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OnFilm공연기

1 # 김기범[ | ]

발신: "김기범" <walrus@e...> 날짜: 2003/10/15 (수) 0:27am 제목: koyaanisqatsi-균형잃은 삶

압도적인 영상미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강렬한 이미지를 쏟아냈기 때문에 마치 토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네요. 실제 로 집에 와서도 속이 많이 울렁거립니다. 사실, 영화보다는 옆에 앉은 인간의 음식 냄새가 원인이 아닌가 생각도 들 지만. koya는 다소 먼 좌석이었는데 음량이나 화면 사이즈가 작았음에도 압도적인 이미지들에 눌릴 수 밖에 없었습니 다. 11인조의 편성이었습니다. 건반이 다섯개 가량되고 현악기가 안보이는...지휘자가 건반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하 고 필립글라스는 우측에서 건반 연주만 했지요.
팜플렛에는 현악기의 미니멀한 선율이라고 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절대적으로 건반-그것도 일반적인 피아노 소리가 아닌 딱딱한 전자음에 의해 주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처음과 끝에 Koyaanisqatsi가 반복되며 주제를 나타내었습니다. 기본적인 이 영화의 주제는 환경과 테크놀로지의 충 돌인데,,,충돌이라기 보다는 테크놀로지가 환경을 어떤 식으로 변형하고 왜곡하여 균형을 깨뜨렸는가라고 보는게 적 합할 것 같습니다.

초반에 제시된 테크놀로지에 왜곡되지 않은 환경이라는게 뭐 깨끗하고 아름답고 묘사되기 보다는 황량한 이미지의 강 조로 관객의 입장에서 손길이 필요하다는 그런 느낌을 주는...그런데. 테크놀로지의 개입이 되면서 정형화된 직선이 나 곡선으로 다듬어집니다. 열을 맞춘 자동차들은 탱크로 바뀌어져있고 파괴적인 영상미로 넘어가며 인위적인 손길 의 위험성을 나타냅니다.

시작에 나왔던 구름의 이미지는 마천루 사이에서 반사되는 구름의 이미지로 바뀝니다. 인간은 환경 자체마저도 테크 놀로지를 통해 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TV에서 보는 것 처럼. 그런데 구름의 이미지는 처음의 자유로운 이미지가 아 닌 건물의 네모난 유리 조각에 의해 분할된 이미지 들입니다.

영화 중반부 이후로 도시의 이미지를 과잉사용합니다. 화려한 도시의 그늘 속에 묻혀진 슬램가,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건물을 재파괴하는 장면, 대량생산 사회의 모습 등. 무엇보다도 도시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모습을 장시간 촬영을 빠른 재생으로 속도감있게 나타내는데 그속에 다소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달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장시간 촬영을 속도감 있게 재생하여 나타낸 영상 자체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경이 존재하는 영역을 작가가 변형시 킨 것인데 이또한 환경에 대한 인위적인 변형이라는 걸 나타내는 방법론이 아닐까 싶네여.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거의 끝부분 전까지 사람이라는 건 단순한 객체로 그려집니다. 영화 의 중반까지는 시스템 속의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요. 도시속 사람들의 이동하는 모습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킬 때 그 것과 소시지 공장에서 소시지가 늘어선 모습을 비교하는 건 나름대로의 시니컬한 유머라는 생각이 들구요. 테크놀로 지라는게 환경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물화시키고 변형시키는데,,,그것으로 소외된 인간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건 영화 말미에서야 나옵니다. 사실, 환경이니 테크놀로지니 하는 것보다도 이 영화에서 더 큰 주제는 '삶'입니다.
인간의 삶.

인간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켰지만 그건 실제로 인간을 변형시키고 소외시키는 것이었죠. 인간과 환경이 란 건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에. 로켓이 폭발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균형을 상실한체 마구잡이로 달려가는 인류 의 미래를 묵시론적으로 상징한 대표이미지입니다.

