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지압 장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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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지압 장군을 찾아서

독후감 - 지압 장군을 찾아서.

토요일 하루 종일을 자다 깨다 했더니 역시나 밤에 잠이 안온다. 그래서 책 두 권을 다 읽어 버렸다. 그 중에 이 책 이야기를 쓰는 건 일종의 의무방어전이다.

소설가이자 기자인 사람이 글을 쓰면 일단 플롯도 쫙 잡혀있고, 글도 매끄럽다. 역시 프로가 쓴 글인 것이다. 프로가 쓴 글인데... 느끼하고 메스꺼워 혼났다. 중간에 확 덮어 버렸다가 진짜 의무방어전 심정으로 읽었다.

무엇보다 화법이 내 취향이 아니다. 글이 온통 작가 자신을 향한다. 자기 연민이 끝이 없고 그 뒤에 오만에 가까운 자기 중심성이 보인다. 글 속에서 자신을 굳이 "하얀 전쟁"의 주인공 한기주로 등장시킨다. 텍스트 전체에서 "한기주"라고 쓰인 걸 그냥 "나"로 바꾸어 넣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기주 = 나"는 어쩌다 치기어린 낭만적 모험을 찾아 떠났다가 전쟁의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 소설(영화)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전쟁은 쌍방 모두에게 아무 의미없는 잔혹한 도살장일뿐이라 말하지만, 내게는 자꾸 의미가 있는 건 "한기주=나"가 주인공이란 것 뿐이라고 읽힌다. 느글거리더라.

한국 아재가 다 그렇지 뭐 싶지만, 진짜 젠더 감수성이 바닥이다. 당시 실제 그랬더라도 왜 지금와서 그 놈의 "꽁가이"는 죽어라고 찾는데? 글 여기 저기 툭툭 묻어나오는 여성에 대한 서사가 너무나 메스꺼운 것이다. 여성 베트콩 포로의 옷을 벗기고 구경했던 걸 무슨 아련한 추억이나 되는냥 말하고 기어코 이제 50이 넘은 그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미스 베트콩"이라고 생각한 옛날의 기억은 추억 속에서 미화가 심했던 거 같다느니, 답변이 너무 짤막짤막 나온다느니... 아니 이 인간아, 역지사지 해봐라. 스물도 안된 여성이 포로로 잡혀서 어떤 썩을 놈한테 옷벗기고 희롱당한 기억을 애써 떠올리고 싶냐? 구역질이 확 올라와서 여기서 한 번 덮어버릴 뻔했다.

이 책은 2004년 KBS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함께한 기행문이자, 자신이 참전한 전쟁에 대한 회고록이다. 당연히 "한국군의 양민 학살"에 대한 언급이 없을 수 없다. 작가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믿고 싶지 않다"이다. 한국군이 워낙 "과장된 무용담"을 늘어 놓은 것이 화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가슴을 도려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 무딘 대검으로 그게 되냐며 과장이 심하다고 여긴다. 2004년이면 퐁니 퐁넛 학살의 사진이 공개된 이후이다. 작가도 틀림 없이 보도와 사진을 봤을 것이다. 책에는 해당 사진은 고사하고 퐁니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미라이 학살은 언급하면서도 한국군의 것은 아니다라.... 비겁하다.

작가는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의 양민 학살과 인권 유린도 못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몇 가지는 악의적인데, 예를 들면 여성 베트콩이 전선에서 일종의 위안부 노릇을 했다고 주장한다. 책 전반에 걸쳐 CIA가 얼마나 많은 공작으로 '더러운 짓'을 했는 지를 누누히 말하면서 정작 이 이야기는 아무 의심없이 단정적 사실로서 기술한다. 피차일반이라고 하고 싶은 것일까? 아무려면 "꽁가이" 찾던 미군, 한국군, 남베트남군만 하셨겠어요? 베트콩이라고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으랴.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정의의 군대", "자유의 십자군"이 학살을 했냐 안했냐를 따져야 하는 것 아닌가?

