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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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임기 1989년 7월 19일 ~ 1990년 3월 19일
대통령 노태우
총리 강영훈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40년 7월 11일(1940-07-11) (83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구기동
본관 울산
학력 독일 뮌스터 대학교 경제학 박사
경력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국민은행 이사장
청와대 경제수석
새천년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
5선 국회의원(11·12·14·17·20대)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고문
정당 국민의힘[1]
부모 김재열(부), 이필기(모)
배우자 김미경
자녀 1녀
친인척 김병로(친조부)
종교 천주교(세례명:알렉산델)
군사 경력
군복무 육군상병 전역

1 소개[ | ]

김종인(金鍾仁, 1940년 7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정치인이다.[2]

본관(本館)은 울산(蔚山)이다. 그는 전라북도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기도 양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서울에서 성장하였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헌법 119조 2항)을 주도했다.[3]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총선 정국을 이끌면서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더불어민주당새누리당을 제치고 제2당에서 제1당이 되었다. 그렇지만 2016년 말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마찰을 빚다가 끝내 의원직 사퇴 및 탈당을 하였다.[4][5][6][7]

그는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여러 정당들을 넘나들며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간절히 요구하여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하였지만 당명을 민주당이라고 말할 뻔한 상황을 연출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실제로 정당만 바꾸어 이언주 후보와 함께 선거운동한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 생애[ | ]

3 비판과 논란[ | ]

