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칼튼 힐

2002 10 02 水 : 비 내리는 칼튼 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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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찾아가는 길에 본 일출

일찍일어나 씻고 일단 민박집부터 찾아갔다. 원래 여행지에서는 잠자리를 확보해야 마음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주택가 한가운데로 가야하길래 민박집이 있을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그냥 가정집이다. 난 민박집이라고 해서 왠지 한국의 초가집 스타일의 민박집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방에 짐을 놓고 아저씨께서 애기를 학교보내실 때 차를 얻어타고 나왔다. 에딘버러 생활은 4년째라고 하신다.
호오 처음엔 영국 도시들이 다 이렇게 이쁜가 했는데 알고보니 에딘버러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그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도시였다. 정말 그럴만 하다. 아저씨 말로는 이동네는 돌로 된 옛 집들이 새로 지은 외각의 집들보다 훨씬 비싸다고 하셨다. 그리고 문화유산이다보니 함부로 손댈 수 있는것도 아니고. 대신 내부수리를 할 때 나라에서 지원이 나온단다. 이것은 안국동 쪽의 한옥보존지구도 마찬가지다.
돌이 더러워지면 10년이나 20년 정도에 한번쯤 그것을 깨끗하게 닦아야 하는데 이게 이동네의 산업중 하나라니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서 페인트칠 하거나 벽지바르는 그런 느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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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하나 사먹고 왕립 박물관 앞에 앉아있다. 하여간 이놈들은 로열 안들어간 곳이 없다. 우유를 하나 사서 먹고있는데 유제품 하나는 그래도 맘놓고 사먹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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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서 뭔가를 기다리는 학부생들

여기 대학은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듯 한데 바로 앞이 에딘버러 대학인가보다. 애들이 줄을 서있다. 이제 학기가 시작되었고 하니 아마도 줄을 서서 수강신청을 하는 것 같다. 한국과 별로 안다르네. 나중에 들어보니 에딘버러 대학은 외국인들이 꽤 많이 다니는 좋은 학교라고 한다. 이동네의 주요 수입원이 관광과 교육이라는군.
오늘의 목표는 시내 관광과 스코틀랜드 기차표 예약 그리고 심야 클럽 구경이다. 어제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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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의 잔해인 거대한 증기기관, 그리고 큼직한 시계앞에서 사진찍은 우람과 거북. 역시 이 아저씨도 사람만 찍었다.

왕립 박물관은 여러가지 잡동사니를 모아둔 곳이다. 산업혁명의 유산들과 과학혁명의 그것들을 차곡차곡 넣어두었는데 인상적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중국과 인도, 이집트 등에서 훔쳐온 것들이 또 잔뜩 쌓여있다. 여기도 이런데 이거 대영 박물관에는 얼마나 많은겨. 사진 못찍게 했지만 턴테이블들을 모아둔 것이 있어 몇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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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다닐 수 있도록 만든 턴테이블과 세워서 플레이하는 턴테이블. 오른쪽에 있는 픽쳐디스크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밴드인 TalkingHeads의 And She Was싱글. Little Creature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명곡은 아님.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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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알고싶지도 않은 AFC와 에딘버러 성.

에딘버러 성으로 걸어갔다. 8P나 해서 허걱했지만 들어가보니 뭐 꽤 괜찮다. 사진찍기 좋고 경치 좋고. 완전 요새다.
안에는 전쟁 박물관이 하나 있다. 각종 군복과 무기따위가 놓여있는데 뭐 나에겐 무의미하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WooRam은 빼놓지 않고 보았다.
이 성도 여러 건물들이 있다. 다 비슷해보이지만 건축연대가 제각각이다. 제일 최근 건물은 전몰자 기념관이었는데 제일 오래된 건물은 이것과 천년이라는 시간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목조건물이 많은 우리나라의 감성으로는 좀 당혹스럽다. 여튼 천년이나 시간차이가 있는데 생긴거나 질감은 똑같다. 그게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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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프린세스 파크. 길건너는 비교적 신시가가 펼쳐져있고 공원 뒤쪽으로는 로열마일을 비롯한 구시가이다. 멀리보이는 탑이 뽀다구로 먹어주는 스콧 기념탑.

