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시간버는법

1 # 은행에서 시간버는 법[ | ]

제목을 고심하다가 결국은 재미없게 정해버렸다. 꼭지 제목은 중요한게 아니고, 오늘 오후에 은행에 들렀다가 아주 작은 경험에서 느낀 바가 있어서 몇자 적어두고자 한다.

은행 일을 보려고 들르면 어지간한 지점들은 늘상 대기고객이 의자를 꽉꽉 채우고 있고, 번호표는 수십명 밀려있기 일쑤라서 바쁜 와중에 낭패를 본 기억들이 다들 한두번 있으리라. 필자 또한 인터넷 뱅킹과 자동이체를 최대한 활용은 하지만 지점 창구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건들도 솔찮게 많은게 사실이다. 사무실 근처지점은 거래기업 직원, 주변 직장인과 상인들이 많아서 밀리고 주택가 쪽은 주부들이 밀려들어 오래 걸리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행원들의 일처리 능력에 따라서도 그날의 고객중 고문관의 존재여부에 따라서도 적체현상은 더욱 심해지곤 하는 것인데...은행에서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은 자투리이면서도 가장 비효율적으로 날려버리기 쉬운 시간들이다. 실상 그곳에서 무언가 다른 꺼리를 찾아 유익한 자투리시간을 채운다는건 쉽지않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가능한 한 빠른 시간내에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게 최선이며 실제로 방법이 무방비로 공개되어있는데도 사람들이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성으로 볼일을 보러 아무 은행이나 들른 특수한 경우면 모를까 대부분은 본인이 늘 거래하는 소위 주거래은행에서 일을 볼 확률이 높다는 데에서 출발해보자.

최근 PB 바람 등을 타기도 했고 대형 시중은행 간 이합집산 이후로 서비스 경쟁도 불 붙었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이 기존 고객들을 유지하고자 다양한 메리트를 고객들을 위해 제공하고 있는데 기본적인 것중에 하나가 거래 실적에 따라 차등 계급을 부여하고 차별화된 서비스 등급을 둠으로써 철저히 80/20적 마케팅을 벌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은행별로 자격부여기준이나 혜택의 내용, 기타 제반조건들이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취지의 시스템은 공통적으로 차용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재테크의 관점에서는 주거래은행이라는 개념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주거래고객을 우대한다는 메리트들 중에서 고액의 예대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인게 더 많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럴바엔 한푼의 이자라도 더 주는 곳을 찾아 끊임없는 헌팅을 나서는게 실속있는 짓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주된 거래(예를 들어 급여이체 또는 대출원리금 자동이체)를 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은행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기서 주의할건 공과금자동이체 통장 따위로 주거래란 생각은 하지않기를 바란다. 은행에서 믿을만한 것(담보)도, 돈될것도(예적금이나 대출이자) 없는 거래는 수백건을 한다해도 은행에서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여하튼 자의건 타의건 주로 거래를 하게되서 자주 들르는 은행이라면 한번쯤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아들고 아까운 시간을 은행에서 버리는 우를 최소화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정리해본다. 참고로 나의 주거래은행은 우리은행이므로 우리은행의 경우를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오늘 점심시간에 화정역 우리은행에 수표입금을 위해 들렀었다. 일반 창구는 5개중 4곳이 거의 Full로 돌고있지만 대기표는 20명에 육박하고있고 365코너에도 언제나처럼 바.글.바.글.

바로 옆에는 대출상담및신규해지전용창구(줄여서 흔히 상담창구)가 세개 정도의 창구를 마련해놓고있으나 항상 새거래를 트려고 오는 고객들이 많은 것은 아니니까 비교적 한산하다. 그래도 오늘 따라 6명~7명의 대기자가 이어지는 분위기.

2층은 프레스티지로열클럽과 외환창구, 그리고 역시 대출상담코너가 이어져있다. 이곳은 두개의 창구뿐이지만 아예 손님이 없다.

