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일본영화)

Jmnote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6월 16일 (화) 00:56 판
  다른 뜻에 대해서는 복수는 나의 것 (한국영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 거북이

아래에 잘 적혀있고 또 내가 인류학입문에 써놓았으니 별로 더 할말은 없다. 일본 요즘 감독들은 왜 이마무라나 다른 옛 일본 감독들을 본받지 않는 것일까. 이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몇가지 유치한 설정과, 불충분한 설명에도 일본 스타일의 그 거친 리얼리즘과 해학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요즘의 일본 영화는 리얼리즘과 해학을 잃은 채 유치한 설정과 짜증나는 연기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인류학입문과 쌍둥이 영화라고 할만하다. -- 거북이 2006-4-2 1:38 pm

2 # 펌

<복수는 나의 것>은 에노키즈 이와오라는 대책없는 사기꾼/살인범의 범죄 행각을 묘사한 영화다. 에노키즈는 두 명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후 도주했으며, 이후 두 달에 걸친 기간동안 일본 곳곳에서 사기행각을 벌이는 한편 다시 세 명을 더 살해했다(뒤에 나오지만 본인은 네 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원한이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도피처를 마련하기 위해. 그 중 두 여자를 죽인 동기에 심리적인 요인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 영화는 살인의 의미를 개인의 트라우마나 특별히 유난한 정신적 결함에서 찾고 있지 않다. 에노키즈라는 인물은 출소하자마자 집 대신 빠찡꼬에 들르고, 아내를 겁탈한 남자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쓰레기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에게 특별한 비정상적 성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에노키즈의 범죄 행각을 묘사하면서 그 근원으로 에노키즈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에노키즈의 아내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삼각관계(사실은 에노키즈의 어머니까지 포함된 사각관계!) 그리고 그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에노키즈의 아버지에 대한 강한 불신(에노키즈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드문 카톨릭 신자로, 그 이유로 군에 부당하게 배를 징발당한다. 에노키즈는 아버지의 비굴한 모습을 목격했으며 그것이 에노키즈가 아버지에게 품은 혐오의 근원이 된다)을 파고들어간다.

결국 에노키즈와 그 가족 사이에 형성된 병적인 관계(사회적 억압과 개인적인 욕망이 혼합된) 그들만의 독특한 것이 아님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에노키즈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희생되고 마는 하루와 그녀의 어머니는 재일 한국인인듯 보이는 인물로(김치를 담근다!) 하루의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선가 사람을 죽이고 15년 동안 형무소 생활을 했다. 모녀는 여인숙을 운영하지만 그 여인숙은 저당잡혀 있고, 하루는 남자들에게 매달린다. 하루의 어머니는 여인숙에서 창녀와 성관계를 갖는 손님들을 몰래 엿보는데, 굳이 해석하자면 그녀의 억눌린 욕망이 왜곡되어 발현되는 것으로 보이는 그러한 행동은 에노키즈 어머니가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자신의 남편과 며느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몰래 엿보는 것과 겹쳐지며, 그것이 에노키즈에게 있어서는 살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지.

어느 날 경정을 하다 돈을 딴 에노키즈와 하루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화는 에노키즈라는 인물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녀가 죽인 사람이 진정 미워하던 사람이었던 반면 그는 정작 미워한 사람은 죽이지 못했다는 것... 그녀의 말대로 그는 겁쟁이에 불과했을 뿐이다(대사를 정확히 인용했으면 좋겠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데..). 이 영화의 무서움은 초반 두 차례에 걸쳐 힘들게 이뤄지는 에노키즈의 살인 행각에 있지 않다. 사회가 개인을 짓누르는 모습과 그것이 발현되는 현장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감독의 카메라 아래에 위치한, 1960년대의 일본 사회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이다.

