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호의거북

2002 10 03 木 : 네스 호의 거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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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바라본 달. 달에 울다. Bark at the Moon? -_-

6시 40분 기차라 버스가 없어 택시를 타고 역까지 나왔다. 아주머니께서 택시를 불러주셨다. 죄송스러워라~ 6.7P
아주머니께서 싸주신 아침 빵을 역에서 먹었다.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너무 고맙다.
빵 먹고 있는데 루 리드LouReed의 Satellite of Love와 닉 드레이크NickDrake의 Time has told me가 흘러나왔다. 역시 여기는 영국인 것이다. 여기서는 마구 트는 것이 다 팝, 락의 명곡들이다. 이게 이놈들의 가요라는 사실은 항상 어색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이다. 어제는 구멍가게에서 포티셰드Portishead와 에어Air가 나오더라. 점원에게 '니 에어 좋아하나?'그랬더니 '말랑말랑해서 좋아여~'이러더라. '내도 좋아한다 아이가.'이러고 나왔다. 에어는 프랑스 애기들이긴 하지만. 스페인가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나오겠구만.
새벽이라 춥다.

역시 잠을 넉넉하게 못자서 환승해야 하는 퍼쓰Perth까지 졸면서 왔다. 이 친구들 다른건 몰라도 열차시간 같은 것은 칼같이 지켜준다. 역시 산업혁명 이후 세계 최초로 기차를 굴린 나라인 것이다. 스페인은 세월아 네월아 니나노라고 들었는데.
여튼 잤더니 좀 낫다. 조금 있으면 인버니스에 도착할 것이다. 티켓 검사는 자주 하긴 하는데 이놈들이 읽고 하는건지 대충 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설렁설렁 펀칭만 한다. 조선에서 기차 탈 때도 매번 싸구려 티켓 끊고 타도 되겠다 싶었는데 여기서도 동일한 유혹이 생긴다. 이미 티켓도 끊었겠다 괜히 시도해봤다가 국제망신 당할필요는 없지만 유혹은 유혹이고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유혹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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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랜드의 풍경들.

그렇게 죽여준다는 하이랜드의 경치는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다. 비가 와서 밖을 내다보기도 안좋았고 기차길 옆을 감상할 시간도 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뭔가 불충분하다. 이런 것은 승용차를 몰고 쓱쓱 가다가 아무데나 서서 한두시간씩 빈둥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일게다. 여튼 종종 이런 기괴한 자연이 있나 싶은, 슬리피할로우의 배경과 같은 음산한 풍경들이 나타난다. 이런 동네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하이랜더 따위의 전사가 될 수도 있을것 같다.
아일랜드에서 실컷 보았던, 건초더미와 양이 흩뿌려진 풍경은 여기도 여전히 무료하게 건재하다. 양들이 가진 코믹한 이미지 또한 그대로다. 녹색 위에 하얗게 뿌려진 솜뭉치들이 가만히 앉아있거나 달달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 바보같다. 양의 이 멍청한 이미지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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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니스의 중심가.

이동네 사람들은 더블린처럼 빨리 걷는다거나 하진 않는다. 더블린에 비하면 무단횡단도 별로 안한다. 더블린이 좀 더 망가진 느낌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그곳이 수도이기 때문이리라.(이 때만 해도 아직 런던 구경도 못한 시점이라는 것을 알아두시라.)
인버니스도 예의 도시들이 그랬듯 작은 도시다. 여기도 애슬론처럼 The Heart of the Highland따위의 말이 써있지만 역시 지리적 위치때문에 한번 애교를 부려본 것 뿐이다. 그냥 소도시다. AFC나 뮤지엄도 있지만 자그마하고 별로 볼것은 없다. 이곳의 뮤지엄은 화장실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긴 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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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장한 네스 강.

하지만 시내 한가운데 흐르는 네스 강은 아주 봐줄만 하다. 애슬론의 강가와 더불어 가장 이쁜 강가였다. 이 네스 강의 상류는 네스호Loch Ness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자. 스코틀랜드인들은 그 계통상으로 볼때 잉글랜드보다는 오히려 아일랜드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잉글랜드에 앵글로 섹슨족이 상륙해서 룰루랄라 살고있던 켈트족을 몰아올린 것이다. 따라서 스코티쉬들이 잉글리쉬를 미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스코틀랜드가 아일랜드처럼 갤릭어를 공용어로 쓰고있진 않지만 여전히 갤릭어의 흔적들은 매우 많이 남아있다. 호수를 뜻하는 로크Loch라는 단어도 갤릭어이고 네스 호에 가려면 들려야하는 드룸나드로힛Drumnadrochit도 갤릭어 계열의 지명이다. 이게 Bridge of 머시기라는 뜻이라고 들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에서 켈틱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튼 네스호에 가기위해 드룸나드로힛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는데 7P나 한다. 끄어어. 하여간 이나라는 교통비 하나는 끝내주게 비싸다. WooRam은 이 표값을 보고 Heartattack of Highland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린 그나마 시간표를 보기가 너무 어려워서 차시간을 잘못 계산해 조금 더 빈둥대야 한다. 뭐 어떠냐 설렁설렁 다니자. 다시한번 강조. 나는 노인 보신 요양 여행을 하고있다. 드룸나드로힛에는 네시 박물관이라는 같잖은 시설도 있구나.
네스호는 순전히 괴물 네시 녀석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이거 아무리봐도 조작적인 혐의가 짙다. 내가 초딩때나 중딩때만 해도 소년과학인가 과학동아인가에 네시녀석에 관한 기사는 아주 흔했다. 하지만 한동안 나타나지도 않고 있어서 요즘 이동네 경기는 많이 죽은듯 하다. 분명 조작하던 사람이 지겨워진걸게다. 여튼 한번 조작해둔 덕분에 꽤 여러사람 잘 지냈을듯. 네시 관련상품을 파는 곳에는 네시가 호수 바닥을 파서 그 밑에 살고있다는 둥 아니면 다른데로 멀리 떠났다는 둥 별 같잖은 설들이 실린 그림책 따위를 팔고있다. 쇠락한 곳의 발버둥같아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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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진짜 맞는겨 하고 당황하는 거북. 오솔길이 나있지만 조금 가면 길이 없지 싶어진다.

