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이야기

YunDoHyeon

1 # 윤도현 and 밴드는 어디로?[ | ]

제 목:[뽕] 윤도현1 관련자료:없음 [426] 보낸이:최보영 (고요라침) 1998-10-12 15:39 조회:101

나우누리 얼트바이러스에서 퍼온 글....
저 개인적으로는 노래 잘하는 윤도현을 좋아함다.
아래글은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깊은 고민 아래 쓰여진 글인 것 같아 소개합니다.

제 목:[ara21/가입글] 윤도현1 올린이:ravel52 (장호연 ) 98/05/28 08:31 읽음:281 관련자료 없음

윤도현 and 밴드는 어디로?

1.들어가며 2.세기말 민중가수의 초상 3.진정한 록커에서 한국적 록밴드로 4.윤밴드와 여성팬 5.나오며

1.들어가며

윤도현과 윤도현밴드에 대한 얼바인(혹은 얼바의 공식 입장을 대표하 는 3인방?)의 반응은 심드렁 혹은 냉랭으로 요약해도 크게 빗나가지 않 을 것이다. 네오펑크를 지나 포스트록 씬을 cool하게 관조(?)하는 얼바 인에게 저 고색창연한 70년대의 사운드에 메시지는 열라 거창한 윤밴 드의 음악이 어설픈(혹은 어긋난) 포플리즘으로 보여서인지... 아님 강* 아저씨가 핏대 올리며 홍보성 평론을 써대 지즐려버렸는지... 모르겠다.
분명한건 개인 혹은 집단의 기호(가치?)에 따라 일축하고 넘어가기에는 윤밴드가 너무나 빠른 시간에 록필드의 중심부에 진입해버렸고, 그들을 둘러싼 숱한 담론은 90년대 록음악을 해명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데뷔 후 두 장, 밴드의 라인업을 갖춘 후 단 한 장의 음반을 내고, 윤밴드는 공중파 T.V와 록음악을 선별하여 들려주는 전 문 음악프로그램에 동시에 출연하는 거대밴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넥스트가 떠난 무주공산에 그런대로 가까이 가있는 'Post N.EX.T'(록 을 대중화할 수 있는, 그러니까 명분도 유지하면서 잘나가는 밴드)의 유력한 후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과 조우하게 된다. 넥스트는 대학가요제 입상 으로 가요계 입성 신고를 화려하게 마친 신해철이 아이돌스타로서 호 시절을 보낸 후 만든 밴드이다. 신해철의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넥 스트는 인물 따라 팬이 쏠리는 스타시스템 체제에서 당연히 아이돌스 타의 인자를 태생 때부터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윤밴드의 출발 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아니 초라한 것을 넘어 드러머 김진원의 표현 대로 골때리기까지 하니까. 포크동인 출신의 록가수와 다종다양한 음악 경력을 지닌 세션맨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어진 (같이 공연하다 어느 순 간 팀이 되었으니 이건 분명 만들어진 것이 맞다.) 윤밴드의 음악적 배 경에는 모던포크에서 민중가요, 헤비메탈에 이르는 비주류 음악의 연대 기가 뚜렷하게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더그라운드, 외인부대, 저 항로커 심지어 운동권밴드라는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따라다 녔다. 밴드로 작업한 2집 녹음 후 지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비주류다운 면모가 덕지덕지 묻어나 있다. 이건 완전히 오기 하 나만 믿고 비비는 헝그리복서에다 맨땅에 헤딩하는 무모한 전사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냥 밴드가 아니라 운동단체이다?' '가난했던 사람들의 저력을 믿는다. 자본주의에 항복할 때 하더라도 가는데까지 간다?' 비장한 출사표와 함께 2집은 출반되었고, 야심작 '이땅에 살기 위하여'가 방송 3사로부터 퇴짜를 당해 과연 무모한 전사다운 출발을 보였다.
이때부터 이변이라면 이변이랄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 작하였다. 팝적인 성향이 강했던 (도무지 색깔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 이 적당할 듯도 하고...) 전작에 비해 한결 강하고 스트레이트해졌다는 평가를 받은 2집을 낸 후, 윤도현의 짧고 단정한 머리가 사자갈기 머리 로 바뀐 후, 열린음악회 화면에서 사라지고 대학가 집회장에 더 빈번히 모습을 드러낸 이후 윤밴드의 주가는 눈에 띄게 상승하였다. 팀의 얼굴 인 윤도현은 여전히 저항로커의 명성을 유지하면서, CF화면을 채우고, 연말 한철 장사를 노리는 뮤지컬 무대를 채우고, 마침내 여고들의 ' 도현옵'으로 거듭나는 엄청난 변신을 경험했다. 꼴통이라 자처했던 기 타리스트 유병열은 부쩍 웃음이 헤퍼진 얼굴로 '꼭 록음악이기에 소외 되고 힘없는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이들에게 성공한 밴드라는 수사가 어색하지 않게 따라다닌다.
이러면서 떠오르는 몇가지 질문들. 적어도 이 나라에서 좌파의 대동 단결을 공공연히 외치는 불온한 공연과 C.F 화면에 동시에 얼굴을 내 민 자가 있었던가? 그리고 이러한 행보는 윤도현과 그의 밴드가 전시 대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단절적 면모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닌가? 그리고 단절과 계승에서 오는 절묘한 긴장감이 평론가와 저널리즘의 촉수를 자극한 것은 아닌까? 집 회장과 오빠부대의 함성 가득한 공연장 사이의 거리는 그들의 음악과 그럼직하게 상동구조를 이루는 것은 아닌가? 이 글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2. 세기말 민중가수의 초상