산 중턱의 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아래로 내려온 에노키즈. 손에 묻은 피를 닦아야 하는데 물이 없으니 자신의 손에 오줌을 눈다. 그리고 에노키즈를 떠난 며느리를 찾아간 에노키즈의 아버지와 그녀가 온천에서 목욕을 하면서 불륜 직전까지 가는 장면은 잊기 힘들 것 같은데... 라스트 신에서 화형된 에노키즈의 유골을 갖고 산을 올라간 그의 아버지와 에노키즈의 아내는 뼈를 힘껏 던지는데, 뼈가 공중에서 정지한 채 떨어지지 않는다. 악한 귀신이라도 떨쳐버리려는 듯 두 사람은 더욱 힘껏 유골을 던지는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몰라도 그 장면을 보면서 실은 두 사람이 에노키즈보다 더 악한 것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진짜로?

팔백가면 (2004-05-18 02:19:57)

이마무라 쇼헤이의 「復讐するは我にあり」의 한국 타이틀이 '복수는 나의 것'이었군요. 재밌군요. 같은 제목의 한국영화가 있으니까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반대로 헷갈리기도 할 것 같네요. 「復讐するは我にあり」라는 낯선 제목은, 일본판 신약 성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혹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란 제목도 성서에서 따온 건가요?

「愛する者よ、自ら復讐するな、ただ神の怒りに任せまつれ。録して 『主いい給う。復讐するは我にあり、我これを報いん』」(ローマ人への書・第12章第19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 (롬 12:19)

한국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고 하니 직접적으로 '복수는 나의 것'이란 표현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네요. 물론 비슷한 뜻이긴 하지만요. '복수는 나의 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復讐は私の物」가 되지만, 정작 그 영화의 일본 타이틀은 「復讐者に憐れみを」(복수자에게 동정을)이었답니다. 미묘하게 조금씩 다르네요.


2004.09.24 / 모은영(DVD 칼럼니스트)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용서가 삶의 지침일 테지만 어떤 이에게는 복수가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목표이자 동력이 되기도 한다. 복수의 절제 혹은 과잉으로 넘쳐나는 <복수는 나의 것>과 같은 박찬욱 감독의 주인공들은 '복수'라는 일념 하에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아간다. 복수 때문에 살아가는 인물로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1979년 작 <복수는 나의 것>의 주인공을 잊을 수 없다. 이마무라 감독이 다큐멘터리 분야에 한창 몰두하다 극영화로 돌아와 찍은 첫번째 영화이며 일본의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사키 류조의 동명 논픽션 소설이 원작이다. 전국을 돌며 극악무도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한 살인마가 체포되어 이송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자백 형식으로 엽기적인 범죄 행각과 어두운 가족사를 다룬다. 무표정한 얼굴과 침착한 행동으로 가게에 들어가 부엌칼을 한 자루 사서는 트럭 운전사를 무차별로 찌르는 남자. 트럭 안에서 칼에 찔린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고 순간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창문에 흩뿌려진다. 카메라는 이 끔찍한 살인 현장을 아무런 감정 이입 없이 냉정하게 바라볼 뿐이다. 왜 그는 아무런 원한이나 복수할 이유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였던 것일까?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것일까? 영화는 무엇 하나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냉혹한 범죄 행각을 나열하며 동시에 어두운 가족사를 교차한다. 절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며느리, 즉 주인공 남자의 아내에게 욕정을 느끼는 아버지와 며느리에게 질투를 느끼는 어머니. 처절하고 잔혹한 리얼리즘과 끈적끈적한 에로티시즘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던 이마무라 쇼헤이는 풍속과 범죄, 비틀린 욕망을 통해 일본인의 심성 밑바닥에 이르고자 한다. <복수는 나의 것> DVD는 의외로 일본이 아닌 홍콩에서 발매되었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일본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엄선해서 출시하고 있는 '파노라마'사에서 나왔으며 '일본영화 백년사'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이다. 영화 본편을 두 장의 디스크에 나눠 실었으며 감독에 대한 설명과 필모그래피 등을 영어와 중국어 텍스트로 실었다. 영어 자막 역시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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