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어록

노무현 어록

1 1988년[ | ]

1.1 1988-07-08 국회 대정부질문[ | ]

  • "제가 생각하는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진 그런 세상입니다."[1]

2 2001년[ | ]

2.1 2001-12-10 국민경선 출마 연설[ | ]

3 2002년[ | ]

3.1 2002-04-07[ | ]

  • "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나."[1]

3.2 2002-06-10 비서실 회의[ | ]

  • "6·13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단체장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할 경우 대통령 후보 재신임을 받겠다."[2]

3.3 2002-06-12 기자간담회[ | ]

  • "(대통령 후보) 재신임을 받겠다는 약속은 변함이 없다"[2]

3.4 2002-12-14 취임 전 TV연설[ | ]

  • "당선 후 1년 이내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하겠다."[2]

3.5 2002-12-24 르 몽드 회견[ | ]

  • "햇볕정책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햇볕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2]

3.6 2002-12-31 기자간담회[ | ]

  •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국지적으로라도 무력공격을 하게 될 경우, 북한이 남한에 보복공격을 할 수 있고, 우리 군이 대응하면 전면전의 우려가 있다. (평화적 대응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2]

4 2003년[ | ]

4.1 2003-01-18 KBS 회견[ | ]

  • "미국과 갈등이 있더라도 (미국의) 북한 공격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2]

4.2 2003-01-30 NHK 회견[ | ]

  • (UN 안보리가 제재를 이행해야 한다는 요구를 지지하는가?) "제재를 가하거나 심지어 무력사용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2]

4.3 2003-02-23 오마이뉴스 인터뷰[ | ]

  • "일부 언론을 보라. 무슨 족벌체제, 기득권체제, 고스란히 갖고 앉아서 자기들이 무슨 변화의 기수인 척하고, 그러면서 실제로 변화와 개혁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잡고"[2]

4.4 2003-02-25 대통령 취임사[ | ]

  •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2][1]
  • “과학기술을 부단히 혁신해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이루겠습니다. 지식정보화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신산업을 육성하고자 합니다.”[3]

4.5 2003-03-01 3·1절 기념식[ | ]

  •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아픔의 근현대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날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됐다."[2]

4.6 2003-03-04 더 타임스 인터뷰[ | ]

  • (2003-03-02 동해 공해상 북한전투기 관련) "너무 지나치게 나가지 말 것(not to go too far)을 촉구한다."[2]

4.7 2003-03-08 국정토론회[ | ]

  • “국민의정부는 IT 기반을 갖춰놨습니다. 참여정부도 다음 5년 동안 먹고 살 것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기술 순환이 빠르니까 5년, 10년 먹을거리를 줘야 합니다.”[3]

4.8 2003-03-17[ | ]

  • "한총련을 언제까지 이적단체로 규정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2]

4.9 2003-04-02 국정연설[ | ]

  • "이제 대통령의 초법적인 권력행사는 이상 더 없을 것입니다.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세청, 이른바 '권력기관'을 더 이상 정치권력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들 권력기관을 국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4][1]
  • "내년 총선에서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게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2]

4.10 2003-04-13 임시정부수립 84주년 기념식[ | ]

  • "그 과정에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불행한 역사를 겪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2]

4.11 2003-04-22 과학의 날 기념식[ | ]

  •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는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참여정부는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을 획기적으로 늘려나갈 것 입니다.”[3]

4.12 2003-05-01 100분 토론[ | ]

  • "한겨레 21에 올라와 있는 한총련 회장 편지를 읽어봤다. 일부 보도나 사회 일각에서 말하듯이 그렇게 단순히 어떤 사상에 경도돼 우리 사회에 철없는 공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편지 속에서 확인했다."[2]

4.13 2003-05-07 이메일[ | ]

  • "농부는 김매기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낸다. 농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선량한 곡식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사리사욕과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는 일부 정치인, 개혁하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뜻은 무시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으려는 일부 정치인, 전쟁이야 나든 말든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2]

4.14 2003-05-12[ | ]

  •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 중심 공화국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2]

4.15 2003-05-21[ | ]

  •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2]

4.16 2003-06-10 일본 방문 중[ | ]

  •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

4.17 2003-07-09 중국 청화대 연설 중[ | ]

  • (존경하는 중국지도자에 관한 질문에, 모택동과 등소평을 꼽으며) "두 분은 시대를 나눠 중국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었다. 아마도 한 번에 하기 벅차서 서로 나눠 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화이며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하지만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 "통일이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북한 경제가 한국 경제 수준에 거의 가깝도록 성장한 뒤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2]

