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1 # DarkTown[ | ]

월요일날 산부인과에 갔다왔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간것이 아니라 단지 건강 검진을 받으려고 간것인데, 산부인과를 갔다왔다고 이야기를 하니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애 가졌어요?"이다. 그래서 "산부인과에는 꼭 애를 가져야만 가는거냐?"라고 물었더니, 여자애나 남자애나 대답이 "보통 결혼하기 전이나, 애가 생기면 가는 곳 아닌가요?"이다. 30이 넘으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데, 주위의 여자애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체적으로 생각은 긍정을 하지만, 가기는 싫어하는 분위기이다. 나도 미룰만큼 미루다가 간것이었으니, 왜 산부인과를 가기 싫어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일단은 이름부터가 산부인과가 머냔 말이지. 정말 산모와 부인을 위한 과가 아니냔 말이다. 그럼 나같이 결혼 안한 미혼들은 아프면 어디로 가야하냔 말이다. 요즘 비뇨기과를 남성의학과라고 고치는것 처럼, 산부인과도 여성의학과로 고쳐주는게 맞지 않냔 말이지.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는 산부인과라는 곳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애를 낳지 않으려고 가거나 낳으려고 가는곳'이라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왜 내과에 갔다 왔다 그러면 감기이려니 하면서, 산부인과 복도에 앉아 있거나, 갔다 왔다 그러면 색안경을 끼고 보냔 말이지 -_-

또한, 여성들이 더더욱 산부인과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소중의 하나는, 산부인과의 진료경험이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가히 폭력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산부인과 진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정말 산부인과라는 곳은 치과와 더불어 되도록이면 가고 싶지 않은 병원들 중의 하나이다. 일단은 진료대의 구조부터 시작해서, 간호사들의 태도(요즘은 좀 친절해졌다고는 하지만), 의사들을 대할때의 껄끄러움, 기타등등의 요소들로 인하여 진료를 받고나서 유쾌했었다고 이야기를 할만한 여성들은 하나도 없을거란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 바로 산부인과이다.

게다가 더 이해불가였던 것은, 부인과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태도였다. 검사 항목중에 암과 함께 성병(임질, 매독, AIDS) 테스트 항목도 넣었는데, 영수증을 써달라고 하니 간호사 왈, "성병 테스트를 했다고 쓰면 이상하게 생각할테니까, 혈액 종합검진으로 쓸께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거 항목 다 쓰셔도 이상하게 안볼껄요"라고 말했더니, "요즘은 그런가요? 저도 병원에 있지만 멀쩡한 사람들은 성병 테스트 안해요."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럼 테스트 받는 나는 이상한 인간이란 말인가 -_-;;)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저렇게 말하는걸 보면, 좀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에 대한 의식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구나라는걸 체감하게 된다고나 할까, 성 관념이 자유로운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니 왈가왈부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자기의 몸이나 건강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무지하고도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외국 여성들이 부인과에 가서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남녀가 사귀게 되면, 서로 blood test를 했냐고 묻는 장면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종종 나오는데, 내가 남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황당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더 많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단지 나의 기우일 뿐일까?

여하간 미루고 미루던 산부인과 진료를 끝마쳐서 시원하긴 한데,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일이 많아서 뒷맛이 좀 씁쓸했다. 아래 링크는 이번 병원 진료를 계기로 알게된 곳들인데,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시는 측면에서 아래쪽 링크들도 한번씩 둘러 보시길.. . 제발 쪽 팔린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말고, 자기 건강은 자기가 좀 알아서 챙기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 DarkTown 2004-4-14 1:15 am

2 # 오야붕[ | ]

미혼의 여자에게 산부인과란 위에서 DarkTown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치과와 동등하게 가기 싫은 곳이 분명하나 언제든 가야만 하는 곳임이 분명하다. 나도 갔다. 그런데 산부인과란 곳은 단지 건강상의 일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다.

한국에 있을 땐 한번도 안갔다. 그리고 이 곳에 있으면서도 일부러 한국 여자의사가 진료하는 곳을 찾아서 갔는데 물론 첫째 이유는 민망해서다. 아랫도리를 다 벗은 채,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만 하는데다 버팀대까지 쇠로 되어있어서 허벅지 안쪽에 닿는 느낌은 섬뜩하기 짝이 없고 애인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사람이 열씨미 들여다보고, 장갑을 꼈다고는 하지만 만지기까지 한다고 생각해보라. 진짜 찝찝하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는건데 왜 찝찝해야만 하는가.

