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에질려버리다

1 2006.05.31 : LP에 질려버리다[ | ]

짐싸들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참 친절하다. 일본은 택시운임이 비싼만큼 기사들은 다들 친절한 것 같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이승엽이 요즘 너무 잘한다는 둥, 자기는 규슈 출신인데 그동네에는 한국계를 조상으로 둔 사람이 많다는 둥 여러가지 얘기를 해주셨다.

리무진을 탔다. 어서 서울에 도착하길 바라고 있었다. 공항에 가서 열심히 티켓팅을 하는데 그만 짐이 너무 무거워서 오버차지가 되었다. 보니까 30kg까지가 무료인데 나는 80kg이었던거다. 오사카에서 도쿄로 올때도 한 50kg은 되었을텐데 그때는 아무말이 없어서 안심했던 내가 바보였다. 그건 국내선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여튼 국제선에서는 에누리가 허용되지 않았다. 누군가 한국 관광객이 보이면 짐을 좀 나눠서 보내고 싶었는데 보이지도 않고...결국 50kg을 뚝 떼어서 여행가방 두개로 나눈다음 선편으로 보냈다. 송료에만 십만원 가까이 날아갔다. 이렇게 간신히 비행기를 탔다. 오버차지 비용은 4만엔이나 되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니까 정말 엄청나게 큰 짐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꽤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이코노미 석이 아니었거나 가족단위로 와서 그런 것이었는지 나와는 경우가 다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일본땅을 떠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나는 일본음악이나 문화는 좋아하지만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것 같다. 아마도 정이 좀 없어서겠지. 아니면 나 혼자 일본와서 판사느라 무리해놓구선 괜히 심통부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약간은 질린 느낌을 받고 떠나고 있다.

도착해서 LP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공항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날 부른다.

이 봉지 다 레코드 판인가요?
들으려고 사신거에요?

그 언니는 그냥 나를 놔주었으나 다른 연륜있는 아저씨가 다가온다.

이 상자는 뭔가요?
똑같은 음반인데요~
이거 몇장이나 되나요?
글쎄요 한 백장?
취미로 듣는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데요. 잠깐 봅시다.
이거 다 제가 듣는거고요. 모두 합쳐 백만원도 안되는 겁니다. 일단 똑같은게 없잖아요.
무관세로 들어오는 것은 40만원이 한계이고, 이렇게 동일한 아이템은 40만원 이하라도 좀 문제가 있을거 같네요.
단지 부피가 큰것 뿐입니다. 저기 지나가는 어떤 관광객들하고 비교해도 이건 적은 액수일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핸드백 하나 값도 안될겁니다.
어쨌든 어렵겠네요.

이렇게 하더니 내 짐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뭐 내 잘못도 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이다. 안보일만한 양을 사가지고 들어가야 하는건데 너무도 당당하게 사과상자 서너개만한 분량을 들고 지나가니 그들로서도 안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여행가방 하나 분량(LP 40장 정도)을 여행가방에 잘 넣고 들어갔으면 절대 안걸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의 짐을 함부로 뒤져대니 기분이 상당히 나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것들을 해명하고 있어야 하나.

영수증 있으세요?
여기 있습니다. (아까 비행기에서 대충 계산해봤는데 내가 산 물건은 약 10만엔 정도였다. 그중 절반 이상을 선편으로 부쳤다.)
이거 여기있는 물건들만 계산이 되나요?
영수증이 너무 복잡해서 어려울거 같은데요.
그럼 오늘 집에 못가시는데, 어떻게든 해보시죠?
글쎄요. 여기에 없는 물건들 영수증도 다량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대충 얼마정도에요?
여기 있는 것 만이라면 한 4-5만엔 정도지요.
그럼 5만엔으로 합시다. 20%니까 한 8만원정도 세금 내시면 되겠네. 사실 저거 10만엔도 넘죠?
...
가서 내고오세요.
(내고 왔다.)
그럼 잘 챙겨가시고요. 다음에도 또 저런거 사오실겁니까?
예, 다음에는 비싸고 부피 적은 것으로 사오려구요.
-_-+

어쩌면 나는 관세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입에서 정말 저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군. 2주 뒤에 선편으로 받은 물건들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식의 과세는 요식행위라 이말이다. 엉성한 검열체계를 생각해볼때 마약 밀수하는 일도 별로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진짜 무라카미 류가 알려준대로 코카인이나 엑스터시같은 것을 콘돔에 넣고 그것을 장에 보관해서 들고올 정도의 열정이 있다면 세관체계를 넘어가는 것은 일도 아닐거다. 단지 위험이 크기때문에 대량으로 안할 뿐이겠지. 내가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다.

더러운 기분으로 나와서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와서 푹 쉬었다. 이제 LP같은 넘 때문에 이런 쌩고생은 하지 않으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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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어전씨 <= LP에 질려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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