4.18 2003-08-19[ | ]

  •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감이다"[2]

4.19 2003-09-08 '대한매일' 기고문[ | ]

  • "가장 강한 권력인 정치권력과 언론이 불의(不義)의 공생을 도모했다. 그때마다 정의(正義)의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우리 사회에서 힘을 정의로 믿는 기득권이 형성된 것도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야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2]

4.20 2003-10-10[ | ]

  • (최도술 前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자금 수수 관련)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리고 책임을 지려고 한다.···수사결과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 그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아무리 늦더라도 총선 전후까지는 재신임을 받을 생각"[2]

4.21 2003-10-13[ | ]

  • (송두율 관련)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와 포용력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또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2]

4.22 2003-12-14 4당대표회동[ | ]

  • "우리가 쓴 불법자금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2]

4.23 2003-12-19 노사모 주최 ‘리멤버1219’행사[ | ]

  •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나서달라."[2]

4.24 2003-12-30[ | ]

  •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격이다."[2]

5 2004년[ | ]

5.1 2004-01-29[ | ]

  •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서는 천도(遷都)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큰 변화를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2]

5.2 2004-02-24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 | ]

  • "우리의 통일은 독일식 흡수통일과 분명히 다를 것이며 이는 모든 국민이 합의하고 있는 바.…우리는 오랫동안 국가연합체제에서 각기 지방정부를 갖게 될 것이며 통일수도는 개성일대에 대단히 상징적으로 만들어질 것"
  • "국민들이 총선에서 우리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2]

5.3 2004-03-01 3·1절 기념식[ | ]

  • "몇 년 지나면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옵니다.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인 그 용산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들어옵니다."[2][1]

5.4 2004-03-11 청와대 특별기자회견[ | ]

(측근 비리 관련)

  • "노건평씨는 아무런 힘이 없다. 대통령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가만 좀 내버려두시면 좋겠다.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 "남상국 사장이 청탁했다는 이유로 해서 내가 민정과에 ‘청와대의 인사사항은 아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까지 행사해서 연임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뒤에 확인까지 했다."
  • "잘못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까 사과하고 넘어가자. 그래서 탄핵을 모면하자 이렇게 하라는 것이면 제가 받아들이기 어렵다."[2]

5.5 2004-04-12 독일 방문중[ | ]

  • "북한은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딴생각 말고, 거짓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 결국 이 문제는 풀린다"[2]

5.6 2004-05-21 중소기업 초대간담회[ | ]

  • “과학기술 혁신 전략의 주체도 중소기업이고 경제 발전 전략도 중소기업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3]

5.7 2004-05-27 연세대학교 초청연설[ | ]

  •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인가? 대개 이렇게 보면 된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게 하자.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는 것이다. 적자생존의 원리를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 그것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진보는 뭔가?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뤄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느냐?, 연대다.…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 이거다.”[2]

5.8 2004-06-11 u-KOREA 추진전략보고회[ | ]

  • “저 좀 흥분했습니다. 오늘처럼 이런 비전을 보고 받고 알찬 토론을 들으면 가슴이 잘 떨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유비쿼터스가 ‘언제 어디서나’라고 하는데 ‘모두가 정보격차가 없도록’이란 걸 덧붙이고 싶습니다.”[3]

5.9 2004-06-15[ | ]

  • "행정수도계획은 참여정부의 핵심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명운,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2]

5.10 2004-07-08[ | ]

  • "수도이전 찬반논란은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가 있다"[2]

5.11 2004-07-12[ | ]

  • "수도이전반대 주장에는 수도권과 지방을 대립시켜 신(新)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불순한 의도도 깔려 있는 것 같다."[2]

5.12 2004-09-05 MBC 특별대담[ | ]

  • "우리가 국민주권 시대, 인권존중 시대로 간다고 하면 그 낡은 유물(국가보안법)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2][1]

5.13 2004-10-14 해외민주인사초청다과회[ | ]

  • "요즘은 옛날에 독재정권을 돕거나 또는 독재정권의 편에 서서 인권탄압이나 독재를 방관했던 많은 단체들도 거의 아무 제약 없이 그야말로 민주적 권리와 인권을 한껏 누리고 있는 수준이다. 정권을 맡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 사람들을 좀 제한했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국민들에게 물어봤더니 ‘듣기 싫더라도 괘씸하더라도 그런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2]

5.14 2004-10-16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 ]

  • "인권과 민주주의가 철저히 유린당하던 그 시절. 부산과 마산시민이 일어섰다."[2]

