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의 미학

미감이라는 것은 정말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미감중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형식미 혹은 양식미라 부르는 것인데 나는 이것의 본질을 억압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억압의 미학에 대해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은 한시를 접하고 나서였다. 한시는 쥐뿔도 모르는 내가 왜 그런 느낌을 받게되었냐면 예전에 서원에 다니면서 한시 작법에 대해 조금 접했기 때문인것 같다. 한시를 지을때는 5자 혹은 4자를 한 행으로 4행 혹은 8행에 걸쳐 짓는다. 고딩때 다들 배웠듯 5언절구니 7언율시니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홀수줄의 끝자리 혹은 특정 위치에는 동일음 군에 속한 한자를 넣어야 한다. 이 때 넣는 글자는 당연히 한국식 발음이 아니라 중국식, 그것도 옛 발음[ 당나라던가? 잘모르겠다 ] 군에 속한 글자이다. 그래서 조금 당혹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규칙에 맞추어 시를 지을때는 몇가지 효과가 발생한다. 먼저 발음의 반복은 청각적 쾌감을 준다. 그리고 동일한 문장구조의 반복은 리듬감과 시각적 쾌감을 준다. 특히 동일한 문장구조내에서 상반된 의미를 이끌어내거나 하는 언어적 쾌감은 강렬하다. 또 한자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표의문자로서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다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언어로는 표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함축적 문장을 가능하게 한다. 몇가지 제한속에서 새로운 미학이 형성되는 것을 나는 처음 접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유시가 무슨 시냐라는 말을 한다. 이것은 양식미가 결여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우리나라의 자유시 역시 위에서 말한 요소들을 추구하고있는지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말을 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감한다.

자유시와 한시의 미적 차이를 음악에 대자면 일렉트로닉스와 펑크의 차이라고 할까. 일렉트로닉스는 신세사이저와 샘플링 따위를 이용해서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음악적 성취를 반영할 수 있는 음악이다. 그래서 디제이 섀도우DJ Shadow같은 녀석이 나타나 샘플링을 또다른 경지의 창작으로 인정받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일렉트로닉스가 펑크보다 과연 표현의 영역이 넓은가라고 물어보면 쉽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것이다. 둘 다 무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렉트로닉스의 무한이 펑크의 무한보다 기술적으로는 조금 더 넓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 다 무한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펑크와 그 뒤에 나온 포스트 펑크에 지금까지 나왔던 온갖종류의 일렉트로닉스보다 더 좋은 음반이 많다고 생각한다.

오늘 일본 애니메이션[ 아니메 ]의 특징에 대해 서술한 글[ 이재성, 화려한 캐릭터와 스토리 애니메이션, 일본의 문화와 예술, 한누리 미디어, 2000 ]을 읽었는데 여기서 아니메가 가진 미학을 접하곤 새삼 놀랐다. 나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대단한 팬인데 막연하게 느껴오던 아니메의 미학에 대해 이 책은 직접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이다. 아니메의 미학은 바로 저예산에서 생겨났다. 데즈카 오사무가 철완 아톰을 티비판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초기자본이 없는지라 저예산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때문에 같은 셀을 또 사용하고 정적으로 화면을 구사하고 만화적 표현기법[ 그림이 만화라는 말이 아니다 ]을 적용하는 등의 잔기술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엄청나게 성공하자 아니메계에서는 철완 아톰의 방법론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아니메만의 미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디즈니라는 거대자본과의 차별성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은 무척 드라마틱하다. 바로 인디[ independent ]적 태도이다. 게다가 이 저예산 다량생산은 아니메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쥐어짰지만 많은 이들에게 아니메가 다가가게 해주었고 결국 지금처럼 건담을 보고자란 세대가 건담을 그려내는 엄청난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종종 철학적, 정치적인 면모를 강하게드러내는 것은 60년대의 전공투세대가 대거 그쪽으로 흘러갔기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수 없었고 때문에 자신들을 받아주는 아니메계로 유입되었다. 이 역시 지금은 일본 만화에 도도히 흐르는 것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럼 억압의 미학이 가진 구조를 살펴보자.

한마디로 그것은 변주[ variation ]이다.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제한에 부딪히게 되면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을 찾게된다. 게다가 이미 선배들이 다 해먹었으면 어떻게 참신한 것을 할까 고민하게된다. 그 와중에서 새로운 표현기법을 찾거나 선배들의 것을 발전시키거나 선배들을 뒤집어놓거나[ 패로디 ] 하는 것들이 나오게 된다. 이런 것들은 양식미 안에 있지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억압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무한한 소재가 있으니 말이다. 얼마든지 변주할 수 있기도 하다. 즉 여기서의 무한은 실수적인 무한이다. 1과 2사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이 안에는 무한히 많은 실수가 있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면 허수의 세계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이 억압속의 무한이 바로 형식미이고 양식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이 양식미라는 것은 누가 만들어놓고 후배들은 지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즉 인간 본성을 반영하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면 너의 자연스러움에 맞게 그 양식미를 다듬으면 된다. 너도 인간이고 너의 자연스러움에 맞는것 또한 인간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이 혁신이다.

물론 양식미를 이루는 요소에는 다른 여러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훈련(discipline)을 들 수 있겠다. 훈련을 해야 비로소 양식미를 추구할만한 능력이 부여되니깐.

생각해보니 문화를 즐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주제에 예술관에 대해 이렇게 적는것은 처음인것 같다. 앞으로 계속 적어봐야겠다. 나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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