 동시대의 많은 뮤지션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각종 악기에 문외한이 나로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냐만 암튼, 그의 연주는 조잡한 기교가 배재되어 단순하고 어떨땐 약간 거칠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멕케이와 톰슨의 연주는 깔끔하고 정교한 느낌을 준다. 어떻든 훌륭한 사이드맨들이 있었기에 브라이언 페리의 음악, 다시 말해 록시 뮤직의 음악이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Siren을 내면서 페리는 자신의 위치를 더욱 부각시키려했고 상대적으로 다른 멤버들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여기서 가장 불만을 느꼈던 사람은 아마도 멘제네라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70년대 밴드의 리더들은 대부분 기타리스트였다. 따라서 대우는 못해줄 망정 자신의 역할이 자꾸 축소되는데대해 불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밴드의 첫 해산은 멘제네라의 불만과는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첫 솔로앨범인 'Diamond Head'가 발표됨으로써 실질적으로 해산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저런 라이브를 모아 발표한 'Viva'가 76년에 발표되긴 하지만 말이다. 멘제네라의 솔로시절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이야기하면 무척 길어질 것 같아서...^^;; 암튼, 그의 솔로시절의 활동에서 페리가 배재된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그의 재능이 십분 발휘될 인스트루멘틀 쪽이 될 껀 뻔했지만.
페리도 그 사이에 넉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등 열심히 활동했지만,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다. 들어보지 않아서 뭐라 단정지을 수없지만, 올뮤직가이드를 참조하면 대부분 노골적인 팝 아이템들이었고 심지어는 밴드의 음악을 팝적으로 편곡한 것도 있다고한다. 물론, 이는 상업적인 성공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지만, 대중들이 페리에게 원했던 건 적어도 그런 게 아님은 분명해졌다. 중요한 걸 깨달은 페리는 다시 멤버들을 잘 구슬러서 밴드를 재결성한다.

This is Pop?[1979-1983]

