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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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玄美
기본 정보
본명 김명선
金明善
출생 1937년 1월 28일(1937-01-28) (87세)
평안남도 평양시
직업 가수, 작사가, 영화배우, 방송인
활동 시기 1957년 ~ 현재
가족 이영곤(첫째아들)
이영준(둘째아들)
원준희(둘째며느리)
한상진(조카)
박정은(조카며느리)
노사봉(조카딸)
노사연(조카딸)
이무송(조카사위)
아일리(조카딸)
종교 개신교(장로회)

현미(玄美, 본명: 김명선(金明善), 1937년 1월 28일 ~ )는 대한민국가수이다. 1957년 미8군 무용수로 처음 활동하였고 1962년 정식 가수 데뷔하였으며 1966년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1 생애[ | ]

현미는 1937년 1월 28일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원래는 출생지였던 평양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한창 전개되던 1951년에 1.4 후퇴를 계기로 월남하게 되었다.

월남 후, 1957년 미 8군 무대에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펑크가 난 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1958년 미8군 SHOW 무대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으며 1962년이봉조가 개사/편곡한 <밤안개>라는 곡으로 가요에 정식 데뷔하였다(원곡은 Nat King Cole의 It's A Lonesome Old Town). 이 곡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963년에는 <보고싶은 얼굴>이라는 곡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패티 김, 이미자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 가수로서 인지도를 넓혀갔다.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을 줬고 그때부터 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 이봉조의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편, 1998년에는 48년만에 이북가족과 상봉하였다.

53번째 앨범을 발표하였고, 방송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였으며, 노래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2 학력[ | ]

3 경력[ | ]

  • 2012년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홍보대사>
  • 2010년 <현미먹기운동 홍보대사>

4 대표곡[ | ]

  • 1962년 <밤안개>
  • 1963년 <보고 싶은 얼굴>
  • 1964년 <떠날 때는 말 없이>
  • 1966년 <무작정 좋았어요>
  • 1967년 <몽땅 내 사랑>

5 방송 활동[ | ]

6 기타[ | ]

  • 가수이자 대학 교수인 옥주현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현미를 무례한 태도로 대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심사위원이였던 현미와 이승철은 출연자들에 대하여 관대한 평을 내린데 반하여 옥주현은 엄격한 기준을 들어 불합격시켰으며 간간히 동료 심사위원의 말을 끊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현미는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다는 점도 분명 좋은 것이다"라며 후배 옥주현을 격려했고,[1] 슈퍼스타 K 제작진도 옥주현의 심사가 결과적으로 심사 과정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2].
  • 현미는 이봉조의 아이를 임신 한 뒤 혼인신고를 하러 갔으나 이봉조는 이미 유부남이었다. 이후 이봉조는 이혼서류를 내밀며 현미와의 동거를 원했으나 그 이혼서류는 가짜였고 현미는 이로 인해 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이봉조와는 20년간 같이 살았으며 현미와 이봉조 사이에는 아들이 2명 있다.

7 가계[ | ]

유부남인 작곡가 이봉조와의 사이에 사생아를 두었는데, 이영곤과 이영준이 그들이다.[3][4][5]

8 같이 보기[ | ]

9 각주[ | ]

10 외부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