둘째는 의료의 문제니 못알아 듣는 말 나올까봐였는데 난 한국에서 진료를 받은적이 없어서 한국사정은 모르지만 여기도 한국 병원으로 가면 환자들은 다 동포들이니 대기실에선 유부녀인척 하고 있는게 편하다. 첨 갔었을 때, 내 옆에 어느 시어머니와 나보다 한참 어린 며느리가 옆에 있었는데 그 시어머니 날 보며 '몇달? 배를 보니 한 5개월?' 하고 물어 봤을 때 정말 비참했다. 암만 내 몸무게가 최고를 기록했던 때고 뽀빠이 바지를 입고 앉았어두 글치... 그래서 당당히 있자.라고 맘 먹었던건 다 까먹구 뻥칠까, 말까 고민할 생각도 않고 6개월이요.라고 해버렸다. 나름대로 6개월이어도 날씬하단 말을 듣고 싶었던 강력한 의지에서 나온거였던거 같은데 내 잔머리가 맞아 떨어져서인지 그 시어머니는 나보구 '어머나.. 근데 어쩜 이리 날씬해'라고는 하셨지만 그 뒤가 더 머리 아픈 상황이었다. 일어나 보라구 하시더니 '뒷태를 보니 엉덩이가 딱 퍼진게 아들일세'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초진할때 기본적으로 써내는 인포메이션을 보았던 간호사가 그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난 모린다. 그녀의 얼굴을 볼 생각도 안했고 그 후론 병원가면 실내지만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서 티피컬 '말걸지 마시오'룩을 하고 있었다. 췻췻.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산부인과에 주로 가는 이유는 물론 임신과 출산의 문제 그리고 부인병 때문이다. 그 중 자궁암 검사 받으러 가는 사람이 젤로 많을꺼라고 본다. 근데 알고 있는가. 자궁암은 성관계를 갖지 않는 성직에 있는 여자들이 젤 많이 걸린다고 한다. 남자 손 잡은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마당에 다른 이유도 아닌 스스로 자란 혹같은게 생겨서 위에서 말한 진료과정을 거쳐 수술까지 받는 일은 진짜 심란하고 삼십대 이후엔 6개월마다 와야한다는 이야길 들으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말이다. 성관계 잘 갖고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퍼센테이지의 발병률이라니. 그 이유땜에 적절한 성관계 장려라던가 자유부인적 말을 하는게 아니다.

개인의 성관념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미혼의 여자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면(적어도 쉬쉬한다면) 그건 사회적 시선이 가장 클꺼라는데 두 팔 번쩍 들겠다. 그러니 산부인과를 갈 때마다 느끼는건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첨부터 잘못됬다고 생각될 밖에. 어릴 때 부터 성문제와 거기에 따른 책임감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바른 피임법도 가르쳐줘서 무책임한 임신과 출산도 막아야 할 것이며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건강상의 이유가 아닌 성적인 것으로 몰아 보는 편견까지 깨라고 가르쳐야 옳다. 미혼이 가면 눈총받는게 다 여기서 나오는 거 아니냔 말이다. 그리고 왜 검사 받으면서 찝찝한 기분을 가져야 하는가. 내 스스로도 아직까지 깨지 못한 한국적 성교육 때문이라고 밖에 답이 안나온다. 타인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할 때 생기는 수치심은 어릴 때부터 들어온 폐쇄적인 교육, 다 그런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록 의사 앞이라 할지라도 검사받는 부위가 그런 곳이니.

그리고 산부인과에 가면 꼬리를 물고드는 또 다른 복잡한 생각. 삼십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몸이 늙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폐경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이 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중년의 나이인 40대에 그것을 겪게 된다. 그러면 여자에게만 있는 능력인 출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때되서 짝만나 결혼하고 적당한 때에 그 과정을 다 겪게 된다면 바랄 나위없겠지만 남편, 아내는 없어도 모성,부성은 있는 사람들에게 이건 은근한 고문과 다를 바 없다. 바이얼러지컬 클락은 계속 똑딱대며 종 칠 시간을 알려 대는데, 시간 됐다고 그전에 무작정 애를 낳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또한 사회적 시선 때문임은 분명하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외치며 성관계에 너그러운 젊은층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선 답답하기 짝이 없으니 이 또한 문제다. 앞으로는 더 많은 형태의 가족구조가 생길테니 미혼모, 미혼부에 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문제를 보자. 위에서 미혼이라도 가질 수 있는 모성과 부성에 관해 언급을 하였다. 그런데 여러가지 상황상 직접 낳을 수 없다면 입양을 할 수 있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미혼에게는 그 길 또한 막혀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프랑스 외의 나라들은 다 어렵다. 입양의 조건이 까다로운건 이해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신이라도 모성과 부성이 없는건 아닐진데 단지 결혼하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결격사유가 된다는 건 참말 억울하다. 부모가 다 있어야 애들 정서상 좋다는건 안다. 하지만 편부, 편모슬하에서 자랐다고 애들이 비뚤어지게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미혼이란 이유만으로 부모가 될 수 없는 사회적, 정서적 미달 판정 붉은 도장을 이마에 찍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 가서 입양까지 번져가는 생각을 했다면 날보고 오버리액팅이라고 할 사람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든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런데 다들 쉬쉬하고 목소리 내길 꺼린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생각해 보면 문제는 다 연결된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없는 한, 억울한 사람은 늘어만 갈 것이다. 그러니 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부터. -- 오야붕 2004-4-15 4:10 pm

