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 조선 영조 31년(1755)에 윤지(尹志)가 나주 객사에 붙인 벽서와 관련하여 일어난 역모 사건
- 사건 수사에 소론이 연루되면서 노론이 득세하게 되고, 탕평책의 균형이 깨지는 계기가 된다.
- 득세한 노론이 당시 대리청정하던 사도세자에게 소론 잔당을 잡아들이라고 상소를 하자, 노론과 사도세자의 균열이 생겼다고 알려졌으나 실상은 다르다.
- 당시 사도세자는 영조의 뜻에 따라 노론의 상소를 거부한 것에 불과하다.
- 이광좌의 추탈이나 박문수, 이종성 등 소론 완론의 인사를 보호하려 한 것은 영조의 뜻을 따른 것이다.
- 실록의 기사를 살펴보면 나주괘서사건 당시 영조와 사도세자의 뜻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