과연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70년대는 많은 로커들은 대개 20대에 밴드를 시작해서 정력적으로 활동하다가 서른이 넘어설 즘이면 신체적으로 편안한 음악을 하려는게 정석처럼 되어있었다. 그건 당시의 음악이 라이브를 염두에 둔 급박한 리듬파트 중심의 텐션이 강한 연주를 지향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과격한(?) 스테이지 액션이 가미되면 신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70년대 밴드의 조로현상(?)은 대부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록시 뮤직은 메인스트림 록의 반대편에 선 밴드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인기 밴드였기에 라이브를 소홀히 할 수 없었고, 또 브라이언 페리는 관객들을 재미있게 하기위해 상당히 무리를 했던 것 같다. 그들의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인 'Viva'를 들어보면 라이브를 위해 스튜디오 작업보다는 훨씬 뻥 튀겨진 연주와 보컬을 들을 수 있다.(며칠전 처음으로 'Viva'를 들은 나는 'Out of Blue'의 도입부의 환상적인(?)바이브레이션이 완벽하게, 아니 더 멋지게 재현되는 걸 듣고 깜짝놀랐다!) 79년, 'Manifesto'를 낼 무렵 페리는 이미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었고, 아마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 하지만, 페리는 보위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으므로 70년대 후반의 대중음악이 새로운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4년만에 발표된 새 작품 'Manifesto'에서 밴드는 완전히 변했다. 연주는 훨씬 차분해 졌으며, 페리의 목소리는 매우 나긋나긋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세련된 감각일 것이다. 79년에 발표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세련된 작품을 꼽으라면 난 이 작품을 선택할 것 같다.
이 작품을 듣고 있자면 두가지 감정이 교차됨을 느낄 수 있는데, 하나는 70년대 록이 보여주었던 긴장과 힘이 이렇게 사그러드는구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리의 음악적 센스가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것이다. 'Manifesto'는 아마도 록시 뮤직이 발표한 작품중에서는 가장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70년대 후반을 잠시 들뜨게 했던 디스코 리듬의 열풍, 그리고 퓨젼적인 감각이 원래 록시 뮤직의 사운드를 살짝 누그러뜨려 놓았다.그 결과에 대해 많이들 왈가왈부 했을 것 같다.
King Crimson과 Rush의 경우를 잠깐 살펴보자. 비슷한 시기에 두 밴드의 작품 경향에두 많은 변화가 있었다. King Crimson이 전혀 다른 사운드로 다시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변화를 시대의 조류에 영합한 얄팍한 내용으로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바, 프립은 돈을 벌 목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소리의 다양한 배열에 따른 심리적인 영향에 강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즉, 그가 다시 King Crimson을 결성한 이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Discipline'이나 'Beat'가 70년대의 작품들과 거의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퇴보했다고 판단하는 건 성급한 판단에서 생긴 오류이거나 과거에 대한 지나친 향수때문일 것이다.
Rush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Movin' Pictures'를 기준으로 그들의 사운드는 확실히 단순해 졌다. 아마도 '2112'와 'Farewell to kings'에서 그들이 추구했던 거의 모든 소리들을 들려준 셈일 꺼다. 그들은 록이라는 영역에서 더이상 문제의식을 이끌어내 그 바깥으로 나가볼 욕심은 없었던 것 같고 메시지의 전달 매체로서의 록의 본래 기능(이라고 난 생각한다.)에 충실했다. 사실,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고, 심지어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비영어권에서 보자면 이후 그들의 작품들은 같은 연주의 반복에 불과한 매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품에 불과할 것이다.
자, 다시 록시 뮤직의 이야기로 돌아와서...-_-;; 그렇다면 록시 뮤직의 변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브라이언 페리는 소리에 대한 탐구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니며, 대중에게 전달하고싶은 메시지를 가진 사람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골빈 사람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실, 'Manifesto'는 그들이 이전까지 발표한 작품들에 비한다면 진보적인 '무엇'을 논할 건덕지도 없는 평범하고, 또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으려던 나머지 알맹이가 없는 허한 작품이라고 폄하할지는 모르겠으나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적어도 한가지 이유는 있고 그 때문에 내가 최근 가장 많이듣는 작품이란 점을 밝혀 두고자 한다. 브라이언 페리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경향에 민감하고 또 그것을 누구보다도 빨리 재조합하는 데 능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Manifesto'는 그런 페리의 시대적 감각이 훌륭히 발현되어 있고, 다가올 시대의 음악이 어떤 모습일지를 약간 어설프지만 미리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디스코의 열풍이 사그러들면서 'Flesh Blood'와 'Avalon'에서는 사라져버린 흥겨움마저도 간직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Stronger through the years', 'Ain't that so'의 은근히 그루브함,'Cry cry cry'의 흥겨움, 'Spin me round'의 애틋함이 이후에 사라져 버린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페리의 감각이 시류를 좇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만.
지금까지 브라이언 페리와 록시 뮤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끝으로 한가지 흥미있는 질문을 던져볼까 한다. 여러분은 록시 뮤직의 앨범들중에서 가장 브라이언 페리다운 작품을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정답은 없다.
난 'Avalon'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도회적인 세련미'의 극치를 들려주고 심지어는 '보여'준다. '도심 한 복판에 솟은 스카이스크래퍼... 그 꼭대기 층엔 내 거실이 있다. 커튼을 걷으니 석양 무렵이다. 베란다의 안락 의자에 앉아 저녁 놀을 바라본다. 아련히 떠오르는 회상들... 사랑의 추억들... 나의 아발론...' 'Avalon'은 초기 록시 뮤직으로부터 진화의 과정을 죽 거친 최종 결과물이지만, 이 작품 만큼은 록시 뮤직이라는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한 발 더 나아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른 록시 뮤직의 작품들은 개인적 취향에 많이 의존해 취사선택할 수 있겠지만 'Avalon'만큼은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여러분은 다시 못올 록과 팝의 환상적인 랑데뷰를 체험하게 될테니까...^^ 'Avalon'의 모든 것은 마지막임을 염두에 둔 것 처럼 짜맞추어져 있다. 마지막 곡을 은은히 사라져가는 인스트루멘틀로 처리한 것도 그렇고, '더 이상 보여줄 여자는 없어! 이게 마지막이야~'라는 듯 인상적인 앤토니 프라이스의 마지막 커버 아트는 차라리 처량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페리는 밴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제2, 제3의 아발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폴 톰슨이 빠졌지만, 필 멘제네라와 앤드류 맥케이에게 계속 자신의 백밴드로 수고해달라고 부탁하기도 더 이상은 낯 간지러웠을테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뭐 자세히 할 건 없을꺼 같다. 브라이언 페리는 여전히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몇장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고, 최근엔 복고적 취향의 솔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감상회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들어볼 기회가 있었을꺼다.
필 멘제네라도 솔로 활동과 세션 활동을 병행하며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고있다.
그리고 가끔 같이 활동하기도 하는 등 그들의 우정은 여전한 것 같다. 긴 이야기는 이렇게 모두모두 잘 살고 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하는게 정석이긴 한데, 잘 되는 드라마가 좀 더 끌길 바라는 우매한 시청자처럼 '몇 작품 더 내지'하는 바람은 인지상정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 그건 아니야. 그럼 안되지'란 생각도 들고...헤헤~ 여러분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2 # Viva![ | ]