90년대에도 민중가수라는 단어가 남아있다면, 윤밴드에서 민중가수의 면모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중가수의 지속적 산실이 라 할 수 있는 노래패 출신의 윤도현은 데뷔 당시부터 온갖 불온한(?) 무대에 꾸준히 서왔고, 밴드 결성 이후에도 꽃다지가 출연하는 행사에 는 으례 윤밴드가 출연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을 만들어내었다. '이땅에 살기위하여'나 '철문을 열어'는 민중가요를 낳은 80년대의 멘탈리티를 계승하고 있는 윤밴드의 대표적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 으로 윤밴드를 민중가수의 대열에 편입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민중가 요가 그렇듯이 민중가수라는 것도 음악적 형식과 멧시지 차원을 넘어 서는 유통의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얘기를 잠시 지난 해로 돌려보자. 지난 해는 대학가와 메이저 록밴드 와의 밀월관계가 유난히 두드러졌던 해였다. 학기 초의 어수선한 분위 기가 겨우 가신 어느 봄날, 시나위는 비운동권이 장악한 연세대 총학생 회 출범식에 초대되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평소 대학생들의 탈정치화를 쌍수들어 환영하는 언론에서는 '출범식에 모였던 수백명의 학생들은 시나위의 식전 공연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다.'고 기꺼워했 다. 그런데 시나위가 다녀간 지 불과 몇시간 지나지 않아, 바로 그 대 학에서 열릴 예정인 불순한 공연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출발의 들뜬 분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교정은 범 P.D 학생들의 단합대회(?) 겸 문화제를 알 리는 벽보와 플랜카드로 뒤덮였다. 그런데 그 문화제의 메인 게스트가 바로 윤도현밴드였다. 그날 윤밴드가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무사히 공 연장까지 도착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본의아니게 시나위와 윤도현밴드가 같은 장소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전혀 다른 상황을 연 출하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읍퓽 대하는 태도나 드러나는 멧시지에서 근본적 차이가 없는 두 밴드(이는 얼바인들이 쓴 97년 여름 대중음악 비평 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가 전혀 다른 씬에 놓이게 된 결과를 음악 자체만으로 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윤밴드를 민중가수라 할 수 요인은 바로 음 악에서 전달하는 의미 자체보다는 이것이 수용되고 유통되는 방식의 문제, (연영석의 표현을 빌리면) 즉 구조 형성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 다. 이것은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윤밴드의 음악이 계급문 화, 운동과 어느 지점에서 접합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윤밴드 가 운동의 연장에서 음악활동을 하고있는 '다음기획'의 일원이라는 점 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다. 80년대를 풍미한 노.찾.사가 주축이 되어 대중음악 내에 진보적 목소리를 모아보겠다는 거한 의도에서 출발한 바로 그 기획사. 80년대의 문제의식을 90년대에 점화하려는 이들과 공 생관계를 유지하며, 윤밴드는 여전히 대학가 집회장을 찾아다닌다. 노.
학연대 문화제 '파문'에도, '꽃다지'가 기획하는 대학문화 찾기 행사에 도, 백태웅의 석방을 촉구하는 문화제에도 윤밴드는 계속 무대를 지켰 고, 지킬 것이다. 서울대. 연세대 총학생회와 돈독한 신뢰관계를 드러내 면서.이제 윤밴드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학생 운동의 특정 정파 즉 P.D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통로로 굳건히 자리잡은 듯하다. (그런데 윤밴드의 멤버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음악 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이들과 함께 윤밴드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문제의식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윤밴드가 지난 시기의 물을 고스란히 묻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밴드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윤도현은 아무래도 80년대의 유산으 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70년대 산 신세대이다. 게다가 80 년대의 이데올로기가 집단적으로 전수되는 장 -대학으로부터 받은 영 향력이 전무하다시피하다. 치열한 시기 대학 물을 으며 민중가수의 길로 접어든 안치환이나 여기에 기름밥 냄새까지 묻힌 꽃다지와는 그 지점에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윤밴드의 단절적 면모는 공연장의 분위 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철저히 감각에 호소하여 몸을 먼저 일으키게 하는 무대 매너를 보인다. 몸을 일깨우고, 감각으로 반응하는 것, 이것은 물론 록 본래의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안치환식으로 현장성에 매몰되어 버리는 록의 한계라고 해야하 나? 아님 퐁퐁 튀 신세대가 음악으로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해야하나? 게다가 무시무시한 노래에 붙이는 변 또한 일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땅 -'을 두고 윤도현은 신경질적인 주절거림이라고 표현 했다. 이 말 속에는 '뭐 나는 세상 *같아서 열받은 김에 내 맘대로 지 껄이니 니들은 마음대로 느껴라.'라는 마인드가 오롯이 담겨있다. 이 순간 또 안치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치환은 이 경우 어떻게 대답할까? 듣는 이에게 노래의 의미를 새겨가며 진지하게 들어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지 않을까? 97년 '자유' 공연은 음악을 나누는 방식 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때 윤밴드는 '철문을 열어'를 부르고 있었다. 권력의 최상부를 직통으로 겨냥한, 멧시만 놓고보면 80년대 민중가요 찜쪄먹는 그 노래. 객석이 발광 일보 직전에 이르렀을 때, 윤도현은 '신난다!' '잘한다!'라는 무지막지한 추임새를 넣으며 기 어이 관객들을 광란으로 몰고갔다.
윤밴드의 이러한 태도는 '노래는 유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 다. 시대의 아픔을 담아야 한다.'고 무겁게 운을 떼며 뻐근하게 때로는 전투적으로 노래하던 선배 민중가수와는 다른 지점을 겨냥하는 것이다.
선배 민중가수의 노래를 경청하던 10년 전의 젊은이들은 시종일관 진 지하고 엄숙했으며, 때로는 노래에 구호로 화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 금의 젊은이들은 노.학연대 문화제에서도 헤드뱅잉을 하고 양심수를 위 한 행사에서도 '옵빠'를 외친다. 육체적 감각이 논리에 결박당하지 않 는 세대, T.V 스타에 익숙한 오빠세대. 윤밴드가 겨냥하는 지점은 어쩔 수없이 달라진 90년대의 감수성 바로 그곳이다.
선동을 해도 신나게, 진지하고 무거운 노래를 해도 오감각이 펄펄 뛰 게, 몸으로 부대끼고 감각으로 대응하면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 누려는 태도는 분명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광경들이다. 저항적 멧시지와 젊은 에너지가 만나는 풍경은 무거움에 가위눌린 80년대 세대와의 단 절을 고하고 있다. 선동무를 방불케하는 꽃다지의 찌르기 동작과 윤도 현의 날렵한 옆지르기 동작 사이에는 이처럼 10년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3. 진정한 록커에서 한국적 록밴드로

