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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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19 土 : 예술혼[ | ]

모로코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이거 사막까지 다녀오려면 7-10일은 잡아야 한다는구먼. 안달루시아에 와서 두세방 강펀치를 맞은 덕분에 우리는 일주일 배정한거 반도 안채우고 도망갈 생각을 해서 3-4일은 남는다. 우리가 지금 시간 남아서 벙찐 상태이지만 일주일까지 일정을 만들기는 좀 어렵다. 일단 오늘은 좀 쉬면서 미술관이나 한번 다녀오고 내일 꼬르도바를 거쳐 마드리드로 올라가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하고 우리는 11시 근처가 되었는데도 침대에 처박혀 있다. 우람은 퍼져서 자고있고 나는 밀린 일기를 쓰고있다. 이러러면 뭐하러 돈들여 여행을 갔냐라고 하시겠지만 한번 움직여보시라. 그저 퍼지는 것이 최고다...-_-a 여튼 퍼져서 일기를 쓰고있는데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는지 왁자하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마주쳤는데..헉. 이번까지 무려 다섯번이나 부딪힌 일본인 처자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부산 처자들이라고 하더라만. 저녁에 플라멩코를 같이 보기로 했다. 나와 우람은 어제 본 플라멩코에 뻑 가서 안달루시아에는 플라멩코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굳게 믿고있기때문에 한번 더 보기로 한거다. 무려 어제에 비해 값이 세배나 하는 공연이니 뭔가 더 있겠지 싶었다. 일본인 처자들과 같이 내려가서 티켓을 끊고 우리는 미술관으로 그들은 뭔가 쇼핑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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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나리오스 거리. Los Canarios라는 그룹이 있어 한번 찍어보았다. 카나리아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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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순교자를 기억하기 위한걸까 엽기취향을 드러낸걸까.

세비야 미술관에 갔다. 안달루시아의 옛 그림들이 있는데 뭐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여기 무리요의 그림들이 많은데 알고보니 무리요가 남쪽 출신이더라. 여튼 여기는 주로 탱화들이 많이 있고 요즘 그림들은 별로 없다. 탱화들 보는거 아주 지겨운데 여튼 그래도 온 김에 조금 보노라면 가끔 특이한 것들이 보이곤 한다. 야소 초상화에 비하면 정말 적은 지옥도들이지만 이 지옥도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엽기적인 것을 표현하고자하는 욕망은 그 무엇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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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요의 천정화. 아 천정화는 구경하기도 참 힘들다.

  • Martin de Vos / Retablo San Agustin, Juicio Find
  • Gasper Nenez Delgado / Cabeza de San Juan Bautista
  • Dali / Freud
  • Diego Lopez / Sevillana en su Patio : 어제 본 플라멩코 댄서와 비슷하다.
  • Gustavo Bacarisas / Sevilla en Fiestas : 르노아르나 모네를 연상시킨다.
  • Rafael Martinez Diaz / Escena de Familia : !!!
  • Antonio Ortiz Echagne / Interior Holandes : 고흐스타일이다.
  • Gonzalo Bilbao / Noche de Uerano en Sevilla : 이동네 사람 아니랄까봐 시에스타의 한가로움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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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미술관. 아 허술한 관리상태를 보라. 山모양의 손가락은 우람의 것. ^^

무리요도 그랬지만 수르바란의 탱화들도 보면 다른 탱화들과는 좀 다르다. 무표정하지 않고 인간의 얼굴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모습을 담은 탱화들 중에 가장 절정인 것은 이후 보게될 엘그레코의 그것들이었다.
아 영어좀 쓰지 된장.

미술관에서 나와 느긋하게 플라멩코를 보러 올라갔다. 아까 우리가 내려올 때는 시에스타 시간이어서 그런지 거리가 좀 한산했다. 보통 시에스타라고 하면 1시에서 4-5시 정도까지일게다. 그래도 관광객들이 좀 돌아다니기 때문에 유령도시같거나 그렇지는 않다. 문 연 가게들도 띄엄띄엄 몇개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우리가 올라갈 때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나와서 좁은 골목길들이 마치 토요일 오후 명동 분위기처럼 된 것이다. 아까의 조용한 분위기에 비하면 정말 차이가 크다.
사실 이동네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는 것을 천성이 게을러서라는 둥 하고 욕하면 곤란하다. 그건 정말 모르는 소리다. 일단 시에스타 시간은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 밖을 돌아다니기 안좋다. 하지만 그 시간대만 꺾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늘해진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에 일을 해서 한 8시간정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밤에 푸지게 놀고. 이런 것은 기후와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지 게을러서 형성된 것은 아니다.

