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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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성
金煥城
기본 정보
출생 1981년 2월 14일(1981-02-14)[1]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망 2000년 6월 15일 (1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가수
장르 팝 발라드, , 힙합
활동 시기 1996년 ~ 2000년
가족 아버지 김용원
어머니 윤혜자[2]
누나 김현지
종교 천주교 (세례명:안토니오)[3]
관련 활동 깨비깨비, NRG

1 개요[ | ]

대한민국가수로, 보이그룹 NRG의 멤버였으며 팀 내 막내, 서브보컬[4]을 맡았다.

2 특징[ | ]

미국 시카고 유학 준비 중 우연히 참가한 오디션에 붙고 연예계에 발을 들여 1996년 혼성 댄스그룹 깨비깨비의 멤버로 야심차게 데뷔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데니 안,손호영,와 함께 4인조 혼성그룹을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준비 중 천명훈의 추천을 통해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결국 NRG의 멤버로 재데뷔하게 되었다.

부드러운 미성과 랩, 화려한 춤 실력은 물론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 남성 아이돌 1위로 누나 팬들이 많았으며, 농담으로 홍콩에서 직수입해 왔다는 말로 팬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2%부족할 때를 좋아해서 2%부족 할 때를 마시거나 들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피카츄도 좋아해서 선물로 받은 피카츄 인형을 끌어안고 피카츄 성대모사를 하거나 피카츄 슬리퍼를 신고 다니기도 했다.

음악 방송 1위를 향한 열망이 가장 커서 소원을 물어보면 항상 음악 방송 1위라고 답했다. 데뷔곡 <할 수 있어>로 1위 후보에 올랐지만 IMP 사태 때문에 그 주에 순위 방송이 폐지되는 바람에 더 열망이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 NRG가 5집 <Hit Song>으로 처음으로 1위을 하자 이성진이 한을 풀 듯이 울먹이면서 "하늘에 있는 환성이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안토니오. 장례도 천주교식으로 치렀고 현재도 팬들이 묵주와 성모상 등을 용미리 추모공원에 놓고 가고 있다.

3 사망[ | ]

김환성 사망 (2000년 6월)

2000년 6월 6일 노유민에게 열이 많이 나고 몸이 아프다면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해 병원 응급실로 가서 입원했다. 이때 이성진은 무슨 사내자식이 감기로 입원까지 하냐며 장난을 치는등 별일 아닌듯 했지만 멤버들 누구도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5]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고열 증상이 있었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입원할 정도라, 응급실에서도 단순 감기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 보고 더 심한 병이라 추정했으나, 병원에서는 원인 불명이라 했다.

이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3일 뒤인 6월 9일에 호전되었다. 다음 날인 6월 10일, 입원했다는 소식에 놀란 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음성메시지로 좋아하는 것, 최근에 관심 있는 것 등 얘기를 남겼다.[6] 그러나 말을 한 후,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40도를 넘는 급격한 고열과 복통, 호흡곤란 증세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직후 아직 의식이 존재할 때, 자신의 감염에 대한 진단을 몰래 듣고 친누나에게 누나 나 죽는거야?라고 물으며 절망했다고 했고 유언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6월 10일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폐기능 저하로 체내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인공 폐를 설치하는 응급 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로 연명했지만 오히려 폐와 뇌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가족의 동의 하에 호흡기를 떼어냈고[7], 결국 2000년 6월 15일 새벽 0시 5분경 만 19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2003년 중국의 SARS조류 인플루엔자 창궐로 인해 관련 의혹이 뒤늦게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시신은 이미 화장된 뒤인데다 특별히 채취되어 있는 검체도 없었기 때문에 의혹으로만 끝나 공식적으로 그의 사인은 상세 불명의 급성 바이러스성 호흡기 증후군으로 기록되었다.

장례식은 2000년 6월 17일 천주교식으로 치러졌으며 멤버들과 친구, 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하여 파주 용미리의 추모의 집[8]에 안치되었다.

