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노무현 대통령 연세대학교 초청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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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 연세대학교 초청연설

여러분,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총장님께서 저를 아주 호의적으로 소개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참 반갑고, 또 이 자리가 매우 기쁩니다. 우선 여러분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특별히 기쁜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가 자유롭지 않은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대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럴 기회를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서 못하던 일을 하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초청해 주신 데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말씀 드립니다.

제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낱낱이 공개가 되어서 여러분이 모르는 것이 없겠지만 오늘 강의는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말해 봐라.’ 이런 뜻이겠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저의 삶을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한 것일 겁니다. 성공했지요, 제가. 성공의 비결은 뭔가, 여러분이 들어 보시고, ‘혼자만 성공하지 말고 우리나라도 국민도 모두 함께 성공할 방법을 내놓으시오.’ 그런 희망을 말해도 좋을 만큼 비결을 내놓겠습니다.

과연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는가, 혼자서 다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저도 그것을 소망으로 여러분게 말씀드리면서, ‘함께 한 번 해 보자.’ 이렇게 제안드리겠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멀리 가야 할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겠지만 당장 이 시기의 시대적 과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어려분과 제 생각이 맞는지 한 번 맞추어 봅시다. 그리고 요즘 인기 있는 쟁점들,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토론방에서 서로 논란되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서 제가 가진 생각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장래의 계획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제게 주어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제목만 얘기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살았는가, 아마 제가 제일 관심을 가졌던 것은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멋지게, 보람 있그, 가치 있게 살기 이전에 그냥 삶에 대한 불안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크게 고생하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 살아온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대가 여러분과 좀 달라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뭐 했냐, 사랑하고, 아이 낳고, 지금은 손녀가 참 귀엽고 이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고 살았습니다. 이것을 제가 소중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는 섭리를 거역하지 않았고,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고상한 가치가 있지만 그 어느 가치보다 섭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섭리, 자연의 섭리, 그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려고 하고, 또 그것을 존중하면서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이거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옛날에는 단지 산다는 것 그 이상의 가치,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면서 내가 개척하는 그런 삶을 모색해 봤는데, 결국 돌다가 돌다가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 삶을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했고 매 시기 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렇게 보면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크고 작은 승부를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에 도전했는가, 저는 현실, 그리고 현실의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어떤 고나념과 주의를 먼저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도전했다기보다는 내 앞에 부닥쳐 있는 문제들에 도전했습니다.

제가 부닥친 문제는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다닐 때에는 진학할 형편이 안 될 것 같아서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저의 문제였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도 취직, 어떻게 부모님을 모실까를 생각했습니다. 형편이 좀 좋아져서 고시공부를 하게 됐는데, 고시공부를 하면서는 성공이었습니다. 자라면서 항상 읍내 아이들한테 약간의 열등감을 가지면서 살았던 시골아이라서 아마 성공에 대한 집착이 좀더 강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저는 성공하려고 고시를 했습니다.

보통 대학교에 수석합격을 하고 나면 ‘고시에 합격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겠다.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겠다.’ 이런 말들을 곧잘 합니다. 그건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게는 그런 꿈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냥 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에 10월유신이 일어났습니다. 법이 짓밟힌 사건이지요. 열 가지가 짓밟혔지만 그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법이 짓밟히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유신헌법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됐습니다. 유신헌법 공부하고 고시 합격해서 판사가 됐으니까 ‘유신판사’ 아닌가, 그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부모는 옛날에 창씨개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친일파’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고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 문제는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전후에 민족을 배반한 사람들을 숙청했는데, 그 때 숙청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가 아마 굉장히 어려운 사회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 숙청할 것이며, 숙청의 등급을 어떻게 알 것인가, 공직에 취힘하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 할 것인가, 고위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게 하는 정도로 할 것인가, 그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할까, 또는 감옥에 보내야 할까, 어떤 사람이 이런 많은 등급 중 어느 등급에 해당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지금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될 문제입니다. 과거에 떳떳하지 못했던 모든 사람이 숙청돼야 한다면 저도 숙청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숙청 안 될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이것도 좀 걱정이 됩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하나 던지고 넘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전부 내 문제였습니다. 나로부터 조금 벗어난 때가 변호사 시절입니다. 엸미히 나를 위해서 돈벌이를 했습니다만, ‘변호사 비리를 한 번 해소해 보자.’ 그렇게 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법원과 검찰의 권위주의, 거기 가서 할 말도 못하고 고개 숙이고 손만 비비는 변호사, 이런 문화를 바꾸어 보자는 도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몇몇 재판부에서 찍힌 변호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서 혹시 제 의뢰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불안이 있었습니다.