  완성도 4.5 우선순위 2

이들의 중기 사운드 전체를 아우르는 라이브 앨범이다. 73,74,75년의 공연을 담고있으며 당연히 멤버도 동일하다. 8곡밖에 안되지만 다양한 앨범의 음악을 골고루 싣고있으며 싱글로만 발매되었던 Pyjamarama가 담겨있어 꽤 괜찮은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이 라이브를 발매했을 시점은 이미 이들이 해산된 상태였다.
특히 앨범 재킷에서 드러나는 락시의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B급문화적인 측면을 가지고있는데 음악적으로 B급문화가 잘 드러난 앨범은 바로 이 라이브 Viva!라고 생각된다. 이들의 이후 라이브인 The High Road(aka Heart Still Beating)의 매끄러운 연주와는 좀 다르다. 페리의 위악적인 보컬이 담긴 Bogus Man이나 코러스 걸인 사이렌'들'이 Both Ends Burning에서 질러대는 코러스는 '락키 호러 픽쳐 쇼'같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이 앨범의 재킷이나 속의 이미지로 사용된 캠코더 사진들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Chance Meeting이나 If There is Something과 같은 곡에서 사용된 유려한 바이올린 솔로나 비장한 분위기는 이후의 음반들에서 더욱 드러나게 되는 락시 특유의 품격이 느껴지게 하는데 이런 이중성이야 말로 락시의 본모습이라 할 수 있다.

  1. Out of the Blue (Ferry/Manzanera) - 4:44
  2. Pyjamarama (Ferry) - 3:36
  3. The Bogus Man (Ferry) - 7:05
  4. Chance Meeting (Ferry) - 2:58
  5. Both Ends Burning (Ferry) - 4:46
  6. If There Is Something (Ferry) - 10:37
  7. In Every Dream Home a Heartache (Ferry) - 8:23
  8. Do the Strand (Ferry) - 4:00
  • Eddie Jobson - Synthesizer, Strings, Violin, Keyboards
  • Bryan Ferry - Keyboards, Vocals, Voices, Artwork, Cover Art
  • Phil Manzanera - Guitar
  • John Gustafson - Bass
  • Andy Mackay - Oboe, Saxophone
  • Paul Thompson - Drums
  • Chris Thomas - Producer
  • Steve Nye - Engineer



3 # Heart Still Beating[ | ]

