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가진 물건

1 개요[ | ]

감정을 가진 물건

...은 이야기를 한다. 그건 확실한 이야기일 것이다.

2 이야기 하나[ | ]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하다보니 새삼 느끼는 일을 오늘 이야기 하려 한다. 그럼 시작하기에 앞서 배경을 설명하자면... 아는 사람은 아는거지만 전에 난 악세사리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악세사리의 종류란 다양하다. 그중 난 가방을 했었는데 그다지 많은 작업을 하지 못했다. 한 열댓개 만들었나? 그리고 그만 둬 버렸다. 또 그만두면서 알았다. 난 작업해서 밥먹고 살진 못하겠구나.. 하는 거였다. 그건 재능이 있고 없고와는 확실히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악세사리 할 때는 이 거친 뉴욕에서도 크겠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내것에 관한 나의 집착이란건 참 징글거려서 돈으로도 커버가 안된다는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작한다.

이곳의 수업은 프리젠테이션이 무지하게 많다. 작품을 하겠다고 하면 그걸 왜 하는지, 왜 그런 소재등을 선택하는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잘 대답해야만 성적이 잘 나온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한 내 성적은 개떡같다. 처음 작품.하고 만들었던건 벌써 몇년전인데 그때 나의 무의식엔 생과 사.란 거창한 테마가 있었는데 다른 이들에겐 티 안내고 우스개 소리와 사랑, 연애, 술, 그림, 음악 등등과 노는 얘기들만 하고 있었고 다들 쟨 날나리에 노는거 좋아하는 애.하고 잘 속아 넘어가길래(혹은 속은 척 해줘서) 스스로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에겐 잘 숨길 수 있었다해도 내가 만드는 것엔 도망가고자 했던 생각들이 그대로 나타났었다. 참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실체와 접한다는 것.

그 작품의 소재는 옥(제이드), 붉은 가죽끈, 카퍼였는데 왜 선택했는지, 그걸로 어떤 띰을 나타낼건지 물어봤자.. 왜?라는 질문은 실체가 나오기 전까진 알 수 없고, 그저 그림만 그려지고 손부터 움직이고 보는 스타일인 내게 쥐약과 같은 수업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하자 담당 교수님을 비롯해서 모두는 피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댔다. (성적과는 무관한 동감의 표시였지만서두 -_-)

위에서 말한 생과 사란 주제는 그 가방과 목걸이를 만들면서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진 내가 그런걸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가 만들어가면서 깨달았다고 해야 옳겠다. 사진 한장 남겨두지 않아 보여줄 순 없다. 하지만 대충 설명을 하자면 크고 작은, 여러 색의 옥으로 바디를 만들고 그 옥들을 힘줄 말린거 같은 붉은 가죽에 얇디 얇은 카퍼를 꼬아서 이어가며 만든 거였다. 카퍼를 쓸 때는 무진장 세밀한 작업을 했기에 맨손으로 할때가 많았다. 손끝의 감으로 매듭을 만들고, 그걸 또 이어 가다가 손을 베었다. 피가 흘렀다. 손끝에 동그랗게 맺힌 피를 바라 보다가 쪽-하고 빨아 먹었다. 참 달았다. 그리고서야 알 수 있었다. 난 참 끈질기게 생을 사랑한다는걸 말이다. 그래서 다들 쓰지않는 옥을 선택했구나.. 하고 알았다. 옥의 상징이 만수무강. 그리고 복이라고 한다잖나... 그래서 거친 가죽과 카퍼에 매듭으로 인생을 만들고 행복과 생을 엮고 싶어 했구나.

놀라웠다. 나의 생각이 그렇게 잘 드러난다는 것. 글로 직접 쓰는것 보다 더 솔직하게 나타난다는 것. 반갑기도 했지만 그보단 백주 대낮에 홀딱 벗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만들고 나선 전시가 끝나자 마자 얼른 숨겨 버렸다.

그런데 그걸 만들자 마자 교수님을 통해 어떤 분이 사겠다고 했다. 현재 메트로폴리탄 뮤지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분인데 교수님이랑 오랜 친구라고 했었다. 교수님께 놀러 왔다가 작품 디자인 스케치를 보고선 완성이 되면 알려 달라고해서 반년 가까이나 기다리신 후 일부러 연락을 주신 거였다. 판다... 내껄 판다... 그럼 얼마에? 착찹했다. 만들고나선 보기도 싫어서 쳐박아 뒀지만 그게 다른 이에게 간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껜 지은 죄도 많아서 우선 만나나 보자.. 했던 그분과 함께 한 점심에서 내게 건넨 말 한마디에 이 사람에게라면. 이라고 바뀌었었다.