전 이전에 DVD를 사서 봤지만,,,실제 공연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과는 많이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 년전의 영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실, 필립글라스보다 갓프리 레지오의 역량이 더 쉽게 다가옵니다.
미니멀이라는게 부분부분 들으면 오히려 지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복적인 것 같지만 지속적으로 변형하기 때문 에. 그런데 전체 다를 듣고 나면 남는 느낌은 대충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했다는 느낌입니다. 조금 막나가는 생각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영상을 표현하는데 미니멀이라는 방법론은 너무 제한적이지 않는가 생각도 듭니다. 저 느 낌으로는 속도나 음량에 의존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더더욱이 Koya에서 보여준 미니멀은 지극히 서구적 양식미에 서 벗어나지 않은 쪽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정말 음악이 영상과 meet하는지도 의문시될 때가 잇구요. 다른 부분에 이 테마를 넣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정형화되고 다소 강박관념이 느껴지는 뭐 그런 주제를 반복하 는 것이 Koya의 테마에는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서구적 양식미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미니멀의 탈출구를 Powaqqatsi에서 제시한게 아닐까 생각도 들구 요. 나눠준 자료를 보면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Powa를 다소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밑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영화에 대한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한 뭐 그런 것들이 있더군요. 갓프리 레지오는 이미지 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자유라는 걸 강조하더군요. 관객의 다양한 생각이 투영될 수 있는.
하지만, 1시간 반동안 갓프리 레지오가 만든 영상은 부분부분이 지극히 계산적이고 각 영상에 주제의식을 염두해둔 편집증적 작품이라...상당한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집요한 미니멀과 더불어 너무나 다양한 생각의 파편들이 오고 가 기에. 이런 느낌 자체가 어찌보면 테크놀로지라는 것의 강압성같은걸 나타내는 도구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구요.

암튼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작품이 끝난 뒤 한참이 되었는데도 머리속에 무언가 정신없는 낼 보게 될 Powa는 아무래도 접근하기 훨씬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속도 조절등을 통한 변형이 다소 적고 음 악적으로도 남반구의 다양한 비트와 타악기가 활용되니까요. 계속 횡설수설이군요. 프로그램을 빌려줘서리..좀 더 정리해서 써야되는데...걍 생각나는데로 막씁니다. 하루가 지나 면 지금의 이미지들이 바뀔 것 같아서리. 역시 영화의 힘이라는게 사람을 이렇게 횡설수설하도록 정신사납게 만드는 걸 보면.

아래 주소는 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들 같은걸 모아놓은 뭐 그런 사이튼 것 같습니다. http://www.koyaanisqatsi.org 그럼 내일을 기대하며.


발신: "김기범" <walrus@e...> 날짜: 2003/10/16 (목) 0:00am 제목: 뽀와 같이 (Powaqqatsi)

변형속의 삶은 그들이 제3세계라고 부르는 남반구 중심의 사람에 관한 작품이다. Koya가 회색빛이라면 Powa는 황토색 의 이미지가 강하다. Koya가 장시간 촬영을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현대사회의 속도감을 표시했다면 Powa는 그 지역 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의 단편들을 짧지만 느린 호흡으로 재생하며 보여주고 있다. Koya에서 사람의 표정 이 끝부분에 와서야 나타났다면 Powa는 영화 처음부터 나온다. 이 두 영화를 동시에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식의 접 근이 낳은 것 같다.

