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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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마을

1 # 남 남[ | ]

네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했다
그 기쁨이었으면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닌 슬픔이라든지, 고통이라든지,
번뇌라든지, 일상의 그 아픔을
맑게 닦아낼 수 있는 네 그 음악이었으면 했다
산지기가 산을 지키듯이
적적한 널 지키는 적적한 그 산지기였으면 했다
가지에서 가지로
새에서 새에로
꽃에서 꽃으로
샘에서 샘에로
덤불에서 덤불로
숲에서 숲에로
골짜기에서 골짜기에로
네 가슴의 오솔길에 익숙턴
충실한 네 산지기였으면 했다
그리고 네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에
둥우릴 만들어
내 눈물을 키웠으면 했다
그리고 네 깊은 숲에
보이지 않는 상록의 나무였으면 했다
네게 필요한, 그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2 # 고독하다는 것은[ | ]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거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은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3 # 황홀한 모순[ |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 홋날 슬픔을 주는 것을, 이 나이에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기쁨보다는
슬픔이라는 무거운 훗날을 주는 것을, 이 나이에

아, 사랑도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것은
씻어낼 수 없는 눈물인 것을, 이 나이에

사랑하면 사랑할 수록
헤어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적막

그 적막을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을 기르며
나는 사랑한다, 이 나이에

사랑은 슬픔을 기르는 것을
사랑은 그 마지막 적막을 기르는 것을.


어제 82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조병화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LaFolia 2003-3-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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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45년 일본 동경고등사범 이과 졸업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며 등단
1960년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74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1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85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95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2003년 타계
시집 : {버리고 싶은 유산}(1949), {하루만의 위안}(1950) 외 1989년까지 56종 ||


시인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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