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어 성립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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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

ISBN 8988303660 ISBN 458843604X
번역어의 논리[翻訳とはなにか-日本語と翻訳文化, 柳父章, 1976)
-_- -_-a
문명의 언어(文明のことば, 鈴木修次, 1981)
ISBN 8956450196 ISBN 4004201896
번역어 성립 사정(翻訳語成立事情, 柳父章, 1982)

2 # 거북이[ | ]

최근 일제 한자어에 대해 다룬 책 세권을 읽었다. 야나부 아키라라는 할아버지의 '번역어의 논리'(원제는 '번역이란 무엇인가-일본어와 번역문화')와 '번역어 성립사정' 그리고 스즈키 슈지의 '문명의 언어'(직역은 '문명의 단어')다. 이 책들은 모두 서구의 개념어들을 번역한 일제 한자어의 기원을 담고있다. 요런 논의들이 70년대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은 딱 일본의 70년대 정도가 아닌가 싶은게 솔직한 내 기분이다.

일단 야나부 아키라의 이야기부터 간단하게 요약하면, 번역어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얘기다. 번역어는 별 내용도 없지만 뭔가 있어보이면서 무조건 일반인들에게 잘 침투하는 것이 장땡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카세트효과라고 부르는데 카세트는 보석함을 뜻하는 불어로 겉은 화려하면서 써보고싶은 기분이 드는 아이템이지만 속은 텅 비어있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쓴 것이라 한다.

메이지 선각자들이 유럽의 책을 번역하면서 여러가지 한자 조어를 사용해 그들의 개념어를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고전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한자어를 끌어와 썼지만 그것들은 모두 그 맥락과는 크게 관계없는 단순한 번역어일 뿐이었다. 그것들 중에는 적합한 번역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으며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것인데도 여러가지 후보가 있어서 그중 하나가 선택된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중 가장 적합한 단어가 선택된 것이 아니라 종종 가장 적절하지 못한 단어들이 선택된 경우도 많았고 그저 사람들이 뜻도 잘 모르지만 한번 써보고싶고, 쓰면 멋있겠다고 느낀 단어들이 결국 번역어로 선택되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뜻이 별로 없는데도 뜻이 있는 것처럼 취급되고 학자 혹은 일반인들의 각종 남용으로 이 단어들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게'되는 이 과정이 바로 번역어로 '선택'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스즈키 슈지도 야나부 아키라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있는데 이 양반의 이야기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주목할만하다. 일제 한자어로 개념어들이 번역되면서 서구의 개념들 못지않은 대립쌍들이 나타나고 학문이 분화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소모적인 논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유물 대 유심, 인문학 대 자연과학 등)그래서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중국인들의 발상을 따라가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얘기를 하고있다.

두 사람이 모두 긍정하는 것은 메이지 시대의 선각자들이 문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훌륭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이점에 대해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외국어를 자기 식으로 소화했고 그 결과 일본어만으로 문명을 쌓아나갈 수 있는 벽돌을 만들어 후예들에게 남겨주었던 거다. 반면에 지금의 일본어는 카타카나로 된 외국어 표현 그대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상어와 학술어가 분리되고 있다며 스즈키 슈지는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스즈키 슈지는 한자의 표의문자로서 가지는 장점을 애써 미화시키려고 하는데, 한자의 기능을 폄하할 이유도 없지만, 표의문자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역시 분명하다는 것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그런거보면 일본이 한자/가나 혼용 시스템을 사용하고 후리가나를 통해 한자의 독음을 알려나가면서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의 양 장점을 살리고 있는 것은 꽤 칭찬해줄만한 구석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한자음이라는 1:1 대응이 되는 한자독음 시스템을 이용해 한자를 쓰면서도 한글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나라 역시 꽤나 훌륭하게 그것을 극복했으니 역시 좋은 일이다. 중국인들이 표음문자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 처절한 역사는 창힐의향연에 잘 묘사되어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가끔 보이는 국어순화운동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의 사회성을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순수 뻘짓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해도 언어순화는 이루어낼 수 없다.
일단 현재 각 분야별로 선도하는 그룹이나 위원회 등이 있을텐데, 그 안에서 일단 표준안을 만들고 그 표준을 지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언론과 출판, 그리고 행정쪽에서는 강제적으로라도 지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실천이 10-20년 지난 다음 국어사전을 정비하는 방식으로 현 상황을 재검토하는 시간을 가지면 될 것이다.

수유연구실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에 대한 논의가 다양해지는 것은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문명의 언어'도 수유에서 불법-_-으로 번역한 책이고. 우리도 우리의 개념어, 번역어들이 어떤 근대화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왔는지 한번 주-욱 검토해봐야 하는 시간이 온 것 같다. 저 위에 적은 책 세권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고(구하기도 힘들고...-_-) '번역어 성립사정'만 읽거나 아니면 나에게 빌리러오셔도 되겠다. -- 거북이 2005-7-27 2:0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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