전반부는 전통의 방식대로 사는 모습을 상당히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Koya의 자극적 영상과는 달리 색감 과 사람들의 표정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레지오는 각 지역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경이적으로 묘사하며 나름대 로 문화의 고유성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Koya에서는 음악이 영화에 타이트하게 밀착되는 맛이 조금 덜했 는데 Powa는 그와 다르다. 이는 10개국에 대한 민속음악에 바탕을 둔 음악을 차용했기 때문에 영상에 그대로 묻어나 기 때문일 것 같다. 강조된 타악기의 리듬감과 보컬의 비중을 강조한 것은 Koya에서 느낄 수 있었던 미니멀의 경직성 을 탈피할 수 있는 괜찮은 방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트가 강조됨과 동시에 Koya에 비해 훨씬 밟고 서정적이기도 하 다. 그런 이유로 음악 자체만 듣기도 훨씬 편한 것 같다.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서구 소비사회의 이미지가 급격히 오버랩되며 기술과 대도시라는 이미지로 넘어간 다. 하지만 완전히 전이되지는 않으며 초반의 이미지와 여러모로 겹친다. 너무나 직설적으로 남북 문제를 언급하기 싫었기 때문일까? 세계화와 기술의 부속품이 되가는 점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 다지 노골적이지 않다. Koya의 선명한 방향성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뭔가 더 남아있을 것 같은데 Powa...의 붉은 글씨가 떠올랐기 때문 에.

같이간 인간은 무대 바로 앞자리에서 졸면서 김경호 헤드뱅잉을 했는디. 나오면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못벗어났다고 강 하게 비난했다. 난 단지 주제의식이 빈약하다 정도였는데...프로그램을 보니 왜 그 정도 밖에 안되었는지를 알 수 있 을 것 같았다. 갓프리 레지오 자체가 세계화 및 남북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미국적인 관점에서 전혀 못벗어났 기 때문이다. 사실, NAQOYAQATS-전쟁속의 삶이 현대사회와 인터넷 등을 얘기한다고 해서 상당히 흥미를 가졌으나... 이 정도 세계관이라면 주제의식에서는 실망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다. Michael Riesman: 지휘/키보드 Lisa Bielawa: 키보드/소프라노 Frank Cassara: 퍼쿠션 Dan Dryden: 라이브 사운드 믹스 Jon Gibson: 목관 Alexandra Montano: 키보드, 메조소프라노 Kurt Munkacsi: 사운드 디자인 Richard Peck: 목관 Mick Rossi: 피아노, 퍼쿠션 Eleanor Sandresky: 키보드, 보컬 Andrew Sterman: 목관 Peter Stewart: 키보드, 바리톤

커다란 징같은게 있어서 결정부에 센터를 꽝꽝 때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측면쪽을 부드럽게 터치하는 그런 식이었 다. 라이브 사운드 믹스와 사운드 디자인의 역할 분담이 어떤 식으로 되었는지는 적잖게 궁금한 부분이다. 사실 전 체 공연에서 의존하는 바가 상당했기 때문에.

1.1 아래는 프로그램의 해설임.[ | ]

<변형 속의 삶>은 ‘삶-3부작’ 중 두번째 작품으로 제 3세계 사람들이 간직한 고유함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사회가 기 술 중심의 사회로 변하는 부정적인 면을 그리고 있다. 기술과 대도시라는 덫이 소규모의 전통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 쳤는지 보여주는영상은 인도,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사람들이 간직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통해 잃어가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독특한 그들의 문화가 세계화라 는 굴레속에 톱니를 맞추며 기술에 잠식되는 안타까움을 관찰하고 있다. 필립 글라스의 음악은 미니멀리즘과 월드뮤 직, 동양음악이 다채롭게 조화되어 이국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변형 속의 삶>은 우리가 기술적인 진 보와 소비적인 삶으로 인해 점점 잃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제작준비는 1985년 9월에 시작되었고 5개월 동안 촬영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탐험이 이어졌다. 갓프리 레지오는 브라 질, 이집트, 케냐, 페루, 인도, 홍콩, 이스라엘, 프랑스, 네팔과 베를린등 5대륙 10개국을 여행하면서 <변형속의 삶> 의 주제를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대도시와 시골을 카메라에 담았다.필립 글라스는 페루와 브라질 그리고 서아프리카 를 탐험하며 제 3세계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활동은 그가 이전에 선보였던 토속 악기의 사용, 히스페닉 어린 이 합창단과의 작업 그리고 아프리카와 라틴, 인디언과 동남아 음악의 통합을 시도한 그의 탐구적 자세의 연장선상 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레지오는 지구 북반구의 기술 지향적 사회가 남반구의 전통적 사회에 미친 충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상은 내가 몰랐던 많은 새로운 세계의 토착적인 음악을 탐구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나의 고유한 음악과 월드 뮤직의 전통이 처음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 필립 글라스