시국사건 변론을 했습니다. 아마 자기만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젊은 사람들을 만나서 받은 충격, 자존심, 정의감, 이런 것들이 조금은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8년 뒤에는 대학교를 가게 생겼는데, 바로 1980년대 초반 그 시기에는 대학교에 가면 자유,정의,민주주의를 배우게 되어 있고, 그것을 배우면 배운 것과 다른 현실에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반드시 데모를 할 것 같았습니다.

데모를 하면 이름이 적히고 평생 취직이 안 됩니다. 또 끌려가서 죽도록 맞습니다. 물론 저도 제 뒤에 형사 두세 사람이 따라다니는 수준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만, 우리 아이가 그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지 않게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감옥 가는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그만 문제 변호사가 됐습니다. 제법 괜찮지요, 제가 사회문제에 눈을 떠온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랫동안 도전하고 오랫동안 승부를 해 봤습니다만, 가장 어려웠던 승부는 자신과의 승부였습니다. 긴 설명 드리지 안하도 여러분 다 짐작하실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적, 가장 어려운 상대는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저의 이기심 안에 있고, 저의 비겁함 안에 있고, 저의 안일함 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안에 있습니다. 어떻든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성공의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공한 비결,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겁니다. 가진 것 그대로 다 가지고 더 가지겠다는 도전, 이것은 안전하긴 하지만 성공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승부를 걸어야 되는 성공의 과정에서 투자하려거든 확실하게 하십시오. 저는 제 인생을 걸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해 왔습니다. 성공보다는 당면한 문제에 몰두했습니다. 매 시기 현재에 몰두했습니다. 멀리 내다보긴 하지만 그것은 내다볼 뿐이지 항상 현재에 전부를 투자했습니다. 대통령 되겠다고 그 시기까지 나온 사람 중에서는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했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투자했다는 것이지요.

좋은 일은 아닙니다만, 역대 대통령들을 돌이켜보니까 다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이에요. 저 앞에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그렇지죠, 박정희 대통령, 저는 결코 찬성할 수 없습니다만, 어떻든 한강을 건널 때 그는 목숨을 걸고 건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그 분들의 쿠데타도 찬성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실패하면 죽는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도 다들 돌아가실 뻔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세상이 좋아진 거지요. 그래서 다행히 목숨을 걸지 않고 대통령이 된 첫번째 대통령입니다. 제가, 그래서 국민들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밑천 들인 것을 보면 그래도 제가 제일 화끈하게 투자를 했지요. 똑똑하게 못할 바에는, 제대로 못할 바에는 정치 안 한다, 이런 결심을 가지고 했습니다.

두번째 성공비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부합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변호사를 할 때 이미 세상을 알고 역사를 알고 했던 것이 아니고 그저 저만 잘 먹고사는 사람이었습니다만,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를 바꾸고, 어떻든 부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서 변화해 왔습니다. 길게 설명하려면 참 많겠는데,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저를 바꾸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변화를 수용해 왔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저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세번째 비결은 공부입니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시운(時運)입니다. 어떻든 그렇게 가다 보니까, 제가 아마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보였나 봅니다. 그러니까 ‘너, 대통령 한 번 해라.’ 이렇게 시켜 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여러분은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인수위 시절에 공을 들여서 국정목표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가 그것입니다.

