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의일기/2년차첫날

1 2004.10.4 : 북쪽의 모 포병부대[편집]

동원훈련이 빡씨다고 들었던 나는 어제 여러가지 준비를 했다. 지난번에 동원훈련에 불참했더니 경찰서까지 끌려가는 등의 고초를 겪은 터라 진짜 빡씬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야비군 /1년차때 하루 걸은 것 만으로도 충분히 발 뒤꿈치가 홀랑 까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것도 주의해야 했다. 그래서 양말도 두어개 더 넣고 추우니까 긴팔 옷도 좀 챙겼다.

오늘 칼같이 5시 50분에 일어난 나는 어제의 짐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어제 배탈난 것이 좀 불안했지만 뭐 어쩔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봐도 어색한 군복을 마음에 걸려하면서 집결지인 노원구청으로 갔다. 역시나, 군복위에 입은 흰 점퍼가 무척 자연스러운 총각이 주머니에 손을 쿡 찌른 채 유유히 내 뒤를 걸어오고 있던 것이다. 역시 병장은 다르군 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노원구청 앞에는 수많은 개구리들이 버스에 뛰어오르고 있었다. 아 벌써 타는가 싶어 나도 급한 마음에 빨리 따라갔다. 편의점에서 샴푸와 면도기를 사야했는데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타고나니까 10분이 지나도록 출발을 안한다. 젠장~ 이러면서 눈을 붙였다.

갑자기 왠 언니들이 타더니 빵과 데미소다를 주면서, 많이 있다고 먹으랜다. 음 이건 구청의 호의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속도 안좋았던 나는 그냥 눈을 더 꼭 감았다. 수없는 개구리들이 어슬렁어슬렁 빵쪼가리 앞으로 몰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걸 챙겼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안챙긴건 실수였다.
깨워서 일어나니 도착했단다. 두시간쯤 걸린거 같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선배님들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플랭카드. 오자마자 하는 것은 복장검사다. 먼저 핸드폰부터 압수하고 화투같은 것을 들고왔나 검사하더라. 오 역시 이것이 빡씨다는 요즘 야비군? 하면서 조금 긴장했다. 나는 핸드폰도 미리 내놓고 대기했다. 고무링과 요대-박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결국 사야했다. 야상없이 온 사람도 나뿐인것 같다.

총기와 여러가지 소지품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잡스러운 서약서에 싸인을 시켰고. 이런 짓은 언제나 하는구만 기레. 그리고 한 30분은 놀았다. 이 논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긴 뭐 할때마다 준비할 것이 많고 그동안 예비역들은 항상 논다. 이 구도는 이후 3일간 계속된다. 여튼 긴장도 했고, 또 부대 마크 바느질을 시키는 바람에 일단 시키는대로 했다.

입소식을 한다. 워낙에 예비역들이 말을 안들으니 좌우로 정렬이나 받들어 총 따위를 한참 연습시킨다. 이게 아주 웃기는게 다들 까먹어서 헷갈리니까 앞의 소대장으로 보이는 교관이 일일이 설명을 한다. 받들어 총은 총을 앞으로 들고, 왼손으로는 총신을 잡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좌우로 나란히는 한팔간격을 벌리는 것이죠~ 여튼 이 교관(이후 포대장으로 부르자)은 눙치는 부산 사투리로 3일간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아유 신고식 연습을 무슨 30분도 넘게 한다. 지겨워질때 쯤 나는 배도 살살 아프고 해서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잠시 일을 보는 사이에 신고식은 끝나버렸다. 아무래도 내 창자가 애국가 부르는 것이 귀찮았나보다. 좋구먼~ 하면서 가져간 책 나의개인주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화장실의 소변기는 구식, 대변기는 신식이다. 소변기가 옛날 고속버스 휴게소 스타일이라 이말이다. 화장실에도 총을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총을 세워두고 일을 봤다.

일을 보고나니 신고식을 끝낸 개구리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그 사이 압수한 핸드폰을 나눠준다. 뭐여 이건...-_- 교육시간에만 울리지 않게 하라고 한다. 나는 진동도 소리도 안나도록 모드를 바꾸었다.

식사시간이다. 아까 포대장이 또 눙을 친다.

식사를 빨리 하고 싶으시면~ 맨 앞에 서시면 됩니다. (어허 주머니에서 손은 빼시고)

식당 앞에도 재미있는 말들이 써있다.

선배님들!! 정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선배님, 맛있게 드십시오.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긴 야비군을 받는 전용 부대라서 그런지 곳곳에 야비군을 대상으로 한 저런 멘트들이 붙어있다. 뭐랄까 귀엽다고나.

이곳의 생활은 왠지 젊은 고양이들이 모여서 늙은 고양이들의 수발을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내가 이곳에서 뭔가 가장 흡족했던 것은 급하게 나가느라 어질러두고 나간 자리가 돌아오면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어슬렁대는 예비군이 '현역아~ 물 좀 마시자~' 이러면 녀석들이 후떡 일어나서 물주전자를 채워오는 것이다. 나는 고대 노예제를 선망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지만, 녀석들이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도와주는 것을 '되얏다'하고 내치고싶은 기분은 결코 들지 않았다. 내가 받은 이 묘한 기분의 정체를 파악하는 시간이 나에겐 필요할 것 같다.

빈둥대다 사격하러 갔다. 0점 사격과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술 예비훈련, 허나 부대에서는 피p튀기고 알r베기고 이i갈리는 훈련이라고들 함) 등 언젠가 해본 적이 있었던 것들이 놓여있었다. 포대장이 또 재미있는 말을 한다.

요즘 포들 아주 좋지요. 뭐도 있고 뭐도 있고...뭐도 있고...
하지만 우리는 6.25나 이차대전때 쓰던 이 포들을 씁니다.
통신은...무전기를 보통 쓰지만 좀 더 훌륭한 육성을 사용하세요.

