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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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17 木 : 알함브라 궁전의 기억[ | ]

밤차를 타니 역시 머리도 부스스하고 꼴이 엉망이다. 그라나다에 내렸는데 코인락커 찾기도 어렵고 내려보니 버스정류장 찾기도 어렵다. 역시 어느 도시나 갔다하면 일단 헤매고 본다니깐. 여긴 영어가 바르셀로나보다도 더 안되는거 같다.
어제 바르셀로나 역에서 봤던 일본인 처자들도 보인다. 여기서 내렸나부다. 큼직한 배낭을 메고있는데 지도를 보더니 어딘가로 간다. 달라붙는 옷에 그물스타킹, 뭔가 바른듯한 곱슬머리... 아 역시 다시봐도 외모는 일본인이야. 한국 여자애들은 대체로 널널한 복장을 하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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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끄러운 아저씨와 그 가게. 여기서도 반바지를 입고있는데 여기는 바르셀로나보다 훨씬 남쪽인데도 춥다. 해양성 기후가 아니라서 추운거 같다.

적당히 들어가서 아침을 먹었다. 주인아저씨 엄청 씨끄러운 커피, 토스트 가게인데 물론 씨끄럽기만 하고 영어 단 한마디도 안된다. 그냥 대충 샌드위치 운운하길래 주는대로 먹었다. 하도 씨끄럽고 어수선하게 떠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정신없다보니 그래도 기분이 유쾌해진다. 너무 독특한 캐릭터라서 사진이나 한방 찍자고 하더니 나랑 뿐만 아니라 우람과도 찍자면서 한방씩 찍었다. 토스트는 그다지 맛이 없었다.

여튼 나와서 알함브라 궁전이라고 써있는 표지판을 보고 따라갔다. 지도를 보니 직선길이로는 기차역 길이의 세배쯤 되니 걸어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표지판을 따라 걸으니 한시간을 걸어도 안나온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한시간을 걸은 다음에 길을 물어봤는데 거기서도 버스를 타라는 말이 나온다. 이거 가르쳐준 언니도 우리랑 한참 손짓 발짓을 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했는데 결국 통한 것은 손가락으로 가르쳐준 1과 3이라는 숫자 뿐이었다. 여튼 그 말을 듣고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버스도 안오네...흐미. 13번을 타라는데 33이 석대가 지나갈 동안 한대도 안온다. 우째 이런 상황은 서울이랑 똑같냐. 그리고 분위기 상으로 분명 여기도 조금 싼 패스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달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동전내고 탔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산으로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더니 도저히 걸어가기는 어렵다고 느껴지는 곳에 내려주었다. 도대체 이놈의 가이드북과 표지판은 어떻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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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마라 이 친절해보이는 표지판을. 잘못 믿으면 엿된다.

알고보니 우리는 그라나다 시를 지랄리스틱하게 돌아온 것이었다. 그 빌어먹을 표지판을 믿은게 잘못이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목적지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있으면 이용해주는 것도 괜찮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라나다 역에서 느긋하게 기다렸으면 이렇게 고생하진 않았을거다. 그나저나 왜 역 앞에는 여기로 쓱쓱 오는 직행버스가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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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서 뒹굴다.

알함브라 궁전에 도착해서 기껏 표를 샀는데 입장시간은 2시다. 한 서너시간은 비네. 아웅 짜증나. 여기는 입장 시간대가 하루에 세번으로 나누어져있다. 보호차원이라나 어쩐다나. 그리고 이 도시는 별로 볼만한 것이 없어서 진정 투어버스가 필요한 도시같은데 그런 것도 없다. 여기는 오직 알함브라 하나 믿고 사는 것 같은데 그곳으로 가는 경로조차 이렇게 한심하게 해두다니 역시 스페인! 여기서도 일본인 처자들을 만나다. 역시 다들 오는 곳은 뻔하구만.
날씨가 아주 희한하다. 햇살은 약한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수준인데 그늘만 생기면 춥다. 즉 등은 뜨듯하고 배쪽은 추운 엽기적인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햇살이 따가운데 앉아있는 돌들을 다 너무 차갑다. 느낌 묘하다. 이놈의 파리들은 계절 모르는지 뱅뱅 돈다.
서너시간 삐댈만한 곳을 찾아 헤매다가 언덕으로 올라갔더니 폐허스러운 쉼터가 하나 있어 여기로 올라왔다. 여긴 전망도 좋고 사람들도 없는것이 괴괴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라올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역시 사람없는 곳에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모든 악의 근원은 사람인가. 나도 그들에게 짜증덩어리인가.
여튼 여기 널부러져서 구름의 브라운 운동(?)과 프랙탈 무늬를 구경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이런데서 자면 입돌아가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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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처럼 만든 나무 울타리. 고르지 않고 영 엉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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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알함브라