드룸나드로힛에서 네스호로 가는 길은 정말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걸어서 30분은 가야하는데 사람들이 가라고 하는 쪽에는 길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신흥 주택가를 지나고, 묘지를 지나고, 말과 양이 한가롭게 빈둥대는 농장을 가로지른 다음 과연 길인지 의심스러운 숲을 통과해야한다는 것이다. 설마 그럴까? 하고 계속 가면서 여러번 물어봤지만 대답은 같다. 뭐 이래 이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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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경계 부분에 이 표지판이 있는데 여기에는 스코틀랜드를 믿어라Trust Scotland라고 적혀있다. 이 말에 '에라 한번 믿어보자'하고 계속 갔고 결국 네스호에 도착할 수 있긴 했다.

숲속의 길에는 심지어 조그만 개울이 가로질러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했고 오는 길에는 송아지만한 개가 갑자기 앞에 서서 정말 식겁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라. 아무도 안다니는 숲속에서 송아지만한 검은 개가 갑자기 정면에 나타난다면. 당연히 허걱한다. 이놈이 덤벼봐라. 죽는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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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호에서. 찍지말라고 그렇게 주장했건만 우람은 이 복대 푸는 사진을 찍고야 말았고 이후 그는 이것이 자기 모던 아트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주장. -_-

여튼 네스호는 상상보다 훨씬 크다. 석촌호수나 산정호수 정도를 생각하면 안된다. 준바다쯤 된다. 조용한 호수가에서 걸쭉한 남자 둘이 햇빛은 비치지만 가랑비가 45도 각도로 흩날리는 곳에 앉아 조약돌이나 던지고 있다. 아 이럴때는 항상 남자끼리 여행 온 것이 참 후회스럽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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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잡고있는 우람. 역시 내가 구도는 잘 잡는다. 하핫.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엄청나게 차다. 그리고 들어가보니 호숫가만 얕지 조금 들어가면 갑자기 확 깊어진다. 그리고 날이 조금 어두워지니 물이 검은색으로 느껴지고 바람때문에 파도가 강해지면서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 하면서도 갑자기 모든 것을 잡아먹겠다는 듯 무서워질 때가 있다. 노자가 도덕경05장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을 괜히 말한것이 아니다. 하늘은, 대자연은 결코 인한 것이 아니다.

음식을 고르다 녀석의 입에서 여행을 혼자다니는 것은 어떨까라는 말이 나왔다. 나 역시 혼자다니는 여행에 대해 전혀 생각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니 조금은 당혹스럽다. 아마 여행다니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친구, 형제들과 함께 다니다 사이가 틀어졌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을것이다. 아무래도 공유하는 시간이 많은만큼 쫑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렇다. 나나 우람이나 무난한 넘들이라 별 문제없이 다니고 있었지만 가끔 음식을 고른다거나 갈 곳을 정하거나 할때 전혀 의견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쌓여 터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결국 여행 끝날때까지 우린 잘 다녔다.
사실 혼자 다니면 주변의 동료 여행자들과 친해질 기회도 있고 뭔가 다른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지만 물건 도난 위험이나 고독감을 더욱 심하게 느낄 수도 있다. 딱히 뭐가 낫고 말고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녀석은 나를 배려한다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또한 녀석을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껄끄러운 배려를 계속 하느니 따로 다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왜 누군가를 배려해야하지라고 투덜대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가 나를 배려하고있을지 모른다. 피곤한 일이지만 할 수 없다. 난 이 험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외로움을 즐기고 살만큼 강하지 않다.

오늘의 종착지인 카일 오브 로칼쉬Kyle of Lochalsh에 도착해서 내렸는데 이 조그마한 어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좋은 잠자리를 찾기는 커녕 깜깜하고 아무것도 눈에 안뜨여서 잡히는대로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나마 그것도 쉽지 않아 우리는 B&B를 찾아 한동안 헤맸다. 동네가 작아서 B&B도 거의 없는데 기껏 하나를 찾았더니 이쁘장한 여자애가 나와서 이쁜 목소리로 '방없으니 딴데가서 알아봐~'라고 했다. 아무 방이라도 만들어봐라라고 하고싶었지만 아주 냉담해서 관뒀다. 잔인하긴. -_- 간신히 다른 곳을 찾았는데 무려 18P! 진짜 심장마비 걸리는줄 알았다. 이것은 에딘버러 방값의 딱 두배다. 일단 들어가서 방을 본 다음 에누리를 시도해봤다.

저희는 푸어 리틀 백패커들인데염...조금만 깎아주실 수 없나요?

아줌마 한참 고뇌하더니 둘이 한방을 쓰면 일인당 16P에 해준단다. 아 이렇게 짠순이라니. -_-+ 연인이 아닌이상 도저히 함께 잘 수 없는 침대여서 그냥 둘이 각방을 썼다.
인버니스에서 사온 싱가폴 라면 하나 끓여먹고 잠들었다. 비가 온다. 느낌이 안좋다.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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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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