“<변형 속의 삶>은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인상이며 고찰이다. 이것이 작품의 주제이며 관객들은 옳고 그름 을 떠나 주관적인 결론을 내릴 자유가 있다. 작품은 전세계적인 공동체로서 우리의 삶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 갓 프리 레지오

2 # 거북이[ | ]

어떻게 할까하고 방치해두고 있다가 공연날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친구놈이 표가 펑크난다고 같이 가잔다. 구제나 해주지 하고 그 표를 매입해주었다. 원래는 코야니스캇치 하나만 볼까 말까 하고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틀치를 모두 보게되었다. 메틀리카 공연도 하루밖에 안봤는데 구라스의 공연을 이틀치 보다니 거참나.
어쨌거나 현대 예술은 구라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필립 구라스가 과연 얼마나 구라를 칠런지 들어보기로 했다.

 

입사기념 회식이라고 하던데 그걸 째고 나는 코야니스캇치 공연을 보러갔다. LG아트센터는 꽤 엄해서 늦으면 안들여보내준다. 간신히 세이프한 나는 앉아서 기다렸다. 이 음반은 집에 있었는데 벌써 오래전에 팔아먹었다. 하여간 구라스의 음악은 심한 자뻑성 자기표절이 너무 많아서 좋아해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들을만한 구석이 있었던 판으로 기억되었고 영상과 결합했을때는 어떤 결과를 들려줄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게다가 언젠가 모 프로그 잡지에서 본 오버 가득한 리뷰도 기억났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영상은 꽤 괜찮았다. 원래 신학자였다는 갓프리 레지오는 대자연 -> 인간에 의한 자연 황폐 -> 문명에 압도당하는 인간 -> 기계문명의 붕괴라는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아무 멘트없이 관객에게 시각적 충격을 전했다. 이 영상에서 갓프리 레지오는 기술문명을 속도와 규모로 묘사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건축물과 도시, 그리고 자동차와 로켓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돌려가며 관객들에게 과연 이것이 옳은가 하고 묻는 것이다. 반면에 자연은 웅장하지만 느긋하게 묘사해서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영화 제목이 '균형잃은 삶'이라고 하던데 그 주제의식에 잘 어울리는 영상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이 영상은 다큐의 고전군에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가지 면에서 이 영상은 큐브릭의 2001스페이스오디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가지는 시간 순서대로 원시->문명->붕괴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가 동일하다는 것이며 다른 한가지는 느린 템포로 낭만적인 묘사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구름이 마치 파도처럼 움직일 때 나는 큐브릭이 만들어내었던 우주선들의 발레를 떠올렸다.

음악은? 음악은 뭐 꽝이었다. 과연 이 음악이 영상과 절묘하게 일치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들어보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것이다. 나는 영상과 상관없이 달려가는 구라스 앙상블의 연주를 수차례 확인했다. 영상과 나름대로 어울리기는 한다. 그건 구라스가 장엄한 풍의 미니멀 심포니를 연주했고 화면에서는 한편의 서사시가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순간에 베토벤이든 말러든 뭐가 나왔어도 어울렸을거라는 생각이다. 화장실에서 들은 어떤 이의 위트있는 후렴이 인상적이었다. "코야아니개색기"
도대체 계속 건반과 전자음만 반복되던데 열명이나 되는 저 사람들을 왜 끌고다니는지 이해가 안되더라. 물론 그중 일부는 다음날 다른 악기들을 연주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구라스에 대해 20세기 최대의 작곡가 운운하는 것은 다른 작곡가들에게 실례가 아닌가 싶다. 비틀즈핑크 플로이드라면 몰라도. :)