그때, 그녀는 대뜸 '보내도 괜찮겠어요?'라고 했다. 말도 없이 그녀를 보고 있다가 '리세일은 안돼요'라고 했더니 '물려주는 건 괜찮을까요'라 했다. 그래서 고개만 끄덕이고 앉아 있었더니 가격은 정했냐고 해서 또 쳐다만 봤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수표책을 꺼내 써주었다. 얼만지 확인도 않고 있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스케치를 보고 한참 걸었었다고. 그리고 전시회에도 갔었지만 날 만날 수 없었다고. 어쩌면 안만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내가 전시회에도 나가지 않았단걸 알고 웃었다고. 그래서 사고 싶었다고. 핵심은 말하지 않고 빙빙 도는 이야기였지만 그녀와 난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후,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봉투에 넣어진 수표를 꺼내 봤더니 막 학교를 마친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값이 아니었다. 그녀는 물건을 산게 아니라 내 감정을 이어가 준 것이다. 내 감정에 높은 값을 매겨준 것이었다. 난 행운이었다. 그래서 그걸로 북한에 쌀을 보냈다. 죽지 말고 많이 살아 남았음 했다.

3 이야기 둘[ | ]

내가 아는 그녀는 동화책 일러스트를 한다. 판사인 남편도 있고... 잘사는 친정에 작가대접 받는 몇 안되는 일러스트 디자이너이지만 자기꺼 만드는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 그녀에게도 생각이 많다. 그런 생각들이 찾아올때면 그녀는 목도리를 만들곤 하는데 나와 처음 알게 되었을때, 그녀는 나에요.란 한줄의 글과 수잔 로덴버그의 붉은 말 그림을 보냈다. 그리고 자기 손장난이라며 털실로 만든 목도리의 술로 낚시찌를 매단 걸 보여줬다.

그걸보고 내가 울고 있단 사실도 느끼지 못하고 한참 울었다. 눈이 아파서야 울고 있단걸 알았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는건 참 오랜만의 일이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너무 아프게 왔던 그녀의 목도리에 나의 감상은 한마디도 않고, 아프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그녀가 막 웃었다. 작업실에 그 목도리를 걸어 놨더니 다들 보기만 하면 울어대서 치워버렸다고.

그런데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단 얘기가 들었다. 그래서 앤틱 덕 디코이의 사진을 잔뜩 찍어 보냈다. 물론 왜 그런걸 찍어 보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녀를 생각하니 그게 떠올랐던 것이다. 덕 디코이는 오리를 유인할 때 쓰는 덫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걸 보낸 날, 전화가 왔다. 왜 자길 울리고 그러냐고... 자기가 오리에 집착하는거 어떻게 알았냐고... 자기한테 오린 숙제와 같은 것이라고. 그러면서 느껴줘서 고맙다고 했다.

얼마전 내가 그간 모은 것들을 팔기로 맘 먹었댔다. 내가 만든건 아니지만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인데 그렇게 결정을 해버렸다. 그런데 그녀가 그걸보고 내게 떡하고 던진 말은 재미나게도 내 가방을 샀던 첫사람이 한 말과 똑 같은 거였다. 보내도 되겠냐고. 팔아도 되겠냐가 아니라 보내도 되겠냐고.

감정이 말라 버렸다 생각했던 시점에서 그녀의 한마디는 단물 같았고 찔끔거리게도 만들고 웃게도 만들었다. '네'라고 짧게 대답하는 내게 그녀는 자신의 목도리를 캐나다 예술샵에 보내게 됬다고 말했다. 자기도 보내야 할 때라고 결정했다면서. 그리곤 오리도 날려 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 작업한 것들을 보내줬는데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감정을 담은 오리 모빌은 이제 날개를 달고 있고, 목도리의 장식도 반짝거리는 비즈와 새퀸이 되었다. 그녀는 갖는 사람이 행복했음 좋겠다고 기도하며 시작하고 기도하고 마쳤다고 했다. 그래서 축하의 의미로 문이 없는 새장을 만들어 보내줬다.

이야기가 샜나? 그래도 할 수 없다. 원래 이런 얘기는 정리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냥 그런것도 있다고만 느끼면 된다.

4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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