아무래도 이 부분은 윤도현과 윤밴드를 둘러싼 숱한 담론들이 거론 되어야 할 듯하다. 윤도현처럼 평론가와 저널의 유별난 관심속에 데뷔 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유별난 관심은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 어졌다. 이것은 윤도현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항상 화제(=기사거 리)를 불러일으킬만한 위치에 있었거나, 화제를 선점하고 있다는 의미 로 읽을 수 있다. 특히 '개똥이'(95) 영화 '정글스토리'(96)와 같은 문제 작들에 잇달아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윤도현은 신인이면서도 만만찮은 문화적 파급력을 갖춘 인물로 예의 주시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윤도현 이 지니고 있는 파급력은 수용층의 자발적 지지에서 나온 것이라기보 다는, 이미 만들어진 구도에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음으로써 가능한 것 이었다. 물론 이러한 구도의 기획자는 90년대에 뚜렷하게 세력을 드러 내기 시작한 평론가군단과 저널이었다. 윤도현은 그러나 주어진 역할을 추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하였고, 이것 은 작지만 단단한 지지층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 며 윤도현과 평론가 군단 사이에는 담론의 생산자와 수혜자 그리고 새 로운 담론거리의 생산자라는 일종의 연쇄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야기는 아무래도 윤도현이 잔잔한 파문(?) 속에 등장하였던 데뷔 시절에서 시작해야 할 듯하다. 데뷔 당시 평론가와 저널의 반응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우호적이었고, 우호의 표현은 대체로, '건강한 음악 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록커'라는 말로 모아졌다. 짧지만 함축적인 이 말 속에는 90년대 들어 혼미해진 대중의 정서를 따라 잡지 못하고 침 체 국면에 놓였던 노래운동권의 고민과 폭발적으로 일고 있던 록담론 과 실상 사이의 괴리 등 90년대 중반 한국 대중음악계의 난맥상이 뚜 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건강한 음악이라는 것은 따지고보면 대중가요의 고분고분한 감수성 에 대한 노래운동권의 대안이었고, 또한 이 진영이 존립할 수 있는 근 거이기도 했다. 80년대 말부터 가시화된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활동공 간이 넓어지고 예기치 않은 상업적 성공을 누리던 노래운동의 호시절 은 '잔치가 끝나며' 막을 내렸다. 이때부터 노래운동권에서 민중가요가 지니고 있는 저항적 에너지를 계승할 음악적 형태로 록을 주목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민중록밴드라는 당시로선 해괴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등장한 천지인에게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윤 도현의 데뷔는 천지인의 모색이 '논란거리 제공' 이상의 반향을 얻지 못하던 시점에 이루어졌다. 홍보카피였던 '건강한'이라는 말 속에는 향 후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노래운동권에서, 민중가요의 감수성을 대중적 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신인을 발탁하여 밀고 있다는 혐의를 단단히 풍 겼다. 그리고 이러한 혐의는 대체로 사실로 드러났다. 아마도 윤도현은 가장 짧은 말로 자신의 출신성분과 음악적 배경 그리고 지향점을 드러 냈던 가수로 기록될 수 있을 듯하다.
진정한 의미의 록커라는 대목도 심상치않은 구석이 있는 말이었다.
당시 대중음악 동향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자라면 이 말을 대하는 순간, 담론은 거품처럼 끓어넘치는데 막상 실천비평 대상거리를 찾지 못해 허덕거리는 평론가의 고민이 떠올랐을 것이다. 94년 커트.코베인 의 죽음, 서태지의 충격적인 3집 이 록에 관한 담론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그 생산자들은 레드제플린과 딥퍼플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30대 평론가들이었다. 이렇게 점화된 록 열기는 대학 가로 흘러들어, 대학 총학 선거에서 '서태지와 넥스트는 우리의 동?, '얼터너티브록을 우리의 얼터너티브로'라는 구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 다.
30대 아저씨들과 열혈청년들을 묶을 수 있었던 정서적 끈은 말할 것 도 없이 '록은 저항의 음악'이라는 공식이었다. 그러나 바다 건너 아메 리카, 그것도 질풍노도 같았던 이상의 시대 60년대를 다분히 염두에 둔 공식은 즉각 역풍을 만나야했다. '서태지는 저항과는 거리가 먼 매니지 먼트의 산물일 뿐이다.' '이 땅에서 김민기만큼의 저항의식을 보여준 록커가 있었느냐? 대봐라'라는 반론에 대답이 궁했던 아저씨들은 강산 에 이후 그럴싸한 후속타가 없는 현실에 당연히 답답함을 느꼈을 법하 다. 담론과 실상의 괴리가 극명하던 그때 적어도 이땅에서는 저항음악 의 중추요 모든것이라 할 수 있는 노래운동권의 후예가 록의 옷을 입 고 나오니, 이건 절로 기사 되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진정한 의미 의 록커'라는 말은 록을 형식과 패션이 아닌 이념과 태도로 수용한 록 커라는 의미 외에 가뭄에 단비 만난 반가움이 더해진 표현일 것이다. ' 록을 둘러싼 온갖 위악적인 그늘을 걷어내고, 록 본래의 비판정신을 충 실히 구현하는 록커' 이것이 평론가와 저널이 대중들에게 주입시킨 윤 도현의 첫인상이었다. 대마초와 히로뽕 따위에는 절대 손 안대게 생긴 윤도현의 순진무구해보이는 외양과 꾸밈없는 태도는 마치 이러한 평가 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펑크 공동체의 분전(?)때문인지 '록은 저항의 음악'이라는 공 식의 약발은 서서히 떨어지게 되었다. 펑크공동체들이 역시 매체와 매 니어의 지지 속에 땅밑달리기를 하고 있을 무렵 '저항으로서의 록'을 이어 등장한 화두는 단연 '한국적 록'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화두 는 '신중현 재평가'로 대표되는 록의 뿌리찾기로 이어지면서, 절정에 달했다. 자칫 요란하게 보이는 국적과 뿌리찾기는 이제 어떠한 방식으 로든 록이 우리나라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지...