뭔가 섭섭하지요, ‘활력있고 넉넉한 나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더불어 살기도 하고, 질 높은 삶고 품위있고 문화적인 삶도 다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넣어야 되는데, 4개나 하려니까 많아서 외우기도 어렵겠고 ‘균형발전’과 ‘평화와 번영’에 발전과 번영이 들어 있으니까 그것으로 잘사는 나라는 갈음하자, 이렇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활력있고 넉넉한 나라’를 한 번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많은 국민들은 당장 먹고사는 것이 제일 큰일인데, 그걸 1번으로 넣어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 정부는 어떤 정부가 되어야 하는가, 참여정부가 되어야 한다,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라는 뜻입니다. 그것만 하려고 하니까 다른 당하고 국정목표가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차별화하자, 방향은 같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다, 전략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자, 그래서 전략으로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이라는 국정원리를 말했습니다.

‘원칙과 신뢰’가 똑같이 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원칙이 바로 서서 그 원칙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권과 자율’이라든지 ‘대화와 타협’이라든지 ‘공정과 투명’이라든지 하는 것은 제가 오랫동안, 대통령 꿈꾸기도 훨씬 전부터 얘기해 오던 것입니다. 하나 더 보탠다면 희망과 낙관이 있는 나라, 낙관적 희망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는 한 번 더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신뢰가 먼저입니다. 인간이 경험한 많은 사회 중에는 전제군주사회도 있고, 귀족사회도 있고, 독재사회도 있고, 파시스트사회도 있습니다. 그 모든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신뢰가 있는 나라여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별의별 장치를 다해야 됩니다. 상대방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속지 않기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계약을 맺을 때 상대방이 위약할 경우에 대비해서 방어할 수 잇는 모든 조항들을 집어넣어서 계약서 하나 만드는 데 보름이나 한 달씩 걸립니다. 변호사 비용이 엄청 나가지요.

국가가 나의 안전을 지켜 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불안이 있을 때 개인 경호 시스템을 하게 됩니다. 남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 경찰보다 개인경비 용역업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이 훨신 더 많고, 거기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돈 없는 사람은 어찌하란 말이냐 하는 질문이 바로 나올 수 있지요.

이렇듯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깁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말한 내용을 말 비슷하게 하긴 하는데, 또 다르게 해석해 가지고 그 본뜻을 어떻게든 왜곡시켜 보려는 노력, 선의가 없이 맺은 계약은 그 방향으로 갑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의 신뢰를 세우는 방법입니다.

신뢰 중에 중요한 것 하나는 그 사회 지도적인 인사들의 행동입니다. 지도적인 인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말과 행동을 달리할 때 그 사회의 신뢰가 붕괴됩니다. 지도자는 그야말로 말대로 실천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진실을 말해야 됩니다. 아울러서 지도자는 말할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말할 자격 없는 사람이 좋은 말을 자꾸 하면 좋은 말을 버립니다.

한국적 민주주의, 들어 보셨습니까,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서 민주주의를 완전히 말살시켜 놓고 입만 열면 민주주의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는 시대가 된 거죠. 그 후유증이 엄청납니다. 물론 그때도 공장한 사회를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정의로운 사회, 기억나십니까,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내걸었던 ‘정의로운 사회’, 절대로 보통사람일 수 없는 분이 ‘보통사람’을 얘기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비방한 결과가 될 것 같네요. 어쨌든 존재했던 사실입니다. 신뢰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대에서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뭐냐, 저는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제대로 가려면 뭘 해야 하나, 분열을 극복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조선이 무너졌습니다. 힘이 없어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것은 분열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지도층의 분열과 더불어서 무너진 것입니다. 그 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분열은 각별합니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살았던 시대가 너무 오래됐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하려고 해도 공존의 범위를 벗어나, 그런 대립이 있을 때에는 공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친일하고 살자,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닙니다. 친일과 항일은 공존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지요.