5.15 2004-11-12 국제문제협의회 LA지부 간담회[ | ]

  • "지난 1987년 이후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밖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 지금도 테러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근거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6자회담의 틀이 만들어지기 전에 일부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행사가 거론된 일도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무력행사를 얘기하면 전쟁을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바로 이 때문에 무력행사는 협상전략으로서의 유용성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봉쇄정책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아니다. 불안과 위협을 장기화할 따름입니다. 붕괴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한국국민들에게는 큰 재앙이 될 것이다."[2]

5.16 2004-12-05 바르샤바 동포간담회[ | ]

  • "중국은 물론 한국도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원치 않는다."[2]

6 2005년[ | ]

6.1 2005-04-13 프랑크푸르트 동포간담회[ | ]

  • “한국 정부는 북한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걸 조장할 생각이 없다. 북한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북한 내부에 상황을 통제할 만한 조직적 역량이 있는 만큼 갑작스럽게 붕괴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2]

6.2 2005-04-14 독일 일간지 디 벨트 인터뷰[ | ]

  • “대북압박을 강화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럴수록 상황이 더 악화될 것”[2]

6.3 2005-04-16 터키 방문시 동포간담회[ | ]

  • “한국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내게는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2]

6.4 2005-05-11 러시아 방문[ | ]

  • “통일을 모두 소망하고 노력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천천히 할수록 무리한 비용이 들지 않고 부작용도 없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2]

6.5 2005-05-19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 ]

  • “대한민국은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정보통신국가로서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3]

6.6 2005-05-30 세계신문협회 총회 연설[ | ]

  • “언론권력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
  •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량살상 무기 같은 민감한 문제에 끊임없이 의혹을 부풀려 불신을 조장하고, 그 결과 국가 간 대결을 부추기는 일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2]

6.7 2005-12-27 시위농민사망관련 대국민사과문[ | ]

6.8 2005-08-25 KBS 국민과의 대화[ | ]

  • "지역주의 극복은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겠다."[1]

7 2006년[ | ]

7.1 2006-04-03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 | ]

  •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한다.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다시는 이런이 재발하지 않는다."[1]

7.2 2006-04-28 한일관계 특별담화문[ | ]

7.3 2006-05-09 몽골 방문중[ | ]

  • “(북한에 대해)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합니다. 양보를 원칙 없이, 국민 보기에 따라 자존심 상하게, 원칙 없이 양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이라는 것, 한국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모든 것을 북한 뜻대로 하자, 북한에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이런 방식으로 양보할 수 없지만, 본질적인 정당성의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양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제도적·물질적 지원 이런 것은 조건 없이 하려고 합니다.”[2]

7.4 2006-05-29 향군지도부초청환담[ | ]

  •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며 남한의 지원 여부에 따라 핵 개발을 계속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핵을 선제공격에 사용하게 되면 중국의 공조를 얻지 못하는 등 여러 제약이 따를 것”[2]

7.5 2006-08-18[ | ]

  •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에 반대한다. UN안보리를 통한 제재에도 반대한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보다 더 해주고, 체제안전을 약속해야 한다.”[2]

7.6 2006-11-28 국무회의[ | ]

  • “임기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2]

7.7 2006-12-09 뉴질랜드 교포 간담회[ | ]

  •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 한국 정부의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북한은 공격받거나 붕괴되지 않으면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유엔 안보리 결의로 중단돼 있어 걱정이다.”[2]

7.8 2006-12-21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 발언[ | ]

  • 열배도 훨씬 넘네요. 열배도 훨씬 넘는데, 이게 한해 두해도 아니고 근 20년간 이런 차이가 있는 국방비를 쓰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한국의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70년대 어떻게 견디어왔으며,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 , 옛날에 국방장관들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니에요. 그 많은 돈을 쓰고도 북한보다 약하다면 직무유기 한거지요?
  •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2사단 뒤로 나와도 괜찮다. 공짜 비슷한 건데, 기왕에 있는 건데, 그냥 쓰지, 인계철선으로 놔두지 시끄럽게 옮기냐, 그렇지요. 저도 그렇다. 시끄럽게 안하고 넘어가면 좋은데, 제가 왜 그걸 옮기냐, 옮기는데 동의했냐, 심리적 의존 관계, 의존상태를 벗어놔야 한다. 국민들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하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국방이 되는 것이지, 미국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지가랑이 매달려 가지고, 미국 뒤에 숨어서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의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가 있겠냐? 이렇게 해서 되겠냐?
  • … 이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작전 통제할 만한 실력이 없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 나도 군대 갔다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 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렇게 수치스런 일들을 하고, 작통권 돌려받으면 우리 한국군들 잘해요, 경제도 잘하고 문화도 잘하고 영화도 잘하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 나가보니까 못하는 게 없는데, 전화기도 잘 만들고, 차도 잘 만들고, 배도 잘 만들고 못하는게 없는데 왜 작전통제권만 못한다는 겁니까?
  • … 우리 아이들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놓을 것 아닙니까?
    우리 모든 사회 제도를 장가 일찍 가고, 시집 일찍 가는, 결혼 일찍 가는 제도로 전부 바꿔 줘야 합니다. 결혼 빨리 하기 제도, 직장에 빨리 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이런 제도로 바꿔 주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다 지체가 되거든요. 지금 그 계획세우고 있습니다. 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 이런 제도 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5][2]