 

둘째날은 회사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아유 왜 업무시간이 끝났는데 그러는건지 원. 어쩔수 없이 한시간만 듣고 다시 도망나왔다. 이번에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이 음악은 월드비트가 뒤섞여있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조금 했다. 보아하니 구라스는 월드뮤직적인 배경도 가지고 있는듯 하니 꽤 잘 소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생각보다 괜찮다는 느낌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오 이런, 역시 똑같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타악이나 성악부가 어제보다는 많이 나온 덕에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 영상과의 결합도도 '코야아니스캇치'보다는 높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글쎄...나는 미니멀 음악이 현대 음악에 기여한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미니멀리즘은 테크노와 락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으며, 음악은 반복이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자기 표절을 합리화시켜주는 것은 아닐게다. 난 그 유치했던 "Low" 심포니와 "Heroes" 심포니를 아직 기억한다. 도대체 왜 에노형님이 저런 작업에 끼었는지 알수가 없다. 저 작업은 그저 하나의 이벤트성 포퓰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제는 영상이다. '변형속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서구문명이 소위 제3세계를 어떻게 침식해들어갔는가를 묘사했다는데 문제는 그 시각이다. 이건 문명이 문맹을 바라보는 시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갓프리 레지오의 시선은 서커스 동물 구경 보듯 아시아의, 남미의 사람들을 본다. 여기서 제3세계 사람들은 미개하다못해 추악하기까지 하다. 특히 허리굽은 인도사람(?)의 재주넘기 부분을 묘사할때 그 카메라를 들이댄 서구에 대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인터뷰를 보니 이 인간 이런 말을 했더라. "미국은 그 기술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알 카에다는 그것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녀석이니 고작 나온다는게 이모양이지. 정말 '코야니스캇치'를 찍은 동일한 감독이 찍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 공연을 끌어다놓은 주최측은 도대체 한번이라도 보기나 한 것인지 원. 눈버렸다.
코야니스캇치에서 속도의 조절로 불균형을 묘사했다면 포와캇치에서는 분명한 영상과 모호한 영상을 합성시켜서 대비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서구가 세계를 침식해들어가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듯 한데 지겹긴 마찬가지다. 가끔 형식적인 실험으로 내용의 빈약함을 메우려는 우매한 작가들이 있는데 그거 절대 불가능하다. 형식적인 것은 내용을 보완할 때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제작자들에게도 있는거 같다. 코야니스캇치는 코폴라가, 포와캇치는 코폴라와 루카스가, 그리고 카치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나코야캇치는 소더버그가 제작을 맡았다. 이것은 이 양반들이 모두 갓프리 레지오에게 열광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세계관 역시 레지오의 폭을 크게 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런지. 뭐 나코이캇치는 보지도 못했지만 그다지 보고싶지 않다.

항상 비극은 필요할땐모르고알면필요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 인간이 구라꾼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려면 나는 이 인간의 공연을 봐야만 했다. 그런데 이것을 보는 순간 나는 그 구라꾼에게 당한 것이다. 내가 질줄 알고있는 패지만 남의 패를 보고싶으면 끝까지 질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귀로 확인했고 에이 썩을놈 했다. 코야니스캇치의 영상만은 괜찮았는데 그것도 포와캇치의 영상으로 인해 느낌을 망쳐버렸다. 하지만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 계기도 되었으니 불행중 다행인지 아니면 나쁜 것에서 배우는 것인지. -- 거북이 2003-10-16 1:02 am

3 # 장신고[ | ]

대가라 불리우는 사람들중에는 죽을때까지 남이 불러준 그 명칭에 걸맞는 작업과 작품수준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자기이름에 똥칠하는 노망을 보여주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10월15일 필립글래스의 연주와 포와캇시의 영상은 '무엇이 똥칠'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일단 10월14일의 영상과 연주는 보고 들은바가 없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10월15일의 감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 무대는 평범했다. 좌측부터 두명의 타악연주자를 위한 자리와 가운데 세명의 관악연주자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의 인원은 모두 건반(신세인지 뭔지 제품명은 잘모르겠다.)을 연주했다.

