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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2일 (목) 02:19 판

  ISBN:8982640673

  • 저자 :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Alfred N. Whitehead, 1861-1947) [1]
  • 원제 : The Function of Reason(1929)

일단 이 이성의 기능이라는 책은 말 자체를 너무 꼬아서 읽는 이를 괴롭게 한다. 번역의 문제는 아니고 문장 자체가 의고투인듯 하다. 19세기식이라고 하네. 난 한글만 읽었으니 어쩌면 김용옥에게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명징한 사고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논의를 정리해가면서 이성의 기능에 대해 화이트헤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따라가보기로 한다. 그의 말은 복잡 다단하고 거북이의 이해력은 후달리기 때문에 이것은 그저 거북이가 소화하는 것의 수준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해하기 위해 거북이가 알고있는 몇몇 생각들을 징검다리로 붙여넣었는데 그것이 옳은 이해인지 억지로 끼워맞춘 것인지 자신이 없다. 기울임체는 거북이가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생각임을 밝혀둔다.
그런데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잘 모르는 것이거나 구라이기 쉽다. 화이트헤드는 그 몇안되는 예외일까? 휴우,

1 # 제1부

  1. 이성의 기능은 삶의 기술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1. "산다" "잘 산다" "더 잘 산다"




  1. 이성은 새로움을 강조하는 기관이다.





  1. 심신일원론



아 어렵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서 이런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화이트헤드라는 인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제어하는 그것이 이성이다라는 멘트에서 이성은 공부다라고 의미를 잡아낸 김용옥의 센스 역시 대단하다. 물론 김용옥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화이트헤드의 논의를 자기 합리화에 이용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만 다른 책들에 비하면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니다. 논지 자체가 붕 뜬 것도 아니고.
일단 여기까지 느낀 것은 이 책이 20세기 초의 저작이라 이후 진행된 과학혁명의 성과를 안고있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억지스러운 면이 느껴지긴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김용옥 말대로 당시가 과학만능주의 만연의 시대라는 것을 먼저 알고있어야 할 것이다.

이성은 공부이고 공부는 수신이다.

회의주의자들의 사전 인식론 관련

2 # 제 2부

  1. 이성은 목적 달성을 효과적으로 추구하는 충동이다.


  1. 역사적 접근







  1. 사변이성의 형이상학적 정식화The Metaphysical Formulations of the Speculative Reason 아웅 어렵다.





여기서 나타나는 화이트헤드의 그리스 찬양은 놀라울 지경이다. 그는 오직 그리스적 방법론만이 인간에게 사변이성의 발전을 가져다 주었으며 그것이 인간 이성의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내었다고 말하는 듯 하다. 나에게 이것은 매우 파시즘적 발상으로 읽힌다. 과연 그가 아시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DeleteMe 이건 약간 무의미한 이야기 아닌가 싶은데. 외계 생명체가 있어 지구의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인 그들의 사유 방식이나 방법론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와 무관하게 혹은 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지한 채로 사변 이성의 발전을 이룩했고 인간 이성의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 아닌가? 마찬가지로 물리학과에서는 화학과에서 뭘 하는 지 별 관심도 없이 자기네 방법론을 극단으로 추구한 결과 화학과에서 바라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구축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 물론 모르고 나쁜짓 하는 놈들이 알고 하는 놈들보다 더 파렴치하고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만, 19세기 유럽인에게 그리스란 곧 동북아시아의 중국아닌가? 다만, 그 당시는 패권적 측면에서 영국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겠지만. 김용옥이 여기저기 찝적거리는 것을 보고 헤겔이나 주자가 외곬수로 파는 것을 파시즘으로 정리해 버리기는 좀 거시키니 하지 않을까. --SonDon
글쎄 내 보기엔 시간싸움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크리티컬한 시점에서 서구가 동양을 추월해버려 세상이 이꼴이 난 게지. 여기서 화이트헤드는 중세를 '천재들이 (어쨌든) 근대를 준비하던 시기'정도로 규정하고 있는 주제에 인도 문명과 중국 문명에 관해 정체의 시기라고 못을 박고있거든. 김용옥이 이 부분에서 일갈할거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고 깨갱하고있다네. 권위에 약한 건지 원. --거북이

예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의 과감성이나 종종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 보면 화이트헤드는 김용옥 말대로 깡좋은 철학자임에 분명하다. 예술의 발전이라. 그 부분에 있어서 발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 부터가 나와는 좀 맞지 않는다.
예술이란 인간 감성 표출의 놀이터이다. 어떤 장르에서 놀 건덕지가 있느냐 없느냐. 새로운 놀이터가 필요한가 아닌가. 누가 기존의 놀이터를 화끈하게 넓힐 수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일 뿐이다. 천년 전의 감성에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있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역시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현대미술을 굳이 추켜줄 생각도 없다. 하지만 현대미술에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쌓아올린 현대 문명과의 어긋남 속에서 성장해왔고 그 와중에 균열을 정말 치밀하게 드러내는 작품들 또한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천이성의 관성적 저항과 과학자들이 그 타성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역시 화끈한 철학자나 내놓을 수 있는 명쾌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화이트헤드에게 이것을 묻고싶다. 왜 당신은 자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그 타성의 핵심은 바로 자본가이며 가진자가 아니었는지. 자본은 피로이다!

어쨌거나 화이트헤드는 이 장에서 철학이 없는 과학은 공허하다 혹은 민폐를 끼친다라는 한마디를 다각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과학에 을 대주는 자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변적 사유와 과학적 방법이 만날 수 있는가에까지 결론을 못가져가고 있다.

DeleteMe ㅋㅋㅋ 칸트 때만 해도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라고 씨부렸는데, 생각해보면 참 재밌지 않어? --SonDon
다들 뭐랄까 이원론을 상정한 다음에 합일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사고패턴이 엿보이는듯. 그래서 마르크스 형님이 변증법에 대해 얘기한 것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화이트헤드도 양적전화가 질적전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던 것 같네.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나는 다시한번 마르크스는 진정 휴머니스트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네. --거북이

3 # 제 3부

  1. 사변이성이란 미지에 대한 무한한 충동이다.






  1. 사변적 사고는 당대의 많은 이들에게 배척당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흐름 덕분에 면면히 이어질 수 있었다. 사변을 제한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반역이다.




  1. 우주론과 이성의 기능




한가지 확실한 것은 화이트헤드가 이러한 긴 사유를 통해 도달한 부분이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성을 먼저 인식한 다음에 그 인식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식인과 지성인의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게다. 어떻게하면 나의 이 즐거움을 다른 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그나저나 그의 그리스 문명에 대한 찬양은 장난이 아니다. 종종 느껴지는 제국주의 시대 지식인의 냄새는 뭐랄까 역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걸까. 사실 화이트헤드야 이성의 기능이 무엇일까라고 가정을 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이런 공리주의적 결론에 도달했지만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심심해서 공부를 한다. 아니면 허영심을 위해 공부한다고 해도 좋고 나 스스로의 눈치를 보느라 공부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재미없는 공부는 하고싶지 않다. 재미있는것만 하기도 벅차고 열심히 재미있는 것을 하다보면 어느새 재미없는 부분까지 다 넘어간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뭔가 멋진 부작용이 나오면 그것도 좋은거지만 그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나를 지켜보고있는 또다른 나(애칭 토트)도 커나가면서 나를 채찍질한다. 그럼 그것으로 된 것 같다.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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