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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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蒼頡たち漢字神話ユートピア
창힐의 향연 - 한자의 신화와 유토피아

   

2 책소개 (알라딘)[ | ]

창힐은 <한비자> <여씨춘추> <회남자> <설문해자> 등에서 '조수(鳥獸)의 발자국을 보고 한자를 만들었다'고 종종 이야기되는 한자창제설의 주인공 . 이 책은 중국인이 자신들의 '네눈박이' 선조(창힐)가 창조한 이 특별한 문자를 익히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과 쾌락의 기록이다.

즉 '눈이 두 개 부족한' 범인(凡人)들이 한자라는 발명품을 능란하게 다루지 못하고 얼마나 버거워했는지, 그래서 한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회의 또는 혐오하고 그것과 싸워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는 의문에 대해 방대한 지식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한자와 중국어의 역사를 돌아보고, 문자와 인간 사이에 펼쳐진 애증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3 # 거북이[ | ]

한자라는 매혹적인 주제를 다루기로 한 다케다 마사야는 자신이 낄낄거리면서 얘기했던 한자도취자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있을 것이다. 그는 한자에 관해 엄청나게 복잡하게 엮여있는 문제들을 이 작은 책자에 엮어넣으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는데, 그것은 한자에 대한 그의 애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자의 복잡함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서구인에 비친 한자의 모습과 보편문자를 쓰고자하는 열정에 대해 소개한 다음 본론으로 중국인들이 어떻게 문자개혁을 시도했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산 것은 순전히 나 역시 한자도취자(후보생)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좋아하네 어쩌네 하는 얘기를 하면 (내 주변 여자애들 표현으로) 변스럽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골치아픈게 뭐가 좋냐 이거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단어들의 태반이 한자어라는 뻔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한자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가깝다. 당장 한글의 최초 구상의도중 하나가 한자에 제대로 된 발음기호를 달아주자는 것이었던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한자를 일상에서 퇴출시켰고 우리보다 훨씬 복잡한 한자사용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 열심히 일상에서 한자를 쓰고있지만 한글은 한 글자가 한자 한 자에 대응하도록 체계적으로 구상된 문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한자에 대해 애증의 마음은 어떻게든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러한 마음에 대해 사도-마조히즘이라는 표현을 쓰고있다. 한자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아서 잘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나는 한자를 좋아하고 있는거 같다.

이 책의 본론에 해당하는 중국의 문자개혁운동을 보면 저자의 표현대로 ‘골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긴다는 말이다. 비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같이 허우적대고 있긴 한데 저 사람이 허우적대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동질감도 느껴지고 그러면서도 웃기기도 하는 그러한 기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 니콜라 트리고(1577-1628)가 선교사들을 위한 중국어 교본 ‘서유이목자’를 만들면서 시도한 중국어의 로마자화는 이후 중국의 음운학자들에게 로마자라는 표음문자체계로 충격을 준다. 청조의 언어학자들은 성모와 운모를 조합하여 중국의 모든 음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진행한 것이다. 이와 함께 반절의 대대적 개량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만주족의 왕조였고 또 여러 소수민족들을 정벌해 중국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구축했던 청조의 특성상 다양한 언어를 소통하게 할 수 있는 사전들이 만들어졌다.

청말에 이르러 점차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번역이 일상화되자 표의문자인 한자 자체의 문제점이 크게 인식되게 되었다. 모두 자기식으로 고유명사를 번역하여 사용한 나머지 언어의 사회성이 무너지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대체할 수 있는 신 문자를 개발하여 공포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창힐의 향연’이라고 표현했다. 속기, 전보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형태의 기괴한 문자들이 청말에 쏟아져나왔다. 이것들 중 새로운 문자를 만들거나 한자를 파자/변형하여 만든 것들이 현재의 주음부호라는 형태로 남았고, 로마자를 이용하여 표기하려는 흐름은 핑인이라는 형태로 현재 쓰이고 있다.

혼란이 길었던 것에 비해 주음부호와 병음이 성립된 과정은 꽤 훌륭하다. 중화민국 성립직후 위안스카이의 명령으로 독음통일회라는 회의가 구성되었고 여기서 주음부호가 정립된 것이다. 중국혁명이 끝나고 1949년 중국문자개혁협회가 성립된 이후 58년 핑인이 정립될 때까지 천여종, 그리고 그 이후로도 천여종 이상의 중국어 표음문자방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 한자현대화연구회가 구성되어 마오쩌둥의 지시대로 간자체가 만들어진다. 이런 식으로 표준화가 진행되어 현재의 중국어 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계속 신문자 디자인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역사를 보면서 저자와 우리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비웃음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러한 일은 우리들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가 한글로마자표기법을 50년간 무려 4차례에 걸쳐 뒤집어엎는 짓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진보적인 방향이 아니라 전진, 퇴보, 더 퇴보, 다시 원상복귀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글이 획기적인 표음문자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외국인들에게는 미지의 문자임이 분명하다면 윈도우 상에서의 로마자 입력법(IME) 등에 관심을 가져야 정상인데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고있다. 새로운 외국인명이 들어오면 아직도 우리는 다니엘이냐 대니얼이냐를 놓고 자기들 맘대로 쓰고있다.

이 책이 아쉬운 것은 문자체계 변천의 역사만을 다루는 터라 정작 문자체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개의 창힐들이 만든 대표적인 문자체계와 음운체계를 설명하고 그것의 장단점들에 대해 서술하였더라면 더할나위없이 재미있는 책이었을텐데 여기서는 그냥 도판을 소개하는 것 정도로 끝내고 있다. 하긴 작가는 기본적으로 유희를 즐기는 입장에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그 정도가 적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영 유희정도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 역시 거북이한글로마자표기법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 하나의 창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바벨적인 상황을 즐기고싶진 않고, 어서 제대로 된 표준이 나와서 나와 다른 창힐들을 만족시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 거북이 2005-10-2 1:21 pm

4 같이 보기[ | ]

5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