눈치 빠르면 이쯤에서 무슨 얘길하고싶은지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층의 상담창구와 2층의 상담창구는 각각 겸하고있는 기능이 있다. 1층의 경우 우리은행에서 지정하는 우수고객 전용창구이고 2층은 Best고객과 VIP고객 전용창구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저 한산한 창구들을 이용하면 언제고 내가 원하는 용무를 기다림없이 신속하게 볼 수 있는 여건이 대부분의 지점에서 가능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VIP고객에 Best에 뽑힐 수 있는건가? 매년 실시하는 종합소득세신고에서 금융소득만 몇천만원씩 되어야만 되는거 아닐까? 나야 뭐 은행에서 마이너스만 잔뜩 얻어쓰고있으니까...라고 행여나 생각한다면 당신은 현재의 경제구조에서 작은 부자나마 되기는 글른 사람이다.

나는 우리은행의 Best고객이다. 잘났다 그래...라고 할게 아니다. 내가 바로 빚만 잔뜩 안고있는 고객이기 때문이다. 다 그런건지는 확인해봐야지만 고객등급이란 당연히 예대실적을 합산하여 평가하게끔 되어있다. 우리들은 이제까지 은행에 너무 저자세로 살아온 감도 없지않다. 내가 생이자 물어가면서 지들 돈 가져다쓰고 수익 올려주고있는데 왜 비굴한 태도를 보여야만 하는가 싶다. 사정이 안좋아서 이자나 원금 연체가 되면 세상 다 산듯 고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돈을 받아야 할, 아쉬운 처지의 은행인데 말이다.

자꾸 이야기 전개가 새는 느낌인데 어쨌든 난 당당히 2층으로 올라가서 전표와 수표, 신분증을 내밀고 아래에 오늘따라 사람이 많아서 평소엔 1층 우수고객 코너에서 그냥 일을 보는데 Best고객창구까지 올라오게 되었노라 이야기를 건넸다. 물론 행원아가씨는 웃으며 다음부터는 주저없이 2층으로 오셔서 편리하게 이용하시란 말을 잊지않는다. 수표 입금처리가 끝나고 한마디 보태는 행원. "손님은 best고객으로 등록되어있진 않은데요? 3개월마다 갱신하니까 지난번에 누락되셨거나 이번에 새로 추가되시거나 하겠네요..." "어? 그래요? 이상하네? 별로 바뀐것 없을텐데?" 능청을 떨면서 난 내 볼일 다 보고 유유히 은행을 나섰다. 그렇다. 사실 이 상황에서 best고객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은 실수가 있었지만 (실제로 이 등급을 손수 확인해볼 방법은 별로 없는듯 싶다) 그 행원의 입장에서도 어쨌거나 정상거래중인 고객이고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상황에서 나를 쫓아내려보냈을리는 만무하다. 요즘같은 무한경쟁 속의 은행권이 그런 담대한 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창구에서 못 벗어나고 자신들의 작지만 편리한 권리를 못 찾아먹고 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은행에서 그런 점들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진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잘못 찾아오더라도 쫓아내진 않을지언정, 모르고 못오는 사람 일부러 불러서 일 봐주진 않는다는 얘기다. 이야기 속의 화정 우리은행 지점에서도 1층 상담코너에는 별도번호표지급기에 작게 우수고객코너 라고 붙어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거나 안내하는 표지로선 너무 약하다. 얍삽해보이는 속보이는 짓이다. 그러나 당연하다. 상담코너, 대출 외환코너 등의 텔러들은 나름대로 시니어급들이라고 알고 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10여명의 잡무를 들고오는 고객을 일일이 상대하기보다는 오전 내내 1명의 손님만 붙들고있더라도 굵직한 대출건을 만들어내는 창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거래은행에 가서 어딜 먼저 기웃거려야 되는지 답이 나온다. 가급적이면 옷과 머리 등은 신경써주면 더욱 쉬워지겠다. -- BrainSalad 2003-3-26 1:34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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