실사격을 하러갔다. 제일 처음 쏘게 되었는데 쏘기 전부터 영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아무래도 난 사격 이런게 싫은것 같다. 총소리도 섬찟하고 내 광대뼈 3센치미터 앞에서 폭발이 난다는 것도 마음이 안좋고, 사람 노리고 쏘고싶지도 않고 여러가지가 그렇다. 방아쇠를 한번 당기고 나면 혼이 홀랑 빠져나간 느낌인지라 다음 발을 조준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다들 아홉발을 다 쏠 동안 나는 세발정도 쏘았나. 나머지도 천천히 쏘긴 했는데...별로 맞지 않은거 같은 기분이다. 이런것을 즐기게 되면 사람도 쏠 수 있게 되는 걸까? 마치 풀메탈자켓의 한 장면 같다.
사격이 끝나고 나서 내려오는데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보람찬 사격을 끝내고 나서~

등의 문구가 쓰여있는, 코믹하게 그렸지만 결코 코믹하지 않은 군바리 그림이 그려져있다. 마음이 참 안좋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애들의 마음을 알거 같다.

사격후 총기수입(총닦기)을 하는데 총 분해법을 까먹었다. 옆자리 총각에게 물어가면서 분해도 하고 그랬는데, 거참 새롭다. 하긴 아까는 탄창을 못빼서 젊은 고양이 한 녀석이 빼주었으니 말이다. 여튼 열심히 총을 닦고 나오는데 또 포대장이 한마디 한다.

제대한지 얼마 안된거 같네요? 아직 현역티가 나네. 군생활은 어디서 했어요?
(아마도 훈련소 퇴소한지 얼마 안된거 같네요?라고 하고싶었을 것이다.)
병역특례를 했습니다.
아~ 그래요.

병특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티가 많이 나나부다. 하긴 야상도 없어, 전투모 챙도 평평해, 이름표도 부대 마크도 없어, 전투복과 전투화가 너무 깨끗하고 주름도 없어, 자세도 뻣뻣해...티가 안날리가 없다.
내무반으로 가서 잠시 졸았는데 한시간도 넘게 잔거 같다. 조금 후부터는 정신교육을 한댄다. 내가 졸고있을 동안 예비군들은 현역병들과 한참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모두 병과가 포병이니까 자신들의 옛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던거다. 완전히 동문회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왜 포병으로 배치받은거야...-_- 정신교육 받으러 가는 길에 포대장이 나를 보고 농담을 건다(라기보단 갈군다).

어이 갓 제대한 분~ 모자의 보직이 덜렁거리니까 잘 붙여요.
내무생활은 힘든거랍니다~

부산사투리를 빙글거리며 농담하는 것이 영 밉지가 않다. 반면에 정신교육은 아주 지겹다.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면서 주적개념을 머리에 구겨넣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뭐 여튼 비디오 자료는 점점 잘 만드는 것 같다. 보고있으면 그다지 지루하진 않다. 예비군이 200만이나 되고 여자 예비군이 생겼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체적으로 예비군은 야비군이 아니니 긍지를 가지라는 요지 되겠다.

저녁을 먹었다. 여기 현역병들 말로는 자기네 부대 밥이 훨씬 맛있다고 한다. 나는 여기 밥도 꽤 맛있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말이다. 사실 이 젊은 고양이 놈들은 팔자가 꽤 괜찮은 편이다. 예비군 지원부대에 나온거라서 별로 할 일 자체가 많지 않고, 시간이 널널하므로 다들 책 한권씩 펴들고 있다. 애들 말로는 노래방에 헬스장에 여러가지 시설도 많다고 한다. 11분, 연금술사, 해변의카프카, 맹상군 등 녀석들이 읽던 책들도 가지가지였는데 언넘이 전여옥이 쓴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던가하는 책을 가지고 있어서 슬쩍 봤다. 그러고보면 전여옥은 참 팔자가 좋다. 그 필력에 그 교양으로 그렇게 널널한 삶을 살고 국해우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정말 내용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무뇌아의 책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저녁 먹고 올라오니 PX(Post eXchange, 정식 명칭은 복지근무단이라고 한다. 여기 PX의 명칭은 충성마트였음...-_-)가 열렸다고 한다. 단 게 고팠던 나와 담배가 고팠던 예비역 둘이 함께 PX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현역 한녀석을 말동무 및 갈굼 대상으로 데리고 갔다. 피돌이(PX담당 병사)가 안나와서 30분은 기다린 것 같다. 덕분에 그 현역병은 계속 갈굼당했고 결국 저쪽에서 담배피고 있는 현역들에게서 담배를 '만들어'왔다. 피돌이를 못잡아낸 다른 예비역들은 결국 올라가서 모든 내무반을 다 뒤졌고, 라면을 먹느라 저녁도 제낀 피돌이를 간신히 발견했다. 녀석은 내일 점심에 반드시 열겠다고 했고. 사실 피돌이 한녀석이 여러 사람을 기다리게 했는데 그런 녀석을 가만히 방치해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올라와서 대기했는데 금새 점호한다고 한다. 씻고 점호하고 나니 9시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자란다...-_- 그런데 불을 꺼버렸다. 이상하게 불을 꺼버리니 잠도 대충 오네. 12시에 불침번을 서야해서 부득이하게 일어났다. 그러고보면 훈련소에서 했던 것들은 대충 여기서 한번씩 되새김을 시키는 것 같다. 어슬렁대며 한시간쯤 빈둥대다가 다시 이불속에 쑤욱 들어와서 잠들었다. -- 거북이 2004-10-7 1:44 am

/2년차둘째날

1.1 촌평[편집]


훈련병의일기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zf.userName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