NRG는 이후 이성진과 천명훈의 재합류를 거쳐 중국에서 추모 콘서트 <For Antonio>를 열고 1년 후 추모 앨범 4집을 발표했다. 그리고 1주기 추모식과 영상회를 거쳐[9]현재까지도 중국 팬들이 그의 가족을 초대하여 그를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용미리 추모의 집에는 팬들이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2% 부족할 때와 피카츄 인형을 두면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4 여담[ | ]

  • 홍콩배우 금성무를 닮은 외모 덕분에 은성무,동성무,다이아성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 조용하지만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연예계에서도 소문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 학교에서 성실한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엔 엎드려 잤지만, 수업은 졸지 않고 듣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교사들조차 "저 아이를 보아라. 연예인이지만 수업을 성실하게 듣지 않느냐?"라고 비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 1세대 아이돌들과 두루두루 친했지만 그중에서도 강타를 좋아해서 입원했을 때 강타를 애타게 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강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고 한다.[10]
  • 클릭비 오종혁, 에반, 노민혁이 김환성의 고등학교 후배이며 김태형도 김환성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이다.[11]
  • 빠른년생으로 1980년생인 팀 멤버 노유민문성훈을 비롯해 이재원, 전진, 손호영, 바다, 강성훈,[12] 고지용, 장수원, 이진, 우연석과 친구로 지냈으며, 1981년생인 김태우, 김태형, 유진, , 성유리에게는 형, 오빠라고 불렸다. 다만 고등학교는 1년 늦게 다닌 탓에 1981년생들과 같이 다녔다.
  • 가끔 숙소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팬들에게 걸리면 아니라고 발뺌하고 했었다.
  • NRG의 멤버들이 지금까지도 김환성을 그리워하고 항상 같이 한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선다고 한다. 이성진은 중간에 NRG를 못 하게 되었어도 다시 하자고 했을 때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을 성격이라고 말했고, 노유민은 김환성의 기일 및 생일이 다가오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으며[13]천명훈은 비디오 스타에 출연해 NRG의 재결합이 김환성의 선물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시 불화로 그룹이 갈라졌음에도 멤버들이 김환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5 학력[ | ]

  1. 빠른생일 적용으로 팀 내 노유민, 문성훈과 친구로 지냈다. 다만 원숭이 띠인 둘과 다르게 입춘 이후에 출생하여 닭띠다.
  2.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김환성이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김환성의 담임선생님이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는 상피제 때문에 불가능해진 일이다.
  3.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치 2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장례 미사도 사망 이틀 뒤에 이곳에서 치러졌다. 또한 2000년에 발매된 그의 추모곡 제목인 <안토니오 (하늘로 보내는 편지)> 또한 그의 세례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4. 3집 한정 메인보컬.
  5. 중한 병일지라도, 초기 증상은 감기나 독감과 비슷하게 시작되는 편이다. 병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당연히 감기 걸렸다고 생각을 할 것이고, 그 말을 들은 이성진 역시 그의 병이 심각할 줄은 몰랐다.
  6. 이 메시지는 후에 <Antonio (하늘로 보내는 편지)> 도입부에 삽입된다.
  7. 여기서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올 이유는 전혀 없는데 안타깝게도 기사에 따르면 인공호흡기를 떼기 전 이미 뇌사 상태였다고 한다.
  8. 서울시립용미리 제2공원 추모의 집, 2층 20호실
  9. 2003년에는 NRG 5집 'Hit Song' 쇼케이스를 겸했다.
  10. 의식을 잃은 김환성의 곁에 울면서 앉아있던 이성진이 뒤늦게 온 강타를 보고 슬프게 웃으면서 "우리 환성이는 좋겠네. 보고 싶다던 사람 와서. 아프니까 보고 싶었던 사람도 오고 환성인 그래도 좋을 거야. 널 볼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11. 김태형과는 같은 81년생이나 김환성은 빠른년생이므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80년생과 동기이다. 고등학교는 연예활동으로 인해 1년 늦게 다녀 81년생과 동기이다.
  12. 여기는 빠른 1980년생이긴 하지만 학교를 빨리 들어가지 않았는지, 팀 내에서 1979년생 이재진, 김재덕에게 형이라고 부르고, 고지용, 장수원과 친구로 지냈으며, H.O.T의 강타에게 형이라고 부르고 이재원과 친구로 지냈다.
  13. 특이점은 당일이 아닌 기일 하루 전에 글을 올리는데 그래야 기일 당일에 기사가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14. 재학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