일단 연주를 놓고 평가한다면, 정말 들을거 없는 연주였다. 앤딩 크레딧에 멀쩡하게 나오는 바이올린 누구 누구, 비올라 누구 누구, 첼로 모시기 모시기를 보면서 그 음을 그대로 신세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 자체도 고역이었다. 미니멀이 곡의 구성에 있어서 '반복'이라는 부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추가하여 그 반복되는 음자체의 '질감'이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하나도 느낄수 없게 만드는 연주였다. 걍 레코드 틀어놓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직 귀에 들어오는 연주는 중간중간 불어대는 관악기와 흔들어대는 탬버린과 이름도 모르는 악기... 스네어의 비트 뿐이었다.

귀가 서글퍼서 영상을 볼라고 눈을 돌리면, 영상은 사람들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영상의 테크닉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돈은 무쟈게 들었겠군'하는 생각은 든다. 엄한 항공촬영의 남발, 지겨운 슬로우모션 보고있자니, 허리가 아프고, 듣고있자니...

한술더떠서 이 돈지랄 영상이 담고 있는 메세지(? : 사실 메세지랄 것도 없다)는 그냥 인간판 '동물의 왕국'이다. 감독은 정말 아무생각없는 사람이었다. 네러티브를 말하는건 아니다. X도 할얘기란 것도 없는 영화였다. 얼어죽을 '변형속의 삶'이었다. 감독의 정신연령이라는 것은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때 정도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이 영상과 '쇼킹 아시아'와의 차이점은 좀 야하거나 잔인(?)한 장면이 얼마나 더 나오고 덜 나오냐 정도니 부디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은 행여 영상을 볼라고 시도하지 마시기 바란다. 내가 도시락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릴테니...

만일 필립글래스가 이 영상을 보고 자발적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면, 그의 영상에 대한 안목은 '아니올시다.'라 생각한다.

이 아저씨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지금의 명성을 가지고 대강 방어전 하면서 계속 벽에 똥칠하면서 살수도 있고, 어느날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변한 또 다른 삶을 살지도 모른다.

찌라시에 써있는 현대음악의 대가라는 말이 서글퍼진다. 여담이지만,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글래스를 안주삼아 말농담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미니멀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뭐 안주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누군가 했던 농담이 오늘따라 다시 생각난다.

"필립 글래스가 스티브 라이히 보다 음반이 많이 팔린이유는 정말로 그 사람의 음악자체는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기대는 안했지만, 분노는 커지는 공연이었다. -- 장신고 2003-10-16 1:16 pm

4 # Interview about Philip on Film[ | ]

발신: "김기범" <walrus@e...> 날짜: 2003/10/14 (화) 0:39pm 제목: 필립글라스 인터뷰

 

자극에 대한 언급은 로커를 연상시키는군요. 역시 멋있습니다. DVD를 봤을 때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점심 때 미리 수면 보충을 해야할 듯. 「트루먼 쇼」(1999년 골든 글러브 최고 음악상수상),「디 아워스」(2002년 골든 글러브 최고 음악상 노미네이트) 등 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필립 글라스가 내한, 13일 조선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14-15일 이틀간 LG아트센터에서 그가 이끄는 앙상블과 함께 첫 내한공연을 갖는그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구축한 인 물로서 존 케이지, 스티브 라이히 등과 더불어현대 음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이번 공연에서는 컬트 다큐멘터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음악 시리즈 '삶- 3부작' 가운데 첫번째와 두번째 작품인「코야니스콰시」(14일),「포와콰시」(15일)를 각각 선보이게 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번에 선보일「코야니스콰시」「포와콰시」등 두 작품은 현대 기술이 어떻게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것 을 다루고 있다. 대사나 연기없이 오로지 음악과 영상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특히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함으로 써 작품의 주제를 한층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영상은 어떻게 만든 것인가.

