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내용을 짧게 정리하면 일본이 근대화과정에서 번역이라는 방법론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에도시대 - 메이지 유신 - 제국주의 일본으로 이어지는 시기였고 전근대의 폐쇄적인 세계에서 근대 이후 서구세계에 통합되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한 100년정도 되는데 일본은 흔한 전근대국가였고 식민지의 하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근대화과정을 거쳐 서구 열강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이었거든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한 대답으로 번역을 들고 있습니다. --Pinkcrimson (토론) 2018년 7월 28일 (토) 11:38 (KST)
근대화 과정 단순 비교
- 데지마 설치(1634) - 해체신서 번역(1775) - 아편전쟁(1840) - 흑선 등장(1853) - ** - 메이지 유신(1868) - 서양사정(1870) - 이와쿠라 사절단(1871) - 청일전쟁(1894) - 러일전쟁(1904)
- 크림전쟁(1853) - 남북전쟁(1861) - 보불전쟁(1870)
- 박연의 표류(1627) - 소현세자와 아담 샬의 접촉(1644) - 고종/대원군 집권(1864) - 병인양요(1866) - 강화도 조약(1876) - 조사시찰단(1881) - 갑신정변(1884) - 서유견문(1890) - 경술국치(1910)
번역의 상황
- 오규 소라이(1666~1728)는 유교 문헌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일본어식으로 읽는 것은 일종의 번역이라는 것을 지적. 정약용도 인정했던 유학자.
- 스기타 겐파쿠는 사전도 없이 4년에 걸쳐 해체신서를 번역해냄(1775)
- 후쿠자와 유키치의 책 학문을 권함(1872)가 메이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됨
- 모리 아리노리의 영어국어화론(1873) vs 바바 다쓰이
- 메이지시대에는 수천종의 번역서가 등장. 번역서 가이드북인 역서독법(1883)이 있었을 정도.
- 엔본의 시대를 거쳐 이와나미 문고(1927)가 시대의 교양을 규정
구체적인 번역의 장면들
- 동서양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
- heresy, heterodoxy -> 이단으로 번역. 출전은 논어. 성인의 도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지엽적인 것
- 책의 분류가 중요하다, 동양의 분류는 조잡하다 = 동일범주에서 선명한 것이 아니고 서로 걸쳐있는 것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 : 역서독법의 저자 야노 후미오
- 번역의 시대 이전에는 왜냐하면이라는 구절이 거의 쓰이지 않았으나 번역문에서 급격히 증가하면서 일본어에 침투. 물론 because의 번역어. 오래전부터 인과라는 말은 있었음.
- 비슷하게 수 개념이 원래 희미했었음. a the s 등을 번역하면서 달라짐.
- 자유는 네덜란드어와 포르투갈어 양쪽에서 번역
- 번역가 미쓰쿠리 린쇼
- 권리, 의무 등은 중국어에서 차용
- 동산, 부동산, 미필조건 등은 번역과정에서 조어
- 민권도 린쇼의 조어
- 인권 - 자유를 강조 - 재산권
- 민권 - 평등을 강조 - 참정권
- 이후 민권이라는 이름을 단 수많은 저서들이 등장하며 단어가 정착
- 후쿠자와 유키치
- 현대 일본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언급되는 학자. 1만엔 초상.
- speech -> 연설, debate -> 토론
- second -> 찬성, copyright -> 판권
- 번역의 폭발
- 다수의 역사책이 막부말기부터 번역됨. 원래 역사책은 삼국지부터 인기가 많기도 했지만 점차 배움의 대상이 중국에서 서구로 이동하면서 그리스-로마사부터 근대사까지 다수의 책이 읽힘.
- 수많은 사전이 출간되었으며 이것은 현재까지도 마찬가지
- 다수의 번역이 출간된(1865) 만국공법. 국제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기독교 세계에만 적용된다는 것을 체험.
- 화학책도 다수 번역. 서구 근대의 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학문으로 생각함. 음양오행의 세계관을 뒤집는 힘.
- 메이지 정부
- 오랜시간 기독교를 박해하면서도 불어로 쓰인 일본교회사를 번역(1878)
- 프랑스 혁명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프랑스 혁명론 번역(1881)
- 정부에서 진보적 인사들이 모두 밀려난 상황에서도 문부성이 나카에 조민에게 부탁해 미학을 번역(1883)
- 자유민권운동에 대응하는 책들은 꾸준히 번역
왜 이 책인가
- 번역은 서구세계를 만든 핵심요소
- 이슬람권의 확장으로 중국의 제지법이 이슬람에 유입 (704년 사마르칸트 함락)
- 구전 이슬람 문화가 기록됨과 동시에 그리스 문명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보존 (8~10세기 바그다드)
- 톨레도 함락(1085) 이후 그것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어 중세 수도사들이 보존 (12세기)
- 수도원에 있던 그리스 문명이 재발견되면서 문화적으로 폭발한 것이 르네상스이며 이것이 서양의 근대화로 이어짐
- 구텐베르크가 라틴어 성서를 인쇄해 대중화시켰지만(1454) 성서가 루터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된(1522) 뒤 폭발적으로 파급되고 그것이 종교개혁으로 이어짐
- 번역과 일본의 근대
- 번역으로 만들어낸 가장 드라마틱한 문명 전환의 사례가 바로 일본.
- 근대사는 번역의 역사로 보아도 좋으며 번역은 자국어 문화를 살찌우는 행위
- 세계사에서 반짝했던 나라들 중에 오래 간 경우는 대부분 자국어 문화의 폭이 두터움
- 메이지 일본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 명확히 알고있었음
더 읽을거리
- 학술 논문
- 박소영. (2015). 중세 스페인 톨레도의 번역과 후원. 이베로아메리카연구, 26(2), 1-26.
- 김정명. (2014). 아랍어-라틴어 번역 운동이 유럽의 르네상스에 미친 영향. 인문과학연구논총, (37), 175-214.
- 이규영. (2017). 루터의 성경번역과 표준독일어. 서양 역사와 문화 연구, 45, 39-63.
- 최경옥. (2005). 메이지기 일본의 서양 문명 수용과 번역. 번역학연구, 6(2), 189-208.
- 이근희. (2007). 번역과 한국 및 일본의 근대화(번역제반 양상의 비교). 번역학연구, 8(2), 103-132.
- 단행본
- 후쿠자와 유키치 (1899).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 야나부 아키라 (1982). 번역어의 성립
- 쓰지 유미(1993), 번역사 오디세이
- 오스미 가즈오(2008), 사전, 시대를 엮다 / 事典の語る日本の歴史
- 박훈 (2014).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