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유럽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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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11 金 : 그저 유럽일 뿐[ | ]

테이트 현대미술관Tate Modetn Gallery에 갔다. 테이트 미술관은 워낙 작품 수가 많아 여러 관으로 분리했는데 그것이 흔히 말하는 테이트 미술관Tate Britain, 테이트 현대미술관Tate Modern 등이다. 서너개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구겐하임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이 관객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은 일종의 변혁이다.

  • Jan Svankmajer: Dimensions of Dialogue [Moznosti dialogu] (1982)
    • 이것은 찰흙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남녀가 어떻게 사랑하고 증오하게 되는지 적나라한 이미지의 붕괴와 재구축으로 만들어내고있다. 일부만 묘사하고 나머지를 붕괴된 채로 놔두어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 폴록의 천재성은 일정했다기보단 돌출적이었던 것 같다.
  • 샤갈르노아르의 영향을 받은것 같다.
  • Jean Arp : Winged Being 헨리 무어와 브랑쿠지 공간속의 새를 연상시킨다.
  • 역시 모네는 추상으로 이동했다. Water Lilies after 1916을 보면 확실하다. 앞으로 내 심미안(?)을 믿기로 했다.
  • 생각하면 내 눈을 붙잡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키리코달리같은 대스타들이 아니라 막스 에른스트였다.
  • 의외로 여기서 클림트를 하나 보았는데 그도 참 개성이 독특하다. 역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느냐 아니냐가 의미가 있는듯.

여기 테이트 현대미술관은 작품 자체도 나쁘지 않지만 원래 발전소였던 건물을 잘 개조하고 세인트폴 대성당 쪽에서 이어지는 멋진 다리, 강 옆이라는 배치 그리고 시대순이나 나라별이 아니라 다룬 테마순으로 그림들을 배치해놨다는 점에서 독특한 곳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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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저씨 교회가 보이는 테이트 현대미술관

  • Taslitzky Boris라는 작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적었는데 인터넷에도 별 자료가 없고 무슨 작품을 보고 좋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는 작가들이 많으니 빨리 돌게된다. 현대미술을 보다보면 더이상 할 것이 없는 이들의 몸부림이 읽힌다. 그나마 이런 지랄스러운 것들도 20세기 초반에 다 끝냈으니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매체와 환경의 폭발로 수없는 미술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는 지금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쓰레기인가를 판단하기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물론 예술이 뭐냐라는 말이야 언제나 있어왔던 말이지만 요즘은 조금 더 총체적인 질문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나 들려오는 현대미술의 위기 따위의 말들은 항상 설득력이 있기도 하고 엄살로 들리기도 한다. 그나마 요즘에는 대중사진, 만화, 영화, 패션 등이 예술쪽에 진입하고 있고 확실히 판도를 잠식하고 있다. 소위 순수 예술Fine Art이라는 것들은 클래식처럼 자기만의 아성을 쌓고 몇몇 허명에 눈이 먼 작자들에게 물건을 팔아먹고 있지만 지금처럼 매씨브한, 엄청나게 많은 대중을 공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그것은 매우 유리성 같은 것이다. 하지만 꽤 견고한 것이기도 하다. 유리 구슬을 깨려면 꽤 힘이 필요한 것처럼. 뽀다구에 대한 집착도 그만큼 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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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트리얼 룩(?)을 하고있는 영국 소녀. 내가 좋아하는 NineInchNails의 티셔츠를 입고 있어 한방 찍어주었다.

나는 산업디자인이 예술의 주가 되는 시대가 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예술은 바로 디자인이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는 그리 예쁜 것이 없다. 물론 여기서 예쁘다는 것은 실용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건축에도 속하는 것이고 프로그램 개발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인간과의 접점인 인터페이스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말이다. 인터페이스가 좋은 것에 찬사를 보내는 그런 장이 필요하다. 이것은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보다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똑같은 생각이다. 게다가 지금은 대량 복제의 시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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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큼직한 전시물 앞에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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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요기를 하고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에 갔다.

