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 (책)

1 # 거북이[ | ]

나는 나름대로 조너선 스펜스의 팬이라고 할만 한데, 이 양반은 정말 엄청나게 사료를 긁어모아서 재구성을 하고있으며 그 성실성은 정말 높이사주고 싶은 정도이기 때문이다. (뭐 열심히 주석만 다는 것인지도 모른다...-_-) 그리고 이 양반의 글쓰기 방식은 매우 문학적인 구석이 있어서 문사철을 구분하지 않았던 중국에 대한 서술방식으로 어울리는 면이 있다.

하지만 문학적 재구성이 좀 심한 감이 있는데 마테오리치기억의궁전같은 경우는 마테오 리치를 8가지 상징으로 재구성을 했으며 이 '강희제'의 경우는 강희제의 자서전처럼 구성을 했다...-_- 즉 이런 책들은 1차적 텍스트로는 그다지 적합하진 않다는 말이다. 1차적으로는 사실에 충실하고 가능하면 객관적이면서 친절한 텍스트를 접하고 그 다음에 읽기에 적합한 책들이 스펜스의 책이다. 볼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책 역시 문학적으로 서술한 덕분에 그다지 재미없는 부분들이 앞쪽에 좀 있다. 고런 부분은 일단 비추다.
그래도 강희제라는 한 인간에 대해 알게되어 꽤 즐거운 독서였는데 진정 감동적인 부분은 스스로 남긴 '상유上諭'라는 부분이다. 이거 미리 적어놓은 유서다. 61년이나 제위에 있게 되는 희한한 경험을 한 덕에 선조들은 숨넘어가기 직전에 개발새발 쓰는 것을 미리 착 써놓고 친한 신하들에게 반포를 해버렸다.
이 책의 구성은 저 상유라는 클라이막스와 그것에 대한 사전 전개 단계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상유를 기본으로 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정리해본다.

  • 정치
    • 제위 61년동안 잘잘못을 떠나 근면, 성실했던 것은 사실
    • 작은 것도 큰 것처럼 신경을 써서 대소사에 관해 가능하면 일관적인 태도를 취하려 했음
    • 정사 못지 않게 사냥이나 순행등을 열심히 해서 문무에 함께 힘썼음(1683 타이완 점령, 1685 러시아 공격, 1690 준가르와 티벳등 서부 정벌)
    • 조세의 형평성에 신경을 썼음(1712 인두세 동결)
  • 솔직함
    • 신하는 피곤하면 그만두면 되지만 황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할 정도로 책임감을 느낌 (목숨이 다할때까지는 열심히 하겠다고 언급하고 있음)
    • 자신의 현재상태에 대해 장점은 긍정하고 단점은 인정하고 보완하려는 태도를 보임
  • 개방적이고 합리적임
    • 상서로운 징조니 그런건 미신이며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일축 (자신에 대한 상서로운 징조를 겸허하게 사양하고 있음)
    • 역사인식이 비교적 단순하며 역사에서 기본적으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사고를 하고있음. 자의적인 역사왜곡은 안된다는 당연한 사고 역시 하고있음.
    • 천주교 선교사들과 함께 많은 논의를 했으며 서구의 수학과 과학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 그러면서도 도덕, 종교, 왕권에 관한 한 절대주의적 태도 견지
  • 자상함
    • 할머니에 대한 효심과, 본처가 낳은 유일한 아들이지만 패륜아였던 인렁에 대한 자애심이 매우 강했음. 허나 인렁에게 집착해서 정사를 조금 망친 감도 없지 않음
    • 구원싱에게 보낸 편지 3월 7일자를 보면 햇볕에 말린 참외를 보내면서 먹는법을 모를까봐 자세히 적어주었다.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물건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마음은 참으로 먼 곳에서 전하는 것이니 비웃지 말라."
    • 3월 26일자 : "지난번에 보낸 오이는 맛있었다. 이후로 매번 상주문을 올릴 때 반드시 함께 보내라. 무와 가지도 함께 보내라."
  • 기타
    • 상유 저술 시점에 자손이 150명, 자식도 69이었음

정리하고나니 주로 강희제의 개인적인 인품에 대해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구먼. 하여간 이래서 스펜스의 책은 2차로 읽는게 좋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든 생각은 강희제라는 인간은 이미 근대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서구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주체가 되었다. 물론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땅의 황제였으니 자신 있었겠지만 그는 오만해지지 않았으며 서구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파악하면서 중화적인 것 속에 어떻게 포용하느냐에 대해 고민을 했다. 물론 대등하게가 아니라 하나의 '양이'로서 파악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그는 절대권력자인 주제에 합리적이고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려고 하였는데 이런 쉽지않은 일들을 균형감각을 가지고 해낼 수 있는 것도 근대적인 면이 아닐까나. (물론 강희제는 절대왕권제를 고수한 전근대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그는 나에 대해 고민하고 남에 대해 고민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주고있는 것이다.

그의 치세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책을 더 읽어봐야겠지만, 강희제라는 인간은 마음에 든다.
하지만 강희제-옹정제-건륭제의 성군들이 연짱으로 나왔는데 이들이 지나가자마자 바로 나라의 쇠퇴가 왔다. 이것은 영정조 이후 조선이 점차 망해갔던 것과 비슷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가 근대화에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럼 강희제는 근대적인 인간이 아니었던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그 스스로는 근대적이었을지 몰라도, 아마 황런위 교수가 말한 '역사의 거시적 합리성'에 대해서 대응하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이건 정답이겠지. 하지만 난 이 정답에 대해 아직 납득할 수가 없다. 서구의 압도가 과연 근대화였을까. 동북아시아에 자본주의라는 것은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근대화라는 것은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 강희제는 정조나 박지원같은 사람처럼 근대적인 인간이었다는 느낌을 나는 받고있는 것이다.

어서 옹정제나 더 읽어야겠다. -- 거북이 2004-4-22 11:43 pm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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