윤도현밴드로 체제 정비를 한 신진밴드는 어느새 진정한 록커에서 한국적 록을 구현하는 밴드로 자리매김되었다. 물론 이것은 윤도현이 솔로 시절부터 쌓아온 내공이 확대재생산된 것이다. 한국적 록이라. 가 뜩이나 숱한 하위 장르를 지녀 계보 따라잡기에도 헉헉대는 복잡한 록 음악에 '한국적'이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사까지 얹히고 보니, 이 것을 딱부러지게 해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용자의 선호도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록발라드만큼 한국적인게 없 고, 그렇다면 김종서나 김경호가 가장 한국적인 록커라는 결론에 이른 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한국적 록커 이전에 록커 취급도 못 받고 있으니 ... 그렇다면 한국 가요의 궁극적 귀의처 - 뽕끼는? 소위 한국적이라고 인구에 회자되던 이름 (전인권, 강산에에서 황신혜밴드 노브레읏 이 르기까지)들이 이쪽에 포진한 것으로 보아 그럼직도 하건만, 아직까지 '뽕끼있는 록커'의 계보학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진지 하고 엄숙한(혹은 하다고 생각되는) 록과 관광버스와 가요무대의 총아 뽕의 크로스오버는 아직까지 '한국적'이라는 말로 범주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한국적인 것의 정체는 '한국적'이라는 말로 최초 로 묶인 세사람의 록커, 그러니까 안치환, 강산에, 윤도현의 공통점을 찾고, 이들을 한 울타리로 묶은 의도를 찾는 데에서 그쳐야 할 듯하다.
공통점은 어렵지않게 드러난다. 먼저 이들의 음악적 뿌리가 모던포크이 며, 현재에도 모던포크와 그 적자라 할 수 있는 민중가요의 감수성을 록사운드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음악을 통해 집 요하게 추구하는 개인과 동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모색이야말로 모던포크의 영원한 주제이니까. 여기에 음악을 통해 무엇인가 이야기하 고 나누려는 태도에서도 포크의 후예다운 모습(포플리스트?)을 보인다.
현장성에 매몰되기보다는 불리는 노래, 들리는 노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노래에 대한 고집은 록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받는 가사에 대 한 천착에서 드러난다. 이들이 대부분 가사를 먼저 쓴 후 곡을 완성한 다는 것은 음미해볼만한 일이다. 메신저의 면모는 이들의 창법에서도 나타난다. 고음에 주로 두성을 사용하는 록보컬리스트의 창법이 일반 수용층에게 이질감을 주는 반면, 탄탄한 중.저음을 위주로 하는 이들의 창법은 귀에 착감기는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평범한 음 악애호가들에게 '노래 잘하는 가수'로 기억되는 까닭은 이런 호소력에 있지 을지. 연주력보다는 보컬의 표현력에 의존하는 곡 구성도 이러 한 인상을 결정 짓는데 단단히 한몫 하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 한국 록 보컬리스트들이 넘지 못하는 벽이 발음인데 비해, 이들은 비교적 정확 한 우리말 발음을 들려주고 있다. 지금 이곳의 문제를 진지하게 그리고 들릴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 이것이 한국적 록커라 이름지워진 3인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음악적 출발점, 혹은 중대한 전 환점에 한결같이 김민기라는 거목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단순한 우 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본다면 한국적 록이라는 것이 음악적 특징보다는 뮤지션의 자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옴직하다. 그리고 뮤지션의 자 세는 '진정성'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단계에서 한국적 록이란 '진정한 의미의 록'의 버전업이 아닐지.
어쨌든 한국적 록커의 말단에 합류한 윤도현은 바로 그 이유로 지금 은 폐간된 문화잡지에서 선정한 21세기 문화계의 유망주로 꼽히기도 하였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신해철, 패닉과 함께. 그런데 정작 한국적 록 커로 지목된 윤도현은 '한국적 록이라고 평론가들이 그러던데 우리는 한국록이 아니라 우리의 록을 할 뿐'이라는 반응을 보여 일단은 열낸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노래는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 이며, 어차피 록음악이 서구에서 들어온 음악이니 현재의 트랜디를 도 입하기보다는 일부러라도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아야 나름대로 자 기다운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음악관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기 소리를 찾는 것, 이것은 촌스러울 정도로 옛 사운드를 고집하는데 대한 윤도현의 변인 동시에 자신의 음악에 국적을 부여한 자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한국적'이라는 것은 곧 오 리지널리티와 동격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집요함은 여느 밴드 공연시 으례 따르게 마 련인 외국곡의 카피를 거의 하지 않는 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신 그들은 한국록의 재해석이란 이름으로 '다시부르기 -록버전' 텍스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김광석이 '다시부르기'를 통해 모던포크의 적자 임을 알리고, 안치환이 '노스탤지어' 음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뿌리 를 드러냈듯이. 이러한 기획은 '신중현 재평가 운동'으로 시작된 한국 록의 계보세우기 경향을 의식한 면은 있지만, 그동안 태도 중심으로 논 의되었던 '한국적 록'의 실체를 찾으려는 모색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의 의있는 시도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선배들의 곡을 재해석하면서 윤밴드는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좀 더 단단하게 구축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강산에의 아류라는 평을 들었던 윤밴드는 이제 그들을 닮은 아류 밴드를 만들어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윤밴드가 제작과 연주에 일부 참여한 (전후 상황을 몰라도 음악을 들으면 단박에 윤밴드 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인디 밴드의 홍보카피가 '한국적 록큰롤'인 것을 보면 이제 윤밴드는 한국적 록커의 후발주자에서 이 방면의 새로 운 전형을 창조한 비조로 자리잡은 듯하다. 역동적인 리듬이 살아있는 스트레이트한 하드록에 명료한 멜로디라인, 쉽게 들어오는 보컬의 창법 은 윤밴드가 구축하여 계승자까지 낳은 '한국적'인 록음악의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윤도현이 이념과 태도로서 범주화된 한국적 록커의 마지막 (현재로선) 주자였다면, 윤밴드는 음악 자체로 한국적 록의 실체를 보 여주려 했던 신중현의 유력한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윤도현 과 윤밴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을 듯하다.

