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마

간만에 녀석을 만났다.
머릿속은 복잡한 주제에 항상 천진한 웃음을 보여준다.

녀석이 액자 하나를 산다고 한 삼십분은 방황하다가 결국 못샀다. 그래도 별로 지루해하지 않았으니 하하 나의 인내심은 나날이 늘어가는가.

배도 부르고 해서 저녁은 됐고 같이 햄버거집에나 들렀는데 이녀석이 손으로 빨대를 꼼지락거리다가 장미라고 준다.
"오늘이 로즈데이라 주는거냐? ㅎㅎ"
이녀석은 더 치장을 해서 꽤 볼만한 장미꽃을 만들어 주었다. 대단한 녀석이다. 나보다는 확실히 감수성이 예민하군.

이녀석도 어지간히 감성이 예민하고 게다가 사회과학도라서 상당히 정치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데...
녀석과 얘기하다가 내가 차가운 넘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나도 알고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개개인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이다.
인간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는 시스템에 대해 분노하는 나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은걸까?
예전 여자친구도 화를 낼줄 모르는 것은 그만큼 삶의 폭이 좁은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나에게 좀 더 느슨해지고 자기애를 가져보라 말했다.
나는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만 글쎄 이녀석은 관찰자로서의 나인 토트를 느낀 것이 아닐런지.

늦게까지 있는것을 좋아하는 녀석은 아니라서 곧 일어났는데 또 어딜 가잔다.
허걱하고 잠시 놀랐지만 역시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 나. 능청스러운걸까?
녀석이 데리고 간 곳은 꽃집이었다.
나는 가자마자 '꽃배달 위장 강도'라는 황신혜밴드의 곡이 생각났는데 내가 이상한걸까?
사람들 복작복작한 것을 보니 로즈데이와 스승의날 대목을 만나서 그런가보다.

녀석은 꽃을 하나 사주겠다고 한다.
답군~하면서 쭈삣쭈삣하고 있던 나는 이꽃 저꽃을 방황하던 녀석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강요에 못이겨 하나 선택했다.
'율마'라고 침엽수 분위기의 허브다.
꽃집언니의 '걔는 물 좋아해요~'라고 하는 말을 뒤로하며 난 손바닥에 율마를 올려두고 걸었다.
녀석이 이름지어주고 친하게 지내란다.
토트라고 지어버릴까? ㅎㅎ

갑자기 레옹이 되어버린 나는 아무 생각없이 터벅터벅 걸어와 가방을 벗고 율마에게 물을 주었다. --거북이(2002-05-14)


율마는 오래 살리지 못하고 죽였다. -_-

이후에도 이 녀석은 나에게 가끔 인상적인 선물을 해주곤 했는데, 하나는 풍경 역할을 하는 조그만 샹들리에(?)였다. 움직이다 닿으면 띠링 하고 소리가 울리는. 그리고 얼마전에는 동화책을 한권 받았다. ISBN 8901031191 이 그것이다. 이 녀석이 주는건 나를 약간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는듯 하다. -- 거북이 2007-9-8 12:1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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