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설레는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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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9 24 火 : 안 설레는 출발[ | ]

기다리던 유럽여행이지만 왠지 그다지 설레이지 않는다. 나는 긴장되는 순간이면 자연스럽게 태연해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험보는 날도 남들 문제집 보는 쉬는시간에 만화책을 읽었고 대학 입시볼때도 삼국지를 읽었으며 대입 결과 발표날에는 늦잠자다가 친구놈이 알려주어 결과를 알았고 결과를 안 다음에도 듣고 마저 잤다. 이상한 방어기제다.

인천공항 가는 길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다. 가끔 문명이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놀랄 때가 있다. 바다를 매립해서 공항을 만들고 거기까지 고속도로를 깔아두다니 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은 오사카로 들어가는 통로인 간사이 국제공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간이 만들어놓은 것만큼의 감흥은 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놓은것만큼 오래가지도 않는다.

Tep:P9240216.jpg
결코 비장하지 않은 인천공항에서의 모습

친구놈이 게임보이를 사오라고 신신당부해서 면세점을 뒤졌건만 여기에는 담배, 주류, 향수 그리고 몇가지의 전자제품 밖에는 안판다. 영국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얘기를 들어 담배만 한보루 사가지고 갔다. 나중에 왜 다섯보루를 안사왔냐고 욕을 먹었다. -_- 알고보니 말만 그렇고 많이 사들고가도 무사패스 분위기다. 13보루를 사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재수없게 입국심사에서 퇴짜맞으면 곤란하니 배짱을 튕길수도 없는 일이긴 하다.

이놈 언제 뜨는겨...-_- 하고 기다릴만큼 활주로를 비실비실 기어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달리다가 확 뜬다. 역시 문명의 힘도 대단하다. 이 조그만 바퀴로 이속도를 버티면서 달리다가 이 무거운 것을 띄우다니 말이다. 비행기 처음타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한번 경이로왔다. 앞으로 이 느낌은 비행기를 열번쯤 타게되면서 지루함으로 변하게 된다.
노을지는 하늘속에서 같은 높이로 노을을 바라본다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그런가하면 고도가 높아지면서 어느순간 바다와 하늘을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을 느끼는 것도 꽤 벅찬 기분이기도 하고. 수평선이 없어져버린다. 게다가 노을이 져서 주황색에서 청남색으로 하늘의 색이 변한다.
서울의 야경은 끝내준다. 나는 내가 일하던 테헤란로와 잠실 주경기장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서울은 야경과 시장 그리고 한강정도가 멋진 볼거리인듯.

기내식을 먹다가보니 밖은 완전히 새까매졌다. 뭔가 뜨문뜨문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아마 바다위를 떠다니는 부표들인지도 모르겠다. 기내식을 먹기전에 에퍼타이저처럼 쥬스를 주었다. 나는 사과주스를 달라고 말할때 링고쥬~스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알아들어주었다! 아마 일본인에게 써먹은 최초의 일본어일것이다. T_T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영어로...-_-
샌드위치와 쁘띠첼(PlusAlpha가 좋아하는)이 나왔고 오츠마미라는 마른안주 스타일의 땅콩 과자, 그리고 커피를 한잔 주더라. 으 커피가 너무 썼다. 자고싶었는데.
여튼 기내식을 먹으니 비행기를 탄 느낌이 더 들었다. 집으로 비행기표가 도착하면 여행가는 기분이 진짜 난다는데 나는 이제서야 그렇구먼. 여행기를 적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소금과 간장을 짱박았다. 이후 나는 주로 민박집을 전전하는 바람에 먹지도 못하고 버리긴 했다.

일본인가하고 창을 바라보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비스무리한 넘)이 나를 맞아준다. 이상하게 간사이 공항 근처에서 비행기가 매우 낮게 난다. 이렇게 한참 나는거 같다. 뭔가를 기다리는건가. 그런데 이렇게 날아도 되남?