  • 1993년 당시 동화은행에서 2억 1000만 원의 뇌물을 공여받은 혐의로 2년간 복역했다.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대검 중수부 함승희 검사가 구속기소했다.[8] 이에 대해 2011년 12월 28일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인 김종인에 대해 "뇌물죄는 증거 잡기 어려운데 확연한 증거가 있었고 당시에 재벌 개혁을 이야기하시면서 다 쓰러져가는 은행에서 2억 1000만 원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낯 뜨거운 범죄라는 얘기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 의원은 27일에도 자신의 블로그에 ‘이건 대체 뭔가요? 반 쇄신인 거죠?’라는 글을 올려 김 비대위원을 맹비난했다. 전 의원은 “청렴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이제 기본인 세상”이라며 “한나라당의 쇄신을 소리 높여 외치는 마당에 뇌물을 받아 의원직을 잃은 분이 이 한나라당을 쇄신해야 합니까”라김고 물었다. 전 의원은 “뇌물 받은 혐의만 있어도 출당조치 돼 나중에 억울함을 호소한 한나라당 의원도 있고, 기소만 되면 당원권이 정지돼 정말 가슴 아프게 당원활동을 못한 의원도 있었다.”며 “그런데 대체 이건 뭔가요? 분명 퇴행이고 퇴보고 반쇄신인 거지요.”라고 따졌다.[9]
  • 2012년 대선 당시 그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란 직함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 있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자 주창자로서 그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추진의지는 확고하다 여러 차례 공언했었다.[10] 특히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박 후보를 옹호한 것은 바로 그였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해 국회의원 사직서를 낸 바로 다음날인 2012년 12월 11일,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 등 핵심 당직자 7명과 함께 서울 시내 모처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에 의결권을 제한'한 행복추진위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박 후보는 또 △대기업집단법 제정 △대기업 총수 주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재벌총수 등 임원진 급여공개 등도 모두 거부하고 김종인 위원장과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그가 한 말은 “박 후보와 만났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더는 (경제민주화 공약에)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가 전부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정홍원 총리 유임으로 부각된 인사 시스템 문제'와 박근혜 정부 조기 레임덕 가능성 등 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관심 없다"며 입을 닫았다.[11]
  • 2016년 민주당 분당 사태로 안철수, 김한길 의원 등이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야권이 분열됐다.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그는 당시 필리버스터와 자신을 비롯한 표창원 교수의 영입으로 다시 인기가 올라가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의 사령탑으로 들어와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고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12] 이에 대해 그는 3월 16일 기자회견에서 만약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07석을 얻지 못할 경우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나겠다고 공언했다.[13]
  •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평소 경제민주화나 재벌 독과점 철폐에 대한 지론과는 달리 김현종 한미FTA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당내에 영입해 논란을 불렀다. 김현종은 게다가 2009년 이후 삼성전자 글로벌 법무 담당 사장으로 일해온 터였다. 이에 대해 국회 농해수위 소속 더민주 신정훈 의원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당은 국내산업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개방을 조절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물론 당 지도부가 바뀌면서 정체성과 정책은 변화할 수 있지만, 반농민적이고 당의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인사(김현종 씨)를 아무런 해명과 검증없이 데려온 것은 당 정체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도 20일 '김현종 전 본부장 영입을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14] 인천 계양 갑에 출마를 선언한 김현종 전 본부장은 2016년 3월 18일 4차 경선 결과 43.15%를 얻어 66.85%를 기록한 유동수 전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에게 밀려 공천이 좌절됐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계양 갑 후보는 43.5%(31,080표)의 득표율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15]
  • 2016년 2월 9일 경기도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대북 기조였던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더민주 혁신위원을 지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표 체제 하에서 대표의 모든 행위에 발목을 잡으면서, 대표의 권한에 통제를 가하려한 혁신안을 대표에게 공천권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황당한 왜곡을 하며 반대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며 “더민주 내 '친문'이건 '반문'이건, 다른 것은 몰라도 햇볕정책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당 지도부의 '우클릭' 기조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입된 '계몽절대군주'의 판단에 충실히 따르면 만사 오케이인가”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역시 2월 18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 및 여당도 야당 일각에서조차도 북한체제의 붕괴나 궤멸을 이야기한다.”며 김 대표의 발언을 새누리당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했다. 정동영 전 의원도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며, 그리고 현재도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북한 궤멸론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며 “한술 더 떠 18일에는 300만 농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한미FTA 추진 주역을 당당하게 영입했다. 민주 야당의 얼굴이자 대표가 될 수 있는 분은 아니다”고 밝혔다.[14]
  • 2016년 3월 분열된 야권을 연합시키기 위해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회동 후 안철수 공동대표는 회담 결렬을 선언하며 “더민주 내부에서 (김종인 대표에) 짜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모두까기 짜르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그럼 여왕(박근혜 대통령)과 짜르의 시대란 말인데 정말 국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연대 논의에 대한 거듭된 질문에 안 대표는 “어제부로 다 정리됐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16] 이에 대해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안 공동대표가 대선후보가 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연대에 반대하고 있다고 폄하했다.[17]
  • 2016년 3월 20일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결정되면서 '셀프 공천' 논란이 거셌다. 당내 중앙위원회는 이를 두고 당헌을 어긴 처사라며 반발했고 이에 김 대표는 정무거부로 맞섰다. 당시 비례대표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후보군을 A~D로 나눴는데 상위 1~10위를 A그룹, 11~20위를 B그룹, 21위~30위를 C그룹으로 나누어 칸막이를 친 뒤 각 그룹 내에서 순위투표를 통해 정하는 방식으로 했다.[18] 중앙위원회 측은 칸막이 자체가 당헌102조 1항의 '위원회는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후보자를 심사하여 (중략) 후보자를 심사함에 있어서 직능, 세대, 성, 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안분하되, 정치 신인을 우선 추천하도록 노력한다.'에 위배된다 주장했다. 아울러 3항의 '선거 전략상 특별히 고려가 필요한 후보자 선정을 제외하고는 중앙위원회의 순위투표로 확정한다.'고 명시된 부분도 문제삼았다. 더구나 당 대표는 비례대표 4명을 공천할 권한이 주어졌는데 김 대표는 하나를 자신에게 사용한 것이라 논란이 더욱 컸다. 전 달 28일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는 스스로 "내가 비례대표에 큰 욕심이 있느냐, 난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른바 셀프 공천 논란에 대해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비례대표 취지에 어긋난다."고 꼬집었고, 조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정관리인으로 더민주에 초빙됐지만 당규 개정으로 통해 대표이사가 됐다."며 "권력 행사를 자제할 분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김 대표는 "당을 추슬러서 끌고가려면 의원직을 갖고 해야한다.", "그런대접 받는 정당서 일 못한다."며 받아쳤다.[19]
  • 20대 총선의 더불어민주당 1당 등극 후 김 비대위 대표의 당대표직 추대론이 불거졌다. 당내 전통적 기반이 없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곧 있을 더민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청래 의원은 2016년 4월 19일 오전 추대론에 대해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셀프 공천도 문제지만 셀프 (당대표) 추대, 셀프 합의 추대라는 게 가능한 일이냐?, 민주 국가에서"라고 반문한 뒤 "이거(대표 합의 추대)는 북한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 마음조차 먹을 수 있는 건지 상당히 의아하다."며 맹비난한 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가만히 있으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가만히 있어서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더민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권교체 침몰한다."고 운을 떼고는, "더민주 선장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맡겨서는 안 된다"며 "민주정당에 걸맞은 리더십이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의원 후보자도 공천심사 시 부정부패 비리혐의자는 배제한다."며 "하물며 당대표하려는 사람은 더욱 엄격해야 하며, 민주화운동으로 감옥간 것도 아니고 비리혐의로 돈 먹고 감옥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대표 자격 기준에서 원천배제해야 한다"고 김 비대위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20]
  • 20대 총선이 한창이었던 2016년 4월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이 부산 구포시장에서 진행한 박민식 후보 지원 유세에서 "정치 잘못해서 분당시켜 놓고는 비판 안 받으려고 김종인이란 영감님 모셔 놓고 뒤로 숨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당시 민주당 선거를 이끌던 김종인 위원장이 비판받았으나 2020년에는 박근혜 탄핵 이후 분당되었다가 도로 새누리당이라고 비판받는 미래통합당 선대위 위원장을 맡아 구포시장을 찾아 박민식 통합당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