4.윤도현밴드와 여성팬

록음악에서 팬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장르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이것을 비주류 장르 특유의 응집력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록밴드의 팬들은 단순히 그루피들의 결사체를 넘어 하나의 음악 공동 체를 형성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밴드 입장에서도 공연장의 분위 기를 만들어가는 팬들의 존재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공연을 하는 윤밴드도 당연히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매번 '젊음을 불태우고'있다. 윤밴드는 유난히 골수팬들이 많은 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금만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팬의 성향이 참으 로 다양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다양한 성향의 팬들은 대개 각 기 다른 씬에서 윤밴드와 조우한다. 물론 이질적인 성향의 팬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왜냐하면 극성팬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니까.
어쨌든 거칠게나마 윤밴드의 팬들을 분류해보면, 대표적으로 네 유형 이 포착된다. 물론 네 유형의 팬들은 부분적으로 겹치기도 한다. 먼저 저항포크와 민중가요의 수용층이라 할 수 있는 조직된 대중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이 위치한 곳은 대학가의 집회와 행사, 그리고 노동단체와 인권단체에서 개최하는 대형 집체 공연장이다. 총학 출범식을 비롯한 학생회 행사, 노동문화제,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과 같은 공연 은 윤밴드가 민중가요 애호가와 만나는 대표적 장이라 할 수 있다. 아 마도 각 대학과 재야단체의 행사가 몰려 있는 5월과 10월은 윤밴드에 게도 가장 바쁜 철이 아닐지...
다음은 록밴드이니까 당연히 록애호가들이 팬의 한 축을 이루고 있 다. 여기에는 비평가적 안목을 갖춘 매니아들도 포함된다. 노이즈가든 의 데뷔 앨범을 96년 최고의 록 앨범으로 선정한 모(M) 음악동호회에 서는 97년 최고의 메인스트림록 앨범으로 윤도현밴드 1집(윤도현 2집이 아니고)을 선정하였다. 이들의 결정은 윤밴드가 록애호가들에게 다가서 기 시작했다는 징조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록애호가들이 주로 집결 하는 곳은 대형 록콘서트가 열리는 체육관이나 지하 클럽 그리고 통신 음악동호회이다. 윤밴드는 당연히 이들이 집결하는 지점에도 합류하고 있다. '자유' '록 메이드 인 코리아'를 비롯한 대형 콘서트에 꾸준히 서 왔고, '신중현 트리뷰트' 공연에는 시나위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해 '많 이 컸다'는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올해 최대의 록 이벤트로 기 록될 5.18기념 록 콘서트(그런데 이건 무산되었다. 큭), 이어 벌어지는 자유 공연에도 윤밴드는 프론트게스트 급으로 여전히 무대를 지킬 것 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디 밴드 후원, 클럽 공연 등으로 행보 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새로운 행보가 록애호가들을 겨냥한 것 임은 물론이다.
그 다음으로 소극장을 열심히 찾는 음악 애호가들을 들 수 있다. 여 기에 속한 팬들은 딱히 록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저 윤밴드의 음악을 좋아하는 가요팬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윤밴드를 통해 록 음악에 입문한 경우가 많으며, 20대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 는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라이브 공연장과 통신 팬클럽 게시판은 낭자 군이 지핀 열기로 언제나 불타오른다. 때로는 이들의 열기가 좋아하는 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넘어 사회적 문제에까지 확산되는 경우도 보인 다. 통신 팬클럽은 이들이 의견을 나누고, 사회적 관심사를 실천으로 도모할 이벤트가 기획되는 대표적인 장이다. 때로는 전형적인 그루피의 모습으로 때로는 시대와 음악을 고민하는 진지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바로 윤밴드 열혈팬 그중에서 특히 여성팬의 초상이다.
마지막으로 풍선, 형광스틱, 색색 가지 도화지로 무장한 신예들 - 오 빠부대 빠 수 없다. 공연장을 일순 H.O.T가 출연하는 공개 방송 분위기로 만드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합류하면서, 윤밴드는 '스스로 아 이돌 스타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닭살 돋는 질문을 받기에 이르 렀다. 민중가요 애호가와 가요팬들이 비교적 초창기부터 윤도현과 함께 한 연륜있는 팬들이라면 록애호가는 밴드 결성과 2집 출반 이후 뚜렷 이 부각된 팬들이라 할 수 있다. 오빠부대는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 장한 신마이들이고 흥미로운 것은 록애호가와 오빠부대 그러니까 아 주 이질적인 성향의 팬들이 늘어가는 추세라는 점이다.
