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1 개요[편집]

(프랑스어) L'Etranger
(영어) The Outsider, The Stranger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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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 소개[편집]

1942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처녀작이자 출세작.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여자 친구인 마리와 해수욕을 하고 희극영화를 본다. 그리고 밤에는 마리와 정사(情事)를 가진다.

며칠 뒤 일요일에는 해변에서 우연히 친구 레이몽과 다투고 있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그는 왜 죽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햇빛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재판관, 검사, 변호사는 물론, 일상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내고 사형이 선고된다.

그는 재판과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며, 속죄의 기도를 거부하고 고독한 이방인으로 사형집행일을 기다린다. 감방의 창을 통해 보이는 별과 하늘과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그가 인생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처형되는 날은 많은 군중이 밀려들 것을 기대하며 이 소설은 끝난다.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뫼르소의 행동을 그려, 근원적인 인생의 부조리를 나타낸 작품이다. 앙드레 말로에 의해 발간되었다.

3 # 거북이[편집]

실존주의니 뭐니하는 말은 나에겐 1+1=2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열심히 살고있고 그것이 나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뭔가에 빠져들어서 그것에 탐닉하며, 그리고 시시때때로 치밀어 올라오는 나의 욕망에 대응해주며 사는 그것이 나의 실존주의이다. 나는 방금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올맨 부라더스 밴드를 듣고있었는데 그 싸이키델릭한 잼 세션 연주에 무릎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실존에 대해 의문 자체를 가지지 않는다.
내가 누구냐를 물어보는 것은 모든 것이 실존주의이며 그것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르트르와 싸웠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카뮈는 자신을 실존주의자로 규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리라 하고 나는 내맘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에게 이방인이라는 소설이 주는 감흥은 실존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내가 놀랐던 것은 상황에 대해 묘하게 절묘한 묘사를 해낸 카뮈의 필력이다. 그 공감각적이고 영화적인 묘사를 통해 지중해의 땡볕에 마비될 듯한 그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이태리 흑백영화에서도, 아무것도 없어 하품이 날 정도로 나른했던 스페인 남부에서도 느낀 그 미치도록 지겨운 백색의 작열이 다시 떠오른다. 알제리에서 카뮈는 그런 작열을 수도없이 느꼈을거다. "태양의 열기가내 뺨에 와닿았고, 눈썹에 땀방울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를 매장하던 그날의 태양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 바로 그때 삭막하면서도 귀를 째는듯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떨어뜨렸다."(이정림 옮김, p88)

2부로 나뉘어진 이 소설의 1부는 주인공 뫼르소가 충동적 살인을 하기까지의 배경설명에 해당되고 2부는 살인한 후 사형집행까지 뫼르소가 겪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나에겐 2부가 압도적으로 재미있었고 1부는 그것의 준비작업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든지 주인공 뫼르소를 변호할 용의가 있다. 그는 말할수없는 무기력 속에서 애인의 다리가 자신을 감아들 때 느끼는 욕정 정도에나 겨우 반응하는 사람이다. 감옥에 갇혀있는 주제에 "그녀의 어깨를 껴안아주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고운 옷감이 탐났다."(p95)고 말하는 그는 탐미주이자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지만 그가 방아쇠를 당긴 것조차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윤리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규칙같은 것이지만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강제될 때 그것은 말도안되는 억압으로 변하는 것이다. 뫼르소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선에서 그의 윤리적 일탈은 적어도 나에겐 긍정적인 것이다. 사실 뫼르소는 그다지 일탈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자신에게 솔직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고나서 진정으로 후회한다기보다는 어떤 권태감을 느끼고있다고 말했다."(p91) 물론 이런 녀석이 눈앞에 있으면 짜증이 날거다. 그렇다고 후려칠 필요는 없잖은가. 그저 나와 엮이지만 않으면 되는거지.

실존주의니 뭐니하는 부분을 일단 넘어간다고 하면 이 소설이 말하는 두번째 주제는 바로 사형이라는 사회적 살인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이다. 카뮈는 '단두대에 대한 성찰'이라는 글을 쓸 정도로 사형제도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람이고 이 소설에도 그러한 부분이 잘 담겨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혼자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 누구도 형무소에서의 밤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p103) 프랑스에서는 82년에 사형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고 한다. 뭐 사실 사형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도 많기 때문에 사형제도의 유무가 사법시스템이나 사회 유지에 타격을 줄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싶어한다면 사형 제도는 사실 폐지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도 사형시키지 못한 나라에 사형 제도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뫼르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사실 나도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바쁘게 뭔가에 열중하여 그 기분을 '외면'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외면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결과적으로 나는 허무감과 고독감을 안느끼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저렇게 적은 것은 그만큼 나는 그 '외면'에 자주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럴때는 뫼르소처럼 이런 기분을 가져도 좋을지 모른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불행에서 나를 건져내주고 희망을 안겨주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 징후와 별들이 가득찬 이 밤앞에서 처음으로 이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이 세계가 이렇게도 나와 비슷하고 마침내는 형제와같이 느끼게되니, 나는 행복했었고 또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p150) -- 거북이 2005-2-17 1:01 am

4 # 촌평[편집]


위에 언급된 "언젠가 보았던 이태리 흑백 영화"; 안토니오니의 일식일 거라는 직감이 왔어요. 아니나다를까. 화면 속 깊은 우울과 권태와 고독. 뭐 그런 것. 우리나라에는 [태양은 외로워]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었다죠. [1]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도 인상적인 영화였고. [공포의 보수]도 고독한 실존의 모험이 무언지 보여주는 멋진 영화죠. 정작 소설보다는 계속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 공 2005-2-24 1:22 am

실존주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지금식으로 말하면 다들 폼생폼사인지도 몰라요. :) -- 거북이 2005-2-24 2:32 am

기분은형이상학이라는 만화책에 보면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태양열로 달리는 인공지능 자동차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자동차가 갑자기 달려 나가서 사람을
치었나...아님 칠 뻔 했나...뭐 그런 일이 생겼는데, 그 일로 사람들이 자동차를 추궁하자...


그 자동차의 대답은..."태양이 눈부셔서..."였나, "햇볕이 뜨거워서..."였나...뭐 그런...


이방인 하면 항상 생각나는 컷이지 :-) -- SonDon 2005-2-17 1:09 am

재미있구만. 함 찾아주게. ㅎㅎ -- 거북이 2005-2-17 9:5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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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기분은 형이상학>이고, Hiroyuki Sugahara의 1987년 작이라고 되어 있네. 서울문화사에서 1998년에 나왔고, 원제는 <기분은 형이상>인듯...내가 1권 ~ 5권까지는 과방에 기증한 덕에 아직 학교에 책이 남아 있어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네 :-) -- SonDon 2005-2-22 12:42 pm

오 고마우이. 웃기는 면이 있군. 과방에서 가져와 임대해주지 않으려나? 그리고 최규석의 짜장면을 샀으니 공룡둘리와 교환해서 보세. 한권 샀으니 빌려읽을 권리가 좀 생긴걸까나~ -- 거북이 2005-2-22 1:18 pm

5 같이 보기[편집]

6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