4 기타[ | ]

  •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나온 정책 중의 하나가 바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과세였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업종전문화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재벌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고 모욕에 가까운 비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정주영 전 회장과 김우중 전 회장 등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21]
  • 그는 2008년 7월 25일 인터뷰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웃기는 사람이다. 어떻게 삼성 이건희 회장을 '21세기 한국의 희망이자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이는 김종인의 착각으로 사실 21세기 언급은 2003년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만찬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한 축사였음[22]) 노무현 정부가 무슨 좌파정권이냐? 좌파 정책을 쓴 게 뭐가 있나? 무슨 ‘좌파 신자유주의’... 웃기는 얘기다." 아울러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대해서도 혹평했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경제사회적 배경이나 철학을 언급하며 "로렌스 서머스(전 미국 재무장관)도 다보스 포럼에서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고 확인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국가의 모든 기능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소득 재분배 문제와 관련, 정부의 기능을 일부 기업에서 부담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가령 기업 연금제 등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대체할 수 있느냐 하면 못한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것은 언제 망하거나 문을 닫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21] 인터뷰 불과 두달 후 미국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 본관은 울산으로 문묘 종사자인 하서 김인후의 후손이고, 초대 대법원장을 맡은 가인 김병로의 손자이며, 동아일보,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전 부통령과 먼 친척이다. 친인척 중에는 헌법재판소장,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 각료와 참모 등이 두루 포진해 있다. 처삼촌은 8년 9개월간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이고 장인이 한일은행장을 지낸 김정호이다. 매형은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고, 4촌 처남이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 작고한 이택돈 전 신민당 국회의원(변호사)도 4촌 처남이다. 또한 강만수 사단의 일원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필리핀 대사, 지식경제부 장관직을 지낸 최중경이 5촌 조카사위다.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지낸 권태균 전 조달청장도 5촌 조카사위다.[23]
  • 최명길이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그의 최측근으로 따라다니고 있다.

5 학력[ | ]

6 경력[ | ]

  • 1973년 3월 ~ 1988년 2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1981년 4월 ~ 1985년 4월 제11대 국회의원
  • 1985년 4월 ~ 1988년 4월 제12대 국회의원
  • 1989년 1월 ~ 1989년 7월 국민은행 이사장
  • 1989년 7월 ~ 1990년 3월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 1990년 3월 ~ 1992년 3월 대통령비서실 청와대 경제수석
  • 1992년 5월 ~ 1994년 9월 제14대 국회의원
  • 1992년 7월 ~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 1996년 11월 ~ 1997년 1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재단 초빙교수
  • 2003년 6월 ~ 2004년 4월 국민경제자문회의 원로경제인분과 자문위원
  • 2003년 9월 ~ 2004년 3월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 2004년 5월 ~ 2008년 5월 제17대 국회의원
  • 2008년 9월 ~ 2010년 5월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 2010년 10월 ~ 2012년 10월 헌법재판소 자문위원회 위원
  • 2011년 9월 ~ 2013년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 2011년 12월 ~ 2012년 3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2012년 9월 ~ 2012년 12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 2013년 3월 ~ 2015년 2월 가천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
  • 2014년 3월 ~ 2014년 5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재단 초빙교수
  • 2014년 12월 ~ 2015년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 2015년 3월 ~ 2016년 2월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 2016년 1월 ~ 2016년 4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6년 1월 ~ 2016년 8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 2016년 5월 ~ 2017년 3월 제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
  • 2016년 6월 ~ 2017년 3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2017년 4월 ~ 2017년 5월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회 위원장
  • 2020년 3월 ~ 2020년 4월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위원장
  • 2020년 3월 ~ 2020년 4월 미래통합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장
  • 2020년 5월 ~ 2020년 9월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 2020년 9월 ~ 2021년 4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 2021년 3월 ~ 2021년 4월 국민의힘 4·7재보궐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장

7 저서[ | ]

  •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2012년 11월 20일 출간 동화출판사 ISBN 9788943103996

8 김종인을 연기한 배우[ | ]

8.1 예능[ | ]