여러 유형의 팬 중 숫적으로 가장 우세한 쪽은 아무래도 20대 여성 팬들일 것이다. 이들은 숫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열기에서도 타의 추종 을 불허한다. 콘서트와 음반 시장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층이 20대 여 성들임을 감안하면, 윤밴드가 지금 이 정도 누리는 대중적 인기의 일등 공신은 단연 이들 여성팬이라 할 수 있다. 윤밴드와 여성팬의 각별한 (?) 관계는 가뜩이나 더운 여름 얼바의 게시판을 한달 내내 후끈하게 달구고 나아가 성대결에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에까지 치닫게 한 파문 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윤밴드의 여성팬들이 이처럼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이들의 음악이 통념적인 여성적 감수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멜로적 감성과는 거 리가 먼 거칠고 강한 음악에 여성팬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지 리한 우회로를 거쳐 이제는 이 물음에 답할 차례가 되었다. 윤밴드의 음악을 좋아하는 여성팬들은 그들의 음악이 통쾌하고 시원하다는 이야 기를 한다. 통쾌하고 시원하다? 이것은 윤밴드의 음악이 일상의 억압과 권태를 통쾌하게 강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펑키한 리듬감이 자아내는 역동성은 파워플한 무대 매너와 합해지면서 한방의 짜릿한 해방감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이것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 땅 의 여성들에게 향할 때에는...
그런데 관객을 소정의 흥분으로 몰고가는 계산된 일탈은 다른 밴드 공연장에서도 얼마든지 제공하는 기본 팬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윤밴드 의 공연은 다른 밴드의 공연에 비하면 오히려 얌전한 감마저 있다. 이 판사판 헤드뱅잉이 난무하는 크래쉬의 막가는 분위기나, 밧줄 받기 일 보 직전인 사람처럼 목을 빼고, 죽사발 눈을 만들어 노래하는 김바다의 위악적 에너지와 어울리는 시나위의 무대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여기 에는 끝없는 질주와 팽팽한 긴장만이 있을 뿐이다. 잠시의 틈입도 허락 치 않는. 반면 윤밴드의 무대에서는 관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낸다. 관객들은 음악에 반응하면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관음한다. 순간 무대에서는 강인하지만 결코 마초스럽지 않은 순화된 남성성을 화답처럼 보여준다. 밴드의 프론트맨인 윤도현의 거침 없는 보컬과 단문으로 끊어치는 말투 장르를 판별할 수 없는 댄스(=막 춤)는 순화된 남성성의 실체를 만들어간다. 여기에 마치 일상의 모습으 로 돌아온듯한 꾸밈없는 친근함과 부드러움이 양념처럼 아주 살짝 더 해진다. 윤밴드가 앵콜곡으로 종종 부르는 레퍼토리는 뜻밖에도 '종이 연' 시절의 감수성을 그대로 계승한듯한 '사랑two'라는 예쁜 곡이다.
공연 막바지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 관객들 앞에 바로 공연장의 열 기를 온통 뒤집어 쓴 듯 헝클어진 모습의 윤도현이 아주 나직하게 입 을 떼며 바로 이 노래를 부른다. 마치 '당신이 마음 속에 담아갈 공연 의 느낌은 이것입니다'라고 말하듯. 그 순간 여성관객들의 반응은? 체 증을 몰아낼듯한 격정과 부드러움의 조화, 언뜻언뜻 드러나는 남성성 이것은 여성관객들에게 관능적인 경험으로 전화되어 전달된다. 남성적 이되 마초스럽지 않고, 관능적이되 퇴폐적이지 않은 끼. 섹시함과 열정 을 슬로건으로 집단 스트립쇼 를 연출하는 어느 언더밴드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윤밴드는 충분히 그들의 방식대로 섹스어필하고 있는 셈이다.
록밴드의 여성팬을 우려하는 이들은 80년대 헤비메탈을 예로 들며 소녀팬과 음악적 변절(?)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윤밴드 는? 막강한 낭자군과 늘어가는 소녀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변신을 감행할 것인가? 소녀팬들이 늘어난다고 발라드를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애절하게 부르고, 막간에 디스토션 걸린 기타 한번 찍 - 울어 주는 팬서비스를 할까? 3집 출반을 목전에 둔 지금 이러한 징후는 포 착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하드하고 헤비한 록의 기백을 유지해나 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팬들(물론 조직된 대중이나 매니 아가 아닌 평범한 애호가들 혹은 평론가들에게 그루피로 비치는 팬들) 이 윤밴드에게 인는 모습을 보였다. 윤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좋아 하고 닮아간다는 것, 이것은 분명 굉장한 노력과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1년에 200일 이상을 공연으로 보내는 밴드에 힘을 실어주기 위 해 상행선과 하행선을 번갈아 타야하는 것만도 만만찮은 일이다. 신체 적으로 금전적으로. 때로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전경과 대치하는 험한 꼴도 봐야하고, 때로는 끈적한 지하 클럽에서 슬램을 하는 헤드뱅잉족 들에게 발을 밟혀가며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박노해씨와 백태웅씨의 사면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신대 할머니들의 복지시설 '나눔의 집' 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 이들은 분명 무언가를 나누고 있는 사 람들이다. 그 무언가가 생산적 에너지로 승화될 지는 두고 보아야겠지 만.

