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의마을

1 # 꽃[ |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 # 꽃을 위한 서시[ | ]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추억(追億)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新婦)여.


http://www.gnu.org/licenses/gpl-3.0.html

일본대학 예술 창작과 수학
경북대와 영남대 교수 역임
한국시인협회상,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시집 <구름과 장미>, , <꽃의 소묘>, <타령조, 기타>, <비에 젖은 달> 등
시론집 , <의미와 무의미시>, <시의 표정> 등
수상집 <빛속의 그늘>, <오지 않는 저녁>, <시인이 되어 나귀를 타고> 등 ||


시인의마을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