여기 가자마자 처음 들어간 곳은 한국관이다. 사실 여기 있는 세계 곳곳의 유물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맥락없는 유물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아직 그런것들에 대한 심미안도 없고.
여기는 몇가지 중요한 유물과 나머지 소소한 유물들이 널려있다. 한광호라는 아저씨가 돈과 유물을 기증했나보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보다는 훨씬 알차다. 여기는 고려시대의 불경 사본과 그것을 담고있는 상자가 있는데 멋있다. 아미타경이라는데 이거 외에 나머지 것들은 일본에 있단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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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으로 빛나는 아미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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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그 옆은 한국관 옆에있는 북한 그림 전시장.
"석탄 생산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자!"

중국쪽도 유물이 무척 알찬데 아무래도 아편전쟁 이후 조직적으로 훔쳐오기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튼 그 규모는 장난이 아닌데 이 유물들은 진짜 좋은 것들이 많아 보인다. 이걸 보는 중국인들은 정말 마음이 미어질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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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온 탱화. 이건 암벽에 그린 것을 뜯어온거다. 그 옆은 다른 부조들을 어떻게 훔쳐왔는지 보여주는 단면 사진.

다리가 피곤해서 기댈만한 곳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눈을 감고 조금 있었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고개 젖힌 것이 너무 아파 일어났는데 2-30분은 잔 것 같다. 하루에 미술관을 두개 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행이란 정말 피곤하다.
이곳의 자랑인 로제타 석과 엘진 마블을 보았는데 정말 한마디 하고싶다.

이게 무슨 야만이냐 이 제국주의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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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석과 엘진 마블

물론 그놈들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만이 개명한 사람들이고 식민지의 사람들은 사람으로 안보였을게다. 이 유물들은 있으면 뭔가 뽀대가 날 거 같은데 가져가고는 싶고. 이 무식한 놈들에게 놔둬서 손상당하게 하느니 내가 가져가서 보관 잘 해주자. 분명 이따위 생각을 했으니 벽화를 뜯어가고 신전을 썰어갔을 것이다. 도자기같은거 가져간거는 그래 그러려니 해두자. 그정도는 훔칠수도 있지. 하지만 바위에 그려진 탱화를 썰어가는 엽기적인 생각은 어떻게 하냔 말이다. 니들은 힘만 있었으면 피라밋도 가져갔겠다? 아 돈주고 사갔다고? 애장품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가져왔다고? 학술용으로 보는거라고? 정말 여기는 구역질이 나온다. 19-20세기는 정말 야만의 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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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온 유물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왜 나는 이 제국주의자들의 나라에 와서 이들이 구역질나는 짓거리로 만들어놓은 문명을 보고있는가. 왜 우리는 이 도둑놈들보다도 우리에 대해 공부를 안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들이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흘러 지나간다.
여튼 여기서 내가 이집트 14왕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바도 아니고 로제타 석을 해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만큼 조금 돌다 나왔다. 여기는 그저 외국의 이색적인 것을 즐기는 엑조틱한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도 엑조틱한 존재인데 여기서 엑조틱한 것들을 서구의 눈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아 정말 살떨리게 구역질난다.
나에게 이번 유럽여행이 준 가장 큰 것은 유럽에 대한 환상이 모두 박살났다는 것이다. 별로 특별하게 살고있지도 않고 조상들 잘 만나서 이것저것 받은 유산들이 있지만 그것도 현재 어떻게 하느냐보다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격차가 있다면 공부 좀 하고 돈 벌어서 줄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갭도 있긴 하다. 네온사인 없는 거리, 그지같은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점, 낮은 건물, 녹지, 신구가 조화롭게 구성되어있는 도시와 같은 환경. 당연하게 휠체어를 밀고다니는 사람들, 어딜가도 널려있는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들. 특히 나는 유럽 어디나 휠체어를 밀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충격을 받았다. 조선에도 그만큼 거동이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환경도 안좋고 남들 눈이 무서워 집에만 있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자기 주변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밀고다닌다. 한국에서 10-20년 안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우리 부모님중 한분이 거동이 불편하시다고 해보자. 내가 한달에 하루씩이라도 시간을 완전히 내어 그 분을 밀고다니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다.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귀찮아할 것 같다.
아아 이런 답안나오는 문제는 일단 접어둘란다. 여튼 조선땅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기준에 맞추어 열심히 하면 그들 이상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 것이다. 내 흥미를 끄는 것에 대한 충실한 공부,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와 하는 지속적인 대화. 그것이 모두이다. 내 무의식 아래에 얇지만 아주 끈질기게 깔려있었던 그들에 대한 열등감이 벗겨진 것을 나는 느꼈다. 이 정도면 400만원은 그리 큰 댓가는 아니라고 본다.

