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다

2002 10 25 金 : 줍다[ | ]

오늘은 사진이 없다. 일기장이 없어진 마당에 사진찍게 생겼는가? -_-a

아침에 일기장이 없어진 것을 알다. 한참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절망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짚히는 곳이 있었다. 어제 엽서를 썼던 그곳이다. 같이 가준다는 우람의 말은 고마웠지만 그런걸로 괜히 같이 마음고생할 필요는 없으니 이녀석은 다른데 가서 놀라그러고 혼자 톨레도로 다시 왔다.
어제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톨레도로 가서 나는 혼자 갈 생각으로 버스에 올라탔는데 타고보니 그 사람들이 타고있더라. 지하철을 타고왔으면 좋았을텐데 다들 버스를 타고와서 꽤 돌았나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웃고 즐길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묻는 말에나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좀 쉬었다. 차라리 혼자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말이 들리니까 귀에 꽂힌다.
어쨌거나 나는 어제 한번 와봤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이드역할을 하게되었다. 나는 일기장을 찾으러 먼저 휭하고 내려왔는데 다들 멋진 경치가 있다는 곳을 먼저 보자고 하여 같이 왔다. 나는 오자마자 내가 앉았던 자리를 확인했다. 엽서는 그대로 아래에 떨어져있었지만 역시 일기장이 없다. 바로 옆에있는 정체모를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혹시 여기서 다이어리 못봤니?
(화사한 얼굴로) 아~ 여기 있어.
와우! 다행이다. 그거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거야. 잘 챙겨줘서 고마워.
안보려했지만 주소같은 것을 봐야했기에 조금 들춰봤어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아 맨 뒤에 연락처를 적어두긴 했습니다만... 한국어이고 날림 글씨라서 알아보긴 어려우셨을거 같아요.

정말 다행이다. 이건 내 한달의 기록이었는데 이것이 날아가면 그 한달을 되새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톨레도 강을 보면서 안도감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 볼까하다가 지나가버린 싼타 크루즈 교회를 가봤는데 여기는 엘그레코의 그림이 딱 한점 걸려있다. 그런데도 돈을 받는다, 사악하긴. 뭐 그 그림은 꽤 중요한 그림이라고 하긴 하더라만.
중심가쪽으로 나오니 아까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보여서 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다들 쓱쓱 둘러봤는지 이제 가도 되겠다는 분위기다. 나는 어차피 어제 봤으니 빨리 가는게 더 좋았고 오늘 떠나는 사람도 있어 다들 일찍 나와 마드리드로 들어갔다.

시간이 조금 비어 성 페르난도 미술관에 갔다. 뭐 역시 별로 볼건 없다.

  • Jans Jannsen / Caridad 여인이 죄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그림인데 이거 원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다. 이런 테마의 그림들이 좀 있더구먼.
  • Jose Leonardo / Serpiente de Metal 뱀들의 사악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 고야 / Sardina Casa de Locos / Procession de Disciplinantes / Escena de Inquisicion
  • Giuseppe Arcimboldo / Primavera

여기서 아줌마 직원들이 나에게 2층은 문닫았고 미술관 폐관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말했나보다. 나는 아직 30분은 남아있으니 더 보겠다고 했는데 이 말이 전달이 잘 안되었는지 영어 할줄아는 사람 데려오고 난리다. 와~ 친절하고싶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한줄도 못하냐...너무하지 싶다. 겨우 어리버리 얘기한 끝에 나는 좀 더 구경했고 펜을 안가져왔었기 때문에 펜좀 빌려달라고 해서 그것으로 작가들 이름을 좀 적었다.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미술관에도 영어 설명따위는 없다고 한다. 유럽 놈들의 알량한 자존심들 하고는...-.-

나와서 섹스샵에 들렸다. 그냥 도색잡지와 비디오를 주로 파는 곳이다. 몇가지 성인들의 장난감들이 있긴 하지만 글쎄 별로 좋아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오지게 비싸기만 하다. 가끔 야한 그림들에서 보던 하이퀄리티의 성인 장난감들은 도대체 하나에 얼마씩 하는것일까. -_- 여튼 저질 바이브레이터도 몇만원씩이나 한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막혀있는 공간이 하나씩 있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핍쇼인가 싶다. 눈을 들이대고 구멍으로 쇼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 말이다. 뭐 들어가서 확인해본 것이 아니니 내가 알게뭐냐. 재미없어서 금방 나왔다.