5.나오며

윤도현과 윤밴드는 90년대 불붙기 시작한 록담론의 대표적 수혜자라 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신촌.홍대 앞의 클럽 밴 드들이 아직까지 문화적 파급력 이상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을 감안하면, 윤밴드는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실질적 수혜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윤도현과 윤밴드에게 엄청난 부채를 지우는 것 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비교적 착실히 빚을 갚아왔던 것같다.
세상과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 민중적 전망을 공유한(혹은 공유하려 하는)이들과의 연대, 공연 위주의 활동 방식, 아이디어보다는 기본에 충 실하려는 근본주의적 태도 등으로.
음악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상업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그들만의 도달점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순례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진정한 프로페셔날' '우리만의 계단'은 그들의 음악관을 밝힐 때 자주 등장하는 언어들이다. 그러나 돈냄새와는 거리가 먼듯한 이들 의 이미지는 대중가요의 그저그런 감수성에 싫증났을 때 상업주의 레 이더 망에 포착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아니 이미 그 가능성은 현 실로서 시작하였다. 윤밴드와 밴드의 얼굴 윤도현의 저항적 이미지를 패션화하려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진지함, 풋 풋함, 터프함이 아로새겨진 윤도현의 저항적 이미지가 드디어 오빠세대 의 감수성에 걸맞는 스타의 덕목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보아도 되 는 것일까? 어쨌든 먹물 냄새 폴폴 풍기는 넥스트나 패닉의 투덜거림 과는 다른, 날 것 그자체인 윤도현의 외침은 '자유분방하고 적당히 반 항적인 그렇지만 올곧은 이땅의 젊은이'의 상징으로 비쳐지고 있다.
C.F 화면과 여성지에서. 조명 휘황한 T.V 공개 쇼에서 느끼한 목소리 의 성우는 '가요계의 투사'라는 멘트로 윤밴드를 소개한다.
윤밴드를 둘러싼 음모(?)는 서태지 이후 나타난 저항의 패션화와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꾸준히 구축해온 아니 이미 태내에 서 지니고 있던 이미지의 소모와 함께. 이러한 날이 올 것을 예감해서 일까?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2집 음반을 내면서 윤도현은 자작곡 '처 음처럼'에 애착을 보였다. 어쨌든 윤밴드는 좌파 운동권과 상업주의라 는 두 극(참으로 화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렇지만 눈만 맞으 한순 간에 찰떡궁합이 되는)에 동시에 이미지를 제공해야하는 전례없는 시험 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시험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가닥을 잡을지... 출반이 임박한 3집에서 넌지시 알려주려나?

2 # 한국 락 다시부르기[ | ]

제 목:[리버]윤도현 밴드.... 한국 락 다시부르기 관련자료:없음 [534] 보낸이:임은숙 (그레이71) 2000-02-01 00:24 조회:27

윤도현 밴드..... 한국 락 다시부르기

윤도현의 이름을 건 앨범으로는 네번째 윤도현 밴드로는 세번째 앨범입니다.
이삼년 전부터 추모(유재하), 트리뷰트(신중현 산울림 그리고 언더씬의 메탈리카 너바나 등) 등의 이름을 달고 지난 선배들의 노래를 리메이크 하는 일이 많아졌군요 리메이크라는게 한 가수의 앨범에 한곡 정도 들어가는게 일반적이 된거 같구요 요즘 조성모가 가시나무 새를 리메이크 해서 인기죠? 하늘아래 새로운것은 없다고 하고 혼성모방이니 하는 프스트 모던의 시대가 어쩐지 한물 간것 같지만 창작이란게 더욱더 어려워진 요즘 점점 리메이크가 성행할 것만 같습니다.

지나간 한국 락 음악들로 앨범 한장을 빼곡히 채운 이 앨범을 사들고 생각한 것은 왜 다시부르기 인가죠 윤도현 밴드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락이란 장르가 그 담론만이 분분할 뿐 그저 지하에만 웅크리고 있는것이 현실 입니다. 세상은 이들에게 도무지 관심 없는 듯 매일 매일 분간할 수 없는 똑같은 아이들의 무리들만이 나와서 손가락질 하며 립싱크를 해대는데 그 와중에 그나마 가장 인기있는(판도 많이 팔리는) 밴드가 윤.밴일 듯 싶군요 모모 그룹이 아닌 밴드라고 할 수 있는 팀 중에 티비에서 그나마 환영받는 팀이 윤밴이 아니겠습니까?