▲고드프리 감독과 오랜기간 함께 여행을 하면서 직접 찍은 것들이다. 특히「포와콰시」의 경우 남아메리카, 아프리 카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촬영했기 때문에 각지의 민속악기들도 나오고, 음악 자체가 '월드 뮤직' 같은 느낌을 풍긴 다.

--고드프리 감독과는 어떻게 해서 작업을 함께 하게 됐는지.

▲그와의 만남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화음악 제의를 처음 받았는데 그때까지 영화 음악을 한번도 다 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그가 찍은 필름을 직접 본 후 생각이 달라졌다. 고드프리 감독은 늘 내게 새로운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좋은 파트너로, 그와의 작업은 그때부터 시작해 거의 25년 가까이 이 어지고 있다.

--고드프리 감독이 작품을 만들면서 음악에 대해 특별히 주문을 한 것이 있는가.

▲대부분의 감독들은 단순히 음악을 영화의 장식물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있는데 고드프리 감독은 달랐다. 그는 영화 제작에 있어 영상과 음악은 늘 함께 간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굉징히 특별한 스타일의 음악을 원했는데,예를 들자면, 영상의 이미지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음악적 스타일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을 작품인데.

▲80년대 처음 일본에서 공연했을때만 해도 관객들이 이런 류의 음악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두번째 방문했을 때는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만큼관객을 개발해 낸 것이다. 한국도 이번이 첫 방문이긴 하지만 훌륭한 음 악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관객들도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 역사학 등을 전공했다. 하지만 여섯살 때부터 음악가의 길을 걸어온, 음악인이다. 철학이 나 역사는 내 음악활동의 자양분인 동시에 보다폭넓은 사고의 틀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음악의 모티브,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가.

▲사회적인 이슈나 큰 주제가 될 수도 있겠고 함께 작업하는 감독이나 화가 등예술가, 동료, 파트너를 통해 많은 영 감을 얻기도 한다.

--고드프리 감독과 또 다른 프로젝트 계획이 있는지.

▲3주전에 고드프리 감독과 만나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아마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도 다음 프로젝트 제작에 도움을 주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펀딩문제나 여러가지 여건상 실제 제작에 착수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 다.

--대학 교수가 되고도 남았을텐데 안정적인 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작곡가로서활동을 하는 이유는.

▲학교에 있게 되면 물론 안정적인 수입은 있겠지만 늘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되지 않겠는가. 내겐 자극이 필요하다. 늘 자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보다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여태껏 교수로 오라고 나를불러준 곳도 한군데도 없다(웃음).

- 이윤영 기자

mailto:yy@yna.co.kr

5 # 촌평[ | ]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본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영상미가 뛰어나다고 해서 별 사건 없는 87분짜리 영화를 졸지 않고 보기엔 내 내공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날 흔들어 깨웠다. 로켓이 발사되고 폭발하는 장면의 웅장한 아름다움(?) 때문도 아니고, 이 영화가 개봉된 1983년 봄에 폭발한 챌린저 호에 대한 기억 때문도 아니다. 로켓이 폭발하고 나서, 사람 모양의 잔해물이 불이 붙은 채, 아래로 아래로, 더 떨어질 것 없을 아래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장면 때문이었다. 심연보다 더 섬뜩한 것은 추락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 노영아 2005-5-10 10:15 pm

--  2003-10-19 1:29 pm

PhilipGlass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