오늘 본 플라멩코 공연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환상적이었다. 이번 에는 뚱뚱한 아저씨들이 나와 노래를 하고 댄서도 절반은 남자였다. 기타리스트 3, 노래아저씨 3 그리고 댄서가 5 도합 11명이 들락날락해가며 복작거리는 대 공연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지루했다. 노래도 늘어지고 춤도 열심히 안추고. 아저씨들 노래 역시 적응이 안된다. 그러다가 다른 타자들과 함께 바톤터치를 해가면서 분위기가 나아지더니 막판에는 관객을 엄청 업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자들은 어제의 환상적이었던 언니만은 못했고 나머지 남자 댄서들은 개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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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 아저씨.

첫번째 곱슬머리 아저씨는 정말 지옥의 예술혼을 온몸으로 불살랐다. 계단 내려올 때부터 온갖 후까시吹かし를 다 잡고 내려오면서 온갖 똥폼을 다 취하더니 나중에는 사자머리를 휘날리면서 처절하게 발을 구르고 몸을 부르르 떤다. 아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오버액션을 이렇게 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하는데 문제는 그 열성이 보는 나에게로 마구 전해진다는 점이다. 노력하는 사람이 처절하게 보여주는 그 모습은 쉽게 외면될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배가 나온 아저씨도 이렇게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오래간만에 정말 예술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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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적 다리떨기 총각. 오른쪽은 누스랏 파테 알리 칸 아저씨.

두번째 나온 총각은 예술혼 아저씨보다는 훨씬 젊은 축이었는데 삐쩍 말라서 순정만화에 나올만한 꽃미남 스타일이다. 이 친구는 다리떨기의 대가였다. 예술혼 아저씨도 어지간했는데 이 친구는 진짜 초인적인 속도로 다리를 떨며 박자를 찍는다. 한참 나와서 한참동안 찍었는데 거 참 볼때마다 신기하더구만. 그 외에 특별한 장인정신 그런것이 느껴지진 않았다. 역시 연륜이 필요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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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봉 기타리스트. 왼쪽에는 남진, 오른쪽은 숀 코네리.

기타리스트와 노래하는 아저씨들은 스텝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 양반들은 하나같이 누구를 닮았다. 백일섭, 백남봉과 에릭 클랩튼의 평균, 시커먼 남진 등등 난리도 아니다. 백일섭 아저씨는 생긴것처럼 느긋하게 기타를 쳤고 백남봉 아저씨는 반짝이 실크 와이셔츠를 입고 나왔다. 남진 아저씨는 박수소리가 하도 커서 댄서들의 발구르는 소리를 묻을 정도였다. 누스랏 파테 알리 칸을 닮은 아저씨는 노래 스타일도 누스랏을 닮았다. 마지막으로 배 왕창 나온 숀 코네리 같은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만 생긴것이 튄다. 라틴족이 아닌 것 같다.

     
백일섭 백남봉 에릭 클랩튼
     
남진 누스랏 파테 알리 칸 숀 코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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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나와서 판을 벌리는 플라멩코팀 로스 갈로스 Los Gallos

여튼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할 것들을 하다가 막판에는 모두 나와서 바글바글 축제 분위기로 만든다. 서로 띄우며 갈레~ 갈레~ 이러는데 내 참 조금 우습기도 하고. 여튼 흥겨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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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봉, 다리떨기 댄서와 함께.

일본인 처자 둘은 늦게와서 우리와 떨어져 앉았는데 끝나고 나서 보니까 켁 레게파마를 했다. 이거 한국에서 하면 3일걸리고 80만원인데 여기서 하면 3시간이면 되고 90E(11만원쯤)면 되기때문에 안할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긴 판떼기를 그 가격에 팔면 아마 나는 가산을 거덜내서 사갔을 것이다. 확실히 옷이나 신발, 장신구 등에 관심이 많다면 스페인은 꽤 좋은 동네다.
예술혼을 음미하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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