3 # 촌평[ | ]

어제 누구씨에게 부인과 갔다 왔다고 이야기 했더니, 역시나 애 가졌느냐고 물어보더군요..-_-
그래서 '여자는 30살 넘으면 1년에 한번씩은 정기 검진을 받아야 된데'라고 이야기 했더니 그런게 있냐며 자기는 몰랐다고 하더라구요..(여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으니 알리가 없다는...-_-;;;, 저번에는 생리통의 고통에 대해서 리얼하게 설명해줬더니 매우 흥미진진해 하더군요 -_-;;;;;;;;)


뭐 여튼 가는 김에 blood test받았다고, 그쪽도 받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해 봤다고 하더군요. '왜 받았느냐'라고 꼬치꼬치 물어볼수도 있었을텐데, 그냥 '잘했다'라고 해줘서 기분이 좋아졌어요...(팔불출이라는 -_-;;)


지금 다니는 병원은 치료가 다 끝나면 다시는 안갈 생각이랍니다..
하여간 병원은 좋은곳으로 다녀야된다는 생각을 이번에 절실히 느꼈어요..-_- -- DarkTown 2004-4-16 3:52 pm

35세가 되면 '노산'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데다가 거기에 '초산'이라고 하면 거의 몰모트 수준이라고 합니다. 글구 병원비도 장난 아니고 말이죠. 남자도 없는데 것부터 걱정했더니 아는 산부인과 의사 언니가 자기가 애 낳을때까지 공짜로 봐주겠다고 하더군요. 그것만이 현재의 위안이지요. -_-


여튼 그녀가 차병원에 있다가 최진실이 애 낳다는 병원으로 옮겼는데요. 거기도 좋다고 소문났다는데 알아봐서 갈쳐줘요? 가뜩이나 꿀꿀한데 그런 몰상식한 간호사가 있는 병원은 가지 마시오. 장박사.... -- 오야붕 2004-4-15 4:34 pm

여성의학과로 바뀌는것이 맞겠네요..그리구 당연히 피검사뿐아니라 건강검진은 상호 교환하는것이 좋은것같습니다. 건강이 나쁘면 관두고 이런차원이 아니라 마음과 함께 상대의 몸도 잘 알아두면 챙겨주기 좋겠죠..모 그렇게 까지 섬세한 검진은 없습니다만요..삼십이 넘으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하는군요..저도 품평끝나면 가봐야겠네요..근데 가신 병원은 어딥니까? 이왕이면 거기가서 검진하고 그 간호사 손좀 봐주고 와야겠군요..쯧쯧-- Suitall 2004-4-14 7:59 am

제 후배도 얼마전에 질염때문에 산부인과에 갔다왔는데, 그 친구도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서로 믿어야지 라고 하며 왜 산부인과에 갈일을 하느냐고 하더랍니다.
(그것도 약사라는 인간들이 -_-;;;)
이렇게 의식 수준들이 구릴수가 있나 라고 둘이 욕을 했더랬지요..-_-;;


제가 다니는 병원은 안가시는게 조아요..
저는 집앞이라 가는건데..
한마디로 구.립.니.다. --;;;;


병원은 최신식에 설비가 조은 곳으로 가는게 제일인것 같아요.. -- DarkTown 2004-4-14 3:58 pm


사회적 인식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자기의 행동에 책임질줄 모르는 무책임에 대한 불만이지..
마초적인 거에 대한 반감 내지 불만은 별로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 DarkTown 2004-4-14 1:39 am


그러니까 말하는 요지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불만이구먼? 남자들이 비뇨기과에 가면 저놈 부실한거 아녀라고 바라보는거 같애. 역시 마초적인 거겠지. -- 거북이 2004-4-14 1:36 am


Dark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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