아침에 새끼돼지를 먹자고 했던 팀을 기다리고 있는데 안들어온다. 아 배신자들~ 엇그제 먹던 씨리얼이나 집어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왔더라. 자기들끼리 먹고왔다고. 흑.
그나저나 그들은 왠 한국인 여자애를 하나 데리고 왔는데 이 여자애는 노숙을 밥먹듯 하는 애라고 한다. 흐미~ 추워죽겠는데 여자애가 노숙이라니. 그런데 이 녀석은 노숙해도 하나도 안피곤하고 좋다고 주장하네. 독특한 캐릭터다. 모두 함께 바에 가기로 했다. 맥주 한잔만 시키면 플라멩코를 실컷 볼 수 있다고 하네. 마드리드에서 하는 것은 어떤 수준인가 볼 겸 가봤다.
아 여기의 플라멩코는 세비야에서 본 것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는 것이었는데 다들 열심히는 해서 봐줬다. 역시 성의가 중요한게야. 우람은 모던아트들 중에서 가끔 엄청난 노가다로 만들어진 것들에 대해서 호평을 하곤했다. 성의가 중요하다면서. 하하.
여튼 여기의 댄서들은 형편없는 발놀림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몸매들이 좋고 치마를 많이 움직이는 등 아저씨들 취향에 맞는 좀 더 대중적인 춤을 추었다. 선술집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들 브라도 안하고 몸매가 잘 드러나는 질감(이런게 벨벳인가? 빌로드?)의 옷을 입은 것이 영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옆에 있는 예의 그 노숙처자는 그림도 그리고 박수도 치는 등 즐기고 있다. 내가 글로 쓰는 것을 이 녀석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듯 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감성의 소유자인듯. 여튼 열심히 즐기더니 나에게 대뜸 좋은 음반들을 골라달라고 한다. 어제 소개할 때 음악좋아한다는 말은 했었으니까. 가볍게 40-50장 정도만 적어주었다. 과연 얼마나 찾아들을 것인가? 이거 다 찾아듣다보면 정서함양에 큰 도움이 될 것인데. ^^ 여튼 예술을 즐기는데 끈기와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적어도 호기심 하나는 확실히 있는 스타일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흡족해진다.
오늘 같이 다닌 사람들 중 한명은 디자이너이고 한명은 요리사이다. 특히 이 요리사 친구는 음식 먹는 것이 테마라서 돈이 좀 들더라도 이것저것 먹고다니는 것 같다. 그리고 적극적이며 재미있는 표정을 가지고있고 붙임성이 있다. 뭐랄까 이렇게 사람들이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재미가 있다. 나는 정말 범생처럼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부럽기도 하고.
같이 다니던 누나가 결국 노숙 꼬마를 혼자 재울 수 없다고 같이 나가서 노숙을 한단다. 하여간 대단하다. 다음날 들어보니 밤새 떠들고 잠을 안잤다고 하더군. 나는 잠못자면 죽갔던데. 노숙꼬마는 나보다 한달이나 더 여행을 한 상태인데도 말이다. 이건 역마살이 낀 것이 분명하다.

이 시간에 우람은 어학연수중에 알던 스페인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그 친구가 이쁜 여자애들을 데리고 오는 바람에 놀아주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그쪽은 당연히 우람이 나와 나올줄 알고 두명이나 데리고 나왔던거다. 니놈이 친구냐? T_T 민박집에 메모라도 남겼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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