해방이 되고 난 뒤에 소위 용공과 반공, 좌익과 우익 해 가지고 실제에 있어서 어떻든 결코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대결의 시대를 지내 왔습니다. 그 다음에 독재와 반독재, 아무리 민주주의한다 하지만 독재와 어떻게 타협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독재적 방법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이죠. 저항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민주주의가 가지고 잇는 상대주의의 한계라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사상과 행동이죠. 그래서 저항권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개별국민들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공격할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지만 적어도 국가권력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자유의 폭이 다릅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반국민 개인에 한한 것이지 국가권력이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적어도 국가권력을 추구하는 정도의 조직적 집단이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 법,질서는 결코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의 자유가 이미 아닙니다. 그래서 독재와 반독재, 그렇게 싸웟죠. 지금도 그 연장선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어떻든 서로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써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적어도 논리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절충을 해서 타협해야 합니다. 타협으로라도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 시대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느냐 하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배제했습니다.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말하면 잡아 가두고, 또 잡아넣기 위해서 때리고, 심하면 죽이고 그랬습니다. 배제의 시대를 우리가 수십년간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 배제의 시대에 싹튼 저항의 논리가 또한 비타협 저항입니다. 비타협 투쟁노선입니다. 지금도 학생운동의 일부에 그 노선이 살아남아 있죠, 그런데 문제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더라도 실적에 다라서 4년 뒤에 다시 심판하지 않습니까,

당장의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4년 뒤에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좀 엉뚱한 얘깁니다만 조폭문화를 청산해야 됩니다. 조폭문화는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법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칼 같은 규율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는 철저히 충성과 보상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것이 조폭문화입니다. 그 조직에 들어 있는 한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대우를 합니다. 그래서 아주 폐쇄적인 특권적 집단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과거 군국주의 군대에도 살아 있었고, 정치권력에도 이런 논리가 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보편적 지지가 없으니까, 보편적으로 승인된 가치를 부정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항을 더욱더 강고하게 제압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주종관계를 맺고 물질적인, 명예적인 보상을 주면서 갈라먹기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외부세계의 보편적 법,질서를 유린하는 것을 조폭질서라고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지난날 우리의 정치였습니다.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죠.

제가 정경유착을 끊자고 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불합리한 부당한 거래가 이루어지면 일반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죠.

권언유착도 끊읍시다. 권언유착은 끊긴 것 같은데, 정언유착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 유착에는 항상 부당한 이익이 발생하고 부당한 특권이 발생합니다. 아직 정부 안에 있는 권력기관에도 이 사고의 잔재가 남아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참여정부가 끝날 때에는 다 없어질 겁니다. 정부 안의 것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정경유착도 높은 수준의 것은 제가 다 정리하겠습니다. 청소를 하겠습니다. 권언유착도 제가 정리해 놓겠습니다. 정언유착 정리는 국민들이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권적 문화, 즉 조폭문화를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대안적 운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민주주의 권력은 끊임없이 견제받아야 합니다. 감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흔들어 버리면 감사받는다고 일을 못합니다. 공무원들이 감사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데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권도 밤낮 없이 감사만 하고 계속 흔들면 갈길 못 갑니다.

그래서 비판은 적절해야 하고 합리적 근거를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대안 없이 하는 비판운동은 그 사회의 효율을 현저히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적 대안운동, 이것이 참여의 한 형태로서 새롭게 좀 자라났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지금 이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 얘기를 많이 합니다. 진보를 맨 왼쪽에 놓고 한 줄로 세우고 보수를 맨 오른쪽에 놓고 한 줄로 쫙 세운다고 합시다. 우리나라가 왼쪽으로 한참 달려가면 일본이 보일 겁니다. 일본을 지나서 또 왼쪽으로 한참 달려가면 미국의 사회제도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죽자 사자 또 뛰어가면 저쪽에서 오른쪽으로 막 달려오고 있는 영국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진보가 어떻고 보수가 어떻고 하는 것은 한심한 얘깁니다. 우리나라의 복지예산, 그 다음에 세금과 재정의 재분배 효과 이런 등등을 보면 한심합니다. 일반적 복지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걸핏하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진보와 보수로 나눈데,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인가, 대개 이렇게 보면 됩니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게 하자,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는 것입니다. ‘적자생존의 원리를 철저하게 적용하자. 약육강식, 그것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진보는 뭔가,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느냐.’ 연대죠, 연대. 이런 얘깁니다.