아무래도 아일랜드에 갔다와서 그런지 켈틱 문화에 대한 관심이 조금 생겼다. 이 동네는 여튼 엄청나게 복잡하다. 일단 컬트족부터. 원래 이 인간들은 유럽 전역에 퍼져살던 친구들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로마가 화끈하게 유럽을 점령해나가기 시작하면서 그 세력이 축소되더니 결국 아일랜드와 영국쪽에만 그 사람들이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바이킹들이 와서 켈틱의 세력은 더더욱 줄었다. 이 바이킹들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직접 넘어오기도 했지만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 있다가 아일랜드로 올라간 놈들이 많은데 이 놈들이 노르만이다. 그리고 현재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갤릭어(Gaelic)는 이 노르만 인들의 것이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노르만계의 힘이 약해지면서 갤릭어도 점차 소멸해갔고 대신 영어가 강해진다. 따라서 지금 아일랜드는 갤릭어보다는 영어를 더 많이 쓰고있는 것이다. 반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여전히 갤릭어가 남아있는 것은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웨일즈에도 뭔가 다른 언어(Brythonic)가 남아있다고 하니 영국의 인종적 역사적인 유래는 무척이나 복잡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앵글로 색슨족도 그 역사적 실체로 보면 완전 짬뽕인 것이다.
여튼 아일랜드에서 봤던 동그랗게 생긴 벨트형 장신구들은 여기 아랍계의 전시실에도 있어 재미있다. 탄력을 유지하기위해 그렇게 만들었나보다.
그 외에 이것저것 사방에서 훔쳐온 것들이 잔뜩 있긴 하다. 여기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돌면 하루도 채 안걸리겠지만 뭔가 공부좀 하고 유물들을 보려하면 일년도 더 걸릴지 모른다. 여기 유물을 공부하고 본다는 것은 세계사를 꿴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훔쳐와서 그렇지 보고寶庫는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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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도 모른다. 나는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된 느낌이 들었다.

유명한 대영박물관 도서관Reading Room에 갔다. 여기는 마르크스 형님께서 '자본'을 집필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아마 영국의 저력이 있다면 이런 인물들의 망명도 받아들이고 공부할만한 공간을 제공했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있는 것일게다. 진정 위대한 행위다. 생각보다 넓진 않다. 여기서 공부한 사람들의 목록을 보니 정말 유명한 놈들 천지다. 마르크스 외에 레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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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1818-1883

나와서 사람들에게 선물로 줄 차를 샀다. Whittard라는 가게다. 왠지 모르겠는데 차들이 품질도 좋고 값도 상당히 싸다. 몇몇 과일차와 이쁜 머그컵같은 것은 나같은 사람도 사고싶은 마음에 들게 만들었다. 무게도 있고 파손 위험이 있어 참았다. 이런 것은 국내에 지점을 만들어도 꽤 어필할 수 있을거 같다. 생각보다 한국인들은 차를 좋아하니까. 여튼 가격대 성능비 짱인 선물임에는 분명하다. 차는 가볍고 싸거든~
집에 들어와서 그동안 수확했던 CD들의 껍질을 까고 다시 정리했다. 이것도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이딴 짓은 하면서도 별로 시간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도 안들고 즐겁다.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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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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