KBS 취재 팀은 작가와 함께 응우옌 떤 런 아저씨를 만났다. 작가는 공산당 측에서 고른 증언자라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터뷰를 하면서 편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 게대가 런 아저씨의 아버지와 형이 베트콩이었다는 것을 마치 몰래 숨긴 비밀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인식하면서 이야기는 뒤엉켜 버린다. 14살 소년 생존자는 더 이상 "순수한" 희생자가 아니라 어찌되었든 베트콩인 것이다. 피해자에게 너가 피해자다움을 증명하라고 하는 행위. 이런 건 정말 변하지 않는다. 4.3에 죽은 희생자도 스스로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고, 광주에서 죽은 희생자도 스스로 폭도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고... 그만하자. 제발.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은 수색 섬멸 작전의 선두에 있었다. 그건 더러운 일이었다. 언제 공격 당할 지 모르는 매복과, 부비 트랩을 피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 굴 하나 하나를 뒤지고 가옥 한채 한채를 뒤져야 했다. 당연히 어이 없는 죽음이 있었을 것이고, 오인 사격과 사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다. 하미를 보라. 갖 태어나 이름도 없는 아이들은 무엇인가? 퐁니를 보라. 젓가슴이 잘려 버린 젊은 여성은 무엇인가? 분명히 민간인임을 구분할 수 있고, 죽이겠다는 의도를 가져야만 벌일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외면한다. 작가는 수색 섬멸 작전에서 수류탄을 까 넣고 불도저로 밀던 그 굴이 개인용 방공호였는지 아니면 진짜 베트콩 비트인지를 구분할 길 없다고 생각한다. 민간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게릴라전의 특수성 이라는 변명. 그래서 애고 노인이고 쫙 쏴서 죽였다? 세살짜리 적군을 상대로 혁혁한 무훈을 세웠으니 훈장이라도 줘야 하는 걸까? 이 대목에서 책을 다시 집어 던졌다.

물론 작가는 남베트남 정부의 추악한 부패가 전쟁 "패배"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호치민과 응우옌보지압의 장점을 크게 인정하고,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 베트남 전쟁은 백년 가까이 외세와 싸운 독립전쟁의 연장이란 점도 인정한다. 다만, 그 반대편 공산주의 역시 너무나 큰 악인 것이다. 전쟁은 이편이고 저편이고 다 악한 것이고 잔인한 것이고, 그래서... 학살은? 전쟁이니까 어쩔 수 없었던 일인가? 정말?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자기 연민에는 너무나 충실하나 그 외에는 그저 나의 연민을 깊게 하는 배경이 되어버린다. 내가 하워드 진과 같은 수준의 성찰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러면 안된다.

뱀발:

1. 작가는 지엠이 썩을대로 썩은 독재자였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그 놈 말고 반공 정부를 세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을 부었다고 본다. 그런데, 베트남전의 미군 개입은 "통킹만 사건"을 빼놓고 설명이 되나? 한 줄 말이 없다. 2004년은 이라크 파병으로 나라가 한창 시끄러웠을 때고, 작가 역시 이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편다. 그런데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는 끝내 없었다. 통킹만 사건과 이라크 침공의 공통점은 "허위 정보에 의한 선전"이다.

2. 작가가 역사학자는 아니므로 자잘한 역사적 오류는 그런가보다 하는데, 베트남과 크메르 루즈, 중국의 갈등에 대해서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작가는 크메르 루즈가 마치 베트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크메르 루즈는 마오주의를 바탕으로한 극좌파였고 작가도 언급한 호치민의 자아비판 이후 베트남은 마오주의와 담을 쌓았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도 큰 틀에선 그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이걸 베트남의 패권주의라고 하면 곤란하다. 대 라오스 정책이라면 모르지만, 그건 또 얘기가 없다.

3. 제목과 달리 지압 장군과의 만남은 허무하게 공식적이고 허무하게 간략하다. 내가 고른 책이 1판 1쇄 그러니까 초판본이던데, 책이 잘 팔리진 않은 듯하다.

2 같이 보기[ | ]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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