오오 알함브라 궁전은 진짜 볼게 없다. 타레가라는 양반이 여기를 들렀다가 그 유명한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만들었다는데 그때 그는 분명 자아도취상태였거나 뭔가 멜랑꿀꿀한 심리상태였거나 여튼 정상이 아니었을거다. 여기는 그냥 꿀꿀한 고성일 뿐이다. 13세기의 요새니까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감안하긴 해야하지만 관리상태나 볼거리 측면에서 형편없다. 이런 곳이 어쩌다가 그런 명성을 얻은걸까. 그 스테디셀러 기타곡의 영향이 클 것이다. 특이하다면 아랍인들이 벽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요새 전체가 거의 벽돌로 이루어져있다. 이정도 사이즈라면 그라나다를 아랍 친구들이 꽤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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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내에 있던 광장. 역암으로 만들어져있어 조금 흉칙하다. 아랍인들은 기와를 쓴다는 점에서 조선과 비슷하다.

난 아까 뒹굴었던 그 폐허가 더 좋다. 아 그리고 여기는 고양이들이 꽤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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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역시 도도하고 날렵한 느낌이 매력적이다.

알함브라 건너편에는 집시들이 모여사는 지역이라는 알바이신 지구가 있는데 여기도 기껏 갔지만 안가도 될만한 곳이다. 그냥 달동네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석회를 벽에 발라대서 우리나라처럼 꿀꿀하거나 하진 않다. 어디 전통음식 비스꾸리한 거라도 먹을만한 곳이 없나 찾아헤맸지만 허사다. 이럴땐 음식점 많은 조선땅이 또 그립다.
결국 포기하고 우리는 도심으로 내려왔다. 차라리 시내에서 먹는게 낫겠다 싶어서다. 그런데 시내를 다녀도 썩 먹을 곳이 없다. 레스토랑과 펍을 겸업하는 듯한 집들이 대부분인데 나오는 것도 패스트푸드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우라질레이션 하면서 그냥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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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이신 지구

세비야까지 기차를 또 타야하는지라 슈퍼마켓을 갔는데 또 일본인 처자들을 만났다. 바르셀로나 역이나 그라나다 역, 알함브라에서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거야 대충 코스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라나다 시내를 헤매다가 저녁먹고 대형 슈퍼를 간거였는데 거기서 만나다니 참 우연도 많다. 이미 그쪽도 우리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서로 말은 안했다. 왠지 외국나가서 한국인들을 만나도 말을 안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더라. 한국인 보이면 슬슬 피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하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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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공사중인 곳이 많다. 스페인 전역이 공사판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새마을 운동하는거 아냐? -_-

또 그냥 지나가기 뭐해서 씨디가게를 들렸는데 역시 별로 볼 것은 없다. 요상한 메틀 판들은 많은 편이다. 특히 블랙 계열이 많아서 놀랐다. 스페인은 메틀 강국이라던데 사실인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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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악세사리를 많이 팔던 재래시장

다시 기차역으로 갔다. 스페인에는 이상하게 카메라와 필름 파는 가게들이 많다. 에딘버러에선 눈씻고 찾으려 해도 없더니 이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스페인 사람들이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나? -.- 이건 뭐 슈퍼마켓 숫자랑 맞먹는듯.
기다리다가 기차를 탔는데 재미있는 것은 역에 도착한다는 멜로디가 플라멩코 기타소리라는거다. 꽤 웃긴다. 원래 기타가 이동네 악기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눈치다. 나중에 플라멩코를 보면서 스페인 남부의 기타 연주를 즐겼다.
우리랑 같이 내린 사람들 중에 한국인들이 있었다. 세비야에는 한인 민박집이 하나밖에 없고 따라서 그들을 따라가면 민박집을 금방 찾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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