윤도현 밴드의 행보는 참으로 특이하게 보이기 까지 합니다. 처음 윤도현이란 이름의 젊은 가수가 등장했을때 그는 그저 열심히 부르는 신선한 가수다 라고 여겨졌는데 어느날 뜬금없이 밴드를 결성합니다. 단순히 한 가수의 백밴드로 출발한 이들은 이제 점점 한팀으로의 성격을 튼튼히 해 가는것 같습니다.
신해철의 넥스트가 그리도 거부하려 했지만 결국의 신해철과 넥스트라는 성격을 벗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들은 그저 대중가수 라고 부르기엔 기묘한 부분이 있죠 한발은 락씬에 걸쳐두지만 그 노래를 뜯어 보자면 엄연히 민중가요 판에도 한발 두고 있다고 느껴져요 (이부분은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이번 다시부르기 판은 그런 성격은 지워져 있어요 지나온 시대의 락 들을 되돌아 보는것이죠

1. 바람 신중현 작사 작곡(김정미 노래/73년작) 이미 신중현 트리뷰트 앨범에서 한번 불리워진 노래입니다. 강산에의 노래가 특유의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노래였다면 이번 윤도현 밴드의 노래는 요즘 유행하는 하드코어식의 음악을 들려줍니다.
윤밴 세번째 앨범에서도 한번 시도되었던 방식인데요(왕관 쓴 바보) 툭툭 지르는 것도 좋지만 이것도 좋군요 전 강산에 보단 이번 바람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어요^^

2. 탈춤 이응수 작사 나원주 작곡(활주로 /78년) 배철수가 있었던 그 팀 활주로(항공대의 스쿨밴드죠 아마?) 가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곡이죠 예전에 송골매가 한창 인기있던 시절 많이 듣던 기억 나요 원곡보다 기타연주가 훨씬 강력해 졌습니다.
기존 윤도현의 시원스런 보컬이 잘 살았구요

3. 너를 보내고 이승희 작사 임준철 작곡(윤도현 밴드/ 94년) 앨범에서 유일하게 윤도현 밴드의 곡입니다.
이별을 노래하고 있는 약간 애절하려고 하는 락 발라드 입니다.아마 노래방에 수록되기 좋은 곡으로 보이는군요

4. 돌고 돌고 돌고 전인권 작사 작곡(전인권/88년) 제가 젤 좋아하는 트랙입니다^^ 전인권 아저씨의 그 끈끈함과는 사뭇 다른 경쾌한 해석을 들려주네요 특히나 기타 리듬이 참 좋아요 윤밴의 기타맨 유병열의 기타는 언제나 느끼지만 리듬감이 탁월한 것 같아요

5. 깨어나 강산에 작사 작곡(강산에/96년) 처음 부터 윤도현은 강산에와 많이 비교되곤 했죠 이곡은 그저 강산에 식에 충실해 보이는 그런곡입니다. 강산에 에게 별로 좋지 않은 눈길을 주는 저로서는 모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답니다.
(순전히 편견입니다 어쩔껴? 궁시렁)

6. 그것만이 내세상 최성원 작사 작곡(들국화/85년) 그야말로 전설이 된 밴드 들국화의 너무나도 유명한 곡입니다. 아 얼마나 뻔질나게 술이 취해 불러댔던 노래란 말이냐 그것만이 내세상과 행진은.....
아무리 편견에 가득차서 윤밴의 팬의 입장에서 말한다 해도 이건 역시 원곡이 더 좋다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술에 취할때면 어김없이 목청 돋구게 했던 그 아우라란 역시 그 시절의 공기와 그 노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힘인가 봅니다.

7. 혈액형 빅토르 최 작곡 윤밴 번안(빅토르 최/88년) 러시아의 한인 3세던가 하는 유명한 빅토르 최의 노래를 번안했어요 죽어서야 우리에겐 알려졌지만 러시아에선 그야말로 인기밴드였다죠 그의 밴드 이름이 키노라고 하더군요 실제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구요 이글라(바늘)이란 영화가 개봉했었는데 아쉽게 보지는 못했어요 그의 노래도 들어보진 못했는데 이 혈액형이란 곡은 상당히 음울하면서도 힘있는 노래네요 .......

8. 담배가게 아가씨 송창식 작사 작곡(송창식/86) 송창식의 코믹한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를 윤밴이 다시 불렀습니다.
송창식의 원곡보단 덜 코믹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어요 밴드 멤버들의 이름을 가지고 온 부분은 씩 웃게 만들죠

9. 불놀이야 홍서범 작사 작곡/옥슨80(80) 지금은 모 종합예술인인지 뭔지 실없는 인터뷰나 하고 다니는 홍서범이 대학 시절 대학가요제 수상곡이죠 원곡과는 사뭇다르게 편곡이 되어있고 연주 보컬 모두 아주 다양하게 전개되네요

10. 나 어떡해 김창훈 작사 작곡/샌드 페블스(78) 아마 대학가요제 1회 대상곡이죠?
모 누구나 한시절 애창했을 유명한 곡입니다.
조용히 읊조리는듯 하다가 팍 터지는 윤도현이 보컬이 좋군요

11. 철망앞에서 김민기작사 작곡(김민기/92) 김경호 김윤아 김장훈 박기영 박완규 오상우 임현정 김민기의 노래를 한국의 내노라하는 보컬들이 찬조출연 해서 만들었어요 요즘 이런식의 품앗이들이 그야말로 앨범 하나에 한곡씩 들어갈 정도인거 같군요 의도는 좋겠지만 솔직히 식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어요

한국 락을 다시 돌아본다는 그들의 의도가 얼마나 이 앨범에 잘 살아 있는지는 솔직히 뭐라 말 하지 못하겠군요 저에게는 예전에 즐겨 듣던 음악들을 파워 업한 편곡으로 다시 듣는다는 즐거움으로 다가오구요 점점 더 단단해 지는 이들의 연주와 팀웍이 너무나 기쁩니다.
예전의 그저 열심히 부르기만 하던 윤도현의 보컬이 이젠 정말 경지에 오른것 같군요 지르기만 하는 노래가 아니라 완급조절을 자유자재로 하는건 분명히 그가 발전하고 있다는 거겠죠 아무쪼록 이 밴드가 오래가기만을 바랄뿐이에요 예전에 많이 보았던 사분오열되서 깨져버리는 팀을 보는 슬픔이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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