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10월[ | ]

1

10월이야,
누군가 귓가에 가만히 속삭인다.

해 저문 뒤
저 혼자 모래성을 쌓다가 허물고 다시 쌓던
아이마저 돌아가면
비로소 바다는 저 혼자 남아 저문다.
날아가버린 물새떼의 발자국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파도는 추억 많은 여자처럼
저 혼자 영원히 반복하는 뒤척거림을 한다.
나이 들어 잠 못 드는 밤이 부쩍 많아진다.

2

세상의 어떤 문들은
끝내 열려진 채로 있고
세상의 어떤 문들은
한번 닫힌 뒤엔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어떤 편지들은 씌어지지 않은 채
부쳐지고
어떤 편지들은 受取人 불명으로 되돌아온다.

3

눈먼 비들이 발목 시렵다고
허공에서 캄캄히 소리친다.

가랑잎 밟으며 가는 눈먼 비의 뒷모습을 쫓다가 그만둔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古城의 오래된 벽에 자라는 푸른 이끼들을
그것이 오랜 特病과 같은 슬픔이라 한들
난 어쩌지 못한다.

헐값에 장기 임대받았던 많은 계절들이여,

10월에는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마른 채 손 끝에서 부서져내리는
지난해의 꽃잎 냄새를 맡는다.

3

10월이야,
누군가 귓가에 가만히 속삭인다.

오늘 슬픔의 미결수가 되어
또, 한 계절을 떠나보낸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월의 모서리에 서 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ㅂ' 탓인가. 괜시리 시리다. - LaFolia, 2001.10.31

시인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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