    완성도 4 우선순위 2

Avalon을 발매하고 돌았던 마지막 투어의 4곡을 모아 락시는 The High Road라는 이름의 EP와 비디오를 발매한다. 이것이 CD화되면서 Heart Still Beating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는데 기존의 4곡은 물론이고 10곡을 더 실어 발매했다.
이 공연은 이전 공연에 비해 확실히 규모도 큰데 여기서는 페리 외의 인물은 완전히 주변부에 머물러있다. 페리는 여전히 하얀 양복을 입고 캬바레 가수 분위기의 표정연기를 펼치고 있으며 뒤에서 흑인 코러스가 몸을 살랑거리면서 화음을 넣어주고있다. 정말 이렇게 기괴한 스타일을 이렇게 오래 끌고간 인물도 페리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Impossible Guitar같은 만자네라의 솔로곡이나 Like a Hurricane같은 닐 영Neil Young의 커버곡 등이 연주된 이색적인 앨범인데 전체적으로는 Manifesto이후의 후기 멜랑꼴리 곡들로 채워져있다. 역시 라이브를 들으면 만자네라와 락시 뮤직의 연주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는데 이 라이브에서는 Valentine이나 Viva에서만큼 출중한 연주를 들려주진 않아도 그 단단한 기본기를 느낄 수 있다.
후기 음악이 너무 매끄럽기만 해서 좀 별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 라이브를 들으면 그루브감과 함께 좀 덜 느끼한 연주를 즐길 수 있다.

  1. India (Ferry) - :53
  2. Can't Let Go (Ferry) - 5:20
  3. While My Heart Is Still Beating (Ferry/Mackay) - 3:52
  4. Out of the Blue (Ferry/Manzanera) - 4:26
  5. Dance Away (Ferry) - 3:45
  6. Impossible Guitar (Manzanera) - 3:41
  7. A Song for Europe (Ferry/Mackay) - 6:27
  8. Love Is the Drug (Ferry/Mackay) - 3:52
  9. Like a Hurricane (Young) - 7:43
  10. My Only Love (Ferry) - 7:16
  11. Both Ends Burning (Ferry) - 5:32
  12. Avalon (Ferry) - 4:23
  13. Editions of You (Ferry) - 4:10
  14. Jealous Guy (Lennon) - 6:32
  • Bryan Ferry - Keyboards, Vocals, Art Direction, Concept, Cover Art Concept, Cover Design
  • Phil Manzanera - Guitar
  • Andy Mackay - Saxophone
    • Neil Hubbard - Guitar
    • Jimmy Maelen, Andy Newmark - Drums
    • Alan Spenner - Bass
    • Guy Fletcher - Key.
    • Fonzi Thornton, Michelle Cobbs, Tawara Agee - Vocals, Vocals (bckgr)
    • Kermit Moore - Cello
  • Rhett Davies - Engineer
  • Rhett Davies - Producer

4 # Best[ | ]

Amazon-images-P-B00005CDUE.jpg 2001

팝과 프로그레시브 락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었던 왕년의 명 밴드 락시 뮤직RoxyMusic의 베스트 음반이 다시 출시되었다. 이미 내가 본 이들의 베스트만 해도 3-4종은 되는데 또 나온 것을 보면 팬들이 꽤 많긴 한가보다.
이들의 음악은 매우 연주중심적인 것들과 팝적인 것들로 나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밴드내의 주도권이 브라이언 페리BryanFerry 대 이노BrianEno와 만자네라PhilManzanera의 구도 위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페리가 이겼고 밴드의 음악은 점차 팝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이들의 팝은 무척 귀티나며 귀에 박힌다.
이 베스트에는 이들의 유일한 빌보드 1위곡이면서 앨범에는 들어있지 않은 싱글, 죤 레넌JohnLennon 원곡의 '질투하는 녀석'Jealous Guy이 담겨있는지라 골수 팬들에게도 손짓한다. 이들은 지금 일본과 캐나다에서 오리지날 LP재킷 그대로를 축소한 CD가 재발매될 정도로 실력있고 역사적 의미가 깊은 밴드이다. --거북이 스테레오뮤직 2001. 9,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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