9 소속 정당[ | ]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민정당 1963 정계 입문
무소속 1963 탈당
국민의당 1963 - 1964 창당
무소속 1964 - 1973 탈당
민주공화당 1973 - 1980 입당
무소속 1980 - 1981 정당 해산
민주정의당 1981 - 1988 창당
무소속 1988 - 1992 탈당
민주자유당 1992 - 1993 입당
무소속 1993 - 2004 탈당
새천년민주당 2004 - 2005 입당
민주당 2005 - 2007 당명 변경
중도통합민주당 2007 합당
민주당 2007 - 2008 당명 변경
통합민주당 2008 합당
민주당 2008 당명 변경
무소속 2008 - 2011 탈당
한나라당 2011 - 2012 입당
새누리당 2012 당명 변경
무소속 2012 - 2016 탈당
더불어민주당 2016 - 2017 입당[24]
무소속 2017 탈당
국민의당 2017 입당
무소속 2017 - 2020 탈당
미래통합당 2020 입당[25]
국민의힘 2020 - 2021 당명 변경

10 역대 선거 결과[ | ]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81년 총선 11대 국회의원 전국구 민주정의당 5,776,624 표
35.60%
전국구 49번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초선
1985년 총선 12대 국회의원 전국구 민주정의당 7,040,477 표
35.20%
전국구 32번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재선
1988년 총선 13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민주정의당 34,752 표
27.12%
2위 낙선
1992년 총선 14대 국회의원 전국구 민주자유당 7,923,718 표
38.50%
전국구 11번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3선
2004년 총선 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새천년민주당 1,510,178 표
7.1%
비례대표 2번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4선
2016년 총선 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6,069,744 표
25.54%
비례대표 2번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5선

11 같이 보기[ | ]

12 각주[ | ]

  1. 벌써부터 김종인 효과? 너도나도 기본소득 외치는 통합당
  2. 김종인 "김용갑 주장, 내가 야당온데 대한 불만인 듯"《연합뉴스》
  3. 류지복. 김종인 "김용갑 주장, 내가 야당온데 대한 불만인 듯". 연합뉴스. 2016년 1월 31일.
  4. (데스크브리핑)더민주 '구원투수'로…김종인 파괴력은?. JTBC. 2016년 1월 14일.
  5. 문재인,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영입《한겨레》2016년 1월 14일 김원철 기자
  6. ‘더민주’ 합류 김종인은 누구?…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 2016년 1월 14일. 동아경제
  7. 염수정 추기경 김종인 대표와 환담 2016년 2월 28일 평화신문 김유리 기자
  8. 대검찰청 함승희 검사,김종인.안영모씨 6년 구형-1993년 9월 15일 MBC 백지연 앵커
  9. 전여옥, 김종인 전 수석 등 한나라 비대위원 비판-2011년 12월 28일 조선일보 선정민 기자
  10. TBS 생방송 오늘 2012년 10월 30일 라디오 인터뷰 Archived 2019년 1월 30일 - 웨이백 머신 (진행:여균동)
  11. 김종인, 박근혜 정부 인사 실패 "관심 없다" -2014년 6월 27일 프레시안 곽재훈 기자
  12. 김종인의 '멘붕 3연타', 이대로 가면 총선 필패 -2016년 3월 15일 오마이뉴스 최봉진 시민기자
  13.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107suk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14. 14.0 14.1 김종인 “정당은 원래 말 많아, 다 담으면 아무것도 못해” -2016년 2월 22일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15. 더민주 현역 김광진·이윤석 공천 탈락 Archived 2016년 3월 21일 - 웨이백 머신 -2016년 3월 19일 서울경제신문 박형윤 기자
  16. 안철수 “김종인은 모두까기 짜르” 격앙 -2016년 3월 10일 한겨레 신문 송경화 기자
  17. 김종인 “안철수, 대선후보 생각 못 벗어나 통합 반대”-2016년 3월 3일 연합뉴스 기사
  18. 칸막이 공천 등으로 지탄 받은 이 방식의 경우 A그룹이 후보가 B그룹의 후보보다 득표가 적게 나와도 1~10위권에 배정되는 경우가 생긴다.
  19. "김종인, 당헌까지 어겨가며 셀프공천" 비난 거세 -2016년 3월 21일 아시아뉴스통신 곽정일 기자
  20. 정청래 트위터, 연일 김종인 직격 "가만히 있으라? 더민주 가만히 있으면 '정권교체' 침몰" -2016년 4월 19일 머니위크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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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노 대통령, "미국의 도움 꼭 필요" -2003년 5월 13일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23. 김종인, ‘박정희 최측근’의 인척… 깐깐한 강골 - 2012년 10월 29일 한겨레 신문 정치면
  24.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
  25.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

13 외부 링크[ | ]

전임
문태준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1989년 7월 19일 ~ 1990년 3월 19일
후임
김정수
전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1월 26일 ~ 2016년 8월 27일
후임
추미애
전임
황교안(당대표)
심재철(대표권한대행)
주호영(대표권한대행)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2020년 5월 27일 ~ 2020년 9월 2일(당명변경)
후임
김종인
전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020년 9월 2일 ~ 2021년 4월 8일
후임
주호영(대표권한대행)

틀:제17대 비례대표 새천년민주당 틀:제20대 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