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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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俠女
협녀
  • 1969년 중국의 무협영화
  • 감독: 호금전

2 # 거북이[ | ]

여기저기서 극찬을 받고있는 영화라 한번 봐주었는데 감상평은 재미없다에 가깝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무협영화의 시초에 해당하는 영화인만큼 지금 무협영화의 템포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무리 뽀다구가 좋아도 적절한 스토리가 없으면 그 영화는 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딱 그러했다. 초반부가 너무 지겨워 죽는줄 알았다. 초기 무협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화면은 꽤 압도적인 구석이 있지만 스토리라인은 영 엉망이다. 3시간이나 되는 영화인데 시간배분에 참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벙한 총각이 갑자기 탈주자들의 브레인이 되는 것도 좀 어이없지만 뜬금없이 등장하는 법사의 존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ExMachina)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역광속에서 장엄하게 손을 들곤 하는 법사는 완전 개그맨이라고 할 수 있다. -_-

하지만 이 영화에는 몇가지 인상적인 것들이 있었다. 액션을 묘사하는 카메라의 관점이 매우 다양했고 액션장면에서 대자연과 협객들의 움직임을 합일되게 묘사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봐도 상당히 세련된 편이고 시대를 생각해보면 아주 혁신적이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모든 무협영화는 호금전이 만들어놓은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와호장룡이나 영웅같은 폼생폼사 무협물은 누가 좀 더 요란하게 따라할 수 있는가의 경연장일 뿐이다.
마지막에 스님의 공격을 받은 관리가 한 대 심하게 맞고나서 영 정신을 못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관리는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자기편을 공격하기도 하고, 사막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다 결국 죽는데 홍콩영화중에서 이런 묘사를 시도한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보통 이런 장면은 나는 누구냐따위를 묻거나 아니면 고뇌하는 청춘들을 다룬 유럽영화에서나 보일듯한 묘사였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쿠로사와아키라의 그림자를 느꼈다. 여자 무사가 주인공이고 아름답지만 가끔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은 숨은요새의세악인이 연상되었고 적들을 코너로 유인하여 섬멸한다는 설정이나 전투장면의 현란한 카메라워크에서 칠인의사무라이를 떠올렸다. 쿠로사와쪽이 십년이상 선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존재감은 참 압도적이다.

그 외에 이 영화에 쏟아진 불교적이고 뭐 호금전이 가진 교양이 녹아들어있다는 둥 이런 평가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선의 손길A Touch of Zen이라는 영어제목은 그냥 젠이라는 이름으로 양놈들을 혹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딱히 선적인 묘사가 드러나진 않는다. 요재지이의 스토리라인 자체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보이는데 이정도밖에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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