어느 쪽도 극단적인 한쪽의 것은 없지만 크게 봐서 이렇습니다. 그 다음에 ‘가급적이면 바꾸지 말자.’ 이게 보수입니다. ‘뭘 좀 바꾸자. 고쳐가면서 살자.’ 이것은 진보죠. 그래서 한때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진보와 보수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렇죠, 그건 이미 소련 사회가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사회로서, 시장에서 승리한 사람이 특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시장은 죽여 버리고 권력의 장에서 모든 경제를 움직이면서 거기서의 승자들이 특권을 형성해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보수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개가 서로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만, 자본주의 사회에 있는 한 대개 보수는 적자생존론이나 약육강식론이 근거하고 잇고, 아울러 되도록이면 바꾸지 말자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더 바꾸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득권의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이해하지만 간명하죠.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 이겁니다.

성장과 분배는 반드시 배치되는 개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교수는 “성장과 분배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같이 안가면 둘 다 망한다. 같이 가야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경제위기론, 여러분이 취직 걱정이 많으니까 경제위기론이 실감이 나죠, 이 문제는 그래프를 하나 갖다 놓고 봅시다. 우리의 GDP가 3.8% 성장했던 2001년에 경제가 그 날로 붕괴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실제로 그 분위기 때문에 경제가 더 살아나지 못하고 침체했다는 유력한 주장이 있습니다.

경제위기론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지표들을 가지고 보고 있는데,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잘 관리하고 있으므로 제가 있는 동안은 문제없습니다. 안십하십시오.

청년 일자리는 어쩌란 말이냐, 예,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대학을 많이 갑니까, 전부 대학 가서 높은 자리만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 산업구조는 너무 빨리 바뀌고 있구요. 그래서 지식서비스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진두 지휘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언제 날거냐, 좀 걸립니다. 아일랜드가 1987년에 노,사,정 합의를 하고 그때부터 외자유치라든지 새로운 경제정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고용이 살아나고 경제가 살았다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때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1993년이었습니다.

우리는 1993년도에 ‘신경제 100일’을 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신경제 100일’로 좋아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죽는다고 엄살을 자꾸 부리면 국민들이 그런 줄 알고 불안해하고, 정부는 급하니까 이 정책 저 정책 맞 갖다 쏟아부어서 경제파탄과 같은 상황이 오는 일이 있습니다.

1989년의 위기론에서 1990년의 진짜 위기가 왔고, 2001년의 위기론에서 무리한 경제정책이 나오고, 2002년에 위기가 진짜 와버린 것입니다. 곰곰이 한 번 자료를 찾아보십시오. 아주 위험합니다.

그래서 누가 경제위기를 가지고 어떻게 불안을 조성하더라도 저와 우리 경제팀은 정말 면밀히 검토하고 철저히 분석해서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가겠습니다. 그동안에 욕은 제가 먹으면서 가겠습니다. 일자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많이 됐는데, 상생에 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좋은 겁니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바로 상생입니다. 상생은 그야말로 진실하게 이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방에게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상생을 내세우면 그 상생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상생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변화할 때는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하고, 기득권을 버려야 할 대는 기득권을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장려해야 될 때 낡은 문화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시대의흐름도 맞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상생을 하는 기본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배제의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계속 배제하려고 하는 방법으로는 상생할 수 없습니다. 상생은 결국 대화, 토론, 설득, 타협, 그리고 거의 다 합의가 된 것 같은데 마지막 결론이 안 날 때 그 때 표결하는 겁니다. 그렇죠, 표걸하고 승복하는 겁니다. 승복해야 상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 규칙을 무시하면 상생이 안됩니다.

스포츠 게임도 규칙을 잘 지키고 끝났을 때 두 사람이 서로 악수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반칙으로 얼룩진 경기가 끝났을 때 무슨 상생이 되겠습니까, 규칙과 승복, 훌륭한 심판이 매우 중요합니다. 패배를 넉넉하게 수용할 줄 아는 그런 역량을 갖추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어떻든 권력을 추구한 사람으로서는 이제 하산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발 삐지 않고 무사히 하산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등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무사하게 하산하기 위해서는 정상의 경치에 대해서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하비다. 정상의 경치가 저에게는 좋기도 하지만 골치 아픈 일도 많습니다. 미련을 갖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와의 승부 속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제 자신이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스려 내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될 남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2 같이 보기[ | ]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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