망할 간사이에서 입국서류에 도장받는데 무려 한시간이 넘게 걸리다. 내국인 창구가 외국인 창구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에어포트 주제에 이런식으로 외국인들을 홀대해도 되나 싶은데 알고보니 나중에 인천공항 들어올때 외국인 줄이 더 길긴 하더라. 다 그런갑다.
입국심사시 안내해주던 처자는 우리말을 잘 했다. 그런데 그 우리말 스타일이 매우 북조선스러운 감이 있었다. 아마도 조총련계일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나리타 공항쪽에서 한국인 직원이 있길래 이 처자에 대해 물어봤다. 어디서 봤냐고 해서 간사이에서 봤다고 했더니 그러면 조총련계일수도 있겠다고 하더라. 오사카 근처가 조총련계의 주 활동무대인가? 모르겠다.

입국서류에 도장찍고 뭐하고 기다리는 동안 한국 친구들을 만나서 호텔까지 같이 왔다. 다들 비슷한 경로로 비행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본 비행기들(JAL, ANA)이 비교적 싸다. 그러고보면 내가 짐이 제일 적은거 같기도 하고. 내가 가장 이상한 경로로 이용한다. 다들 파리 인 런던 아웃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나처럼 돋보기를 쓴 원시 처자를 한명 보다. 내가 태어나서 본 나 포함 다섯명째 젊은 원시 안경 착용자이다.
일단 호텔에 들어갔다가 다들 심심해서 모였다. 갈데도 없고 시간도 늦었으니 바다나 보잔다. 어떻게 지도를 하나 얻어서 걸었다. 금방이라더니 한 30분 걸었나, 공항 외부로 나가는 톨게이트가 나왔다. -_- 거기서 지키는 아저씨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영어를 잘 못한다. 아주 힘들게 힘들게 들은 대답은 호텔 2층에서 보라는 것.
중간에 그 원시 처자는 지루했는지 화끈하게 길 옆의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해서 바다를 보려했다. 외국에서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다니 다들 당황했다. 절반을 건넜지만 다들 말려서 돌아왔다. 아마 여행도 화끈하게 잘할것이다. -.-a
결국 우리는 호텔앞에서 사진 한방 찍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메일을 받았으니 보내줘야지.

와서 일본인 친구인 히로미상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전화가 안걸려서 당황했는데 나중에 호텔 프런트에서 확인해보니 국번을 잘못적은 것이었다. 전화를 했더니 반가와해준다. 나오고싶었지만 네시간이나 걸리는 곳이라 못나와서 미안하다네. 하긴 우리집에서 공항가는데도 한 두세시간은 걸릴거다. 여튼 안되는 영어로 전화를 통해 말을 하니 영 뜻이 잘 안통한다.
나온김에 카즈히코상에게도 전화를 했다. 카즈히코상은 내가 귀국할 때 만날 예정인데 나를 위해 하루 월차를 내고 놀아준단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 니시 신쥬쿠지역 CD헌팅 투어는 하기 힘들거라고 말했다. 내 다음에 기필코 기회를 만들어서 일본 중고 음반 시장을 평정하리! 여튼 카즈상의 목소리는 느릿느릿 여유있고 유머러스하다.

니코 간사이 호텔은 인터내셔널이라고 써놓은 주제에 수도꼭지 물조절 하나도 제대로 못해놨다. 물조절은 수온조절과 수압조절을 따로따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하는데 그렇게 안되어있는 것이다. 하긴 이런 것은 우리나라도 잘 안되어있는 곳이 많다. 이렇게 되어있지않으면 매번 수온맞추느라 고생을 해야한다. 그나마 물 온도가 미친x 널뛰듯하진 않더라. 물 온도 마구 변하면 샤워시 아주 급짜증이다. -_-+
여튼 일본이라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조금 나을 뿐이지. 이것은 이후 유럽에서도 지속적으로 든 생각이다. 국내에서 제대로 하면 어디서도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이 호텔방은 하룻밤에 19000엔이나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비행기표에 무료제공으로 딸려나오는 놈이라 잤지 진짜 무쟈게 비싸다. 차라리 3000엔짜리 CD 5장을 주면 감동의 폭포수가 내 몸을 적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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