8 2007년[ | ]

8.1 2007-01-04 과천청사 공무원 격려 오찬 연설[ | ]

  • "찍힌 거지요, 제가.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닙니까?···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실한 상품이 돌아다니는 영역은 미디어 세계입니다"[2]

8.2 2007-02-15 이탈리아 로마[ | ]

  •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줘도 결국은 남는 장사"[2]

8.3 2007-06-02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 | ]

  • "그놈의 헌법이 토론을 못하게 돼 있으니까 (대통령이 직접 토론하는 것은) 단념 해야지요"[2]

8.4 2007-06-10: 6월항쟁 20주년 기념식[ | ]

  •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은 수구(守舊)언론과 결탁해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지난날 독재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해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2]

8.5 2007-09-11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 | ]

  •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북핵(北核)이라고 소리 높이는 것은 정략적인 의미로 얘기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북핵을 말하라는 건 가급적 가서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2]

8.6 2007-09-17 지역혁신박람회 개막식 축사[ | ]

  • "지역혁신, 균형발전이 최상의 국가발전전략이다.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더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전국 모든 지역이 다함께 수준 높은 삶을 누리는 행복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1]

8.7 2007-10-02 남북정상회담 방북[ | ]

  •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친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1]
  • (평양 만수대의사당 방명록에 남긴 글)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 (만찬 건배 제의) "남북 간 평화가 잘되고 경제가 잘되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고, 김영남 상임위원장도 건강해야 한다. 두 분의 건강을 위해 건배하자"[2]

8.8 2007-10-25 미래 성장동력 전시회[ | ]

  • “지금은 과학기술의 시대입니다. 과학기술 수준이 시장의 크기와 시장 지배력을 결정합니다. 세계화·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이러한 현상은 한층 가속화되고 있습니다.”[3]

8.9 2007-11-01[ |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의 연설

  • "서해북방한계선(NLL)은 실질적으로는 거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문제를 놓고 괜히 어릴 적 땅 따먹기 할 때 땅에 줄 그어놓고 네 땅 내 땅 그러는 것과 같다. 어릴 때 책상 가운데 줄 그어놓고 칼 들고 넘어오기만 하면 찍어버린다, 꼭 그것과 비슷한 싸움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2]

9 2008년[ | ]

9.1 2008-02-24 대통령 퇴임식[ | ]

  • "정권교체는 자연스러운 정치 현실이다.", "패배를 받아들여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고 항상 얘기해왔다.",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는 않으며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꿔가는 게 세상 이치지만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1][6]

9.2 2008-02-25 봉하마을 귀향 인사[ | ]

  • "지난 5년간 대통령직을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떠냐. 그냥 열심히 했으니 이쁘게 봐 달라. 정말 마음놓고 한마디 하고자 한다. 야~ 기분좋다."[1]

9.3 2008-10-01[ | ]

  • "진심으로 (남북)통합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주권의 일부를 양도할 수도 있고, 양보가 항복도 이적행위도 아니라는 인식을 수용해야 한다.…흡수통일을 전략으로 삼아 상대 권력의 붕괴를 추진한다면 그것은 북한을 자극하여 평화통일을 깨는 일이 될 수 있다. 북의 붕괴를 획책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각이 짧은 사람들이다."[2]

10 2009년[ | ]

10.1 2009-05-23 유서[ | ]

  •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1]

10.2 2009-11-27 유고집 '진보의 미래'[ | ]

  • "진보주의자는 차가 아무리 비좁더라도 ‘같이 타고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는 ‘비좁다, 늦는다, 태우지 마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곧 진보의 가치는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을 강조하고, 보수의 가치는 시장과 경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2]

11 같이 보기[ | ]

12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