에딘버러 성에서 내려다보는 에딘버러 시내는 볼만하다. 옛것과 요즘것이 조화롭다. 아마 여기는 다른 도시들에 조금 고풍스럽고 조금 더 고즈넉한 곳일게다. 여튼 이런 신구의 조화라는 것은 역시 부럽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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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라버리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우람이 함께 찍어버리고 만 닭살커플. 남자녀석이 오방 느끼한데 아마도 스페인이나 이태리 놈일 것이다. 여자들이여 조심하시라.

로열 마일쪽으로 나오지 않고 옆으로 내려왔더니 프린세스 파크라는 공원이 있다. 아 잔디가 너무나 푹신하고 맘에 든다. 양지바른 곳을 찾아 눕다. 한시간이나 곤하게 널부러져 있었는데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르겠다. 이런게 행복이다. 그나마 이것도 우람군이 너무 배가 고파서 깼으니 한시간만에 일어난거다.
여기 도심에는 먹을거 파는데 찾는것도 쉬운일이 아니라 적당히 보이는 길거리 햄버거 트럭에서 하나 사먹었다. 뭐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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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이나 널부러져 잤던 프린세스 파크. 여기서 정면으로 보이는 쪽이 구시가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왔다. 시내 한가운데 있다. 쓸만한 것은 모두 런던에 있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다. 들어가자마자 램브란트의 초상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엘그레코의 그림도 몇개 있었고 여기에 의외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있다. 모네, 고흐, 쇠라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들이 스코티쉬와 유로피언으로 나뉘어져있다는 거다. 당연히 잉글랜드의 그림은 유로피언쪽에 있다. 스코틀랜드에게 있어 잉글랜드는 여전히 외국이다.

 

Sir Henry Raeburn
Revd Dr Robert Walker Skating on Duddingston Loch, (c.1795)
76.2 x 63.5 cm; oil on canvas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의 대표선수. 스코틀랜드 인들에게는 확실히 소박한 그 무엇이 있다.

확실히 고흐는 태양의 화가, 열정의 화가다. 드가는 정말 여성성에 대해 열심히 그렸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친구는 돈이 많아서 남들 그림팔고 있을동안 열심히 여자들만 보고있었다는구만. 예술적 감성과 돈이 만나면 가끔은 행복한 결과를 가져온다. 의외로 별로 무감각했던 쿠르베코로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모네마네등에 비하면 그 명성은 확실히 밀리지만 큰 그림으로 보니 그들의 붓터치와 감각은 다른 화가들과는 또 달랐다. 코로는 집요하게 전원적인 풍경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갱은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의외로 스코틀랜드의 그림들이 꽤 맘에 들었다. 그들의 그림은 소박하고 가식이 없으며 자연주의적이었다. 그런데도 힘이 있는 것들이 있더라.
알고보니 윌리엄블레이크의 그림들이 몇개 있다. 사실 이놈 그림은 멍청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꽤 유명한 놈이니 봐주자하고 찾아봤는데 못찾겠다. 어찌어찌 물어보니 어딘가에 치워놓아 한동안 볼 수 없다고 한다. 특별히 보여줄테니 원하면 내일 점심때 방문하란다. 어설픈 영어를 써보려 했으나 스코틀랜드의 사투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노친네들은 더더욱. 우람의 아일랜드 사투리도 무용지물이었다. 필담과 손발을 다 동원해서 간신히 조금 대화가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열심히 들어주려했고 도와주려 했다. 친절한 의도는 어떻게든 전달이 된다. 비록 그들이 5분을 '후오이브'라고 발음했다고 해도 말이다.
이거 작가만 대충 적어왔더니 어떤 작가의 어떤 그림에서 내가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후 다른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은 작품명까지 적느라고 한참 걸렸다. 미술관 디비기는 그저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음미하면서 해야한다.
몇몇 기억나는 화가만 정리해보다. 맥태가트, 다이스, 죤던컨, 필립칼데론. 이 외에 성만 적어온 Traquair, McCullough, MacNee, McKay, Paton이라는 화가들에 대해서는 정보를 찾을 길 없다. 흠. 그림 보는것도 쉬운 일이 아녀.

나와서 어제 못간 판가게를 갔다. 버진은 너무 비싸다. HMV는 그나마 좀 살만하다. 하지만 세일가격이 만원정도니 이건 세일도 아니다. 여튼 5P짜리 시디들 중에 잘 안보이는 놈들이 있어 몇개 집었다. 런던에 더 싼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아 이것은 거대한 착각이었다...T_T) 여튼 한번 땡겨준 CD들을 외면하는 것도 너무나 매몰찬 듯 하여 몇장을 샀다. 새로나온 판들은 거의 20P에 육박한다. 이건 일본보다 더 비싸다.
횡단보도 앞에서 키스하는 뚱보 커플을 보았다. 이뿐 모습은 분명 아니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애정표현은 다다익선이다.

차표를 끊으러 갔다. 대충 우리의 계획을 말하고 자문을 구하니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어제 i에서 설명해주던 언니도 무척 자상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동네 친구들은 다들 친절하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서 에딘버러=>인버니스=>카일 오브 로칼쉬(1박)=>스카이 섬=>말래익=>글래스고=>에딘버러 이렇게 오는 코스를 잡았다. 64P라. 겁나 비싸다 역시. 이건 우리가 탔던 모든 비행버스 비용을 더한것보다 비싼거 같다.
여기 열차도 스코트레일이라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 철도 지도에는 딸랑 스코틀랜드만 나와있다. 역시 스코틀랜드다. 얘기를 들어보니 스코틀랜드는 북해유전때문에 재정적으로도 독립이 가능하다네. 스코틀랜드 파운드를 따로 인쇄해서 사용하고 있고 얼마전에는 4백년만에 따로 의회를 구성했다.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그들이 자존심 하나는 화끈하다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것 같다. 이미 잉글랜드와 워낙 많은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독립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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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기념탑인가? 뭔지 모르겠다. 오른쪽은 신전터(?)

비가 찌룩찌룩 오는 가운데 시간도 좀 남고하여 칼튼 힐에 올라갔다. 오 음산하다. 어두운데 비까지 오니 아주 가관이다. 로마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전 분위기의 기둥이 몇개 있고 넬슨 기념탑이 있다. 넬슨이라면 영국의 이순신 형님쯤 되는 인간으로 알고있는데 이 친구가 스코틀랜드 사람이구만. 스코틀랜드는 예로부터 쌈박질에는 자신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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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칼튼 힐에서 내려다본 에딘버러 야경.

저녁먹기가 영 마땅찮다. 이놈들은 6시면 문을 닫고보니 어디 먹을데가 있어야지. 역으로 들어갔지만 선택의 여지라곤 버거킹과 빵쪼가리 뿐이다. 버거왕을 먹느니 빵쪼가리를 먹으마라고 나는 가게로 갔고 우람은 버거왕을 집었다. 갔더니 슈퍼에 샐러드 세트가 있어서 그것과 이노센트라는 이름의 딸기+바나나 믹스 음료수를 샀다. 이거 포장이 이뻐서 아까 아침에 샌드위치 먹을때도 눈이 갔었다. 이쁘긴 한데 너무 비싸다. -_-+ 여튼 야채를 먹으니 입이 개운하고 좋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챙겨보다. 나와서 아주머니와 얘기를 좀 했는데 활기찬 스타일이셔서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나는 아줌마들의 수다스러움이 좋다. 여튼 우린 내일 스코틀랜드를 돌고온 다음날 바로 런던으로 뜨기로 했는데 뒤에있는 홀리루드 산이 아주 경치가 좋다는 것과 바닷가에 가면 썰물때 섬과 이어지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아 역시 원주민들의 생생한 정보가 중요하지 책자에 나와있는 것들은 모두 부질없고 돈만 쪼개는 것들이다. 젠장 에딘버러가 이렇게 좋을줄 알았으면 시간을 하루나 이틀정도 더 확보했어야 했다. 이것은 나중에 바르셀로나에서도 든 아쉬움이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뭐랄까 두분 다 개성이 있다. 아저씨는 과묵하고 아주머니는 수다스러운 편이지만 챙겨주려하시는 마음은 똑같은거 같다. 영국에서 이런 민박집을 9P에 운영하는 것은 거의 자선에 가까운 것이다. 저녁값으로 5P가 홀랑 날아가보면 이런것은 금방 체감된다. 이후 런던에서는 좀 당혹스럽기까지 한 민박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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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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